기적의 말하기 영단어 1000 - 20일 만에 네이티브와 수다 떨 수 있는
이시원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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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대학교 1학년 교양영어 수업 이후, 영어를 손에서 놓았습니다. 학교 다닐 때 영어공부도 열심히 했고, 물수능이기는 했지만 외국어영역에서 만점도 받았었는데 전공인 일본어에 심취하다보니 점점 영어에서 멀어졌어요. 어느 날 부터인가 그 쉬운 '나무'도 영어로는 단어가 생각이 안나고, 일본어만 입과 머리에서 맴돌고 있었습니다. 전공을 열심히 하는 것과 취업하는 것이 연결되어 있어서 그 뒤로 쭈우우욱 일본어와 역사만 했더니 어느새 여기까지 와 있네요. 하지만 영어공부에 대한 갈증은 늘 있었어요. 미드나 영화를 자막없이 본다거나, 여행을 갔을 때 능수능란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래, 돌아가면 나도 영어공부 열심히 할거야!' 다짐하곤 했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실천하는 게 쉽지는 않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첫째 곰돌군이 네 살, 만 34개월이 되다보니 영어노출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영어유치원까지는 못보내(아니 안보내)더라도 휴직하는 동안 엄마표 영어를 시작은 해보자!-하는 마음에 조금씩 영어동화책을 사모으기 시작했어요. 노래로 배우는 영어동화라는 점이 매력적이어서 저도 같이 노래도 부르고 한 권씩 한 권씩 보고 있는 중인데요, 그 덕분인지 본격적으로 영어 공부 한 번 시작해보고싶다는 마음이 싹텄습니다. 사실 저는 외국어학습에 있어서 발음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1인이에요. 저의 아주 이상한 영어발음(저도 인정합니다!)을 남편이 한 번 비웃었다가 호되게 당했는데요, 언어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의사소통, 뜻이 통하면 다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이는 뜻을 모르고 즐겁게 영어를 접해도 되지만, 저는 이미 주입식 교육, 의미를 알지 못하면 답답해하는 교육에 길들여져 있는지라 일단 단어공부부터 해보자 싶었죠.

그렇게 알게 된 [기적의 말하기 영단어 1000] 입니다. 저자인 이시원님이야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저도 귓등으로 들어본 적은 있어요. 하지만 저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저~기 한쪽 구석으로 밀어놓았는데 '진짜 필요한 1000개 단어만 알면 왕초보도 네이티브와 대화할 수 있다!'는 문구를 보니, 무슨 약장사에게 홀리듯 이 책이 궁금해졌습니다. 20일만에 네이티브와 수다를 떨 수 있다잖습니까! 도착한 책을 일단 휘리릭 넘겨보니, 그래도 아직 나 살아있어!-를 외칠 수 있을만큼 쉬운 단어들이 보여서 기뻤습니다. 으흣. 가벼운 마음으로 소파에 앉아 단어를 보고 있었는데요, 문장도 단어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서 생각보다 가뿐히(?) 외울 수 있었어요. 다만, 하루 분량으로 설정된 분량이 저에게는 다소 버거웠어요. 아이들을 재우고 한밤에야 온전히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저로서는 영어공부 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게 참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하루 분량을 다시 반으로 나누어서 40일이면 네이티브와 수다 떨 수 있게 분량을 조정했습니다.

이런 저를 보더니 남편이 자기도 같이 하자면서 외우고 서로 물어봐주기 하자네요. 체크하다 틀리면 딱콩 때리기 할 거랍니다. 아. 뭔가 오랜만에 떨리고 설레는 이 기분. 혼자 하는 공부도 좋지만, 저처럼 딱콩 때릴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훨씬 더 능률이 올라가지 않을까요! 영어공부 하는 모든 분들, 화이팅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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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모자가 좋아
번 코스키 지음, 김경희 옮김 / 창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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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털모자가 좋아]는 세계적 출판사인 펭귄랜덤하우스의 2018년 볼로냐 도서전 대표작으로 손꼽혀 소개되며 도서전에서 화제가 된 작품입니다. 저도 아이들 키우고 그림책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볼로냐 도서전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요, 요 도서전에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나 수상작들은 대부분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어서 웬만한 소설보다 좋더라고요. 그림책이 이렇게 수준이 높고 감성적일 수 있구나라는 것을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서 깨닫는 요즘입니다. 그래서 제 본래 책 욕심에 그림책 욕심이 더해졌어요.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그림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원래 가지고 있던 책들과 아이들 그림책 덕분에 집이 터져나갈 지경입니다. 봄이 되면 한 번 책들을 싹 정리하고 싶은데, 과연 가능할지. 거대책장 하나를 거실에 들여놓는 것이 희망사항인데, 그렇게 된다면 저희 가족은 거실에 앉을 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그럼 이 [털모자가 좋아]의 주인공부터 소개해볼까요.

 

우리 주인공 해럴드입니다. 해럴드는 털모자를 정말 좋아하는 곰이에요. 아주 좋아해서 늘 쓰고 다닙니다. 무더운 여름에도 쓰고, 학교에서도 쓰고 있고, 잠잘 때도 쓰고 자고, 무려 한 달에 한 번 목욕할 때조차 몸에서 떼어놓지 않는답니다. 해럴드는 모자를 쓰고 있으면 자기가 특별하게 느껴진대요.

 

보세요. 다른 곰 친구들은 물고기를 한 마리씩 잡았는데, 털모자를 쓴 해럴드만 세 마리나 잡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호시탐탐 해럴드의 털모자를 노리던 까마귀가, 그만 해럴드의 털모자를 훔쳐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다른 곰 친구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똑같아 보일 거라고 생각한 해럴드. 까마귀가 훔쳐간 털모자를 찾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합니다. 꿈틀대는 지렁이를 잔뜩 모아 가져다주기도 하고, 새콤달콤한 블루베리를 가져다주기도 하고, 심지어 까마귀가 좋아한다는 반짝이는 물건들까지 털모자를 위해 바쳤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까마귀는 해럴드를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물건들만 낚아채 둥지로 돌아가버렸죠. 화가 난 해럴드. 결국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합니다. 그것은 바로. 까마귀의 둥지가 있는 곳까지 기어올라가는 것이었어요. 그 곳에서 해럴드가 발견한 것은!

 

자신의 털모자를 포근하게 덮고 잠든 아기 까마귀들이었어요. 해럴드는 아기 까마귀들에게 털모자를 잘 덮어주고 조용히 내려와요. 그리고 털모자가 없어도 자신은 특별한 곰이라며 까마귀에게 벌꿀을 선물합니다.

 

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20장이 채 안되는 그림책을 첫째 곰돌군에게 읽어주다 제가 더 감동을 받고 말았습니다. 아기 까마귀들이 털모자를 덮고 잠들어있는 그림에서도 마음이 짠했지만, 그 털모자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던 그 털모자를 잘 덮어주고 조용히 내려오는 해럴드가 정말 너무 멋있었어요. 게다가 털모자가 없어도 자신은 특별한 곰이라며, 아기 까마귀들을 위해 벌꿀까지 따다 까마귀에게 전달하는 저 모습! 처음에는 털모자가 있어야만 자신을 특별하게 느끼던 해럴드가, 그런 눈에 보이는 무엇이 없어도 자신을 특별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마음 깊이 다가왔습니다. 자존감을 높이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친절하고 다정한 성품이라는 것을 깨닫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어요.

우리 곰돌군들도 저런 멋진 사람이 되어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거칠고 험한 세상 너무 착하게만 살아도 힘들텐데라는 생각이 들어 멋쩍어졌습니다. 저라면, 어땠을까요. 나도 해럴드처럼 행동해야지!-라고 말하는 건 너무 쉽지만, 막상 나의 소중한 무엇을 누군가에게 빼앗겼을 때, 그것이 아무리 좋은 방향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해도 나는 그 소중한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라며 되찾아오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 책을 곰돌군과 벌써 몇 차례나 읽었어요. 그 때마다 감동받고 그림 하나하나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은 오히려 제 쪽입니다. 어째서 이 작품이 2018년 볼로냐 도서전 대표작으로 손꼽혔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요. 혼자 보기에는 아까운 정말 멋진 작품입니다. 저의 완소 그림책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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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100 - 알수록 다시 보는
토마스 불핀치 지음, 최희성 옮김 / 미래타임즈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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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본질은 이야기이다.

이야기란 무엇인가?

무엇인가를 밝히고, 말하고, 드러내는 우리 안에 깃들어 있는

'그렇게 되고 싶은 욕망의 원천'이 아니겠는가.

 

언제나 매력적인 <그리스 로마 신화>입니다. 참 이상하죠. 벌써 몇 권이나 되는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새로운 책이 출간되었다는 것을 아는 즉시 또 사고 또 사고, 또 읽고 또 읽고 합니다. 우리는, 저는 왜 이렇게 이 이야기들에 빠져들게 되는 걸까요. 골똘히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가장 쉽게, 가장 많이 접했던 책이 이 <그리스 로마 신화>였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그리고. 재미있잖아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닌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신들, 그런데 신들이 좀 인간 같아, 서로 질투하고 싸우고 사랑도 하고, 이상하고 웃긴 신들도 있어, 뭐지, 신들도 우리랑 똑같네!-에서 오는 친밀감과 갖가지 영웅담, 배신과 복수,모험과 환상. 무게잡고 단조로운 모습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데서 오는 끈적끈적한 에피소드들이 읽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주는 요소가 아닐까요. 그래서 전, 또 집어듭니다. '알수록 다시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요.

 

이 책은 지금까지 제가 본 <그리스 로마 신화> 관련 책들 중 가장 체계적이라고 여겨져요. 각 신들마다 챕터가 배당되어 있고, '그리스의 세계관'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분은 내용면이나 체계면에서 압도적입니다. 예전에는 신들의 계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이 책에 나온 그 계보를 보니 새삼 재미집니다. 누가 누구의 부모이고 자식이며, 그들이 무얼 마시는지, 그 신의 이름은 무엇이고 어떤 일을 하는지(그러고보니 신들도 직업이 있었군요! 건축가이며 대장장이인 헤파이스토스가 대표적이겠네요), 각 신들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었어요. 마침내 신들이 탄생하고 그들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제우스를 필두로 헤라, 제우스의 수많은 욕망의 대상들, 아테나, 아르테미스, 아폴론, 포세이돈, 하데스 등등의 신들이 드디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다시 읽어도 흥미롭고 재미있었어요. 그냥 펼쳐서 아무 데나 읽어도 금방 빠져들었습니다. 그 재미를 증폭시켜 준 것은 책에 실린 그리스 로마의 신들의 모습이 담긴 명화와 조각이었습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활약했던 귀스타브 모로, 루벤스, 발다사레 페루치, 니콜라 푸생, 안젤리카 카우프만, 줄리오 로마의 작품들이 신들의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택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크고 위풍 당당하게 실려있는 명화와 조각들이 이야기에 생명력을 부여했다고 할까요. 서양미술에 관심있는 분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신들을 소재로 한 영화나 소설, 책들은 지금도 무수히 쏟아지고 있어요. 그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끝이 없습니다. 멀리 있는 것 같아도 금방 손에 닿을 듯 하고, 닿았다 싶으면 사라져버리는 신들에 대한 동경 때문일까요. 미지에 세계에 대한 갈망과 탐구가 우리를 신화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길에 명화와 조각으로 즐길 수 있는 이 책이 함께 한다면 더 즐거우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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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의심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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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커플이 모텔에 들어가고 잠시 후, 여자가 달려내려옵니다. 남자친구가 젤리를 먹다 목에 걸렸다며 도움을 요청, 남자는 병원으로 실려가지만 결국 보름 후 숨을 거두고 말아요. 평범한 커플의 안타까운 사고 정도로 잊혀질 수 있었던 일이, 여자가 남자친구의 이름으로 보험에 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여자가 수령한 돈은 무려 5억원. 유가족은 피해자인 남자와 여자의 사이가 평소 좋지 않았고, 헤어졌다 만나기를 반복했으며, 특히 남자는 치아가 좋지 않아 단 음식을 멀리했다며 그가 살해당했다고 주장합니다. 게다가 가족을 끔찍히 사랑했던 그가 가족이 아닌 여자친구를 보험수령인으로 할 리가 없다면서요. 반면 여자는 그 동안 어떤 일이 있었든간에 자신은 남자친구를 사랑했으며, 그에게 가족력이 있어 건강이 걱정되는 마음에 보험을 들어놓았던 것이라고 고집하죠. 누가 봐도 여자의 범행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가운데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고, 판사들은 이 사건에 대해 어떤 판결을 내릴 것인가 고심하게 됩니다.

제가 접하는 도진기 작가의 첫 작품입니다.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관이 되었고, 2010년 단편소설 <선택>으로 한국추리작가협회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고 해요. 주중에는 판사로, 주말에는 작품을 집필하던 그는 [붉은 집 살인사건],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 [정신자살], [악마의 증명] 등의 작품을 발표했고, 2017년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를 마지막으로 공직을 떠나 현재는 변호사로 활동 중이라는, 엄청난 이력을 자랑하는 작가님입니다. 읽어본 적은 없지만, 어쩐지 국내 추리소설에는 손이 잘 가지 않는 저도 이름 정도는 들어본 그의 작품을 이제서야 만나게 되었네요. 다른 작품들의 성향이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합리적 의심]은 도진기 작가의 첫 본격 법정물이라고 하니 기대가 컸습니다. 법정에서의 날선 공방, 그 팽팽한 긴장감과 상대의 주장을 무너뜨리기 위한 설전이 어떤 식으로 펼쳐질 지 궁금했는데요, 공기가 부풀어 터질 것 같은 엄청난 긴장감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변호사나 검사가 아닌 판사의 눈으로 바라본 사건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감히 짐작해봅니다.

판사인 '나'는 그녀, 김유선의 유죄를 확신합니다. 개인적으로 분노마저 느끼고 있죠. 배석판사들과 그녀의 유죄를 확실히 하기 위해 회의를 열지만 그들은 '합리적 의심'이라는 명제를 들며 그녀의 유죄를 반대합니다. 특히 이제 2년 차인 민지욱은 부장판사인 나의 의견에 조금도 지지 않은 채 한 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기까지 합니다. 결국 그들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나는, 법정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마는데요, 그 판결에 피고인인 김유선은 '수고하셨습니다!'를 크게 외치며 밝은 얼굴로 퇴정해요. 그 후 벌어진 또 한 건의 살인사건. 나와 김유선과 죽은 남자의 가족이 묘하게 얽히며 사건은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것은 변호사나 검사입니다. 그들이 자아내는 어떤 긴장감은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응원하는 편이 이기기라도 하면 '해냈다!'와 같은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하기 때문일 거에요. 그에 반해 판사들의 세계를 그린 작품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적었는데요, 작년 종영한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는 정말 재미있게 봐서인지 판사들의 세계가 무척 궁금했어요. [합리적 의심]은 드라마틱한 모습들보다는 현실에 바탕을 두고 판사들이 보내는 일상, 그들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건, 판결을 내기까지의 과정을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조금 답답하다고 느껴질정도의 일상을 묵묵하게 걸어가는 그들 각자의 마음 속에도 타인에게 쉽게 내보일 수 없는 격랑의 물결이 존재했던 거겠죠. '인간'이기보다는 '판사'이기 때문에 해야만 하는 선택, 그 선택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누군가의 또 다른 선택은 과연 옳았던 것인가, 복잡한 마음이었어요. 특히 작가 자신이 판사로 재직했었기 때문에 작품이 더 현실감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적인 감정이 결여된 사람이 많다는 것, 억울한 죽음이 몇 번이나 발생한다는 것이 새삼 무척 가슴 아팠습니다.그런 그들을 사건의 한가운데서 바라보아야 하고, 어떤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일이 보통이 아니구나 실감했어요. 다음 법정물은 어떤 모습으로 발표될 지, 한 번 더 판사들의 세계를 보여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다만, 작품 속 '나'가 죽은 아내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젊은 직원을 바라보는 개인적인 시선들은 조금 불편했습니다. 꼭 필요한 장면이었나 싶을 정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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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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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가 케빈으로부터 '살아남은' 그 후. 마을은 여전히 그녀에게 잔인하고, 사람들은 그녀 뿐만 아니라 페테르손 가족 전부에게 잔혹하다. 스타 플레이어였던 케빈이 마을을 떠난 후 베어타운의 하키팀은 더 이상 명맥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위기에 빠졌고, 마야의 편에 서서 그녀를 옹호했던 아맛과 벤야민, 하키만이 구원의 밧줄이었던 이들에게도 어두운 시간이 지나간다. 마야의 아버지이자 하키팀의 단장인 페테르 안데르손에게 정치인인 리샤르드 테오가 거래를 제안하고, 평생동안 하키가 전부였던 그는 어쩔 수 없이 그가 내민 손을 잡지만, 그도 알 수가 없다. 이 선택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더 깊은 검은 구덩이로 빠지는 길인지. 아맛은 하키를 할 수 없어 절망하고, 벤이는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해 갈등하고, 누군가는 죽음으로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그런 계절. 베어타운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생존자야, 아나. 생존자. 우리는 생존자야.

'하키'라는 운동이 내 눈을 가렸었다. 별로 관심 없었던 운동종목이라 단순히 하키에 관한 이야기인 줄 알고 [베어타운]을 건너뛰었다. 이럴 수가. [베어타운]을 먼저 읽지 않았어도 [우리와 당신들]을 이해하는 데 큰 문제는 없지만, [베어타운]을 먼저 읽었다면 더 좋았을 뻔 했다. 아니다. 그러지 않기를 잘했다. 지금도 이렇게 그들의 함성이, 그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다가오는데 [베어타운]을 읽었었다면 난 아마 한참동안 이 프레드릭 배크만이라는 작가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두근두근, 가슴이 뛰었다. 페이지 한 장 한 장을 넘기면서 긴장감과 기대감으로 침이 꼴깍 넘어갔다. 세상에나. 어떻게 이 작가는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거지. 가만. 베어타운이 실제로 존재하는 마을인 거 아냐. 이게 전부 소설이라니, 믿을 수 없어! 나는 이제 그만, 프레드릭 배크만이라는 마법에 풍덩 빠져버렸다.

 

하키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로 이루어진 베어타운. 그 안에 인간의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분노와 증오, 용서와 화해가 전부 들어있다. 사람들은 쉽게 변하지 않고, 금방이라도 남을 위해 희생할 수 있을 것처럼 굴지만, 언제나 자신이 먼저다. 타인을 비방하고, 조롱하고, 상처주는 것에 거리낌없이 동참하는 것이 날 것 그대로의 인간의 모습이다.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닌 거라고 이야기하고, 덕분에 흠씬 매를 맞고, 누군가의 죽음으로 전쟁같았던 서로의 관계가 잠시 휴전을 맺고, 말없이 망가진 지붕을 고쳐주고, 불길 속에 뛰어들어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타인의 실수를 용서하는 것 또한 인간의 모습이다. 그래서 매력적인 것이다. 이 삶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 어떤 난관을 만나도 뛰어넘고 어쩔 수 없더라도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 결국에는 우리 모두 생존자다.

 

우리이이는 고오오오옴!

우리이이는 고오오오옴!

우리는 고오오오옴!

...

인간의 다채로운 모습을 그리는 작가의 실력이 놀랍다. 등장하는 인물 하나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 능력, 입체적인 캐릭터, 자신의 다름을 인정하는 쪽지에서조차 완전한 기쁨을 누릴 수 없는 현실적인 모습을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위해 어디까지 보여주고 희생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그린 이 작품에 나는 아주 녹아버렸다. 공평하지만 공평하지않은 세상 속에서 매 순간 울컥했고, 마지막 100페이지 즈음부터는 그저 줄줄 울면서, 책장을 잡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읽었다. 이런 이야기를 또 만날 수 있을까. 1월 초에 조디 피코의 [작지만 위대한 일들]을 읽으면서 이 작품을 뛰어넘는 이야기가 또 있을까 싶었는데, 안되겠다. 그 자리는 이번에 [우리와 당신들]에 내어주어야겠다. 매 페이지, 매 장마다 주옥같은 대사와 장면이 넘쳐나서 나의 비루한 글쓰기로 기록을 남긴다는 게 힘이 든다.

 

여운이 너무 짙다. 심지어는 자면서도 생각난다. 우리는 생존자라고 말하는 마야의 목소리, 헤드의 응원단이 외치던 '우리는 베어타운의 곰!'이라고 외치던 그 장면이. 프레드릭 배크만이라는 작가를 이제서야 만나게 되어 커다란 즐거움을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에 너무너무 아쉽지만, 아직 읽지 않은 그의 국내 출간작이 남아 있어 한편으로는 가슴 벅차게 기쁘다. 앞으로 최애 작가님 중 하나로 모시겠습니다. 당신의 팬이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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