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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ㅣ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평점 :
마야가 케빈으로부터 '살아남은' 그 후. 마을은 여전히 그녀에게 잔인하고, 사람들은 그녀 뿐만 아니라 페테르손 가족 전부에게
잔혹하다. 스타 플레이어였던 케빈이 마을을 떠난 후 베어타운의 하키팀은 더 이상 명맥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위기에 빠졌고, 마야의 편에 서서
그녀를 옹호했던 아맛과 벤야민, 하키만이 구원의 밧줄이었던 이들에게도 어두운 시간이 지나간다. 마야의 아버지이자 하키팀의 단장인 페테르
안데르손에게 정치인인 리샤르드 테오가 거래를 제안하고, 평생동안 하키가 전부였던 그는 어쩔 수 없이 그가 내민 손을 잡지만, 그도 알 수가
없다. 이 선택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더 깊은 검은 구덩이로 빠지는 길인지. 아맛은 하키를 할 수 없어 절망하고, 벤이는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해 갈등하고, 누군가는 죽음으로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그런 계절. 베어타운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하키'라는 운동이 내 눈을 가렸었다. 별로 관심 없었던 운동종목이라 단순히 하키에 관한 이야기인 줄 알고 [베어타운]을
건너뛰었다. 이럴 수가. [베어타운]을 먼저 읽지 않았어도 [우리와 당신들]을 이해하는 데 큰 문제는 없지만, [베어타운]을 먼저 읽었다면 더
좋았을 뻔 했다. 아니다. 그러지 않기를 잘했다. 지금도 이렇게 그들의 함성이, 그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다가오는데 [베어타운]을 읽었었다면 난
아마 한참동안 이 프레드릭 배크만이라는 작가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두근두근, 가슴이 뛰었다. 페이지 한 장 한 장을
넘기면서 긴장감과 기대감으로 침이 꼴깍 넘어갔다. 세상에나. 어떻게 이 작가는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거지. 가만. 베어타운이 실제로
존재하는 마을인 거 아냐. 이게 전부 소설이라니, 믿을 수 없어! 나는 이제 그만, 프레드릭 배크만이라는 마법에 풍덩 빠져버렸다.
하키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로 이루어진 베어타운. 그 안에 인간의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분노와 증오, 용서와 화해가
전부 들어있다. 사람들은 쉽게 변하지 않고, 금방이라도 남을 위해 희생할 수 있을 것처럼 굴지만, 언제나 자신이 먼저다. 타인을 비방하고,
조롱하고, 상처주는 것에 거리낌없이 동참하는 것이 날 것 그대로의 인간의 모습이다.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닌 거라고 이야기하고, 덕분에 흠씬 매를
맞고, 누군가의 죽음으로 전쟁같았던 서로의 관계가 잠시 휴전을 맺고, 말없이 망가진 지붕을 고쳐주고, 불길 속에 뛰어들어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타인의 실수를 용서하는 것 또한 인간의 모습이다. 그래서 매력적인 것이다. 이 삶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 어떤 난관을 만나도
뛰어넘고 어쩔 수 없더라도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 결국에는 우리 모두 생존자다.
우리이이는 고오오오옴!
우리이이는 고오오오옴!
우리는 고오오오옴!
...
인간의 다채로운 모습을 그리는 작가의 실력이 놀랍다. 등장하는 인물 하나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 능력, 입체적인 캐릭터, 자신의
다름을 인정하는 쪽지에서조차 완전한 기쁨을 누릴 수 없는 현실적인 모습을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위해 어디까지 보여주고 희생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그린 이 작품에 나는 아주 녹아버렸다. 공평하지만 공평하지않은 세상 속에서 매 순간 울컥했고, 마지막 100페이지 즈음부터는 그저 줄줄 울면서,
책장을 잡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읽었다. 이런 이야기를 또 만날 수 있을까. 1월 초에 조디 피코의 [작지만 위대한 일들]을 읽으면서 이
작품을 뛰어넘는 이야기가 또 있을까 싶었는데, 안되겠다. 그 자리는 이번에 [우리와 당신들]에 내어주어야겠다. 매 페이지, 매 장마다 주옥같은
대사와 장면이 넘쳐나서 나의 비루한 글쓰기로 기록을 남긴다는 게 힘이 든다.
여운이 너무 짙다. 심지어는 자면서도 생각난다. 우리는 생존자라고 말하는 마야의 목소리, 헤드의 응원단이 외치던 '우리는
베어타운의 곰!'이라고 외치던 그 장면이. 프레드릭 배크만이라는 작가를 이제서야 만나게 되어 커다란 즐거움을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에 너무너무
아쉽지만, 아직 읽지 않은 그의 국내 출간작이 남아 있어 한편으로는 가슴 벅차게 기쁘다. 앞으로 최애 작가님 중 하나로 모시겠습니다. 당신의
팬이 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