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모자가 좋아
번 코스키 지음, 김경희 옮김 / 창비 / 2019년 2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털모자가 좋아]는 세계적 출판사인 펭귄랜덤하우스의 2018년 볼로냐 도서전 대표작으로 손꼽혀 소개되며 도서전에서 화제가 된 작품입니다. 저도 아이들 키우고 그림책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볼로냐 도서전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요, 요 도서전에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나 수상작들은 대부분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어서 웬만한 소설보다 좋더라고요. 그림책이 이렇게 수준이 높고 감성적일 수 있구나라는 것을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서 깨닫는 요즘입니다. 그래서 제 본래 책 욕심에 그림책 욕심이 더해졌어요.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그림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원래 가지고 있던 책들과 아이들 그림책 덕분에 집이 터져나갈 지경입니다. 봄이 되면 한 번 책들을 싹 정리하고 싶은데, 과연 가능할지. 거대책장 하나를 거실에 들여놓는 것이 희망사항인데, 그렇게 된다면 저희 가족은 거실에 앉을 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그럼 이 [털모자가 좋아]의 주인공부터 소개해볼까요.

 

우리 주인공 해럴드입니다. 해럴드는 털모자를 정말 좋아하는 곰이에요. 아주 좋아해서 늘 쓰고 다닙니다. 무더운 여름에도 쓰고, 학교에서도 쓰고 있고, 잠잘 때도 쓰고 자고, 무려 한 달에 한 번 목욕할 때조차 몸에서 떼어놓지 않는답니다. 해럴드는 모자를 쓰고 있으면 자기가 특별하게 느껴진대요.

 

보세요. 다른 곰 친구들은 물고기를 한 마리씩 잡았는데, 털모자를 쓴 해럴드만 세 마리나 잡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호시탐탐 해럴드의 털모자를 노리던 까마귀가, 그만 해럴드의 털모자를 훔쳐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다른 곰 친구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똑같아 보일 거라고 생각한 해럴드. 까마귀가 훔쳐간 털모자를 찾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합니다. 꿈틀대는 지렁이를 잔뜩 모아 가져다주기도 하고, 새콤달콤한 블루베리를 가져다주기도 하고, 심지어 까마귀가 좋아한다는 반짝이는 물건들까지 털모자를 위해 바쳤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까마귀는 해럴드를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물건들만 낚아채 둥지로 돌아가버렸죠. 화가 난 해럴드. 결국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합니다. 그것은 바로. 까마귀의 둥지가 있는 곳까지 기어올라가는 것이었어요. 그 곳에서 해럴드가 발견한 것은!

 

자신의 털모자를 포근하게 덮고 잠든 아기 까마귀들이었어요. 해럴드는 아기 까마귀들에게 털모자를 잘 덮어주고 조용히 내려와요. 그리고 털모자가 없어도 자신은 특별한 곰이라며 까마귀에게 벌꿀을 선물합니다.

 

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20장이 채 안되는 그림책을 첫째 곰돌군에게 읽어주다 제가 더 감동을 받고 말았습니다. 아기 까마귀들이 털모자를 덮고 잠들어있는 그림에서도 마음이 짠했지만, 그 털모자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던 그 털모자를 잘 덮어주고 조용히 내려오는 해럴드가 정말 너무 멋있었어요. 게다가 털모자가 없어도 자신은 특별한 곰이라며, 아기 까마귀들을 위해 벌꿀까지 따다 까마귀에게 전달하는 저 모습! 처음에는 털모자가 있어야만 자신을 특별하게 느끼던 해럴드가, 그런 눈에 보이는 무엇이 없어도 자신을 특별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마음 깊이 다가왔습니다. 자존감을 높이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친절하고 다정한 성품이라는 것을 깨닫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어요.

우리 곰돌군들도 저런 멋진 사람이 되어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거칠고 험한 세상 너무 착하게만 살아도 힘들텐데라는 생각이 들어 멋쩍어졌습니다. 저라면, 어땠을까요. 나도 해럴드처럼 행동해야지!-라고 말하는 건 너무 쉽지만, 막상 나의 소중한 무엇을 누군가에게 빼앗겼을 때, 그것이 아무리 좋은 방향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해도 나는 그 소중한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라며 되찾아오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 책을 곰돌군과 벌써 몇 차례나 읽었어요. 그 때마다 감동받고 그림 하나하나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은 오히려 제 쪽입니다. 어째서 이 작품이 2018년 볼로냐 도서전 대표작으로 손꼽혔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요. 혼자 보기에는 아까운 정말 멋진 작품입니다. 저의 완소 그림책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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