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리 스티커 : 정글편 사파리 스티커
맨디 아처 지음, 마리아나 루이즈 존슨 그림, 김수민 옮김 / 애플트리태일즈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의 첫 스티커북은 <뽀롱뽀롱 뽀로로 가방스티커 놀이북>이었다. 한창 뽀로로에 빠져있을 때 우연히 친구 집에 놀러가 발견한 뽀로로 스티커에 한참 정신이 팔린 것을 보고 -그래! 이거야!-라며 시리즈를 구매했다. 하지만 스티커들은 얼마 못 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텔레비전 화면에, 거실 바닥에, 식탁 옆면에 자주 붙어 있었고, 당연하게도 어느새 그 자취를 감추고 만다. 지금은 가방 모양의 틀만 남아있는 상태. 더 이상 스티커북은 사주지 않으리라 다짐해보지만 어째서인지 아이는 스티커가 신기하고 재미있나보다. 한때는 가방에 얇은 스티커북을 한 권씩 넣어가지고 다녔는데 지금은 스티커북에는 약간 흥미를 잃었고, 대신 상처나면 붙이는 밴드를 스티커라 지칭하며 좋아한다. 살짝만 긁혀도 '엄마, 아야해. 여기 테-프 붙여야해'하며 어쩐지 신나하는데, 뚜렷한 용도 없이 폐기처분 되고 버려지는 밴드가 아까우면서도 '그래, 네가 즐거우면 됐다'하는 마음에 나는 오늘도 밴드를 두 어개 꺼내주었다.

 

그런 아이를 생각하며 고른 [사파리 스티커]. 그 중에서도 나에게 온 책은 정글편이다. 동물들에 관심이 많은 때. 한동안은 악어를 노래 불러서 내가 둘째 낳고 조리원에 있는 사이, 휴가를 낸 남편은 악어를 직접 보여주겠다며 아이와 함께 대전까지 다녀왔다. 그런데 정작 가서는 너무 겁을 먹어 내내 아빠에게 매달려있었다는 게 함정. 그래도 여전히 자연관찰 책을 보기도 하고, 그림책에 나오는 동물들을 좋아한다. [사파리 스티커 정글편]에는 300개가 넘는 스티커가 있다. <원숭이와 장난쳐요>, <강가에서 목욕 중>, <살금살금 기어가는 벌레들>, <한밤중인 정글>, <깃털 친구들>, <맹그로브 숲에서 일어나는 일>, <훨훨 날아가요>, <개굴개굴>, <덩굴 안에 누가 있어요>, <호랑이 줄무늬>, <즐거운 게임 시간>의 챕터에 맞추어 뒷부분에 각각의 스티커들이 구분되어 있어 소제목을 찾아 스티커를 떼어 붙이면 된다.

 

뽀로로 스티커북은 아이가 쉽게 떼내고 붙일 수 있도록 두께가 적당히 도톰했고, 붙였다 떼었다를 반복할 수 있어 어린 아이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사파리 스티커 정글편]은 아직 우리 아이에게는 이른 듯, 스티커와 책장 모두 얇아서 아이가 벌써 책을 찢어버렸다. 스티커도 한 번 붙이면 떼어내기가 어려웠고, 그저 여기저기 붙이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스토리라인을 살려 붙이도록 주문(?)하기에는 아직 힘들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스티커북이 꽤 마음에 든 이유는, 각각의 챕터에 맞춰 짧게나마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밤중인 정글>을 보면,

 

아프리카 정글은 밤이지만, 정글의 동물들은 깨어 있어요.

박쥐들은 하늘에서 빠르게 내려와

먹잇감인 곤충들을 찾고 있거나

나무에 매달려 있지요.

얼룩무늬 표범은 숲 속을 소리없이 걷고 있어요.

어둠 속에서 빛나는 크고 노란 눈은 누구의 눈일까요?

눈 스티커를 더 붙여주세요.

그런 다음 박쥐와 나방으로 하늘을 채워 주세요.

 

라고 짧게나마 이야기가 존재한다. 무턱대고 스티커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이번 챕터에서는 무엇을 소개하고 어떤 동물들이 등장하는 지 인지하게 해준다고 할까. 아이와 함께 스티커를 붙여보니 아직 체계적으로 작업을 할 수는 없었지만, 잠들기 전 이야기책으로 활용하기에 좋았다. 당분간은 동화책처럼 읽어주다가 때가 되었다 싶을 때 다시 함께 스티커를 붙여보면 좋을 것 같다.

 

찾아보니 [사파리 스티커 공룡편]도 있던데, 이 책도 똑같이 이야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면 한 번 이용해봐도 괜찮을 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노보노, 오늘 하루는 어땠어?
이가라시 미키오 지음, 고주영 옮김 / 놀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88년 고단샤 만화상을 수상하고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각색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2009년에는 미야기현 예술선장을 수상한 만화. 바로 <보노보노>다. 현재까지도 작가는 <보노보노>를 활발히 연재 중이며 30년 넘게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보노보노, 오늘 하루는 어땠어?]는 이렇게 꾸준히 연재해 온 에피소드 중 가장 특별한 이야기만을 모은 베스트 컬렉션이다. 보노보노와 숲속 친구들이 모두 등장하는 선물 꾸러미같다고 할까. <보노보노>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나, 이름만 들어보고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엄선된 에피소드들. 특히 작가의 '여러분이 '재밌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아, 읽어서 참 좋았어'라고 느낄 수 있다면 더욱 기쁠 것 같습니다'라는 문구에서 특별한 애정이 엿보인다.

 

베스트 컬렉션답게 첫장에는 보노보노와 숲속 친구들이 소개되어 있다. 보노보노는 항상 태평하고 느긋한 해달. 언제나 공상을 하곤 해서 너부리에게 종종 핀잔을 듣기도 하고, 갑자기, 괜히 무서움을 느껴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보노보노의 절친이자 암컷으로 자주 오해받는 수컷(!) 포로리. 숲속 개구쟁이로 아빠와 자주 티격태격하고 말썽도 자주 일으키며 난폭하지만, 이따금 남을 잘 챙기는 성격 좋은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는 너부리. 그리고 야옹이 형과 홰내기, 아로리, 보노보노 아빠와 포로리 아빠, 너부리 아빠와 똥사개 린, 그런 린의 아빠와 오소리가 보노보노와 친구들의 생활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행복은 아주 작은 편이 좋아.

작은 행복에도 기쁘다면,

큰 행복에는 아주 많이 기쁠 테니까.

보노보노는 기본적으로 소심하고 겁이 많다. 엉뚱하기도 하다. 실제로 이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답답해서 가슴을 팡팡 칠 때도 있을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책을 읽는 동안에는 글자를 읽는 속도마저 느려진다. 글씨가 세로로 적혀 있어서 그런가, 글자들이 조금 붙어 있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여 빨리 읽어보려고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잘 되지 않는다. 평소 말이 느리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 내 말투가 여기서 한 템포 더 느려지게 되는 것이다. 이상하다. 보노보노의 마법인가. 그런 보노보노지만 한 번씩 심오한 이야기를 무심하게, 그리고 다정하게 풀어놓는다. 가령 '혼자 있다는 건 이렇게 그냥 걷는 거야. 하지만 누군가와 이야기를 한다는 건 이렇게 풍경을 보는 게 아닐까?'라는 말들. 곳곳에 있는 보노보노와 친구들의 대화를 통해 주위를 한 번 더 둘러보게 된다.

독자들이 보노보노에게 빠져드는 이유는 뭘까. 눈물도 많고 겁도 많은 보노보노지만 순수하다. 느릿느릿한 말투와 동글동글한 모습에서 안정감과 다정함을 느낀다. 주위 사람들의 반응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를 고민조차 하지 않는 깨끗함과 그런 보노보노와 어울리는 친구들의 생활이 독자들에게 이상향을 제시하는 것은 아닐까. 바쁜 일상에 마음마저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다면 <보노보노>를 읽어보자. 조금은 느리게 이 시간을 걸어가도 괜찮다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게 될 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트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프리퀄
마리사 마이어 지음, 김지선 옮김 / 에이치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베이킹을 좋아하는 소녀의 꿈은 단 하나였다. 제빵사가 되는 것, 자신만의 가게를 갖는 것, 자신이 만든 빵과 과자들을 행복한 얼굴로 먹어주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것. 하트 왕국 최고의 제빵사이지만 후작 가문의 영애라는 출신의 비극으로 캐서린 핑커튼의 꿈은 이루어질 기약이 없다. 어느 날 아침 신비한 남자의 꿈을 꾼 캐서린의 방에 레몬 나무가 자라나고, 그녀는 그 레몬으로 타르트를 만들어 왕이 주최하는 연회에 참석한다. 궁전에서 만난 미스터리한 남자 조커, 제스트. 그의 공연에 넋을 잃고 빠져들던 캐서린은 생각지도 못한 왕의 구애에 당황한 나머지 정원으로 도망치고, 그 곳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눈을 뜬 그녀 앞에 서 있는 것은 조커 제스트와 그의 큰까마귀. 그의 신비로운 레몬색 눈빛을 본 순간, 캐서린의 마음 속에 그녀도 채 알아채지 못한 사랑의 끌림이 시작된다.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로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른 마리사 마이어가 이번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프리퀄로 찾아왔다. 그녀가 선택한 주인공은 바로 하트 여왕. '당장 저자의 목을 쳐라!'는 냉혹한 말을 서슴치 않는 그녀가 왜 심장을 잃고 그런 폭군이 된 것인지, 마리사 마이어의 손에 그녀의 과거가 되살아났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토끼씨는 물론, 인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種)의 동물들이 마치 사람처럼 걷고 마시고 사랑하고 질투하고 상처받으며 살아가는 기묘한 세상. 체셔 고양이는 여전히 자유자재로 몸을 변형시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작품 안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게 만드는 재미있는 요소가 끊이지 않는다.

작품 속에서 단연 눈길을 끈 것은 캐서린과 제스트의 서로에 대한 이끌림. 비밀을 안고 그녀의 곁을 서성대지만 왕의 구애를 받아들여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취하며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제스트와, 그런 그의 태도에 분노하면서도 제스트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는 캐서린의 모습이, 결혼하고 아기를 낳고 나서 웬만한 일에는 흥 콧방귀를 뀌는 나의 마음까지도 설레이게 만들었다. 무려 꺅! 소리가 저절로 나올 정도. 운명적인 사랑에는 위기가 따르기 마련인 것인지 그들을 둘러싼 사방이 사랑의 방해물이다. 딸의 행복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명예를 위해 캐서린이 왕의 청혼을 받아들이기를 강요하는 그녀의 부모, 눈치없이 캐서린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이대는 통통킥킥 왕,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괴물 재버워크의 출몰과 계획했던 베이커리 개점의 불가능성까지

보통의 동화였다면 이 모든 역경을 딛고 '그리고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났을 이야기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캐서린과 제스트의 앞날에 행복은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을. 그들의 첫만남, 나누었던 첫대화, 서로에게 이끌리는 마음을 부정했지만 끝내 어쩔 수 없이 빠져들고말았던 사랑의 감정들. 그들의 모습이 생각보다 눈부시고 아름다워서 사랑을 잃고 절망으로 무너져내리는 캐서린의 모습에 마음이 시려왔다. 그런 그녀에게 그 무엇이 의미가 있었을까. 설령 그것이 자신의 심장이라고 해도 말이다. 어쩌면 그것은 정당하지 못하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랑을 잃은 이가 보여줄 수 있는 당연한 모습이 아닌가.

너는 내 심장을 원하지, 제스트.

나는 네가 그걸 얻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어.

네가 영웅인지 불한당인지 모르겠어.

그렇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어느 쪽이든, 내 심장은 네 거야.

모든 이에게는 사연이 있다. 많은 이들의 목을 치는 하트 여왕에게도 사연은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한 번쯤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보시길. 나는 오늘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다시 읽어봐야겠다. 이번에는 그녀, 하트 여왕을 그냥 넘기지는 못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별이 총총
사쿠라기 시노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별들은 모두 똑같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빛났다.

몇몇은 흘러가고, 몇몇은 사라진다.

사라진 별에도 한창 빛나던 날들이 있었다.

나 또한 작은 별 중의 하나.

그이도 저이도 목숨 있는 별이었다.

밤하늘에 깜빡이는 이름도 없는 별들이었다.

 

딸과 어머니보다는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키코. 상처받고, 버리고 버려지면서도 그녀의 사랑은 끝을 모른다. 그런 어머니 탓이었을까. 사키코의 딸 지하루는 누구보다 깊게 사람을 관찰하는 눈과,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보는 능력을 가졌음에도 그저 바람결에 몸을 맡기고 인생을 걸어간다. 그녀가 두 번째 결혼에서 얻은 딸인 아야코 또한 할머니에게 온정을 받았지만 부모의 무책임함과 조모의 성정을 닮아 어쩐지 무심한 듯, 하지만 '양지쪽 햇살 냄새가 나는 밥'의 존재를 자각하고 살아가는 사람. 그녀들의 이야기가 자신들의 눈을 통해,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눈을 통해 슬프지만 덤덤하게 그려지고 있다.

 

총 9편의 단편집으로 구성된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집. 나오키 수상작가인 그녀가 이번에는 세 여성의 삶을 응시하며 조금은 특별한, 그러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생을 노래한다. <나 홀로 왈츠>는 세 여성의 역사의 시작이라고 할만한 사키코의 연애담이다. 스낵바 '루루'에서 일하는 사키코 앞에 홀연 나타난 야마씨. 그와 함께 하는 왈츠는 사랑의 몸짓과 비슷하다. 그를 향한 사랑을 춤과 함께 키워가는 사키코이지만, 몇 번이나 남자와의 이별을 경험한 그녀로서는 두렵다. 떨어져 살던 딸 지하루를 오랜만에 자신의 거처로 초대하고 사키코, 야마, 지하루는 동물원에서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예정된 이별. 이미 사랑이라는 감정에 지칠만도 한 나이인데도 사키코가 전하는 연심이 애틋하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사랑을 좇는 사키코이니만큼 딸인 지하루에게 무심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을까. <바닷가의 사람>은 지하루가 고등학생이 된 시점의 이야기이다. 옆집에서 함께 부업을 하는 이쿠코의 눈으로 그려진 지하루. 그녀의 눈에 지하루는 아둔하고 미련스러워보이는 아이다. 그런 아이가 자신의 소중한 아들에게 짐이 되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무덤까지 가지고 갈만한 업을 쌓게 된 이쿠코의 행동이 지하루의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결정한 것은 아니었는지. <트리콜로르>에서는 지하루가 놓고 간 딸 아야코의 이야기가, 그녀의 할머니 기리코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8개월이나 되었음에도 방치된 아야코를 기리코가 돌보기 시작하면서, 멈춰져 있던, 가슴을 답답하게 하던 그녀의 삶이 다시 움직인다. 아야코의 생명 또한.

 

세 여성의 삶은, 평생 사랑을 좇은 사키코조차 쓸쓸하게 다가온다. 가장 가까운 가족과도 관계를 맺지 못하고 여기저기 전전하며 삶을 이어가는 사키코와 지하루. 사키코의 쓸쓸함은 사랑의 완성이, 그녀가 택한 삶의 마지막이 안쓰럽다는 데서 기인하지만, 지하루의 쓸쓸함은 옆집의 이쿠코가 그녀를 바라보던 시선인 아둔함 때문이 아니다. 지하루는 아둔하지 않다. 누구보다 총명하고 자신의 상황을 잘 파악한다. 그런 그녀를 사람들이 아둔하다, 순진하다고 파악하는 것은, 지하루가 삶을 대하는 태도 때문은 아니었을까. 무엇에도 얽매이는 것 없이, 그저 물결따라 바람따라 흔들리는 무엇처럼 살아가는 그녀가 자아내는 분위기 때문에. 두 사람과는 달리 아야코는 무심한 듯 보이지만 당차고 견실한 인물이다. 할머니로부터 받은 사랑 덕분에 '양지쪽 햇살 냄새가 나는 밥'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다. 때문에 상대에게 용기있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그녀들의 삶을 평가하지 않는다. 사키코에게 엄마로서의 책임감과 의무를 강요하지 않고, 지하루에게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삶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어쩌면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할만한 그런 삶임에도 작가는 그저, 이런 삶도 있음을, 밤하늘에 빛나는 별의 밝기가 모두 다르듯 그네들의 삶도 각기 다를 뿐임을 보여준다. '일그러졌어도 너무 슬퍼도 인간은 살아간다'는 문장처럼, 그들의 인생을 별빛에 비유한, 한 개인의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홋카이도에 다녀온 적이 있어서인지 그녀들의 행로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비교적 뚜렷한 결말을 보여준 두 사람과는 달리 지하루는 지금쯤 어느 길목에 서 있는 것일까. 불편한 다리와 상처투성이 얼굴, 그보다 더 시큰할 마음을 부여잡고 어디를 걸어가고 있는 것인가. 작가가 전달하는 감정선에 나도 모르게 휘말려 어느새 지하루의 인생을 곱씹어본다. 뭔가 바람같은 것이 마음을 후벼파고 지나간 것처럼, 뱃속 깊은 곳이 아픔으로 굳어지는 것 같다. 덤덤하면서도 서정성이 넘쳐흐르는, 같이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요소들이 작품 곳곳에서 매력을 발휘하는 멋진 작품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등 엄마의 말 품격
오수향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고 있는 저를 보더니 남편이 묻습니다. '그런 책 읽으면 뭔가 달라지는 것 같아? 느낌이 와?' 그래서 제가 자신있게 대답했죠. '그럼! 그러려고 책보는 건데~' 바뜨. 이 책을 읽었음에도 일주일같은 월요일과 3일같은 오늘 아침을 지내고보니 과연 내가 달라지는 날이 올 것인가 의구심이 듭니다. 요즘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힘들어요. 제 마음이 문제인 건지, 우리 첫째 곰돌군님이 문제인건지, 하루에도 몇 번씩 불타올라 산화되어버릴 것 같은 기분입니다. 다른 친구들은 다 빠빠이 잘 하고 집에 가는데 혼자 밖에서 놀다 들어가겠다며, 친구가 먼저 간다면서 징징징, 지금 있지도 않은 씽씽이를 타겠다며 징징징, 밥 안 먹고 과자 먹겠다며 징징징. 아침부터 밤까지 울고 떼쓰고, 저는 달랬다가 화도 냈다가 매도 들었다가 밤이 되면 또 급후회하는 생활의 반복이에요. 한 번 올라온 화가 잘 내려가지 않아 소화도 잘 안되고, 곰돌군님이 무슨 말만 하면 예민해져서 말투도 거칠게 나가고. 이런 저를 보며 남편은 우울증 아니냐며, 병원 가보라는 더 열폭하게 하는 말만 하고 있고요. 물론 요즘 제가 심정적으로 더 사나워진 건 사실이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요.

알아요. 제가 생각해도 제 자신, 많이 부족합니다. 아이의 마음이 어떻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 모른 척 하고 싶을 때도 있고, 아주 사소한 일로 짜증을 낼 때도 있어요. 전 1등 엄마는 바라지도 않아요. 품격이요? 품격이 뭔가요. 그저 하루하루, 아이를 협박(?)하지 않고, 윽박지르지 않으면서 조용히 보내기만 해도 감사한 일이겠습니다. 아무리 미운 네 살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저의 인내심을 시험할 수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이런 [1등 엄마의 말품격] 같은 책을 읽는 건, 마음의 자양분으로 삼고 싶기 때문이에요. 이런 책조차 읽지 않고 밀려오는 화, 솟아오르는 거친 말에 제 자신을 맡겨버렸다가는 우리 곰돌군님, 정말 어마무시한 엄마의 모습을 보게 될 테니까요. +_+

저자는 먼저 엄마의 말투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엄마의 말투라고 해요.아마 많은 엄마들이 깨닫고 있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 부분일 거에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의 내용에 동감도 하고 항상 있지만, 아이고,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불쑥 튀어나오는 아이의 마음을 할퀴는 말투. 그래서 낮버밤반(낮에는 버럭하고 밤에 반성)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게 아닐까요. 엄마의 기질과 아이의 기질을 잘 파악해서 말투에 신경을 써야한다는 건, 아마 말공부 해보신 엄마들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내용일 겁니다. 저자는 자존감, 책임감, 창의성, 정직함, 배려심, 감사함, 용기 등을 길러주는 말투에 대해 상황별로 소개하고 있어요. 단순히 어떤 말들을 해야한다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면 저런 요소들이 길러지는 지 알려준다는 점, 그리고 병행할 수 있는 놀이들이 소개되어 있어서 좋았습니다. 당장 오늘부터 어린이집 하원하면 해봐야겠어요.

엄마로서 아이에게 많은 것을 해주고 싶지만, 요즘에는 최고의 육아란, 짜증내지 않고 나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바뜨! 어떻게 엄마가 짜증 한 번 안낼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아예 안 내겠다고는 못하겠습니다. 그저 부당한 짜증은 내지 않으리라, 소심하게 다짐 한 번 해봅니다. 그래도 아침에 아이에게 못된 말 하고 울적해졌던 마음에 새로운 각오를 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많은 어머님들, 우리 한 번 같이 힘내보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