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총총
사쿠라기 시노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별들은 모두 똑같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빛났다.

몇몇은 흘러가고, 몇몇은 사라진다.

사라진 별에도 한창 빛나던 날들이 있었다.

나 또한 작은 별 중의 하나.

그이도 저이도 목숨 있는 별이었다.

밤하늘에 깜빡이는 이름도 없는 별들이었다.

 

딸과 어머니보다는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키코. 상처받고, 버리고 버려지면서도 그녀의 사랑은 끝을 모른다. 그런 어머니 탓이었을까. 사키코의 딸 지하루는 누구보다 깊게 사람을 관찰하는 눈과,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보는 능력을 가졌음에도 그저 바람결에 몸을 맡기고 인생을 걸어간다. 그녀가 두 번째 결혼에서 얻은 딸인 아야코 또한 할머니에게 온정을 받았지만 부모의 무책임함과 조모의 성정을 닮아 어쩐지 무심한 듯, 하지만 '양지쪽 햇살 냄새가 나는 밥'의 존재를 자각하고 살아가는 사람. 그녀들의 이야기가 자신들의 눈을 통해,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눈을 통해 슬프지만 덤덤하게 그려지고 있다.

 

총 9편의 단편집으로 구성된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집. 나오키 수상작가인 그녀가 이번에는 세 여성의 삶을 응시하며 조금은 특별한, 그러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생을 노래한다. <나 홀로 왈츠>는 세 여성의 역사의 시작이라고 할만한 사키코의 연애담이다. 스낵바 '루루'에서 일하는 사키코 앞에 홀연 나타난 야마씨. 그와 함께 하는 왈츠는 사랑의 몸짓과 비슷하다. 그를 향한 사랑을 춤과 함께 키워가는 사키코이지만, 몇 번이나 남자와의 이별을 경험한 그녀로서는 두렵다. 떨어져 살던 딸 지하루를 오랜만에 자신의 거처로 초대하고 사키코, 야마, 지하루는 동물원에서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예정된 이별. 이미 사랑이라는 감정에 지칠만도 한 나이인데도 사키코가 전하는 연심이 애틋하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사랑을 좇는 사키코이니만큼 딸인 지하루에게 무심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을까. <바닷가의 사람>은 지하루가 고등학생이 된 시점의 이야기이다. 옆집에서 함께 부업을 하는 이쿠코의 눈으로 그려진 지하루. 그녀의 눈에 지하루는 아둔하고 미련스러워보이는 아이다. 그런 아이가 자신의 소중한 아들에게 짐이 되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무덤까지 가지고 갈만한 업을 쌓게 된 이쿠코의 행동이 지하루의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결정한 것은 아니었는지. <트리콜로르>에서는 지하루가 놓고 간 딸 아야코의 이야기가, 그녀의 할머니 기리코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8개월이나 되었음에도 방치된 아야코를 기리코가 돌보기 시작하면서, 멈춰져 있던, 가슴을 답답하게 하던 그녀의 삶이 다시 움직인다. 아야코의 생명 또한.

 

세 여성의 삶은, 평생 사랑을 좇은 사키코조차 쓸쓸하게 다가온다. 가장 가까운 가족과도 관계를 맺지 못하고 여기저기 전전하며 삶을 이어가는 사키코와 지하루. 사키코의 쓸쓸함은 사랑의 완성이, 그녀가 택한 삶의 마지막이 안쓰럽다는 데서 기인하지만, 지하루의 쓸쓸함은 옆집의 이쿠코가 그녀를 바라보던 시선인 아둔함 때문이 아니다. 지하루는 아둔하지 않다. 누구보다 총명하고 자신의 상황을 잘 파악한다. 그런 그녀를 사람들이 아둔하다, 순진하다고 파악하는 것은, 지하루가 삶을 대하는 태도 때문은 아니었을까. 무엇에도 얽매이는 것 없이, 그저 물결따라 바람따라 흔들리는 무엇처럼 살아가는 그녀가 자아내는 분위기 때문에. 두 사람과는 달리 아야코는 무심한 듯 보이지만 당차고 견실한 인물이다. 할머니로부터 받은 사랑 덕분에 '양지쪽 햇살 냄새가 나는 밥'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다. 때문에 상대에게 용기있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그녀들의 삶을 평가하지 않는다. 사키코에게 엄마로서의 책임감과 의무를 강요하지 않고, 지하루에게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삶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어쩌면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할만한 그런 삶임에도 작가는 그저, 이런 삶도 있음을, 밤하늘에 빛나는 별의 밝기가 모두 다르듯 그네들의 삶도 각기 다를 뿐임을 보여준다. '일그러졌어도 너무 슬퍼도 인간은 살아간다'는 문장처럼, 그들의 인생을 별빛에 비유한, 한 개인의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홋카이도에 다녀온 적이 있어서인지 그녀들의 행로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비교적 뚜렷한 결말을 보여준 두 사람과는 달리 지하루는 지금쯤 어느 길목에 서 있는 것일까. 불편한 다리와 상처투성이 얼굴, 그보다 더 시큰할 마음을 부여잡고 어디를 걸어가고 있는 것인가. 작가가 전달하는 감정선에 나도 모르게 휘말려 어느새 지하루의 인생을 곱씹어본다. 뭔가 바람같은 것이 마음을 후벼파고 지나간 것처럼, 뱃속 깊은 곳이 아픔으로 굳어지는 것 같다. 덤덤하면서도 서정성이 넘쳐흐르는, 같이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요소들이 작품 곳곳에서 매력을 발휘하는 멋진 작품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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