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짐승 1~2 세트 - 전2권
조례진 지음 / 청어람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맨스 소설은 사극 장르가 아니면 잘 읽지 않는데 이 책은 보도자료를 읽고 급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주인공이 바로 뱀파이어거든요. 10년 정도 전에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잠도 안 자고 정독한 후 뱀파이어가 주인공인 영화와 책에 한동안 빠져 지냈던 것 같아요. 영원불멸의 존재, 엉겁의 시간동안 자신이 원하는 일이라면 약간의 노력을 더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신과도 같은 존재. 하지만 죽을 수 없는 운명을 한탄하기도 슬퍼하기도 하는 뱀파이어라는 존재에 대해 두려움과 매력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그래서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로맨스 소설이라니, <트와일라잇>과는 다른 매력을 어떻게 표현해냈을 지 궁금했어요.

뱀파이어가 더 이상 인간들의 피를 마시지 않고 그들과 함께 햇빛 아래서 생활할 수 있는 세계. 그 한 가운데에 MCTC 서울 ERU 3팀 소속의 강연하 상사가 있습니다. 그녀는 부모님, 쌍둥이 자매와 함께 기차에 탔다가 뱀파이어면서 인간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인간을 파멸시키려 하는 조직에 의해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죠. 그 당시 거의 죽어가던 연하에게 이른바 수혈을 해 준 뱀파이어가 있었습니다. 12년 후 연하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남자, MCTC 서울지부에 새로 부임한 국장으로 등장한 이반 이바노프. 그 오랜 시간 동안 연하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가 12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나타난 남자. 처음에는 마치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연하를 지켜봤겠지만 그녀에 대한 마음이 점차 깊어지면서 둘은 운명처럼 사랑에 빠집니다.

두 권으로 되어 있어서인지 스토리 전개가 그리 빠르지는 않아요. 하지만 캐릭터를 설명하고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묘사되면서 인물의 매력도가 상승한다고 할까요. 특히 열아홉 어린 나이에 뱀파이어로 변이되면서 가족을 모두 잃고(쌍둥이 자매인 규하는 살아남았지만 연하는 규하에게도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알릴 수 없었습니다) 홀로 외로이 살아와야했던 연하는, 초반에는 어딘가 멍-한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소, 하는 얼굴과 마음으로 그려집니다. 마치 세상에 대한 미련이 존재하지 않는, 허무함만이 가슴을 채우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이반과 만나고 그와 사랑에 빠지면서 마침내 하나의 생명으로, 여자로 변화하는 과정에 울림이 있다고 할까요. 이 작품은 이반보다 여주인공인 연하의 매력이 더 깊은 그런 소설인 듯 합니다.

이반 옆에서 항상 그를 지키는 렉스의 존재도 어마무시한데요, 고통도 아픔도, 그 어떤 감정도 잘 드러내지 않는 그가 연하의 쌍둥이 자매인 규하와 보여주는 케미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저는 이반보다 오히려 이 렉스 쪽에 마음이 가더라고요. 이 몹쓸 서브병. 이반과 렉스가 뱀파이어가 된 것은 아주 먼 옛날이라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두 명의 멋진 뱀파이어, 아니 연하까지 하면 세 명의 뱀파이어와 규하의 행복을 바라면서 읽었더니 어느 새 책장을 넘기는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조례진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었지만, 초반 약간의 느린 전개를 잘 참아내면 후반으로 갈수록 멋진 네 명의 남녀의 로맨스를 맛보실 수 있어요. 특히 뱀파이어 소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을 놀라게 한 100명의 사람들 - 초등학생을 위한 초등학생을 위한 100명의 위인들
고수산나 지음, 송영훈 그림 / 소담주니어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렸을 때 읽는 책들 중 하나로 위인전이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집에도 위인전 전집이 있었어요. 어린 나이에도 수많은 위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감탄하고, 내가 그들이었다면 저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지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위인들은 책 속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니 위인은 내 주변에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동을 주고 삶의 의지를 불태우게 하고, 나도 다시 한 번 잘 살아봐야겠다 생각하게 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 희망을 전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면 아이들의 마음에도 꿈나무가 자라게 되겠죠.

[초등학생을 위한 세상을 놀라게 한 100명의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신체장애를 이겨낸 사람들, 정신장애를 이겨낸 사람들, 인종과 성차별에 맞선 사람들, 나이의 한계를 뛰어넘은 사람들, 새로운 시작으로 세상을 바꾼 사람들, 실패를 딛고 일어선 사람들, 세상을 즐겁게 만든 사람들, 학력과 가정 형편을 극복한 사람들, 발명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꼬리를 무는 PLUS 사람들>까지. 제가 읽었던 위인전과 비교해 독특한 점은 이 책에는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아주 먼 과거의 사람들만 실려 있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마리 퀴리나 세종대왕처럼 저에게도 친숙한 위인들도 있지만, 현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았어요.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질감과 파이팅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요.

태어날 때부터 팔과 다리가 없었던 닉 부이치치의 이야기는 많이 알고 계시죠. 불편한 몸임에도 늘 긍정적인 마인드로 발가락으로 글씨를 쓰고 타자를 치며 드럼을 연주하고 골프도 치며 서핑과 스케이트 보드는 물론 수영과 낚시도 즐긴다고 해요. 결혼도 해서 두 아이의 아빠이기도 하죠. 미국의 팝가수 스티비 원더는 눈이 보이지 않지만 아름다운 노래로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그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이유는 몰랐었어요. 미숙아로 태어난 스티비 원더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있었는데 병원 측의 실수로 인큐베이터 안에 산소가 많이 공급되면서 눈이 망가져버렸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었던 장점을 이용, 지금은 전세계적인 가수가 되었죠. 제가 좋아하는 노래 중 몇 곡도 그의 노래이기도 해요. 어린이 인권을 위해 목숨을 바친 어린이 노동 운동가인 이크발 마시흐의 이야기는 심금을 울렸고, 알츠하이머병을 알아낸 독일 의사 알로이스 알츠하이머의 일화는 인간의 위대함을 알게 합니다. 좋아하는 명탐정 셜록 홈스를 창조해낸 아서 코넌 도일이나 일본의 애니메이션 영화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까지, 초등학생의 관심을 끌만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실려 있어요.

제목은 ‘초등학생을 위한’이지만, 어른들이 읽어도 전혀 부족하지 않은 멋진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에요. 저는 특히 이크발 마시흐의 이야기가 자꾸 떠올라 머릿속을 떠나지 않네요. 어린 나이임에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은 그의 이야기를 보며, 지금의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표지랄까요. 아이들의 관심을 끌만한 똥꼬발랄한 표지가 아니라 안타까운데, 이 책의 가치를 알게 된다면 절대 손에서 놓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느리게 천천히 가도 괜찮아 - 글로벌 거지 부부 X 대만 도보 여행기
박건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행은 늘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여행 무척 좋아하고, 지금 이 글도 가족들과 온 여행지에서 적고 있어요. 여행지에서 여행과 관련된 책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운데요, 다만 저는 [느리게 천천히 가-도 괜찮아]의 부부들과는 다른 여행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걷는 건 좋아하지만, 전 여행은 편하게 하는 걸 선호해요.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뭔가 살짝 호화(?)롭고, 여유있는 여행을 좋아한다고 할까요. 벌레 나오는 숙소는 펄쩍 뛸 정도로 싫어하고, 여행지에서는 예산 안에서 자유롭게 지출하고 싶어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행하면서 고생도 해보고 시련도 겪어야 여행의 진정한 묘미를 맛볼 수 있다고 하기도 하지만, 저는 놉! 각자 선호하는 여행을 즐기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 여행에서 무엇을 얻느냐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달린 거니까요.

 

[느리게 천천히 가-도 괜찮아]는 이런 저와는 반대의 성향을 가진 글로벌 거지부부의 대만 도보 여행기입니다. 기름 보일러에 등유 한 방울 넣지 않고 밤을 지새우는 서울의 한파를 피해 대만 땅 1,113km를 걸은 부부.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는 양면성 따위는 따질 수 없을 만큼 죽어라 긴 시간이었다는 저자는 그 여행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지만, 그래도 두 번 다시 도보여행은 하지 않으리라는 후회와 두 번 다시 느끼기 어려운 감동을 얻었다고 해요. 지구상에서 이토록 친절한 나라를 없으리라 단언할 수 있을만큼 대만을 잘 알게 되었다고도. 대만에 대한 가이드북은 아니에요. 다만 저자가 밝혔듯이 인간이 타인에 대해 베풀 수 있는 자비의 크기에 대해서는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여행 에세이라고 할까요.

 

서울의 한파를 피해 대만으로 떠난 부부의 예산은 물론 풍족할 리가 없습니다. 항상 숙박과 음식을 걱정해야 하는 시간들이었죠. 아내 미키는 편의점에서 30분 이상 잠들기도 하고, 야영지를 찾기 위해 늘 여기저기를 뛰어다녀야 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어우, 만약 내가 겪었다면 심장이 펄떡펄떡 뛰어서 단 며칠도 견디기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버거운 것이었어요. 하지만 호화(?)로운 여행을 좋아하는 저도 아는 것처럼, 길 위의 여행에서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 마련이죠. 기꺼이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 먹을 것을 나누어주고, 인연을 맺어 자신의 속마음까지 과감 없이 털어놓는 대만 사람들. 그들이 있어 저자는 배는 고프고 몸은 힘들었을지언정 마음은 훈훈하지 않았을까요.

 

20번의 학교 야영, 9번의 종교 시설 숙박, 8번의 민가 초대, 7번의 카우치서핑, 1번의 민가 침입(?)으로 잘 곳을 해결하고 구호물자를 51회 받으면서 완성해낸 여행이라는 삶의 한 페이지. 평생 회자될 추억거리를 가득 안게 된 대만 여행. 부부가 함께 이루어낸 과업인만큼 그들의 여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저는 남편과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지, 어우,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떨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화로 보는 세계의 역사 1 - 선사 시대와 고대 서아시아 세계 만화로 보는 세계의 역사 1
학연플러스 지음, 임이지 옮김, 모지현 감수 / ㈜소미미디어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제목, '세계의 역사'. 한 나라의 역사도 세세하게 알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세계사라니, 그 방대함에 책을 들여다보기도 전에 마음이 무거워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양이 어마어마한만큼 세계사가 가지고 있는 매력은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에요. 우리나라가 이 시기에 이런 일이 있었을 때,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고, 또 이 시기에 이런 일을 겪었을 때 이 나라가 우리와 이렇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의 그 희열. 그것은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이란 존재가 한낱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느낌과 비슷합니다. 우리만 있지 않다는 것, 많은 사람이 시간의 터널을 지나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 그 과정을 공부하고 알게 되는 것은, 내게는 역사를 통해 무언가를 배운다라는 목적을 떠나, 그 자체로 재미있고 흥미로운 일입니다.

일본만화를 좋아하고 많이 읽어본 사람이라면 어딘가 익숙함을 느낄 법한 그림체의 학습만화책입니다. 원작은 Nanbo Hidehisa, 만화는 Kato Hirohumi. 시원시원한 그림체에 올컬러로 되어 있어 쉽고 재미있게 쑥쑥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사실 세계사를 좋아하는 저도 <인류의 시작>부분을 다루는 지식은 어쩐지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져서 성인용 세계사 책은 휙휙 넘겨버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 책은 만화로 되어 있어서인지 그렇게 어렵게 느껴졌던 인류의 시작, 출현과 관련된 내용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세상의 탄생을 다룬 부분도 이집트, 고대 바빌로니아, 그리스, 북유럽, 중국,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전해 내려오는 신화와 이야기를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어요. 빅뱅의 출현과 함께 우주가 생겨났다는 과학적 관점도 함께 제시하고 있고, 46억년 전 지구의 탄생과 최초의 생명인 박테리아의 출현부터 차근차근 설명한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다양한 진화를 거쳐 나타난 인간의 세계, 많은 사람이 익히 알고 있는 문명이 나타난 4대 강의 이야기는 메소포타미아부터 시작됩니다.

세계사를 이야기하다보면 어떤 한 개인의 이야기는 빠지기 쉽죠. 하지만 이 책은 흥미로운 위인들의 관점을 제시해 어린 학생들도 역사의 흐름을 쉽게 따라갈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어려운 용어들은 바로 옆에 주석을 달아 보충 설명이 되어 있고, 시작 부분에는 <세계의 역사 대조 연표>가, 마지막 부분에는 만화로 읽었던 내용들을 다시 한 번 요약 정리 해두어 본문에서 다루지 못한 시대의 흐름까지 폭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사용연령까지 표기되어 있는데 3세 이상으로 되어 있더군요. 저희 집 첫째 곰돌군이 만 3세인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3세가 읽기에는 정말 어렵고요, 7세 정도부터 읽어나가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희 집은 그림책들도 바닥에 펼쳐놓는데 이 책도 한 번 같이 바닥에 진열(?)해봐야겠어요. 과연 몇 살부터 읽을 지 궁금하네요. 그 때까지는 제가 열심히 읽어보렵니다. 만화로 보는 역사책은 처음인데 성인인 저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총 12권으로 기획된 시리즈, 1가정 1질,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마지막 의사는 비 갠 하늘을 보며 그대에게 기도한다 상.하 세트 - 전2권 마지막 의사 시리즈
니노미야 아츠토 지음, 이희정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열정을 다하는 의사 후쿠하라 마사카즈. 환자가 원한다면 그것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라 해도 의견을 존중하는 덕분에 사신이라 불리는 의사 키리코 슈지. 정 반대인 두 사람을 이어주던 의사이자 친구였던 오토야마의 수술을 강행한 끝에, 후쿠하라는 병원에서 그 어떤 수술에도 참여하지 못한 채 정직 상태에 머무르고, 키리코는 병원에서 쫓겨나 자신만의 의원을 개업했다. HIV양성 판정을 받은 하라 미호는 후쿠하라를, 그녀의 전 연인인 미조구치 슌타는 키리코를 찾으며 네 사람의 기묘한 인연이 시작된다. 본가로 돌아가 생명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는 미호와, 자신이 정말 에이즈에 걸렸을까봐 큰 병원에 찾아가 검사받는 것조차 꺼리는 슌타.

그냥 살아왔을 뿐이에요.

아픈 건 싫으니까 피하고, 기분 좋은 건 즐거우니까 원하고.

적을 피해 도망치며 꿀을 모으는 벌레처럼,

혹은 튕겨서 이리저리 부딪치는 핀볼처럼

주체성 없이 생명을 이용해 왔어요.

그때 그 때마다, 흘러가는 대로요.

...

그러니까 그런 사람에게는

'흘러가는 대로 그냥 살아가는 것'이 하고 싶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정말로 진심으로 그것을 원한다면

마지막까지 그렇게 살면 되지 않을까요?

 

미호와 슌타를 대하는 후쿠하라와 키리코의 태도는, 우연히도 두 사람의 성향과 맞아떨어지며 덕분에 명확히 다른 성향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후쿠하라는 여전히 슌타를 걱정하는 미호에게, 병원에 찾아오는 한걸음을 내딛지 않으면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없다 이야기하고, 진구지 치카에게는 살아보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은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숨기지 않는다. 키리코는 슌타가 에이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병원에는 가지 않겠다는 그의 의사를 존중하며 적극적인 치료를 권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결론을 맺는 두 사람. 과연 후쿠하라와 키리코의 병에 대한 생각은, 두 사람의 미호와 슌타에 대한 처방은 적절한 것이었을까.

 

[마지막 의사는 벚꽃을 바라보며 그대를 그리워한다]의 감동을 잇는 속편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전작을 읽고 감동과 충격 속에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마지막 의사는 비 갠 하늘을 보며 그대에게 기도한다]를 앞에 두고 벅차오르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환자와 죽음에 대해 극과 극의 의견을 가진 두 사람이지만 그 누구보다 삶과 죽음 속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와 나의 소중한 사람들의 인생과 죽음을 맞는 방식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만약 이런 상황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두렵지만 인생의 마지막이 다가오기 전에 꾸준히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이번 작품에는 후쿠하라와 키리코가 어째서 그런 성향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사연이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어린 키리코가 병원에서 만난 말기암 환자. 그녀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들어보면, 키리코가 결코 환자의 죽음을 종용하거나 방관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자신의 마음 속을 샅샅이 찾아도 절망밖에 보이지 않아서

포기하는 것 말고는 출구가 없을 때도 있어.

괜찮아. 포기해도 돼.

포기할 정도로 너는 싸웠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필요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빨라.

키리코, 주변으로 눈을 돌려 봐.

다른 누군가의 논리를 찾아 봐.

무심한 듯, 딱히 어려워하지도 않으면서

어째서인지 엄청나게 강한 게 옆에 있기도 하거든.

...

네 안에 희망이 없으면

옆에 있는 누군가의 안에 희망이 몰래 숨어 있을 거야.

 

병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환자가 더 이상의 치료를 거부하고 조용히 마지막을 맞기를 선택할 때, 그 선택을 존중했던 키리코의 마음 안에는, 자신의 마음 속을 샅샅이 훑어 절망과 체념밖에 찾지 못한 환자에게 포기해도 괜찮다고 격려하며 그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의도가 숨어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키리코는 이미 한 번 지나와봤던 길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후쿠하라의 요청으로 어떤 치매환자의 주치의가 된 키리코. 이번에는 적이자 동지인 후쿠하라를 구원하기 위해 키리코는 자신의 방식대로 환자를, 후쿠하라를 바라본다.

 

모두 세 편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은,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 없이 매우 좋았다. 병명을 아는 것조차 두려워 병원에 가는 것을 꺼려하는 슌타의 약함을 그대로 끌어안아 주는 문장들, 아무것도 남아있는 것이 없다 생각한 순간조차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긍지를 가지고 있었던,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미호의 행복을 빌어주는 슌타의 모습들은 아련하게 가슴을 적셔왔다. 말기암 환자로서 자신도 낫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소중한 아들을 위해,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긍정적인 삶의 의지를 놓지 않았던 그녀 에리와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일만 하며 살다가 마지막에는 그들과의 소중한 시간 속에서 한 번 더 살 수 있었던 치매 환자의 이야기 모두, 멀지 않은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 삶을, 호화롭게 주어진 이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매일매일의 삶이 전쟁이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이 시간은 보람되기도 하면서 늘 치열하다. 밤 11시가 넘어도 끝나지 않는 육아와 집안일에 몸과 마음이 지쳐 불쑥, 아이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자괴감과 후회로 몸부림치며 우울함에 빠지기도 하지만 누구하나 크게 아프지 않고, 아침에 출근한 남편과, 어린이집에 간 큰 아이와 저녁에 다시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 작품은 일상의 소중함을 그 어느 때보다, 그 어떤 작품보다 깨우쳐주는 소설이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자신만의 선택을 하는 사람들, 그로 인해 찬란한 자신만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사람들. 아무리 소설 속 인물들일지라도 그들이 나의 희망이 된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죽음이란 또 무엇인지, 인간 근원의 고민이 <마지막 의사> 시리즈에 들어있다.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자신 뿐. 그 해답의 길잡이를, 작가는 또 어떤 이야기로 제시할 것인지 이 시리즈가 끝나지 않고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