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열정을 다하는 의사 후쿠하라 마사카즈. 환자가 원한다면 그것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라 해도
의견을 존중하는 덕분에 사신이라 불리는 의사 키리코 슈지. 정 반대인 두 사람을 이어주던 의사이자 친구였던 오토야마의 수술을 강행한 끝에,
후쿠하라는 병원에서 그 어떤 수술에도 참여하지 못한 채 정직 상태에 머무르고, 키리코는 병원에서 쫓겨나 자신만의 의원을 개업했다. HIV양성
판정을 받은 하라 미호는 후쿠하라를, 그녀의 전 연인인 미조구치 슌타는 키리코를 찾으며 네 사람의 기묘한 인연이 시작된다. 본가로 돌아가 생명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는 미호와, 자신이 정말 에이즈에 걸렸을까봐 큰 병원에 찾아가 검사받는 것조차 꺼리는 슌타.
그냥 살아왔을 뿐이에요.
아픈 건 싫으니까 피하고, 기분 좋은 건 즐거우니까 원하고.
적을 피해 도망치며 꿀을 모으는 벌레처럼,
혹은 튕겨서 이리저리 부딪치는 핀볼처럼
주체성 없이 생명을 이용해 왔어요.
그때 그 때마다, 흘러가는 대로요.
...
그러니까 그런 사람에게는
'흘러가는 대로 그냥 살아가는 것'이 하고 싶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정말로 진심으로 그것을 원한다면
마지막까지 그렇게 살면 되지 않을까요?
미호와 슌타를 대하는 후쿠하라와 키리코의 태도는, 우연히도 두 사람의 성향과 맞아떨어지며 덕분에 명확히 다른 성향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후쿠하라는 여전히 슌타를 걱정하는 미호에게, 병원에 찾아오는 한걸음을 내딛지 않으면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없다
이야기하고, 진구지 치카에게는 살아보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은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숨기지 않는다. 키리코는 슌타가 에이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병원에는 가지 않겠다는 그의 의사를 존중하며 적극적인 치료를 권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결론을 맺는 두 사람.
과연 후쿠하라와 키리코의 병에 대한 생각은, 두 사람의 미호와 슌타에 대한 처방은 적절한 것이었을까.
[마지막 의사는 벚꽃을 바라보며 그대를 그리워한다]의 감동을 잇는 속편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전작을 읽고 감동과 충격 속에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마지막 의사는 비 갠 하늘을 보며 그대에게 기도한다]를 앞에 두고 벅차오르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환자와 죽음에 대해 극과 극의 의견을 가진 두 사람이지만 그 누구보다 삶과 죽음 속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와
나의 소중한 사람들의 인생과 죽음을 맞는 방식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만약 이런 상황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두렵지만 인생의
마지막이 다가오기 전에 꾸준히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이번 작품에는 후쿠하라와 키리코가 어째서 그런 성향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사연이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어린 키리코가 병원에서
만난 말기암 환자. 그녀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들어보면, 키리코가 결코 환자의 죽음을 종용하거나 방관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자신의 마음 속을 샅샅이 찾아도 절망밖에 보이지 않아서
포기하는 것 말고는 출구가 없을 때도 있어.
괜찮아. 포기해도 돼.
포기할 정도로 너는 싸웠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필요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빨라.
키리코, 주변으로 눈을 돌려 봐.
다른 누군가의 논리를 찾아 봐.
무심한 듯, 딱히 어려워하지도 않으면서
어째서인지 엄청나게 강한 게 옆에 있기도 하거든.
...
네 안에 희망이 없으면
옆에 있는 누군가의 안에 희망이 몰래 숨어 있을 거야.
병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환자가 더 이상의 치료를 거부하고 조용히 마지막을 맞기를 선택할 때, 그 선택을 존중했던 키리코의 마음
안에는, 자신의 마음 속을 샅샅이 훑어 절망과 체념밖에 찾지 못한 환자에게 포기해도 괜찮다고 격려하며 그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의도가 숨어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키리코는 이미 한 번 지나와봤던 길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후쿠하라의 요청으로 어떤 치매환자의 주치의가 된 키리코. 이번에는
적이자 동지인 후쿠하라를 구원하기 위해 키리코는 자신의 방식대로 환자를, 후쿠하라를 바라본다.
모두 세 편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은,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 없이 매우 좋았다. 병명을 아는 것조차 두려워 병원에 가는 것을
꺼려하는 슌타의 약함을 그대로 끌어안아 주는 문장들, 아무것도 남아있는 것이 없다 생각한 순간조차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긍지를 가지고 있었던,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미호의 행복을 빌어주는 슌타의 모습들은 아련하게 가슴을 적셔왔다. 말기암 환자로서 자신도 낫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소중한 아들을 위해,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긍정적인 삶의 의지를 놓지 않았던 그녀 에리와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일만 하며 살다가 마지막에는 그들과의 소중한 시간 속에서 한 번 더 살 수 있었던 치매 환자의 이야기 모두, 멀지 않은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 삶을, 호화롭게 주어진 이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매일매일의 삶이 전쟁이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이 시간은 보람되기도 하면서 늘 치열하다. 밤 11시가 넘어도 끝나지 않는
육아와 집안일에 몸과 마음이 지쳐 불쑥, 아이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자괴감과 후회로 몸부림치며 우울함에 빠지기도 하지만 누구하나 크게
아프지 않고, 아침에 출근한 남편과, 어린이집에 간 큰 아이와 저녁에 다시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 작품은 일상의 소중함을 그 어느 때보다, 그 어떤 작품보다 깨우쳐주는 소설이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자신만의 선택을 하는
사람들, 그로 인해 찬란한 자신만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사람들. 아무리 소설 속 인물들일지라도 그들이 나의 희망이 된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죽음이란 또 무엇인지, 인간 근원의 고민이 <마지막 의사> 시리즈에 들어있다.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자신 뿐. 그 해답의 길잡이를, 작가는 또 어떤 이야기로 제시할 것인지 이 시리즈가 끝나지 않고 계속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