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위한 7가지 성공 씨앗 - 남자아이 편
나카노 히데미 지음, 이지현 옮김 / 창심소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으아! 요즘 저희집 첫째 곰돌군에게 일춘기가 찾아왔습니다. 하지마! 싫어! 안해!-라는 말은 물론이고, 오늘밤은 심지어 아빠를 물기까지 하더군요. 눈꼬리는 위로 촥 올라가 있고요. 자기가 잘못해놓고 혼나면 세상세상, 그렇게 서럽게 울 수가 없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웩웩 하면서 울어요. 이게 다 무슨 일이죠! 어떻게든 대화로 풀어보려고 하지만 네 살짜리와 명확한 대화가 될 리가 없고, 아이는 아이대로 저희는 저희대로 당혹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문득 반항하는 첫째 곰돌군의 눈을 보고 있자니, 저 아이에게 정말 사춘기가 와서 제대로 반항을 하면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까 생각해봤어요. 아들이라 엄마인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더 늘어날텐데 그 때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옵니다. 하지만! 가만히 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엄청난 성공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아이> 편으로 콕 집어 나온 책을 보니 정말 궁금했습니다.

앞으로의 시대에 남자아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소중히 여기고,

타인의 마음과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애정을 겸비해야 한다.

또한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실패하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강인함도 필요하다.

인생에서 진정한 성공을 거머쥐는 남성으로 키우려면

실로 다양한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남자아이의 성공론입니다. 읽다보니 슈퍼맨을 만들어줘야 하는 건가 싶었어요. 하지만 조금 과도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모두 필요한 자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소중히 여기고, 타인을 위하는 배려심과, 도전 정신, 좌절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정신력, 경제력 등 부모라면 아들에게 누구나 바랄만한 사항이겠죠. 뭔가 -나는 욕심이 없어, 그저 건강하게 잘 크기만 하면 돼-라고 막연히 생각해왔던 저의 속마음을 홱 뒤집어 보이며 코웃음을 치는 것 같은 대목이었습니다. 정말 그게 아들에게 바라는 전부냐고. 그래서 솔직해져 보겠습니다. 탐납니다. 저런 아들. 명예와 부를 중심으로 한 삶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내면이 훌륭하게 커주길 바라요. 저자는 이런 저의 속마음을 꿰뚫어보듯 아이에게 심어줘야 할 성공씨앗 7가지를 제시합니다.

저자는 특히 잠재의식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양치를 강요받는 기분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양치하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하는 것. 명령이나 지시처럼 느끼는 대신 무심코 그 말을 순순히 받아들여 행동하게 만드는 '슬며시 던지는 메시지', 암시야말로 잠재의식을 자극해 우리의 사고와 감정, 행동패턴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입니다. 부모의 말, 부모의 행동이나 태도, 부모의 삶의 방식을 암시의 형태로 전달하면 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해요. 그래서 저자가 제시하는 성공씨앗의 앞부분에는 모두 '남자아이의 잠재의식에 슬며시~' 라는 문구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그 씨앗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씨앗, 학력 증진의 씨앗, 사람을 잘 사귀는 씨앗, 사랑받는 남자가 되는 씨앗, 쉽게 포기하지 않는 강인함의 씨앗, 자기 관리의 씨앗, 돈을 잘 버는 씨앗입니다.

인상적인 것은 성공씨앗을 위한 지침 뿐만 아니라 절대로 심어서는 안되는 '실패의 씨앗'들의 예시까지 제시되어 있다는 점이에요. 성공씨앗 부분을 읽으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볼 수 있다면, 실패씨앗을 통해서는 그 동안의 저의 행동을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가슴 뜨끔한 부분이 많더라고요. 학력 증진 씨앗 부분에서는 매우 노골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자격증'을 목표로 삼도록 할 것을 적극 추천한다고 되어 있는 것도 독특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자는 어차피 공부를 많이 시킬 것이라면 평생 먹고살 수 있는 자격증을 따게 해서 가능하면 일의 보람도 느끼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직업을 갖게 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 자신과 맞는 부분을 선택하면 되겠지만,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있음에도 여전히 학력위주인 우리 사회에서 한 번쯤 생각할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에?'로 시작하는 질문이 아이의 잠재의식을 자극할 수 있다고 하면서 각 챕터의 마지막에는 그 항목과 어울리는 질문이 들어 있어요. 아이와 한 번쯤 대화를 나눠보면 어떨까 싶은 질문들이었습니다.

부모 노릇 하기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나날입니다.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는 기본적인 생활습관은 물론, 아이의 내면의 모습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아이의 인생을 성공과 실패로 양분해서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이왕이면 훌륭한 남자로 성장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훌륭한 남자,에 대한 기준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아이와의 끊임없는 대화로 만들어나갈 생각이에요.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이 일춘기를 무사히 통과하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하맨션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대로 양식을 주업으로 하던 어촌은, 한 기업이 지자체와 협력을 맺어 오피스 빌딩과 공장 건물이 올라가자,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젊은 사람들이 이사를 오기 시작했다. 기업은 IT와 생명공학 분야에 사업을 확장했고, 빠르게 성과를 냈으며, 도시는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기업의 성장이 지역의 발전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던 탓에 지자체는 파산을 신청했고, 도시는 기업에 팔려 이상한 도시국가가 탄생했다. ‘타운’이라 불렸다. 타운에는 주민권을 가진 L과 주민 자격은 갖추지 못했으나 범죄 이력이 없고 간단한 심사를 통과하면 받을 수 있는 L2가 있다. L도 L2도 아닌, 마땅한 이름이 없는 이들, ‘사하맨션’에 사는 사람들 뿐 아니라 ‘사하’라 불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 ‘사하’라 불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도경이 차 안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의식을 찾은 그와는 달리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수. 도경은 수의 시신을 뒤로 하고 정신없이 내달린다. 보도블럭에 긁힌 오른쪽 무릎에서 선홍색 핏방울이 떨어져 내릴 때 도경은 수를 생각한다. 할 것도 없고 사람도 없었던, 그래서 그들이 자주 찾아갔던 공원. 그 곳에 도경은 수를 버려두고 도망쳤다. 동반자살을 꿈꾸었던 사람들이었던가. 그도 아니면 살인 사건인가. 단순한 개인의 일이라 여기며 읽어 내려가는 눈에 도경이 몸담았던, 수가 들어왔던 세상이 열렸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부유하며 질 높은 삶을 영위하는 타운 사람들과는 달리 추방, 낙오, 소외된 자들이 숨어 사는 낡은 맨션, 사하. 누군가에게는 비참한 생의 종착지였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허락된 마지막 공동체이기도 한 곳. 그 맨션에 진경과 사라, 수와 도경, 꽃님이 할머니와 우미, 우연, 관리인 영감이 살고 있다. 누군가는 30년 전에 아이를 낳고 목숨을 잃었고, 어떤 이는 사하맨션에 찾아와 보금자리를 얻었다. 타운의 주민들은 업신여기고 추방하길 바라는 그 장소에서 사하맨션 사람들은 희망을 생각했고, 먹고 마시고 즐기며 하루하루를 만들어나갔다.

 

사하맨션에 사는 사람들은 감히 저항하지 못한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것이 순리였으므로. 하지만 자신들의 공동체가, 항상 함께 했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고 소중한 것을 빼앗길 위기가 닥치자 마침내 일어선다. 당신들은 틀렸다고. 사람들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조남주 작가가 [82년생 김지영]으로 인해 페미니즘에 불을 붙였고, 그 다음 작품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은 당연한 일이며, 때문에 분연히 일어난 한 인물이 여성이라는 것, 대목마다 큰 역할을 해내는 것이 여성이라는 점에 의미부여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그 인물이 여성인가 남성인가, 어른인가 아이인가를 따지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의 연대, 배려, 사랑 같은 끈끈한 것이니까.

 

작품 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사하는 실제로 우리 삶 곳곳에 살아있다. 소외와 그로 인해 발생되는 폭력, 원통함과 차별. 작가는 이제 그 모든 것에서 눈 돌려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원래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함께 살아가길 꿈꾸어야 한다고. [사하맨션]은 비참함 속에서 길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어서 눈을 뜨라고 재촉하는 목소리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다산북스)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벌레든 동물이든 괜찮으니까

다시 태어나도 엄마의 딸이었으면 좋겠어.

 

무엇이든 좋으니 다시 태어나도 엄마의 딸이기를 바란다는 딸 다나카 하나미. 그 엄마가 굉장히 부자이고 딸 하나를 살뜰히 보살피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도 딸로 태어나고 싶은 거냐고 묻는다면, 하나는 망설일 것이다. 하나의 엄마는 가족도 남편도 없이 공사장에서 험한 일을 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먹을 것에 탐욕스러울 정도로 집착하며, 그들의 형편은 매일 반값 세일하는 음식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일 정도로 풍족하지 못하니까. 하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마리에와 미키의 부모가 거리에서 그들과 마주친다면 억지 웃음을 지으며 황급히 자리를 피할지도 모른다. 시치고산을 위해 신사를 찾은 마리에 가족이 은행을 줍기 위해 그 곳을 찾은 하나와 엄마를 발견한 표정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림처럼 떠올랐다. 그럼에도 하나는 이런 엄마의 딸로 다시 태어나기를 소망한다. 엄마야말로 자신의 가장 큰 행복, 하나를 열심히 살게 하는 단 하나의 이유이니까.

가난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헌신과 희생, 배려로 서로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모녀의 이야기를 그린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2003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문학상의 상금을 모아 좋아하는 잡지를 사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스즈키 루리카 작가의 나이는 고작 열네 살이었다. 초등학교 4,5,6학년에 걸쳐 일본 대표 출판사 쇼가쿠칸에서 주최하는 '12세 문학상' 대상을 3년 연속 수상한 실력파다. 반나절 만에 쓴 열한 장의 자필 원고에서 시작된 소설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은 그녀의 첫 소설집이며 출간 직후 10만 부 이상 판매되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사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는 한 '소녀'의 단순한 자서전식 글인 줄 알았고, 단순한 감성팔이가 아닐까 색안경을 끼고 보며 그녀를 작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인 하나의 시선에서 바라본 현실은 생생했지만 차갑지만은 않았고, 어린 나이임에도 포기해야 할 것은 많았지만 그로 인해 좌절하지 않는 씩씩한 소녀의 모습이 희망차게 그려져 있다.

초등학교 6학년 소녀가 궁금해할만 일들, 이를테면 자신의 아빠는 누구인지, 자신의 존재가 엄마의 재혼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들이 아이의 시선이지만 차분하게 깊이있게 다가온다. 여자라면 당연히 마다할 힘든 막노동을 하고, 값싼 음식을 발견한 것에 최고로 기뻐하며, 심지어는 길에 떨어진 음식도 주워먹는 엄마. 존경하거나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길에서 오랜 시간 버텨낸 노숙자라고 대답하는 엄마.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이들의 이름과 나이를 수첩에 적어놓고 남몰래 공양하는 엄마. 일가친척 하나없이, 남편도 없이 딸 하나를 키우는 엄마. 그럼에도 큰 소리로 웃고 맛있게 밥을 먹고 누구보다 자신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강인한 엄마를 하나는 사랑한다. 그런 하나의 마음이 이 책 전체에 담겨 있어 가슴아픈 느낌보다는 따스한 기분이 전해져왔다.

가난하다고 전부 불행한 것인가. 아니, 불행해야만 하는 것인가. 작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듯 하다. 하나보다 부유하고 아빠도 있는 친구 마리에와 미키는 중학교 입시를 위해 초등학교 마지막 방학을 모두 바쳤다. 어린 나이임에도 감당해야 하는 시험이라는 긴장감과 부모의 기대에 아이들은 벌써부터 중압감을 토로한다. 동급생들의 오해때문에 변태로 낙인찍힌 신야는 엄마의 과도한 교육열로 그녀의 손에 의해 진학할 학교가 정해졌다. 형과 누나가 우수했기 때문에 더 도드라질 수 밖에 없는 신야의 부족함. 엄마는 신야의 '존재'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직 신야가 어떤 중학교에 입학하는 지에 몰두한 나머지 원하는 학교에 떨어지자 온갖 악담을 퍼붓는다. 게다가 눈 앞에서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속내를 털어놓고, 그 소리를 신야가 듣기까지 한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부모 앞에서 아이가 느끼는 절망감과 슬픔이 해일처럼 밀려와 글자를 읽는 나의 마음까지 잠식해왔다.

그에 반해 우리 하나. 해맑다. 세상 물정에 밝은 엄마와 집주인 아줌마 덕분인지 세상을 살아가기에 부족함 없는 상식도 갖추었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 또한 일품이다. 절망감에 빠져 허우적대는 신야를 집으로 초대해 엄마와 함께 그를 위로하고, 잊지 못할 추억까지 선물한다. 비록 아빠는 없지만 하나는 엄마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 존재만으로도 하나는 엄마에게 기쁨이었다. 하나 없는 재혼은 엄마는 상상할 수 없다. 어디선가 한 쪽 부모가 없다면, 다른 한 쪽 부모가 사랑을 듬뿍 주면 된다고, 그러면 아이의 마음에 결핍은 생기지 않는다고,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의 마음에 결핍이 생기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비록 소설이지만 하나와 엄마가 그 사실을 증명해주었다.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가 베풀 줄도 안다는 말을 하나를 보며 실감했다.

슬플 때는 배가 고프면 더 슬퍼져. 괴로워지지.

그럴 때는 밥을 먹어.

혹시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슬픈 일이 생기면

일단 밥을 먹으렴.

한 끼를 먹었으면 그 한 끼만큼 살아.

또 배가 고파지면 또 한 끼를 먹고

그 한 끼만큼 사는 거야.

그렇게 어떻게든 견디면서 삶을 이어가는 거야.

열네 살 나이에 쓴 작품이라기에는 세상을 훤히 꿰뚫어보는 느낌이다. 슬플 때 배가 고프면 더 슬퍼지니 밥을 먹으라니. 사실 이 말은 작가의 할아버지가 그녀에게 들려준 말이라고 한다. '희망이 느껴지는 소설이 되면 좋겠다'는 그녀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있는 문구라고 할까. 이 문장을 읽는 동안 가슴이 내내 먹먹했다. 쓴 사람의 나이 따위는 상관없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찬사에 나도 동감한다. 재미와 감동을 함께 전달하는 유쾌하고 따스한 작품. 이 모녀의 뒷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질 정도로 심취해서 읽었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무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즈카 할머니에게 맡겨 줘 시즈카 할머니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강영혜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제가 사랑하는 마성의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가 이번에는 연작 코지 미스터리로 돌아왔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고고하고 자존감 높은 재판관 고엔지 시즈카. 저와 함께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을 죽 읽어오신 분들이라면, 이 사람이 누군지 아마 단번에 알아차리셨을 거에요. [테미스의 검]에서 와타세 경부가 자신이 체포했던 죄인이 결국 원죄였음을 알고 밝힐지 말지 고민하면서 찾아가 상담했던 바로 그 재판관입니다. 원죄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시즈카는 책임을 지고 스스로 재판관의 자리에서 물러났는데요, [테미스의 검] 작품 후반에서는 그녀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으로 나와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녀를, 비록 재판관의 자리에서 물러난 뒤 20년의 세월이 흐르기는 했지만 다시 만날 수 있다니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것도 코지 미스터리 형식을 빌어서 말이에요.

코지 미스터리-라는 말의 의미를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작가가 이 책을 기획할 당시 코지 미스터리가 인기 있었는데 그 흐름을 한 번 따라보기로 했다고 해요. 편집자와 의논 하면서 애거서 크리스티의 탐정 중 한 명인 '미스 마플'에서 힌트를 얻어 현대에 미스 마플을 재현해 보자는 생각에 손녀 마도카와 사건을 해결하는 시즈카 여사의 캐릭터가 탄생하게 된 것이죠. 미스 마플은 사건 현장에 나가 증거를 관찰하거나 수집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추리만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안락의자 탐정으로 유명합니다. 고엔지 시즈카도 이 안락의자 탐정의 모습을 보여줘요. 자신은 사건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손녀 마도카가 가져온 정보만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의 윤곽을 잡습니다.

작품은 총 다섯 개의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튼튼한 몸과 타고난 성실함, 누구나 마음을 열고 속마음을 드러내게 만드는 선량함이 무기인 가쓰라기 형사가, 자신의 상관이었던 쓰바키야마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쓰바키야마와 적대관계였던 구제의 시신에서 발견된 쓰바키야마의 총알. 가쓰라기는 절대 쓰바키야마가 범인일 리 없다며 개인적으로 수사를 진행하지만 그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합니다. 그 때 머리를 스친 한 인물. 어떤 사건을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된 마도카의 도움을 받아 쓰바키야마의 누명을 벗기게 되죠. 물론 사건을 해결한 것은 마도카로부터 사건의 정황을 듣고 범인을 추리한 시즈카였지만요.

이후 벌어지는 노부인 살해사건, 신흥종교와 관련된 사체 유기사건, 공중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파라구니아 대통령 살해사건 등을 통해 가쓰라기와 마도카는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 마도카의 부모님 사건까지 해결하게 되는데요, 으아, 결말 부분의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란! 이래서 마성의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인 것이죠! 정말 상상도 못한 전개라 순간 머리가 멍해지는 한편, 무척 마음이 아팠습니다. 각 사건이 해결되는 통쾌함과 따스한 감성에 마지막 반전.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시즈카 할머니 시리즈 2편도 준비 중이라고 하니 다음 작품에서의 그녀의 활약을 기대해봅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넘어서는 다작 작가라고 생각해요. 블루홀6 출판사에서 두 달에 한 번꼴로 작품이 출간되는 상황이거든요.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와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가 속속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이 여름이 매우 기대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어 에번 핸슨
밸 에미치 외 지음, 이은선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회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외톨이 고등학생 에번 핸슨. 상담을 받고 있는 셔먼 선생님과 약속한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날도 자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에번 핸슨에게'로 시작하는 편지. 그는 편지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엄마의 걱정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멋진 편지를 써보기로 한다. 그러나 새학기 첫 날마저 투명인간처럼 보내고, 식당에서는 코너와 부딪혀 넘어지는 등 시작이 좋지 않았다. 결국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쏟아내 편지를 완성하지만 우연히 코너가 그 편지를 가로채버린다. 편지가 학교나 SNS에 돌아 웃음거리가 될 것을 걱정하는 에번.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괴소문이 돌기는 커녕 코너 자체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듣게 된 코너의 자살 소식. 코너의 부모님은 에번의 편지를 코너의 유언장이라 생각하고, 그를 생전 코너의 절친이었다 오해한다. 코너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하는 그들을 위해 에번은 가짜 메일까지 만들어가며 무리수를 두고, 난생 처음 중요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에 흥분한 에번은 점점 더 헤어나올 수 없는 거짓말을 지어내게 된다.

시작은 두려웠다. 그 편지가 코너의 유언장이 아니라 자신의 상담숙제라는 것을 밝혀야했다. 하지만 저녁식사 초대 자리에서 꾸며낸 이야기에 감동받으며 자신을 빛나는 눈동자로 쳐다보는 코너 부모님의 모습 때문에 차마 거짓이었다 말하지 못했다. 그 다음에는 진실을 밝히려고 했다. 그러나 한 번만 코너와 주고받은 척 거짓 메일을 보여주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더 많은 이야기를 원하는 코너 부모님을 위해 에번은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점점 눈덩이처럼 커지고, 동경하던 여자아이 조이(코너의 동생) 마저 에번에게 의지하면서 코너가 없는 자신의 외로움을 토로한다. 그리고 코너의 이름을 걸고 시작된 프로젝트. 투명한 벽에 갇혀 혼자만의 세계에서 지내던 에번에게 그것은 무엇을 의미했을까.

점점 커져가는 거짓을 지켜보는 나의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언제 어떻게 진실이 밝혀질지 몰라 에번 대신 내가 전전긍긍했다. 진실을 알면 코너 부모님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에번이 거짓말 한 것을 알고도 조이는 에번의 곁을 지켜줄까. 이 일을 계기로 에번은 예전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될까. 걱정되는 한편, 에번의 외로웠던 마음이 전해져 가슴 한 구석이 알싸해졌다. 이혼한 부모님, 재혼하고 새로운 아기를 기다리며 멀리 사는 아빠, 늘 일에 쫓겨 바쁜 엄마. 에번은 안다.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엄마는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에번의 목소리를 잘 듣지 못했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에번이 상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에번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그분들은 나를 좋아해요.

얼마나 믿기 힘든 얘긴지 나도 알아요.

그분들은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엄마처럼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요.

에번의 거짓말은 사랑받고 싶다는 몸부림이었다. 엄마가 늘 불안한 눈빛을 보내며 자신이 사회적으로 '잘' 적응한 아이이기를 바라는 대신, 가슴 깊이 껴안고 사랑한다 말해주고, 필요로 할 때 옆에 있어주길 바랐다. 엄마와는 이혼했어도 아빠가 자신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한다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식당 한구석에서 홀로 쓸쓸히 샌드위치를 베어먹고 싶지 않았고, 깁스한 팔에 누구도 사인해주지 않아 눈치보는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모든, 고독하고 아픈 시간 대신 찾아온 사람들의 관심과 집중.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 되어버린 거짓된 현실에 에번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디어 에번 핸슨]은 <라라랜드> 제작팀이 참여한 현존하는 최고의 뮤지컬로 일컬어진다. 2017 토니상 6개 부문을 수상했고, 2018 그래미 어워드 수상작이며, <라라랜드>와 <메리포핀스 : 리턴즈>팀의 영화화가 확정되었다. 이 작품에 작가 이름이 네 명이나 되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유튜브에서도 관련 뮤지컬 영상이 소개되어 있으니 꼭 감상해보시기를 추천한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혼자 있기를 원하는 사람은 있어도, 외로움을 바라는 사람은 없다. 에번이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부르지 않고, 누군가가 불러주길 원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욕망이었다. 그렇지 않다고 부인해도 누군가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길 원했던 외로운 영혼. 에번과 코너가 조금만 더 일찍 다른 시간을 보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에번의 거짓 메일에서처럼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주고 사과 농장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냈더라면. 언젠가 한 명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부디 수많은 에번의 이름을 다른 누군가가 불러주게 되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