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맨션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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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로 양식을 주업으로 하던 어촌은, 한 기업이 지자체와 협력을 맺어 오피스 빌딩과 공장 건물이 올라가자,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젊은 사람들이 이사를 오기 시작했다. 기업은 IT와 생명공학 분야에 사업을 확장했고, 빠르게 성과를 냈으며, 도시는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기업의 성장이 지역의 발전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던 탓에 지자체는 파산을 신청했고, 도시는 기업에 팔려 이상한 도시국가가 탄생했다. ‘타운’이라 불렸다. 타운에는 주민권을 가진 L과 주민 자격은 갖추지 못했으나 범죄 이력이 없고 간단한 심사를 통과하면 받을 수 있는 L2가 있다. L도 L2도 아닌, 마땅한 이름이 없는 이들, ‘사하맨션’에 사는 사람들 뿐 아니라 ‘사하’라 불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 ‘사하’라 불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도경이 차 안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의식을 찾은 그와는 달리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수. 도경은 수의 시신을 뒤로 하고 정신없이 내달린다. 보도블럭에 긁힌 오른쪽 무릎에서 선홍색 핏방울이 떨어져 내릴 때 도경은 수를 생각한다. 할 것도 없고 사람도 없었던, 그래서 그들이 자주 찾아갔던 공원. 그 곳에 도경은 수를 버려두고 도망쳤다. 동반자살을 꿈꾸었던 사람들이었던가. 그도 아니면 살인 사건인가. 단순한 개인의 일이라 여기며 읽어 내려가는 눈에 도경이 몸담았던, 수가 들어왔던 세상이 열렸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부유하며 질 높은 삶을 영위하는 타운 사람들과는 달리 추방, 낙오, 소외된 자들이 숨어 사는 낡은 맨션, 사하. 누군가에게는 비참한 생의 종착지였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허락된 마지막 공동체이기도 한 곳. 그 맨션에 진경과 사라, 수와 도경, 꽃님이 할머니와 우미, 우연, 관리인 영감이 살고 있다. 누군가는 30년 전에 아이를 낳고 목숨을 잃었고, 어떤 이는 사하맨션에 찾아와 보금자리를 얻었다. 타운의 주민들은 업신여기고 추방하길 바라는 그 장소에서 사하맨션 사람들은 희망을 생각했고, 먹고 마시고 즐기며 하루하루를 만들어나갔다.

 

사하맨션에 사는 사람들은 감히 저항하지 못한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것이 순리였으므로. 하지만 자신들의 공동체가, 항상 함께 했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고 소중한 것을 빼앗길 위기가 닥치자 마침내 일어선다. 당신들은 틀렸다고. 사람들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조남주 작가가 [82년생 김지영]으로 인해 페미니즘에 불을 붙였고, 그 다음 작품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은 당연한 일이며, 때문에 분연히 일어난 한 인물이 여성이라는 것, 대목마다 큰 역할을 해내는 것이 여성이라는 점에 의미부여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그 인물이 여성인가 남성인가, 어른인가 아이인가를 따지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의 연대, 배려, 사랑 같은 끈끈한 것이니까.

 

작품 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사하는 실제로 우리 삶 곳곳에 살아있다. 소외와 그로 인해 발생되는 폭력, 원통함과 차별. 작가는 이제 그 모든 것에서 눈 돌려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원래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함께 살아가길 꿈꾸어야 한다고. [사하맨션]은 비참함 속에서 길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어서 눈을 뜨라고 재촉하는 목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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