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책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0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주년 특별판 시리즈의 마지막, [불안의 책]. 작가인 페르난두 페소아는 1912년 <아기아>에 포르투갈 시문학에 대한 글을 발표하면서 작가활동을 시작했고, 1915년 포르투갈 모더니즘 문학의 시초라 평가받는 잡지 <오르페우>를 창간했다. 일생 동안 여러 잡지와 신문을 통해 130여 편의 산문과 300여 편의 시를 발표했고, 틈틈이 기록해놓은 단상들을 모아 [불안의 책]을 출간하려 했지만 간질환 악화로 1935년 47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사후 엄청난 양의 글이 담긴 트렁크가 발견되었고, 아직도 분류와 출판이 진행 중이라고 하니 그의 때이른 죽음이 새삼 안타깝게 느껴질 수밖에. 그는 자신의 존재를 해체시켜 단일한 '나'가 아닌 복수적인 존재를 추구했고, 이를 수십 명의 다른 이름을 통해 구현했다. [불안의 책]은 작가와 흡사한 반(半) 이명(異名)인 베르나르두 소아르스의 영혼의 기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인 페르난도 페소아가 일평생 끊임없이 추구했던 내면의 성찰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이 대단한 [불안의 책]을, 그러나 나는 머리를 감싸안고 쥐어뜯으며 읽었다. 리스본의 도라도레스 거리에 위치한 한 회계사무소에서 일하는 직원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리스본 시내와 테주 강변을 산책하며 명상에 잠기는 베르나르두 소아르스. 그는 페소아가 자신과 가장 흡사한 인격체라는 이유로 반(半) 이명(異名)이라고 불렀다. 그 안의 여러 목소리들이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는 크게 줄거리라 할 만한 것이 없고 느껴지는 것은 오직 불안한 기운 뿐이다. 문장 하나하나도 나에게는 무척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대체 그가 궁극적으로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지 몇 번씩은 꼭 반복해서 읽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명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다.

 

한 가지 모호하게나마 잡히는 것은, 작가는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 어쩌면 대부분의 작가들이 자신만의 세상속에서 살아가고 그 세상에서 작품을 창조해내고 있는 것이겠지만, 페소아는 아무리 기를 써도 손가락 끝조차 닿지 않는 곳에서 존재했었다는 느낌이다. 그는 자신의 글이 과연 독자에게 어떻게 다가가기를 바랐던 것일까. 애초에 누구를 위한 글쓰기였는가. 사실 독자는 그의 고려대상이 아니었고, 그의 내면을 뒤흔들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무언가를 가라앉히기 위해 글쓰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지금까지 읽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주년 특별판 시리즈 중 가장 어려운 작품이었다. 이 책 한 권을 품고 몸살을 앓았다. 읽으면서 머리 쥐어뜯고, 덮었다가 다시 펼쳤다가, 그리고 다시 머리를 감싸안으며 괴로워하고.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어찌어찌 읽은 이 책의 글귀들에 여전히 마음이 서늘하다는 것이다. 불안하고 외롭고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을 이 한 권의 책에 쏟아부은 듯한 그의 열정과 안타까운 이른 죽음이 어우러져 쉽게 책을 덮지 못하게 한다. 먼 훗날 다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그 때는 지금보다 더 깊게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될까. 이해하고 싶으면서도 이해하게 될 그 때의 나 자신이 그리 행복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에 쉽게 다시 펼칠 수 있을 듯하지는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0가지 물건으로 다시 쓰는 여성 세계사
매기 앤드루스.재니스 로마스 지음, 홍승원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런던 고아원에는 미혼이거나 남성에게 버려져 아기를 키울 수 없었던 어머니들이 남긴 토큰들이 있다. 시설에 입소한 아이들은 세례와 함께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어머니들은 언젠가 다시 아기를 만나게 될 경우 아이를 알아볼 수 있도록 증표를 남겼는데, 그것이 바로 이 토큰들인 것이다. 런던 고아원박물관에는 1만 8,000여개의 토큰들이 남아있지만 기록에 의하면 어머니와 재회한 아이는 단 두 명 뿐이었다고 전해진다. 18-19세기 영국의 미혼모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상기시켜 주는 물건. 버려진 아기들과 미혼모들에 대한 구제는 수 세기 동안 여러 사회에서 안고 있던 문제였다. 절박한 여성들은 아이를 유기하거나 강에 던져버리기도 했고, 때문에 이를 개선하기 위해 파리에서는 기아회전판(회전식 문을 설치해서 아기를 판 위에 올려놓으면, 문이 돌아가서 아기가 안에 들어가게 되는 방식)이라는 것까지 도입했다고 하니 그 실상이 얼마나 참혹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1546년 8월 13일, 메리언 레이라는 여성은 이웃을 간통죄로 고발했다가 다수의 비방 혐의로 스코틀랜드의 한 법정에 서게 되었다. 그녀에게 떨어진 형벌은 입을 막는 굴레를 채우는 고문. 이 장치는 잔소리에 대한 처벌로 가부장적인 기대치를 벗어나 불손하거나, 제멋대로 말하는 여성, 통상적인 여성의 관념에 도전하는 여성에게 잔소리꾼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고통과 수치심을 주어 여성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표현의 행위를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고문도구. 저자는 이것에 대해 여성을 구속한 역사의 잔존물이면서도, 동시에 남성들이 자신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에 위협을 느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었다고 기술한다.

문화사학자 매기 앤드루스와 여성학자 재니스 로마스의 컬래버레이션으로 탄생한 [100가지 물건으로 다시 쓰는 여성 세계사]는 영국 여성의 참정권 획득 100주년을 기념하여 쓰였다. 총 여덟 개 분야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흡사 여성사의 다양한 장면들을 탐험하듯 둘러볼 수 있는 박물관과도 같다. 생물학적 특성에 따라 여성의 경험을 미리 결정지어온 증거들에서부터 사회가 아내와 주부에게 얼마나 많은 기대를 부여했는지 알 수 있는 물건들, 여성이 도움을 받거나 직접 그 발달에 기여한 기술들, 즐거움이었지만 억압의 대상이기도 했던 의생활의 아이템들, 해방과 참여의 수단이 되어주었던 도구들, 새로운 기회를 만끽하고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었던 발견들, 여성이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거나 대의를 주장했음을 알려주는 작품들, 불의와 억압에 대한 투지를 보여주는 상징들까지. 역사에 가려져 있었거나, 그 중요성을 무시당한 채 오늘날까지 이어내려온 여성의 권리와 페미니즘의 역사가 다양한 이야기와 풍부한 삽화들을 통해 책 속에서 재현된다.

흥미롭지만, 읽으면서 복잡한 심경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 능력을 무시당하고 어떤 때는 도구로, 어떤 때는 소유물로 여겨져 험난하게 그 권리를 지켜온 여성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안타깝게도 여성을 학대하고 억압하는 문화는 어딘가에서, 어떤 가정에서는 현재진행형이다. 그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여성들. 같은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서, 여성이라는 존재에 박수를 보내며 일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어 라이프 (한정판)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앨리스 먼로 시리즈의 마지막 도서인 [디어 라이프]. 앞서 읽은 [소녀와 여자들의 삶]에서 역자는 [디어 라이프]에 대해 -구상이 점점 추상으로 변화해가듯 정말 기를 쓰고 다가가야 할 만큼 압축과 생략이 많았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덕분에 [소녀와 여자들의 삶]도 읽기 쉽지 않았는데 [디어 라이프]는 얼마나 애를 쓰며 읽어야 하는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이 작품을 시작했는데! 앨리스 먼로는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이라 평가받는다. 그녀가 2013년 10월 10일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로 그녀의 이름이 호명되었을 때 스웨덴 한림원에서 먼로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 또한 바로 그것이었다. 만약 [디어 라이프]를 읽지 않았다면 이런 선정 이유에 대해 잠시나마 고개를 갸우뚱 했을지도 모르지만, 읽고 난 지금은 알겠다. 그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이라 칭송받는 이유를.

열 편의 단편소설과 네 편의 자전적 소설로 이루어진 [디어 라이프] 에서도 먼로가 그려내는 세계는 소소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극적이다. 기차 안에서 처음 만난 남자와 정사를 나누기 위해 잠든 딸을 두고 잠시 자리를 비웠던 여인이, 정사 후 자리로 돌아왔을 때 딸이 없어진 것을 발견했을 때의 충격. 약혼자와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떠나지만 도중에 남자로부터 파혼 결정을 듣는 여성, 언니를 잃은 어린 소녀, 불륜 상대인 연인의 배신을 알게 된 여성, 남편의 첫사랑과 우연히 만난 후 소용돌이치는 감정에 휩싸인 채 한순간 집을 뛰쳐나가는 노부인 등. 그녀의 작품 속 주인공은 대부분 여성이고, 여성들의 다양한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페미니즘을 드러내며 주장하는 글들은 아니었다. 그저 어떤 여성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이런 삶도 있다는 것을, 어떤 찰나의 순간을 마치 사진처럼 찰칵 찍듯 묘사해낸다.

먼로의 문체는 절제되어 있고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감정의 폭도 그리 크지 않다. 물 흐르듯, 화면이 지나가듯 조용히 흘러갈 뿐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고 한순간 멍-하게 만드는 장면들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자존심>에서 오나이다와 주인공이 창가에서 작은 스컹크들을 바라보는 장면. 먼로 또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꼽은, 아련하고 쓰라리지만 더없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리고 <코리>에 등장한 -그녀는 뭔가를 깨달았다. 자는 동안 깨달았다.-나, <안식처>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무엇에 헌신하든 그것 때문에 바보 취급을 받는다-와 같은 문장들. 구체적으로 이유를 대지는 못하겠지만 이런 장면과 이런 문장들이 내 마음 속에 사진처럼, 영화처럼 남아있다. 그리고 순간 먹먹해진다. 슬퍼진다. 작품들이 내 가슴 속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대부분 새벽에 읽은 [디어 라이프] 속 이야기들에 나는 그저 빨려들어갔다. 왜 그랬던 것이냐고, 자세히 좀 써보라고 말하지 말아달라. 나도 모르겠다. 그저 책을 읽는 동안 앨리스 먼로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는 것밖에 할 말이 없다. 그 어떤 수식어와 미사여구로도 나의 마음을 표현하기가 부족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걸스 라이크 어스
크리스티나 앨저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시간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성범죄의 이면에는 항상 추악한 인간의 이면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아요. 궁금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인자에게 - 김선미 장편소설
김선미 지음 / 연담L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단정한 모범생으로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는 진웅. 하지만 소년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가족들을 모두 죽이고 자살할 계획을 세운 그 날, 엄마를 잃었다. 아버지의 칼날을 막아내고 집밖으로 뛰쳐나간 형 진혁과,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 목숨을 부지한 진웅의 세계는 그 날 모두 무너져 내렸고 그 후의 삶은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낙인으로 뒤덮여버린다. 십년의 세월이 흐르고, 감옥에 들어간 아버지가 마침내 출소하는 날,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긴장으로 팽팽해진 식사자리, 누구도 말 한 마디 제대로 꺼내지 못한 어색한 시간이 지나고 모두 잠자리에 들지만 하나 둘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는 아버지와 형. 그리고 시체로 발견된 진웅의 같은 반 반장인 태민. 아버지와 형이 돌아온 그 날 일어난 사건으로 진웅은 두 사람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각자가 다르게 보낸 5일 후 마침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진다.

 

'오죽했으면 같이 죽으려고 했을까,라는 동정에 앞서 이 세상의 어떤 부모도 자식의 생명과 기회를 빼앗을 권리가 없다는 걸 인지했으면 한다'는 작가의 의견에 동의한다. 벼랑 끝에 몰린 부모의 심정, 충분히 이해한다. 슬프도록 이해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식의 생명을 제 마음대로 할 권리란, 부모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부모인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나 없이 너희들이 어떻게 살아가겠냐는 마음, 모두 부모의 오만이고 착각이다. 정말 가족을 사랑하고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같이 죽을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설사 몸을 판다 해도 살아남을 생각을 해야 하는 게 않을까. 나도 엄마이고 아이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쉽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님을 부디 알아주기를. 가장 사랑하는 엄마 아빠의 손에 세상을 떠나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아무 죄가 없다.

 

너무 마음 아픈 작품이다. 살아남은 진혁과 진웅의 삶이, 고통을 견뎌냈을 그 시간들이, 다른 아이들이 아닌 마치 내 아이들이 겪는 것만 같아서 눈물이 멈춰지지 않았다.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이가 내 목숨을 앗아가려했다는 절망, 그것보다 더한 지옥이 세상에 있을까. 만약 지금 이 순간에도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부모들이 있다면, 제발 부탁이니 다시 한 번만 생각해주세요.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미래를 살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나는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논리로 그 사실을 외면했다.

p158

'연담L'에서 출간되는 작품들은 지금까지 모두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작품 앞에 '재미있다'는 말을 붙이기에는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누군가, 혹은 지금의 어떤 이가 겪고 있을만한 고통, 하지 않아야 할 생각들을 하며 보내고 있을 시간에 어찌 감히 '재미있다'는 말을 붙일 수 있을까. 부디 많은 부모들이 이 작품을 읽기를. 지금 어떤 고통 속에 있더라도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아이들이 살아야 할 지옥을 이 책을 통해 미리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면, 부디 그 잘못된 생각을 저 멀리 던져버리고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이 세상을 살아갈 각오를 다시 한 번 다져주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나 또한 앞으로 내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엄마 아빠라면 자신들을 해칠 리 없다는 아이들의 믿음을 절대 저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