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가지 물건으로 다시 쓰는 여성 세계사
매기 앤드루스.재니스 로마스 지음, 홍승원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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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고아원에는 미혼이거나 남성에게 버려져 아기를 키울 수 없었던 어머니들이 남긴 토큰들이 있다. 시설에 입소한 아이들은 세례와 함께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어머니들은 언젠가 다시 아기를 만나게 될 경우 아이를 알아볼 수 있도록 증표를 남겼는데, 그것이 바로 이 토큰들인 것이다. 런던 고아원박물관에는 1만 8,000여개의 토큰들이 남아있지만 기록에 의하면 어머니와 재회한 아이는 단 두 명 뿐이었다고 전해진다. 18-19세기 영국의 미혼모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상기시켜 주는 물건. 버려진 아기들과 미혼모들에 대한 구제는 수 세기 동안 여러 사회에서 안고 있던 문제였다. 절박한 여성들은 아이를 유기하거나 강에 던져버리기도 했고, 때문에 이를 개선하기 위해 파리에서는 기아회전판(회전식 문을 설치해서 아기를 판 위에 올려놓으면, 문이 돌아가서 아기가 안에 들어가게 되는 방식)이라는 것까지 도입했다고 하니 그 실상이 얼마나 참혹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1546년 8월 13일, 메리언 레이라는 여성은 이웃을 간통죄로 고발했다가 다수의 비방 혐의로 스코틀랜드의 한 법정에 서게 되었다. 그녀에게 떨어진 형벌은 입을 막는 굴레를 채우는 고문. 이 장치는 잔소리에 대한 처벌로 가부장적인 기대치를 벗어나 불손하거나, 제멋대로 말하는 여성, 통상적인 여성의 관념에 도전하는 여성에게 잔소리꾼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고통과 수치심을 주어 여성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표현의 행위를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고문도구. 저자는 이것에 대해 여성을 구속한 역사의 잔존물이면서도, 동시에 남성들이 자신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에 위협을 느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었다고 기술한다.

문화사학자 매기 앤드루스와 여성학자 재니스 로마스의 컬래버레이션으로 탄생한 [100가지 물건으로 다시 쓰는 여성 세계사]는 영국 여성의 참정권 획득 100주년을 기념하여 쓰였다. 총 여덟 개 분야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흡사 여성사의 다양한 장면들을 탐험하듯 둘러볼 수 있는 박물관과도 같다. 생물학적 특성에 따라 여성의 경험을 미리 결정지어온 증거들에서부터 사회가 아내와 주부에게 얼마나 많은 기대를 부여했는지 알 수 있는 물건들, 여성이 도움을 받거나 직접 그 발달에 기여한 기술들, 즐거움이었지만 억압의 대상이기도 했던 의생활의 아이템들, 해방과 참여의 수단이 되어주었던 도구들, 새로운 기회를 만끽하고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었던 발견들, 여성이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거나 대의를 주장했음을 알려주는 작품들, 불의와 억압에 대한 투지를 보여주는 상징들까지. 역사에 가려져 있었거나, 그 중요성을 무시당한 채 오늘날까지 이어내려온 여성의 권리와 페미니즘의 역사가 다양한 이야기와 풍부한 삽화들을 통해 책 속에서 재현된다.

흥미롭지만, 읽으면서 복잡한 심경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 능력을 무시당하고 어떤 때는 도구로, 어떤 때는 소유물로 여겨져 험난하게 그 권리를 지켜온 여성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안타깝게도 여성을 학대하고 억압하는 문화는 어딘가에서, 어떤 가정에서는 현재진행형이다. 그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여성들. 같은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서, 여성이라는 존재에 박수를 보내며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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