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라이프 (한정판)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앨리스 먼로 시리즈의 마지막 도서인 [디어 라이프]. 앞서 읽은 [소녀와 여자들의 삶]에서 역자는 [디어 라이프]에 대해 -구상이 점점 추상으로 변화해가듯 정말 기를 쓰고 다가가야 할 만큼 압축과 생략이 많았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덕분에 [소녀와 여자들의 삶]도 읽기 쉽지 않았는데 [디어 라이프]는 얼마나 애를 쓰며 읽어야 하는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이 작품을 시작했는데! 앨리스 먼로는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이라 평가받는다. 그녀가 2013년 10월 10일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로 그녀의 이름이 호명되었을 때 스웨덴 한림원에서 먼로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 또한 바로 그것이었다. 만약 [디어 라이프]를 읽지 않았다면 이런 선정 이유에 대해 잠시나마 고개를 갸우뚱 했을지도 모르지만, 읽고 난 지금은 알겠다. 그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이라 칭송받는 이유를.

열 편의 단편소설과 네 편의 자전적 소설로 이루어진 [디어 라이프] 에서도 먼로가 그려내는 세계는 소소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극적이다. 기차 안에서 처음 만난 남자와 정사를 나누기 위해 잠든 딸을 두고 잠시 자리를 비웠던 여인이, 정사 후 자리로 돌아왔을 때 딸이 없어진 것을 발견했을 때의 충격. 약혼자와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떠나지만 도중에 남자로부터 파혼 결정을 듣는 여성, 언니를 잃은 어린 소녀, 불륜 상대인 연인의 배신을 알게 된 여성, 남편의 첫사랑과 우연히 만난 후 소용돌이치는 감정에 휩싸인 채 한순간 집을 뛰쳐나가는 노부인 등. 그녀의 작품 속 주인공은 대부분 여성이고, 여성들의 다양한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페미니즘을 드러내며 주장하는 글들은 아니었다. 그저 어떤 여성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이런 삶도 있다는 것을, 어떤 찰나의 순간을 마치 사진처럼 찰칵 찍듯 묘사해낸다.

먼로의 문체는 절제되어 있고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감정의 폭도 그리 크지 않다. 물 흐르듯, 화면이 지나가듯 조용히 흘러갈 뿐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고 한순간 멍-하게 만드는 장면들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자존심>에서 오나이다와 주인공이 창가에서 작은 스컹크들을 바라보는 장면. 먼로 또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꼽은, 아련하고 쓰라리지만 더없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리고 <코리>에 등장한 -그녀는 뭔가를 깨달았다. 자는 동안 깨달았다.-나, <안식처>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무엇에 헌신하든 그것 때문에 바보 취급을 받는다-와 같은 문장들. 구체적으로 이유를 대지는 못하겠지만 이런 장면과 이런 문장들이 내 마음 속에 사진처럼, 영화처럼 남아있다. 그리고 순간 먹먹해진다. 슬퍼진다. 작품들이 내 가슴 속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대부분 새벽에 읽은 [디어 라이프] 속 이야기들에 나는 그저 빨려들어갔다. 왜 그랬던 것이냐고, 자세히 좀 써보라고 말하지 말아달라. 나도 모르겠다. 그저 책을 읽는 동안 앨리스 먼로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는 것밖에 할 말이 없다. 그 어떤 수식어와 미사여구로도 나의 마음을 표현하기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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