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정영목 옮김 / 검은숲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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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엘러리 퀸 콜렉션의 세 번째 책은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 . 지금까지 읽은 엘러리 퀸의 작품들 중(그래봐야 세 권이지만) 가장 머리가 빙빙 돌고 범인의 가닥이 잘 잡히지 않았던 이야기였다. 어떤 비밀이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을 등장인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듯한 기분이랄까. 한 조각의 퍼즐만 찾아낸다면 단번에 범인의 윤곽이 잡힐 것 같은데, 그 한걸음을 내딛지 못해 또 한번, 그러나 늘 그렇듯, 범인 색출에 실패했다! 비록 범인을 추적하는 것은 미흡했지만, 엘러리 퀸의 추리세계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시간.

 

이번 사건은 네덜란드 기념 병원에서 일어났다. 어떤 사건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 친구이자 의사인 존 민첸을 찾아간 엘러리 퀸. 마침 당뇨로 인해 높은 층계에서 떨어져 쓸개가 파열되어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애비 도른의 수술과정을 관람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목이 졸려 숨진 상태로 수술실에 들어온 애비 도른. 그녀에게는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는 양자 프랜시스 재니가 있었는데, 부인이 수술을 받기 전 그가 부속실에 잠깐 들렀다는 목격자 증언이 나온다. 한쪽 발을 저는 것까지 똑같았다는 것. 도른 부인의 죽음을 둘러싸고 누군가는 슬픔을, 누군가는 환희를 느끼는 분위기가 교차하는 가운데 닥터 재니가 양어머니의 도움으로 엄청난 비용이 요구되는 연구를 하고 있었음이 밝혀진다. 게다가 도른 부인이 사망할 경우 상당한 유산을 물려받게 된다는 것도. 단번에 용의자 선상에 오른 재니. 그러나 그 또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도른 부인과 똑같은 수법으로 살해당한 채 발견되어 수사는 미제로 빠질 위기에 처한다. 남겨진 단서는 도른 부인이 살해당할 당시 누군가 닥터 재니로 위장할 때 사용했던 흰색 바지와 구두 한 켤레. 마침내 엘러리 퀸 극강의 추리가 시작된다!

 

이번에는 꼭 범인을 밝혀내보리라! 추미스를 읽으면서 늘 다짐하지만 특히 엘러리 퀸의 작품에서 범인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항상 범인일 것 같은 사람이 범인이 아니었기에 제일 의심스러웠던 재닝과 도른 부인의 변호사 필립 모어하우스를 가장 먼저 용의선상에서 지웠다. 물론 이 변호사 뭔가 의심스럽기는 했다. 중간중간 나타나는 부인의 딸 훌다를 대하는 태도가 어딘가 미심쩍었기 때문. 결국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를 살짝 범인 칸에 올려두었는데, 아뿔싸! 범인이 그 사람이었다니! 우와, 나는 정말 생각도 못했다. 이런 언급조차 스포가 될까 두렵지만 단 한 번도 범인일 거라 생각해보지 못한 사람. 그가 범인으로 밝혀진 뒤에는 범죄의 동기가 너무 궁금했다. '대체 왜?!!'라는 말이 실제로 방안을 울렸을 정도. 그 모든 추리를 누군가 닥터 재니로 변장할 때 사용했던 구두 한 켤레와 그 끈에 붙어있던 반창고 등만으로 해내다니, 엘러리는 정말 대단하다. 저절로 현실 물개박수가 나와버렸다.

 

리뷰 시작 부분에서도 언급했지만 나에게는 가장 난이도가 높았던 작품이다. 작가가 엘러리 퀸의 능력을 부각시켜 보이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인가! 엘러리 퀸의 추리 과정을 듣다보면 머리가 멍-해지면서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마 소설 속 인물들을 인터뷰할 수 있다면 그들의 심정과 나의 심정이 크게 다르지 않으리. 그가 마지막 부분에서 던진 증거에 '띠용'이라는 글자가 저절로 생각났다.

 

일본의 엘러리 퀸 연구가 이이키 유우산은 저서 [엘러리 퀸 론]에서 퀸의 작품을 '의외의 진상'이 아니라 '의외의 추리'를 장기로 삼는 글이라 평했다고 한다. 마지막의 반전으로 인해 처음 읽을 때만 재미있고 여러 번 읽기에는 시시한 일회성의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범인을 알고 난 이후에 그 추리를 되짚어보면 예기치 못한 곳에서 발견되는 단서가 의외의 논리로 확장되는 모습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다. 지금까지 읽은 엘러리 퀸의 작품은 모두 한 번 읽기에는 아깝다. 그의 추리를 바탕으로 작품을 한 번 더 읽으면 무언가 내 눈에도 들어올 것 같은 기분. 때문에 이렇게 엘러리 퀸 시리즈가 오랜 시간 변함없이 사랑받으며 소장용으로 출간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한테까지 와줘서 고맙다, 엘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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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때문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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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아픔을 극복하고 보듬어주고 치료해나가는 이야기]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기욤 뮈소 시리즈의 네 번째 책 [사랑하기 때문에] . 기욤 뮈소 작품을 이렇게 시리즈로 쭉 읽고 있으니 새로운 소설을 접할 때마다 이제는 기대가 된다. 이번에는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를 보여줄까, 무엇을 소재로 이번 작품을 썼을까. 개인적으로 문장에 그리 깊이가 있는 작품을 쓴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엔터테인먼트 작가로서의 기량은 뛰어나다고 느꼈다. 이번 작품은 쉽게쉽게 읽어내려가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우와-'하고 탄성을 내질렀을 정도. 앞에 읽은 세 권에 비해 반전의 묘미가 크다.

 

사랑하는 딸 라일라를 잃고 노숙자로 전락하여 거리에서 생활하는 마크 해서웨이. 그는 전도유망한 신경정신과 의사였고, 아름답고 실력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아내인 니콜, 세상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딸 라일라와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보모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쇼핑몰에서 사라져버린 딸. 그 딸을 잃은 이후 마크의 세상은 단번에 무너져내린 것이다. 라일라를 찾기 전에는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는 마크.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니콜이 라일라를 찾았다면서 연락한다. 두려움과 설레임을 안고 라일라를 데리러 뉴욕으로 향하는 마크. 그런데 니콜은 그와 동행할 수 없다면서 자취를 감춰버리고 만다. 대체 그녀가 숨기고 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마크에게는 평생의 친구이자 동료의사인 커너가 있었다. 마크가 노숙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연락을 끊었지만 두 사람은 혈연으로 맺어진 형제보다 더 돈독한 사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의 아픈 상처로 인해 복수심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거룩한 것인지 경험으로 알고 있는 커너. 그 앞에 복수를 꿈꾸며 뉴욕의 밤거리를 헤매는 소녀 에비가 나타난다. 커너의 가방을 훔치다 걸린 것을 계기로 그와 식사를 하게 되고 결국 그의 명함까지 얻게 되지만 에비는 커너에게 도움을 구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등장인물인 앨리슨. 억만장자의 상속녀이지만 그녀는 마치 자신의 인생을 망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한다. 그런 그녀가 저지른 만행들을 뒷수습하면서 슬픈 눈빛으로 앨리슨의 뒤를 지키는 아버지. 그 아버지가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엽총을 쏘아 자살했다. 충격에 빠진 앨리슨. 그녀와 마크, 라일라, 그리고 에비가 한 비행기에 탑승한다. 이어지는 기묘한 인연과 각자의 사정을 서로에게 털어놓는 사람들. 예상치 못한 결말이 그들과 독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크를 만난 라일라가 니콜에 관해 묘한 말을 던진 덕분에 요상한 상상을 하고 말았지만, 결국 내가 생각한 것과는 거리가 먼 마지막이었다. 이런 일이 정말 가능할 수 있나-하는 생각과 함께 실제로 벌어질 수 있다면 무척 대단한 일일 것이라며 혀를 내두름. 마크와 니콜에게 일어난 일이 나에게도 일어난다면 나도 견디기 무척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너무 아팠고, 에비가 후회하고 있는 일의 감정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아서 역시 안타까웠고, 앨리슨은 비록 방탕한 상속녀였지만 인간적으로 정이 가는 부분이 있는지라 또 불쌍했다. 너무 자세히 이야기하면 소설을 읽는 재미가 떨어질테니 세세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나처럼 결말에서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싶다.

 

비록 고통과 아픔을 겪었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보듬어주고 치료해나가는 이야기. 기욤 뮈소의 작품들은 어쩐 일인지 늘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 작품 또한. 자, 또 어떤 이야기로 나를 놀라게 만들어줄 것인지, 리딩투데이의 다음 도서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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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예측, 부의 미래 - 세계 석학 5인이 말하는 기술·자본·문명의 대전환
유발 하라리 외 지음, 신희원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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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변화의 큰 흐름을 꿰뚫어 볼 안목을 제공한다]

 

 

부와 경제의 흐름을 예측하는 이 시대 최고 지성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한 자리에 모였다. 얼마 전에 읽은 [사피엔스]의 저자이자 현재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역사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유발 하라리와 뉴욕 대학교 스턴 경영대학원 교수이자 기업가이며 현재 영미권에서 가장 주목받는 지식인 중 한 명인 스콧 갤러웨이, 세계적인 암호화폐 선구자로 3세대 카르다노를 개발하였으며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 분야의 대중교육, 건강한 생태계 조성에 관심이 많은 찰스 호스킨슨, 201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경제학자이며 게임이론과 산업조직론의 대가로 알려진 장 티롤, 독일의 천재 철학자로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현재 영어까지 10개 언어에 능통하며 신실재론이라는 독특한 철학을 이끌고 있는 마르쿠스 가브리엘. [초예측 : 부의 미래]는 2019년 초봄에 방영된 NHK 다큐멘터리 <욕망의 자본주의 2019 : 거짓된 개인주의를 넘어서>의 내용을 엮은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자본주의는 이미 하나의 종교와도 같은 것이 되었으며 인간의 욕망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엔진이라고 이야기한다. 더 많이 생산하면 더 많이 소비할 수 있고, 그 결과 생활 수준이 높아져서 더 행복해지는 시스템에 대해 그것들이 실제로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며 삶의 만족도는 인간성에 관한 문제라고 주장한다. 자유로운 시장을 없앨 수 있는 빅데이터, 감시 자본주의 시대의 도래 등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결국 그의 초점은 '인간'에 맞춰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상상하는 미래는 돈이 없는 자본주의, 바로 데이터가 힘이 되는 자본주의다.

 

스콧 갤러웨이는 구글(G), 애플(A), 페이스북(P), 아마존(A), 약칭 GAPA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 거대 플랫폼 기업들 없이는 이미 일도 생활도 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는 GAPA가 어떻게 국경을 초월해 사람들의 욕망을 착취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GAPA가 제공하는 혜택을 인지하면서도 그들의 도를 넘는 행태를 격렬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각국은 GAPA에 대항할 지도자를 세우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을 촉구한다.

 

찰스 호스킨슨은 26세라는 젊은 나이에 비트코인의 뒤를 잇는 2세대 암호화폐 이더리움을 만든 천재 수학자다. 그는 암호화폐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정한 경쟁 시장을 열어젖힐 것이라 말하면서 그 과학기술에 내재한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장 티롤은 암호화폐는 사회에 유익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그 이유로 돈세탁과 탈세, 암거래 등에 이용될 수 있는 가능성, 암호화폐 때문에 통화를 발행하는 중앙은행의 화폐 주조 차익의 감소, 금융 정책의 훼손 가능성을 들고 있다. 여기에 금융 시장의 도덕적 해이, 자유주의의 핵심은 방임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주장과 그가 자주 언급하는 '무지의 장막'이라는 개념까지 흥미로운 내용들이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젊은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탈진실의 시대에 모든 것의 붕괴를 막기 위한 지적 시도를 선보인다.

 

평소 자주 접하던 분야가 아니라서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그리 쉽지 않게, 진지하게 읽었다. 이들 중 인상깊었던 인물은 장 티롤 교수. 좀 쉬이 읽은 사람은 유발 하라리 교수였지만 장 티롤 교수의 인터뷰를 읽다보니 경제학의 어떤 부분을 차분히 들여다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조목조목, 차근차근의 정수라고 할까.

 

인공지능, 기계학습, 빅데이터, 알고리즘 등 첨단 과학과 신기술은 날로 발전하며 개인의 일자리와 소득, 세계 경제와 정치 시스템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다. 책을 읽다보니 현기증이 날 정도다. 이런 거대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가. 등장한 사람 대부분이 그래도 포기하지 않아야 할 것은 '인간'이라고 언급한 부분에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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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가문 메디치 1 - 피렌체의 새로운 통치자
마테오 스트루쿨 지음, 이현경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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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유력 가문인 메디치가의 코시모.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건축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중 동생 로렌초가 급히 달려와 아버지 조반니 데 메디치의 임종이 임박했음을 알린다. 가문의 수장이자 두 형제의 정신적 기둥이었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단순한 열병으로 쓰러진 줄 알았건만 동생 로렌초는 코시모에게 아버지가 독살당했음을 넌지시 알린다. 자신들의 집에서 발견한 벨라돈나. 보통은 들판에서 자라지만 종종 오래된 폐허 근처에서 자라는데 어째서 집에서 발견된 것인가. 결국 아버지의 죽음 뒤에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감지한 형제는 그 배후를 밝혀내고자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그 와중에 불길한 향수장수 라우라와 그녀를 사랑하는 슈바르츠와 맞닥뜨린다. 조반니 데 메디치의 죽음을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그들과 대립하고 있던 리날도 델리 알비치. 조반니 데 메디치의 죽음을 기회로 그는 메디치 가문을 피렌체에서 몰아내려 하고 결국 코시모는 여러 정치적인 상황 속에서 추방령을 당해 로렌초와 함께 베네치아로 귀향을 떠난다. 그러나 그곳에서 더욱 공고해지는 그의 위치. 결국 '피렌체의 국부'라 불리며 다시 돌아온 코시모는 리날도 데 알비치와의 일전을 준비하며 한 시대를 풍미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다.

 

이탈리아 작가 마테오 스트루쿨은 1편에 등장하는 코시모와 그의 손자 로렌초, 프랑스 왕가로 시집간 카테리나 메디치의 이야기를 다룬 [권력의 가문 메디치] 3부작을 집필, 이탈리아 서점 대상 <반카렐라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탈리아에서만 50만 부가 팔렸으며 전 세계 11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2년 동안의 철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현지탐방을 한 끝에 집필했고, 역사적 사실과 서스펜스가 적절히 혼합되어 지적 자극은 물론 엔터테인먼트 소설로서의 즐거움까지 선사하는 이야기들.

 

막대한 부를 배경으로 피렌체의 권력까지 장악했던 코시모 메디치. 그는 수완 좋은 정치가이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부와 정치감각으로 은행을 운용했고, 유럽의 많은 군주들이 그의 은행을 이용해 자금을 융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학문과 예술의 후원자로서도 명성을 떨쳤는데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돔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도 코시모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다고 전해진다. [피렌체의 새로운 통치자]에서는 정치가로서의 그의 뛰어난 수완이 그리 부각되지는 않는 것으로 보였다. 강인한 심지와 가족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고 호전적이라기보다 기회주의자에 더 가까운 면모랄까. 그에 비하면 동생 로렌초는 코시모에 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성정으로 오히려 그가 전투와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마지막까지 재미있게 읽었지만 초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무슨 용어가 이리도 어렵고 복잡한 지, 읽는 도중 솔직히 잠이 조금 쏟아지기도. 하지만 이 용어들과 대립하고 있는 사람들의 관계가 눈에 들어오면서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주인공 코시모의 모습도 눈여겨보기는 했지만 내 눈에 더 들어온 것은 그의 어머니 피카르다. 남편을 잃은 슬픔이 컸을텐데 오래 내색하지 않은 채 가문의 앞날을 위해 단호한 여장부다운 모습을 보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마시는 차 몇 모금. 죽음 앞에서 어찌 그리 담담하고 초연할 수 있는지, 같은 여자가 봐도 너무 멋있었다. 그리고 또 한 여성은 불길한 향수장수 라우라. 그녀는 메디치 가문과 적대관계에 있는 리날도 델 알비치에게 종속된 수하이자 성적으로 희롱당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 어째서인지 병적으로 메디치 가문을 향한 복수심을 불태우는 라우라. 그녀의 성장배경을 따라가다보면 어쩌면 그녀에게 다른 선택은 존재할 수 없었다는 생각도 들어 무서우면서도 안타까운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메디치'라는 말만 들어봤지 그 안의 깊은 내용들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터라 두 번째 이야기인 로렌초는 코시모의 동생 로렌초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다른 로렌초. 냐하하. 개인적으로 카테리나의 이야기가 더 끌리지만 일단 로렌초의 이야기부터 읽어볼까나. 재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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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괜찮아 - 엄마를 잃고서야 진짜 엄마가 보였다
김도윤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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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으로 고생하던 엄마가 자살을 선택했다. 엄마가 그렇게 세상을 등질 줄 누가 알았을까. 저자는 엄마가 입원해있던 병원의 의사가 자살할지도 모르니 잘 살펴봐야 한다는 충고와 엄마의 죽고 싶다는 말을 무시했던 자신의 과거를 탓하며 이제 엄마가 없는 세상에 남겨진다. 그래도 남은 이는 살아야 한다고, 열심히 책도 쓰고 강연회도 열면서 자신의 삶에 충실했다 여겼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도 찾아온 우울증과 불안장애. 엄마도 이런 시간을 보냈겠지. 이 외롭고 험한 시간을 걸어오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자식들 걱정이었던 엄마를 생각하며 쓴 그녀에 대한 기록들.

 

첫장부터 충격이었다. 보통 엄마를 생각하며 쓴 에세이들 중에는 노환이나 병, 사고로 엄마를 떠나보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자살이라니. 얼마나 힘들었으면 '엄마'인 그녀가 그런 선택을 했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남겨진 아들의 사모곡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형이 먼저 앓았던 우울증과 조현병. 어렸을 때는 엄마의 기쁨이었고 기대를 한몸에 안았던 형은 취업과 함께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하고 그만두기를 몇 번. 결국 우울증으로 집에 틀어박힌 생활이 시작된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는 엄마의 가슴이 얼마나 미어졌을까 생각하니 절로 울음이 나왔다. 그리고 비로소 그녀의 병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엄마'라는 단어를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 엄마가 떠올랐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엄마'인 나를 생각했다. 아이들 모두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첫 아이인 큰아들의 병은 엄마를 절망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으리라. 만약 우리 아이가 그렇다면 나의 삶 또한 피폐해질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사람의 입장이 되지 않으면 그가 내린 결정에 어떤 의견도 내놓을 수 없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살아야겠다, 고 결심해본다. 큰아이도 소중하지만 작은 아이도 소중하니까. 내가 내린 선택으로 남겨진 그 아이가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가져서도 안 되고, 이 책을 통해 '자살'이 남겨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 지 새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 저자의 엄마도 자신이 떠난 후 작은 아들 도윤이가 이렇게 힘들어할 줄 알았다면 절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엄마'로만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 '엄마'라는 이름의 위대함과 숭고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엄마이면서 어엿한 '나' 한 사람으로 살아가련다. 아이들은 오롯이 '엄마'이지 않은 나에게 서운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것이 더 건강한 삶일 것이다. 자식들만 바라보지 않는 인생, 내가 나를 소중히 생각하는 삶. 그래서 만약,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은 만약이지만,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내가 힘을 내서 주위 사람을 격려하고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작가님이 더 이상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자신은 엄마에게 못해준 것만 떠올라 괴롭고 힘들겠지만, 엄마에게 자식은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자식이 건강하게 한 사람 몫을 해내고 있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것이므로 더 이상 자책하지 말고 엄마의 좋은 모습만 기억해 주길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엄마인 내가, 그리고 두 아들의 엄마였을 도윤이의 어머님이 바라는 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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