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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지 못한 밤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놀 / 2022년 3월
평점 :

-내 딸이 아내를 죽였다-라는 다소 충격적인 문구에도 나는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네 살배기 딸이 어떻게 엄마를 죽일 수 있겠는가. 그것도 본인의 의지로. 이것은 분명히 사고다! 라는 직감. 딸 유미가 자신의 잘못으로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 봐, 유키히토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 모든 일을 덮었다. 마지막 하나 남은 세상은 지켜야 했기에. 간신히 이어온 15년의 삶. 이제야 평온해졌다 생각해온 유키히토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15년 전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으니 자식에게 모든 걸 밝히고 싶지 않다면 거액의 돈을 준비하라는 협박. 단단해져가던 땅이 다시 갈라지고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다 생각하던 그 때, 유키히토는 누나 아사미, 딸 유미와 함께 30년 전 '그 일'이 있고나서 떠나온 고향 '하타가미'로 되돌아간다. 벼락이 뜯어먹는 마을, 하타가미로.
일본소설을 접하고 난 뒤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도 당연한 듯 몇 권 접했지만, 지금까지 최고라 평가하는 그의 작품은 [투명 카멜레온]이다. 굉장한 작품을 만나면 '어떻게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지!'라며 작가에게 경탄을 마다하지 않으나, 특히 [투명 카멜레온]은 작가의 걸작이라 해도 부족하지 않다. 호러서스펜스대상, 야마모토슈고로상, 본격미스터리대상, 나오키상 등 일본 대표 문학상을 모두 수상한 엄청난 작가. 그 미치오 슈스케가 호러와 서스펜스 등의 요소를 모두 지우고 미스터리 본연의 재미를 내세우며 발표한 작품이 바로 [용서받지 못한 밤]이다.
이 불운의 시초는 뭐였을까
p419
이야기를 읽다보면 나약하고도 서글픈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 인연의 시작은, 지금 형태를 이루고 있는 우리의 삶은 어디에서 그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을까. 아름답고 온화한 어머니의 죽음으로 비롯된 가족의 비극. 유키히토의 어머니가 죽지 않았다면, 누나 아사미는 벼락을 맞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머니가 엉겅퀴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유키히토가 유미에게 엉겅퀴를 기르게 하지 않았다면 아내는 여전히 살아있을 수 있었을까. 아니아니, 하다못해 유키히토가 유미를 베란다에서 놀게 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세 가족에게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는 비켜갈 수 있었을까. 작품에 한정없이 빨려들어가면서 셀 수 없이 많은 '만약'을 생각하다보니 두통이 엄습해왔다.
미스터리이기는 미스터리인데 여타의 작품들과는 확실히 결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촘촘하고 세밀하면서도 휘몰아치는 듯한 문장. 30년 전 사건의 진실과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사건 속에서 미스터리의 향취는 한층 짙어지면서도 서정적인 감정선도 함께 살아난다. 그래서 이토록 가슴이 아픈 것이다.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나약한 우리가 그 운명을 어찌할 수 없다는 움직일 수 없는 거대한 벽 앞에서. 타인으로 인해 나와 소중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져버릴 수도 있는 애통한 이 세상 속에서.
앞으로 이 작품을 읽을 독자님들에게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등장인물들의 대사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소홀히 하지 말아달라는 것. 진실이 밝혀지면, 마치 번개를 맞은 것처럼 모든 것이 극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한 번 읽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미스터리. 밤을 내달려 새벽까지 읽은 이 작품 때문에 한 동안 또 가슴이 먹먹할 것 같다. 이러니, 작가님,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 출판사 <놀>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