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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암살의 역사 ㅣ 건들건들 컬렉션
존 위딩턴 지음, 장기현 옮김 / 레드리버 / 2022년 4월
평점 :

초입부에 저자는 ‘암살’에 대해 흥미로운 정의를 보여줍니다. 모든 암살은 살인이지만 그 역이 성립하지는 않는다, 모든 살인이 암살인 것은 아니다-라는 명제. 문학작품에서는 간혹 이 암살이 낭만적으로 그려지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나 현실적으로 볼 때 암살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죠. 오히려 잔혹한 면이 더 부각된다고 봅니다만, ‘암살’이라는 단어에는 참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역사상 최초로 암살을 당했다고 생각되는 인물은 기원전 2333년에 목숨을 잃은 이집트의 파라오 테티입니다. 지배자의 자리에 앉아있는만큼 얼마나 많이 목숨에 위협을 받았을지는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죠. 특히 격동의 시기에 파라오의 자리에 올랐다고 밝혀진만큼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걷는 기분이었을 겁니다. 많은 자료가 소실되어서 정확히 알 수 있는 사실들은 얼마 없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가 암살의 화살을 피하기란 불가능했으리라 추측됩니다.
책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암살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어요. 암살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인 어새신의 기원은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알로아틴이라는 산중 노인이 만든 매혹적인 정원, ‘하시신’이 될만한 소질이 있는 젊은이들만 들어갈 수 있었던 이 곳에서 알로아딘은 ‘천국으로 가는 표를 얻고 싶다면 지금 어디로 가서 누구누구를 죽이고 돌아오라. 무사히 귀환한다면 나의 천사들이 그대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리라’ 라고 말해요. 이 하시신 활동을 끝내고 돌아오면 전사하든, 살아서 돌아오든 보상을 받았다고 하니 알로아딘은 자신의 손에 피 한방울 묻히지 않고 눈엣가시같은 사람을 없앨 수 있었겠죠. 다소 신화처럼 여겨지는 이 이야기의 자료가 빈약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지만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아아-’하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또한 어새신이나 하시신의 기원이 대마초를 뜻하는 ‘하시시’에서 비롯되기도 했다니, 나쁜 요소들끼리는 아무래도 어울릴 수밖에 없는 모양인가봅니다.
일본 역사와 관련 괴담을 공부하면서 접하기도 했던 ‘47인의 사무라이’ 이야기는 암살이라기보다 충성을 위한 복수로 여겨집니다. 역사 속에서 흥미로운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부터 정치적으로 엮인 암살 사건, 암살을 시도했음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심도 있게 다뤄지고 있어요. 암살 그 하나만 아니라 사건을 둘러싼 시대배경이 자세히 적혀 있어 무척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
** 네이버 독서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레드리버>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