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총총
사쿠라기 시노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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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별들은 모두 똑같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빛났다.

몇몇은 흘러가고, 몇몇은 사라진다.

사라진 별에도 한창 빛나던 날들이 있었다.

나 또한 작은 별 중의 하나.

그이도 저이도 목숨 있는 별이었다.

밤하늘에 깜빡이는 이름도 없는 별들이었다.

 

딸과 어머니보다는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키코. 상처받고, 버리고 버려지면서도 그녀의 사랑은 끝을 모른다. 그런 어머니 탓이었을까. 사키코의 딸 지하루는 누구보다 깊게 사람을 관찰하는 눈과,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보는 능력을 가졌음에도 그저 바람결에 몸을 맡기고 인생을 걸어간다. 그녀가 두 번째 결혼에서 얻은 딸인 아야코 또한 할머니에게 온정을 받았지만 부모의 무책임함과 조모의 성정을 닮아 어쩐지 무심한 듯, 하지만 '양지쪽 햇살 냄새가 나는 밥'의 존재를 자각하고 살아가는 사람. 그녀들의 이야기가 자신들의 눈을 통해,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눈을 통해 슬프지만 덤덤하게 그려지고 있다.

 

총 9편의 단편집으로 구성된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집. 나오키 수상작가인 그녀가 이번에는 세 여성의 삶을 응시하며 조금은 특별한, 그러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생을 노래한다. <나 홀로 왈츠>는 세 여성의 역사의 시작이라고 할만한 사키코의 연애담이다. 스낵바 '루루'에서 일하는 사키코 앞에 홀연 나타난 야마씨. 그와 함께 하는 왈츠는 사랑의 몸짓과 비슷하다. 그를 향한 사랑을 춤과 함께 키워가는 사키코이지만, 몇 번이나 남자와의 이별을 경험한 그녀로서는 두렵다. 떨어져 살던 딸 지하루를 오랜만에 자신의 거처로 초대하고 사키코, 야마, 지하루는 동물원에서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예정된 이별. 이미 사랑이라는 감정에 지칠만도 한 나이인데도 사키코가 전하는 연심이 애틋하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사랑을 좇는 사키코이니만큼 딸인 지하루에게 무심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을까. <바닷가의 사람>은 지하루가 고등학생이 된 시점의 이야기이다. 옆집에서 함께 부업을 하는 이쿠코의 눈으로 그려진 지하루. 그녀의 눈에 지하루는 아둔하고 미련스러워보이는 아이다. 그런 아이가 자신의 소중한 아들에게 짐이 되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무덤까지 가지고 갈만한 업을 쌓게 된 이쿠코의 행동이 지하루의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결정한 것은 아니었는지. <트리콜로르>에서는 지하루가 놓고 간 딸 아야코의 이야기가, 그녀의 할머니 기리코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8개월이나 되었음에도 방치된 아야코를 기리코가 돌보기 시작하면서, 멈춰져 있던, 가슴을 답답하게 하던 그녀의 삶이 다시 움직인다. 아야코의 생명 또한.

 

세 여성의 삶은, 평생 사랑을 좇은 사키코조차 쓸쓸하게 다가온다. 가장 가까운 가족과도 관계를 맺지 못하고 여기저기 전전하며 삶을 이어가는 사키코와 지하루. 사키코의 쓸쓸함은 사랑의 완성이, 그녀가 택한 삶의 마지막이 안쓰럽다는 데서 기인하지만, 지하루의 쓸쓸함은 옆집의 이쿠코가 그녀를 바라보던 시선인 아둔함 때문이 아니다. 지하루는 아둔하지 않다. 누구보다 총명하고 자신의 상황을 잘 파악한다. 그런 그녀를 사람들이 아둔하다, 순진하다고 파악하는 것은, 지하루가 삶을 대하는 태도 때문은 아니었을까. 무엇에도 얽매이는 것 없이, 그저 물결따라 바람따라 흔들리는 무엇처럼 살아가는 그녀가 자아내는 분위기 때문에. 두 사람과는 달리 아야코는 무심한 듯 보이지만 당차고 견실한 인물이다. 할머니로부터 받은 사랑 덕분에 '양지쪽 햇살 냄새가 나는 밥'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다. 때문에 상대에게 용기있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그녀들의 삶을 평가하지 않는다. 사키코에게 엄마로서의 책임감과 의무를 강요하지 않고, 지하루에게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삶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어쩌면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할만한 그런 삶임에도 작가는 그저, 이런 삶도 있음을, 밤하늘에 빛나는 별의 밝기가 모두 다르듯 그네들의 삶도 각기 다를 뿐임을 보여준다. '일그러졌어도 너무 슬퍼도 인간은 살아간다'는 문장처럼, 그들의 인생을 별빛에 비유한, 한 개인의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홋카이도에 다녀온 적이 있어서인지 그녀들의 행로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비교적 뚜렷한 결말을 보여준 두 사람과는 달리 지하루는 지금쯤 어느 길목에 서 있는 것일까. 불편한 다리와 상처투성이 얼굴, 그보다 더 시큰할 마음을 부여잡고 어디를 걸어가고 있는 것인가. 작가가 전달하는 감정선에 나도 모르게 휘말려 어느새 지하루의 인생을 곱씹어본다. 뭔가 바람같은 것이 마음을 후벼파고 지나간 것처럼, 뱃속 깊은 곳이 아픔으로 굳어지는 것 같다. 덤덤하면서도 서정성이 넘쳐흐르는, 같이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요소들이 작품 곳곳에서 매력을 발휘하는 멋진 작품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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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엄마의 말 품격
오수향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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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있는 저를 보더니 남편이 묻습니다. '그런 책 읽으면 뭔가 달라지는 것 같아? 느낌이 와?' 그래서 제가 자신있게 대답했죠. '그럼! 그러려고 책보는 건데~' 바뜨. 이 책을 읽었음에도 일주일같은 월요일과 3일같은 오늘 아침을 지내고보니 과연 내가 달라지는 날이 올 것인가 의구심이 듭니다. 요즘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힘들어요. 제 마음이 문제인 건지, 우리 첫째 곰돌군님이 문제인건지, 하루에도 몇 번씩 불타올라 산화되어버릴 것 같은 기분입니다. 다른 친구들은 다 빠빠이 잘 하고 집에 가는데 혼자 밖에서 놀다 들어가겠다며, 친구가 먼저 간다면서 징징징, 지금 있지도 않은 씽씽이를 타겠다며 징징징, 밥 안 먹고 과자 먹겠다며 징징징. 아침부터 밤까지 울고 떼쓰고, 저는 달랬다가 화도 냈다가 매도 들었다가 밤이 되면 또 급후회하는 생활의 반복이에요. 한 번 올라온 화가 잘 내려가지 않아 소화도 잘 안되고, 곰돌군님이 무슨 말만 하면 예민해져서 말투도 거칠게 나가고. 이런 저를 보며 남편은 우울증 아니냐며, 병원 가보라는 더 열폭하게 하는 말만 하고 있고요. 물론 요즘 제가 심정적으로 더 사나워진 건 사실이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요.

알아요. 제가 생각해도 제 자신, 많이 부족합니다. 아이의 마음이 어떻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 모른 척 하고 싶을 때도 있고, 아주 사소한 일로 짜증을 낼 때도 있어요. 전 1등 엄마는 바라지도 않아요. 품격이요? 품격이 뭔가요. 그저 하루하루, 아이를 협박(?)하지 않고, 윽박지르지 않으면서 조용히 보내기만 해도 감사한 일이겠습니다. 아무리 미운 네 살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저의 인내심을 시험할 수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이런 [1등 엄마의 말품격] 같은 책을 읽는 건, 마음의 자양분으로 삼고 싶기 때문이에요. 이런 책조차 읽지 않고 밀려오는 화, 솟아오르는 거친 말에 제 자신을 맡겨버렸다가는 우리 곰돌군님, 정말 어마무시한 엄마의 모습을 보게 될 테니까요. +_+

저자는 먼저 엄마의 말투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엄마의 말투라고 해요.아마 많은 엄마들이 깨닫고 있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 부분일 거에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의 내용에 동감도 하고 항상 있지만, 아이고,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불쑥 튀어나오는 아이의 마음을 할퀴는 말투. 그래서 낮버밤반(낮에는 버럭하고 밤에 반성)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게 아닐까요. 엄마의 기질과 아이의 기질을 잘 파악해서 말투에 신경을 써야한다는 건, 아마 말공부 해보신 엄마들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내용일 겁니다. 저자는 자존감, 책임감, 창의성, 정직함, 배려심, 감사함, 용기 등을 길러주는 말투에 대해 상황별로 소개하고 있어요. 단순히 어떤 말들을 해야한다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면 저런 요소들이 길러지는 지 알려준다는 점, 그리고 병행할 수 있는 놀이들이 소개되어 있어서 좋았습니다. 당장 오늘부터 어린이집 하원하면 해봐야겠어요.

엄마로서 아이에게 많은 것을 해주고 싶지만, 요즘에는 최고의 육아란, 짜증내지 않고 나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바뜨! 어떻게 엄마가 짜증 한 번 안낼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아예 안 내겠다고는 못하겠습니다. 그저 부당한 짜증은 내지 않으리라, 소심하게 다짐 한 번 해봅니다. 그래도 아침에 아이에게 못된 말 하고 울적해졌던 마음에 새로운 각오를 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많은 어머님들, 우리 한 번 같이 힘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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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말하기 영단어 1000 - 20일 만에 네이티브와 수다 떨 수 있는
이시원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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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1학년 교양영어 수업 이후, 영어를 손에서 놓았습니다. 학교 다닐 때 영어공부도 열심히 했고, 물수능이기는 했지만 외국어영역에서 만점도 받았었는데 전공인 일본어에 심취하다보니 점점 영어에서 멀어졌어요. 어느 날 부터인가 그 쉬운 '나무'도 영어로는 단어가 생각이 안나고, 일본어만 입과 머리에서 맴돌고 있었습니다. 전공을 열심히 하는 것과 취업하는 것이 연결되어 있어서 그 뒤로 쭈우우욱 일본어와 역사만 했더니 어느새 여기까지 와 있네요. 하지만 영어공부에 대한 갈증은 늘 있었어요. 미드나 영화를 자막없이 본다거나, 여행을 갔을 때 능수능란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래, 돌아가면 나도 영어공부 열심히 할거야!' 다짐하곤 했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실천하는 게 쉽지는 않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첫째 곰돌군이 네 살, 만 34개월이 되다보니 영어노출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영어유치원까지는 못보내(아니 안보내)더라도 휴직하는 동안 엄마표 영어를 시작은 해보자!-하는 마음에 조금씩 영어동화책을 사모으기 시작했어요. 노래로 배우는 영어동화라는 점이 매력적이어서 저도 같이 노래도 부르고 한 권씩 한 권씩 보고 있는 중인데요, 그 덕분인지 본격적으로 영어 공부 한 번 시작해보고싶다는 마음이 싹텄습니다. 사실 저는 외국어학습에 있어서 발음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1인이에요. 저의 아주 이상한 영어발음(저도 인정합니다!)을 남편이 한 번 비웃었다가 호되게 당했는데요, 언어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의사소통, 뜻이 통하면 다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이는 뜻을 모르고 즐겁게 영어를 접해도 되지만, 저는 이미 주입식 교육, 의미를 알지 못하면 답답해하는 교육에 길들여져 있는지라 일단 단어공부부터 해보자 싶었죠.

그렇게 알게 된 [기적의 말하기 영단어 1000] 입니다. 저자인 이시원님이야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저도 귓등으로 들어본 적은 있어요. 하지만 저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저~기 한쪽 구석으로 밀어놓았는데 '진짜 필요한 1000개 단어만 알면 왕초보도 네이티브와 대화할 수 있다!'는 문구를 보니, 무슨 약장사에게 홀리듯 이 책이 궁금해졌습니다. 20일만에 네이티브와 수다를 떨 수 있다잖습니까! 도착한 책을 일단 휘리릭 넘겨보니, 그래도 아직 나 살아있어!-를 외칠 수 있을만큼 쉬운 단어들이 보여서 기뻤습니다. 으흣. 가벼운 마음으로 소파에 앉아 단어를 보고 있었는데요, 문장도 단어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서 생각보다 가뿐히(?) 외울 수 있었어요. 다만, 하루 분량으로 설정된 분량이 저에게는 다소 버거웠어요. 아이들을 재우고 한밤에야 온전히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저로서는 영어공부 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게 참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하루 분량을 다시 반으로 나누어서 40일이면 네이티브와 수다 떨 수 있게 분량을 조정했습니다.

이런 저를 보더니 남편이 자기도 같이 하자면서 외우고 서로 물어봐주기 하자네요. 체크하다 틀리면 딱콩 때리기 할 거랍니다. 아. 뭔가 오랜만에 떨리고 설레는 이 기분. 혼자 하는 공부도 좋지만, 저처럼 딱콩 때릴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훨씬 더 능률이 올라가지 않을까요! 영어공부 하는 모든 분들, 화이팅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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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모자가 좋아
번 코스키 지음, 김경희 옮김 / 창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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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털모자가 좋아]는 세계적 출판사인 펭귄랜덤하우스의 2018년 볼로냐 도서전 대표작으로 손꼽혀 소개되며 도서전에서 화제가 된 작품입니다. 저도 아이들 키우고 그림책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볼로냐 도서전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요, 요 도서전에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나 수상작들은 대부분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어서 웬만한 소설보다 좋더라고요. 그림책이 이렇게 수준이 높고 감성적일 수 있구나라는 것을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서 깨닫는 요즘입니다. 그래서 제 본래 책 욕심에 그림책 욕심이 더해졌어요.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그림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원래 가지고 있던 책들과 아이들 그림책 덕분에 집이 터져나갈 지경입니다. 봄이 되면 한 번 책들을 싹 정리하고 싶은데, 과연 가능할지. 거대책장 하나를 거실에 들여놓는 것이 희망사항인데, 그렇게 된다면 저희 가족은 거실에 앉을 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그럼 이 [털모자가 좋아]의 주인공부터 소개해볼까요.

 

우리 주인공 해럴드입니다. 해럴드는 털모자를 정말 좋아하는 곰이에요. 아주 좋아해서 늘 쓰고 다닙니다. 무더운 여름에도 쓰고, 학교에서도 쓰고 있고, 잠잘 때도 쓰고 자고, 무려 한 달에 한 번 목욕할 때조차 몸에서 떼어놓지 않는답니다. 해럴드는 모자를 쓰고 있으면 자기가 특별하게 느껴진대요.

 

보세요. 다른 곰 친구들은 물고기를 한 마리씩 잡았는데, 털모자를 쓴 해럴드만 세 마리나 잡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호시탐탐 해럴드의 털모자를 노리던 까마귀가, 그만 해럴드의 털모자를 훔쳐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다른 곰 친구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똑같아 보일 거라고 생각한 해럴드. 까마귀가 훔쳐간 털모자를 찾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합니다. 꿈틀대는 지렁이를 잔뜩 모아 가져다주기도 하고, 새콤달콤한 블루베리를 가져다주기도 하고, 심지어 까마귀가 좋아한다는 반짝이는 물건들까지 털모자를 위해 바쳤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까마귀는 해럴드를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물건들만 낚아채 둥지로 돌아가버렸죠. 화가 난 해럴드. 결국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합니다. 그것은 바로. 까마귀의 둥지가 있는 곳까지 기어올라가는 것이었어요. 그 곳에서 해럴드가 발견한 것은!

 

자신의 털모자를 포근하게 덮고 잠든 아기 까마귀들이었어요. 해럴드는 아기 까마귀들에게 털모자를 잘 덮어주고 조용히 내려와요. 그리고 털모자가 없어도 자신은 특별한 곰이라며 까마귀에게 벌꿀을 선물합니다.

 

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20장이 채 안되는 그림책을 첫째 곰돌군에게 읽어주다 제가 더 감동을 받고 말았습니다. 아기 까마귀들이 털모자를 덮고 잠들어있는 그림에서도 마음이 짠했지만, 그 털모자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던 그 털모자를 잘 덮어주고 조용히 내려오는 해럴드가 정말 너무 멋있었어요. 게다가 털모자가 없어도 자신은 특별한 곰이라며, 아기 까마귀들을 위해 벌꿀까지 따다 까마귀에게 전달하는 저 모습! 처음에는 털모자가 있어야만 자신을 특별하게 느끼던 해럴드가, 그런 눈에 보이는 무엇이 없어도 자신을 특별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마음 깊이 다가왔습니다. 자존감을 높이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친절하고 다정한 성품이라는 것을 깨닫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어요.

우리 곰돌군들도 저런 멋진 사람이 되어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거칠고 험한 세상 너무 착하게만 살아도 힘들텐데라는 생각이 들어 멋쩍어졌습니다. 저라면, 어땠을까요. 나도 해럴드처럼 행동해야지!-라고 말하는 건 너무 쉽지만, 막상 나의 소중한 무엇을 누군가에게 빼앗겼을 때, 그것이 아무리 좋은 방향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해도 나는 그 소중한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라며 되찾아오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 책을 곰돌군과 벌써 몇 차례나 읽었어요. 그 때마다 감동받고 그림 하나하나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은 오히려 제 쪽입니다. 어째서 이 작품이 2018년 볼로냐 도서전 대표작으로 손꼽혔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요. 혼자 보기에는 아까운 정말 멋진 작품입니다. 저의 완소 그림책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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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100 - 알수록 다시 보는
토마스 불핀치 지음, 최희성 옮김 / 미래타임즈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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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본질은 이야기이다.

이야기란 무엇인가?

무엇인가를 밝히고, 말하고, 드러내는 우리 안에 깃들어 있는

'그렇게 되고 싶은 욕망의 원천'이 아니겠는가.

 

언제나 매력적인 <그리스 로마 신화>입니다. 참 이상하죠. 벌써 몇 권이나 되는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새로운 책이 출간되었다는 것을 아는 즉시 또 사고 또 사고, 또 읽고 또 읽고 합니다. 우리는, 저는 왜 이렇게 이 이야기들에 빠져들게 되는 걸까요. 골똘히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가장 쉽게, 가장 많이 접했던 책이 이 <그리스 로마 신화>였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그리고. 재미있잖아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닌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신들, 그런데 신들이 좀 인간 같아, 서로 질투하고 싸우고 사랑도 하고, 이상하고 웃긴 신들도 있어, 뭐지, 신들도 우리랑 똑같네!-에서 오는 친밀감과 갖가지 영웅담, 배신과 복수,모험과 환상. 무게잡고 단조로운 모습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데서 오는 끈적끈적한 에피소드들이 읽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주는 요소가 아닐까요. 그래서 전, 또 집어듭니다. '알수록 다시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요.

 

이 책은 지금까지 제가 본 <그리스 로마 신화> 관련 책들 중 가장 체계적이라고 여겨져요. 각 신들마다 챕터가 배당되어 있고, '그리스의 세계관'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분은 내용면이나 체계면에서 압도적입니다. 예전에는 신들의 계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이 책에 나온 그 계보를 보니 새삼 재미집니다. 누가 누구의 부모이고 자식이며, 그들이 무얼 마시는지, 그 신의 이름은 무엇이고 어떤 일을 하는지(그러고보니 신들도 직업이 있었군요! 건축가이며 대장장이인 헤파이스토스가 대표적이겠네요), 각 신들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었어요. 마침내 신들이 탄생하고 그들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제우스를 필두로 헤라, 제우스의 수많은 욕망의 대상들, 아테나, 아르테미스, 아폴론, 포세이돈, 하데스 등등의 신들이 드디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다시 읽어도 흥미롭고 재미있었어요. 그냥 펼쳐서 아무 데나 읽어도 금방 빠져들었습니다. 그 재미를 증폭시켜 준 것은 책에 실린 그리스 로마의 신들의 모습이 담긴 명화와 조각이었습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활약했던 귀스타브 모로, 루벤스, 발다사레 페루치, 니콜라 푸생, 안젤리카 카우프만, 줄리오 로마의 작품들이 신들의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택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크고 위풍 당당하게 실려있는 명화와 조각들이 이야기에 생명력을 부여했다고 할까요. 서양미술에 관심있는 분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신들을 소재로 한 영화나 소설, 책들은 지금도 무수히 쏟아지고 있어요. 그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끝이 없습니다. 멀리 있는 것 같아도 금방 손에 닿을 듯 하고, 닿았다 싶으면 사라져버리는 신들에 대한 동경 때문일까요. 미지에 세계에 대한 갈망과 탐구가 우리를 신화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길에 명화와 조각으로 즐길 수 있는 이 책이 함께 한다면 더 즐거우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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