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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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어렸을 때 여러 번 읽었고 이번에도 쉽게 읽은 작품이나, 리뷰가 쉽게 쓰여지지 않는 이유는 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리뷰를 쓰기 전에 인터넷 창을 열어놓은 채, 인터넷 기사도 봤다가, 다른 책도 몇 장 읽었다가, 요리조리 소중한 시간을 허비한 채 드디어 마음을 먹는다. 어쩌면 이유는 간단했다. 제목은 '행복한 왕자'지만 그 '행복한'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불편했고, 이 작품집에 실린 단편들의 결말이 하나같이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무엇이 행복이고, 무엇이 진실된 사랑인가. 그 과정을 묘사하는 문장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동화같지만, 작가가 내민 결말은 결코 해피엔딩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머리속을 맴돈다.

 

 

<행복한 왕자>의 왕자도, <나이팅게일과 장미>의 새도 모두 사랑의 '주는 기쁨'을 아는 존재들이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고 볼품 없게 된 왕자와 한 남자의 사랑을 위해 자신의 심장을 내어준 나이팅게일의 모습을 바라보면, '아,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구나!'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은 냉정하고 가혹하다. 아무리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이 있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 왕자가 무엇을 희생했는지 전혀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오직 눈 앞의 이익만을 향해 달려든다. 왕자가 아름다울 때는 하나같이 그의 예쁨을 칭송했으나 이제 빈털터리가 된 그를 녹여 새로운 동상의 주인공으로 누구를 채택할 것인가를 두고 싸우기 바쁘다.

 

 

왕자가 희생한 것은 그 자신이 아니다. 그를 도와준 제비의 목숨이다. 어른이 되어 비뚤어진 것인지, 따뜻한 남쪽으로 가야 한다는 제비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의 부탁만 들어달라 간청하는 왕자의 모습이 마냥 예뻐보이지만은 않는다. 왕자가 동상이라 몰랐을까? 그 수많은 사람들의 비루함과 가난에는 그토록 예민하게 반응했으면서? 왕자와 제비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후에야 신의 손에 의해 바람직한 결과를 얻지만, 그것이 바람직한 결과라고 누구나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매우 허무한, '죽고 나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라고 할 법한 결말이기도 하다.

 

 

그나마 <행복한 왕자>의 결말은 <나이팅게일과 장미>보다 더 나은 것으로 한다. 젊은 학생의 사랑을 이루어주기 위해 자신의 심장으로 붉은 장미를 만들어준 나이팅게일. 하지만 그가 그 장미를 어떻게 하는지 좀 보라! 젊은 학생과 나이팅게일의 모습을 대조해본다면, 분명 우리 열명 중 일고여덟명은 나이팅게일이지 않을까. 진실한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는 것, 그것보다 더 숭고한 일이 또 어디 있으랴. 하지만 작가는 마치, 그런 사랑조차 철저히 배반당할 수 있는 현실에 대해 경고하는 듯 하다. 마치 허를 찔리는 듯한 기분.

 

 

<어부와 그의 영혼>에서 보여지는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력은 매우 훌륭하다. 어부에게서 떨어져 나온 그림자가 어부를 홀리기 위해 늘어놓는 온갖 감언이설을 듣다 보면 마치 내 자신이 빨려들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여기 등장한 어부의 사랑도 영원하지는 않다. 그림자의 유혹에도 지지 않았던 어부의 한결같은 사랑은 후세에 길이길이 전해지지 못한다. 어부와 그의 연인의 사랑은 심지어 축복이 아닌 저주를 받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랑이 맺은 결실조차 순간에만 칭송될 뿐, 사람들은 그것이 그들의 사랑의 결과인지조차도 알지 못한 채 어느 덧 그것조차 잊혀져버린다.

 

 

<별 아이>는 또 어떠한가. 타고난 미모로 오만했던 아이는 자신의 생모가 보잘 것 없는 거지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분노하며 어머니를 부정한다. 그 벌로 흉측한 외모를 갖게 되자 그제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어머니를 만나 용서를 빌기 위해 정처없이 길을 떠나는 소년. 하지만 마법사에게 노예로 팔리고 도저히 해내기 어려울 것처럼 보이는 세 가지 과제를 통해 정신적인 성장을 이룬다. 그 후 누구나 생각할만한 해피엔딩을 맞는 이야기지만,  그런데 꼭 마지막 한 문장으로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작가다. 왕자로 밝혀진 별 아이는 이후 왕이 되어 현명하고 평화롭게 나라를 다스리지만 그 뒤가 문제인 것이다!

 

 

모든 작품들이 ' 단 하나'의 메시지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누군가를 향한 희생이 있으면 변해버리는 사랑도 있으며, 당사자들에게는 목숨과 맞바꿀 사랑일지라도 축복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어린 시절 읽었을 때는 하나의 주제에만 공감했다면 이번에는 달리 보이는 점들이 많았다. 어쩐지 독자를 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이것이 삶의 진실이니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것처럼 보이는 오스카 와일드. 이리 짧은 이야기들을 읽고 이렇게 생각이 많아질 줄 누가 알았겠느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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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신장판 5 - 듄의 이단자들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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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어머니는 우리가 명령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당신에게 가르쳤습니다. 현명한 여성이었지만 그래도 이단은 이단이지요. 우린 요즘 계속 이단자들만 낳고 있는 것 같습니다.
p 255

이단의 정확한 의미란 과연 무엇일까. 교단의 절대적인 헌신으로 최고 대모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데 그 체계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 여기에서도 드러난 출생의 비밀. 오드레이드와 마일즈 테그의 관계에 '어헛' 놀랐다. 작가님의 특성상 단순히 그들을 그런 관계로 묶어놓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여기에도 뭔가 계획이 숨어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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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들
치고지에 오비오마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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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가족들 사이에 파고들어 온갖 불안과 두려움을 조성하던 아부르의 예언. 그 예언은 결국 가장 최악의 형태로 드러나고야 만다. '카인과 아벨'. 태고적부터 이어져온 악행의 씨앗. 하지만 의심스럽다.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아부르의 예언대로 행해진 것인가. 그 자리를 직접적으로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의 예언을 실행하기 위해 아부르가 끔찍한 짓을 저지른 것은 아닐까. 이제 그 어떤 일도 돌이킬 수는 없지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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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들
치고지에 오비오마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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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서 낚시질을 하다 광인 아불루의 예언을 듣게 된 네 아이들. 그 이후 그들의 삶은 격한 변화를 맞게 된다. 언젠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라는 말을 들은 이켄나는, 자신을 해치게 될 사람이 형제들 중 한 사람일 것이라 확신하고 가족들 모두에게 거리를 두며 등을 돌린다. 그런 아들의 변화에 당황스러운 어머니와 형의 돌변한 모습에 슬픔을 느끼는 형제들. 이켄나의 내면을 가득 채운 격렬한 소용돌이는 언제가 되어야 잠잠해질까. 아불루의 예언은 정말 이루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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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T - 내가 사랑한 티셔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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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를 쫓아다닌 지 벌써 20년도 넘은 것 같습니다. 그의 작품 전부를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어도, 이상하게 이 작가에게는 떨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저는 특히 그의 에세이를 좋아합니다. 소설은 머리를 감싸쥐며 행간의 의미, 이미지 등을 파악하면서 읽으려고 노력하게 되지만, 에세이는 노력하지 않아도 술술 읽게 되거든요. 여기에 맥주와 약간의 안주, 그리고 기분 좋은 음악이 있으면 금상첨화죠! 봄에 읽어도, 여름에 읽어도, 가을에 읽어도, 겨울에 읽어도 좋은 하루키의 에세이. 이번에는 '티셔츠'에 관한 이야기네요.

 

소올직히 다른 사람이 '티셔츠'와 관계된 에세이를 냈다면 '무슨 이런 책이 있나' 싶었을텐데 하루키가 썼다니, 그가 소장한 티셔츠를 구경할 수 있다니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아마 이것도 덕후의 덕질 중 하나려나요. '어느 새 이런저런 물건이 '모이는'것이 내 인생의 모티프 같다'고 한 하루키. 다 듣지 못할 양의 LP, 다시 읽을 일 없을 책, 잡지 스크랩, 그리고 연필깎이에 끼우지도 못할만큼 짧아진 연필-앞의 세 가지는 몰라도  연필깎이에 끼우지도 못할 연필이라니요??!!-. 이제 그 수집목록에 티셔츠도 포함된 것 같습니다.

 

티셔츠 종류도 많을 뿐더러 장르(?) 별로 모아놓은 티셔츠를 보니 역시나, 와하하! 또 웃음이 빵 터집니다. 서핑과 관련된 티셔츠, 햄버거와 관련된 티셔츠, 술을 애정하는 그인만큼 위스키와 관련된 티셔츠도 빠질 수 없죠. 전 술을 잘 못마시는데 술에 대해 묘사하는 그의 글을 읽다보면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이 자꾸 마시고 싶어져요. 참으로 감칠나게 묘사하는 위스키 마시는 법. 위스키를 따르고 동량의 물을 따르고, 잔을 휘이 돌려서 섞으면 되는 이 간단한 방법조차도 그의 글에서는 반짝반짝 빛나는 듯 화려해보여요. 아마 술에 대해 언급하는 하루키의 눈도 반짝 빛날 것 같지 않나요.

 

엄훠! 세상에나! 하루키 자신과 관련된 티셔츠도 있습니다! 외국에서 책이 출판되면 홍보를 위해 티셔츠나 토트백, 모자 같은 굿즈를 만드는 모양인데, 'Haruki Murakami'라고 쓰인 티셔츠를 그가 입는다고 생각하니 왜 이리 재미진가요! 여기에 책과 관련된 이야기가 빠지면 안되겠죠. 독서와 관계 있는 티셔츠도 물론 있었습니다.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의 '파웰스 북스' 티셔츠와 어떻게 생긴 독서클럽인지도 모를 'AHS  문예클럽' 티셔츠, 호놀룰루 도서관의 '해마다 열리는 북세일' 티셔츠, 그리고 시애틀의 유명한 독립서점 '엘리엇 베이북 컴퍼니'에서 낭독회를 하고 받은 티셔츠 등.

 

저도 한때 책 이외에도 물건을 꽤 모았습니다. 관람한 영화티켓과 포스터, 영화와 책관련 엽서, 어디 다녀온 곳과 관련된 팜플렛으로 제 방과 책상 서랍이 가득 차 있었죠. 제 방이 좀 더 컸거나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전 여전히 그 물건들과 함께 살고 있을지도 몰라요. 물건은, 단순히 물건이 아니니까요. 하나의 물건에 깃든 여러 가지 추억들을 생각하면 무언가를 버린다는 것 자체가 저의 시간들을 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서글프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뭘 모으냐고요? 책과, 그리고 아이들과 관계된 모든 것을 모으고 있습니다.

 

하루키가 모은 티셔츠들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어쩐지 앞으로의 저는 물건을 버리기가 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옆지기나 친정어머니가 들으시면 깜짝 놀라시려나요.

 

**출판사 <비채>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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