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명 어렸을 때 여러 번 읽었고 이번에도 쉽게 읽은 작품이나, 리뷰가 쉽게 쓰여지지 않는 이유는 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리뷰를 쓰기 전에 인터넷 창을 열어놓은 채, 인터넷 기사도 봤다가, 다른 책도 몇 장 읽었다가, 요리조리 소중한 시간을 허비한 채 드디어 마음을 먹는다. 어쩌면 이유는 간단했다. 제목은 '행복한 왕자'지만 그 '행복한'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불편했고, 이 작품집에 실린 단편들의 결말이 하나같이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무엇이 행복이고, 무엇이 진실된 사랑인가. 그 과정을 묘사하는 문장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동화같지만, 작가가 내민 결말은 결코 해피엔딩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머리속을 맴돈다.
<행복한 왕자>의 왕자도, <나이팅게일과 장미>의 새도 모두 사랑의 '주는 기쁨'을 아는 존재들이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고 볼품 없게 된 왕자와 한 남자의 사랑을 위해 자신의 심장을 내어준 나이팅게일의 모습을 바라보면, '아,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구나!'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은 냉정하고 가혹하다. 아무리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이 있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 왕자가 무엇을 희생했는지 전혀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오직 눈 앞의 이익만을 향해 달려든다. 왕자가 아름다울 때는 하나같이 그의 예쁨을 칭송했으나 이제 빈털터리가 된 그를 녹여 새로운 동상의 주인공으로 누구를 채택할 것인가를 두고 싸우기 바쁘다.
왕자가 희생한 것은 그 자신이 아니다. 그를 도와준 제비의 목숨이다. 어른이 되어 비뚤어진 것인지, 따뜻한 남쪽으로 가야 한다는 제비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의 부탁만 들어달라 간청하는 왕자의 모습이 마냥 예뻐보이지만은 않는다. 왕자가 동상이라 몰랐을까? 그 수많은 사람들의 비루함과 가난에는 그토록 예민하게 반응했으면서? 왕자와 제비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후에야 신의 손에 의해 바람직한 결과를 얻지만, 그것이 바람직한 결과라고 누구나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매우 허무한, '죽고 나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라고 할 법한 결말이기도 하다.

그나마 <행복한 왕자>의 결말은 <나이팅게일과 장미>보다 더 나은 것으로 한다. 젊은 학생의 사랑을 이루어주기 위해 자신의 심장으로 붉은 장미를 만들어준 나이팅게일. 하지만 그가 그 장미를 어떻게 하는지 좀 보라! 젊은 학생과 나이팅게일의 모습을 대조해본다면, 분명 우리 열명 중 일고여덟명은 나이팅게일이지 않을까. 진실한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는 것, 그것보다 더 숭고한 일이 또 어디 있으랴. 하지만 작가는 마치, 그런 사랑조차 철저히 배반당할 수 있는 현실에 대해 경고하는 듯 하다. 마치 허를 찔리는 듯한 기분.
<어부와 그의 영혼>에서 보여지는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력은 매우 훌륭하다. 어부에게서 떨어져 나온 그림자가 어부를 홀리기 위해 늘어놓는 온갖 감언이설을 듣다 보면 마치 내 자신이 빨려들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여기 등장한 어부의 사랑도 영원하지는 않다. 그림자의 유혹에도 지지 않았던 어부의 한결같은 사랑은 후세에 길이길이 전해지지 못한다. 어부와 그의 연인의 사랑은 심지어 축복이 아닌 저주를 받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랑이 맺은 결실조차 순간에만 칭송될 뿐, 사람들은 그것이 그들의 사랑의 결과인지조차도 알지 못한 채 어느 덧 그것조차 잊혀져버린다.
<별 아이>는 또 어떠한가. 타고난 미모로 오만했던 아이는 자신의 생모가 보잘 것 없는 거지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분노하며 어머니를 부정한다. 그 벌로 흉측한 외모를 갖게 되자 그제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어머니를 만나 용서를 빌기 위해 정처없이 길을 떠나는 소년. 하지만 마법사에게 노예로 팔리고 도저히 해내기 어려울 것처럼 보이는 세 가지 과제를 통해 정신적인 성장을 이룬다. 그 후 누구나 생각할만한 해피엔딩을 맞는 이야기지만, 그런데 꼭 마지막 한 문장으로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작가다. 왕자로 밝혀진 별 아이는 이후 왕이 되어 현명하고 평화롭게 나라를 다스리지만 그 뒤가 문제인 것이다!
모든 작품들이 ' 단 하나'의 메시지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누군가를 향한 희생이 있으면 변해버리는 사랑도 있으며, 당사자들에게는 목숨과 맞바꿀 사랑일지라도 축복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어린 시절 읽었을 때는 하나의 주제에만 공감했다면 이번에는 달리 보이는 점들이 많았다. 어쩐지 독자를 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이것이 삶의 진실이니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것처럼 보이는 오스카 와일드. 이리 짧은 이야기들을 읽고 이렇게 생각이 많아질 줄 누가 알았겠느냐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