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송태욱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평점 :

책을 읽은 지는 한참 되었는데 글이 쉽게 쓰이지 않았다. 그런 책들이 종종 있다. 마음 속 감정을 차마 꺼내지 못해 답답함에 가슴만 쾅쾅 치게 만드는 책. 한 줄 적고 지우고, 한 줄 적고 지우고를 반복하다가 결국 내려놓았는데 어쩌다보니 시간이 흘러 결국 재독까지 하게 되었다. 이 작품이 과연 재독까지 할만한 작품인가 묻는다면, 글쎄. 개인의 취향이므로 확고한 답을 내놓지는 못하겠지만, 처음 읽을 때도 먹먹했던 가슴은 두 번째 읽을 때도 여전히 먹먹했고, 책과 리뷰와 육아와 살림으로 가득한 내 시간을 돌아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얼마 전 부고 문자를 받았다. 10년도 전에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그 남편분의 메시지. 나보다 고작 한 살이 많고, 아이의 나이도 우리 첫째와 비슷해서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무척 친했던 것도 아니고 그 분이 전근가신 후 따로 연락을 취했던 것도 아니건만 동년배의 때이른 죽음에 받은 충격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했다. 사람 목숨이란 참으로 덧없는 것이구나, 아등바등 살아가는 이 생이 허무하기도 하구나. 표면적으로는 어찌어찌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마음 속 균열은 생각보다 오래간 듯 그 어떤 것에도 기쁨을 느낄 수 없었다. 심지어 책 읽는 것마저도 힘겨웠을 정도였으니까. 이 책을 읽어 무엇하나, 이걸 읽은들 내가 뭘 알기나 할 수 있을까-그런 생각만으로 책탑을 바라보기만 했던 순간들.
시간이 흘러 읽어야 할 책이 쌓여갔고 할 수 없이 다시 책을 손에 든 그 때, 그 많은 책들 사이에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이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였다. 다른 책들을 미뤄두고 홀린 듯 다시 이 책을 손에 들었다. 조산사였던 할머니 요네를 필두로 가족 3대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마치 물 흘러가듯 조용히 묘사되어 있다. 큰 감정의 파동 없이 그들의 삶과 죽음에 관해 보여주는 이 작품은, 일본작품의 느낌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런 분위기다. 크게 소리내어 이야기하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도 스며드는 무언가. 굳이 이것이 무엇이다-라고 정의하지 않아도 그 속에 푹 파묻혀 있게 만드는 무언가.
원제가 [빛의 개]이고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하는만큼 홋카이도견과 주인공 3대의 집에서 키우는 개들의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그들도 그들의 가족들처럼 태어나고 자라고 무지개 속으로 사라졌다. 출판사에서는 어째서 원제 대신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라는 제목을 지은 걸까. 내가 이 작품에서 생각한 '집'은 우리가 살고 생활하는 현실의 집이 아니었다. 언젠가 우리가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는 그 어딘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우리가 빛이 되어, 공기가 되어 돌아갈 어딘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 이야기에서 죽음은 특별한 것, 생소한 것, 공포스러운 것이 아니라 탄생과 하나 되어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다.
하지메가 아유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대자 산소마스크 너머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말을 하고 있다.
영차, 영차를 되풀이하는 것처럼 들렸다.
환상의 뭔가를 나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산길이나 어딘가를 오르고 있을까.
p401
우리가 돌아갈 집은 어디일까. 그 집으로 가기 전까지 결국 우리는 이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살아가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삶의 끝자락에서 돌이켜보면 찬란하게 빛났을 인생이라는 것.
부디, 다들 건강하세요. 잘 살고 계세요.
겨울이 되고 날씨가 추워지면 또 한 번 읽어보고 싶다. 홋카이도가 나와서 그런지 겨울에 차가운 공기를 가슴 가득 안고 읽으면 맞춤일 것만 같은 느낌.
**출판사 <비채>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