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탑의 라푼젤
우사미 마코토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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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죽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라는 문구만 봐도 가슴이 아파요. 이 아이들이 사는 세상이 얼마나 가혹할지 겁이 납니다만,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할 거라 믿으며 읽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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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게 시끄러운 오르골 가게
다키와 아사코 지음, 김지연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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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지방 작은 동네에 조용히 문을 연 오르골 가게. 이 가게의 주인은 고객의 마음 속에 흐르는 음악을 오르골에 담아주는 능력 있는 장인.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할 수 있어, 여전히 기억해. 말로 전달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음악을 통해 전해지는 등장인물들의 마음의 소리가 애절하게 울려퍼집니다.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만큼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 이성적으로,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해요. 때로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니까요. 

 

귀가 들리지 않는 소년, 끝난 사랑을 다시 이어가고 싶은 남자, 음악에 대한 꿈을 포기한 소녀 밴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버지의 진심을 알게 된 남자, 피아노 연주를 좋아하는 소녀, 오랜 세월 서로의 곁을 지켜주었던 부부의 소중한 추억, 그리고 오르골 가게 주인의 이야기가 고요하고 잔잔하게 흘러갑니다. 혹시 오르골 속 음악을 들어보신 적 있을까요? 여러분이 만난 오르골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제가 만났던 오르골의 음악은 모두 잔잔하고 조용하고 마음의 혼란을 잠재워주는 듯한 것들이었어요. 이 작품집에 담긴 이야기들은 제가 만났던 오르골 속 음악과 닮아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결코 평화롭지만은 않고 때로는 거센 풍랑을 만나기도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그 어떤 고난과 역경도 조용히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북쪽 지방 작은 동네. 저는 그 곳이 홋카이도의 오타루가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운하와 그 운하를 사이에 둔 고풍스러운 서양식 건물들, 그리고 오르골 가게라는 단서들은 언젠가 제가 찾았던 그 곳을 떠올리게 해주었어요. 제가 갔던 때는 여름이었지만 일본의 다른 지방보다 서늘한 기온에 밤에는 솜이불을 덮고 자야 했고, 그 어느 때보다 청명한 날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꼭 겨울에 와봐야지!- 했는데 삶에 치여 이리저리 시간 속을 떠다니다보니 어느새 세월이 많이 흘렀네요. 예전에는 그저 예쁘고 신기하게만 구경했던 오르골 가게. 그리고 그 가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수많은 오르골들. 만약 다음이 있어 제가 또 그 곳에 가게 된다면 저도 이런저런 오르골 가게를 구경하며 '나만의' 음악을 찾아줄 수 있는 장소를 찾아봐야겠어요. 

 

일곱 편의 이야기 중 저를 울컥하게 만든 것은 맨 처음과 마지막 단편이었습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에게 오르골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 오랜 시간을 아이 없이 단 둘이 살아온 아내가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기억하고 있던 추억 속 선율. 아마 지금 제가 서 있는 자리와 가장 연관 있는 에피소드들이 저의 마음을 울린 것 같아요. 지금 제 마음 속에 담겨 있는 음악은 어떤 소리일까요? 당신의 마음 속에 있는 음악은 무엇일까요? 책을 읽다 가만히 제 마음 속 소리에 귀기울여 봅니다. 

 

** <소미미디어> 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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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2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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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나타나서 나를 이렇게 외롭게 하시나요?

<칼>  中

 

요 네스뵈의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의 12번째 작품인 [칼]에 등장한 이 문장이 나의 가슴에 박혀 한동안 빠지지 않았다. 이 문장을 해리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당신은 왜 나타나서 나를 이렇게 괴롭게 하시나요?'라고. 요 네스뵈의 전무후무한 해리 홀레라는 캐릭터를 무척 사랑하기도 하지만, 그가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저절로 무거운 한숨이 나온다. 왜 그의 인생은 이토록 무참하게도 고단한 것인지, 요님은 왜 해리에게 영원한 해피엔딩을 약속해주지 않는 것인지 의문이 깊어간다. 우리의 인생이 결코 기쁨과 즐거움만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는 것을 해리 홀레를 통해 깨닫게 해주고 싶은 것일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이건 너무 하잖아요!요!요!요!

 

[칼]은 적어도 전편인 [목마름] 정도는 읽어줘야 그 흐름을 따라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해리 홀레 시리즈를 처음 접할 독자들을 위해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목마름]에서 일어난 사건이 [칼]에 등장하는 스베인 핀네의 범행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라켈의 남편이자 올레그의 아버지로서 안정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이던 해리는, 또다시 어둠속으로 빠져들고 급기야 라켈과 헤어지기에 이르렀다. 경찰청으로 복귀해 말단으로 근무하면서 계속 핀네를 주시하는 홀레. 그 앞에 세상 경악스러울만한 사건이 벌어졌으니, 그것은 바로 해리가 목숨처럼 여기는 사람의 죽음!!

 

[칼]을 읽으면 해리 홀레의 멱살을 잡고 싶어질 거라는 말을 바람결에 들었지만, 나는 해리가 아니라 요님의 멱살을 잡고 싶었다 (감히;;). 아무리 해리 홀레라고 해도 이 아픔을 딛고 다시 살아갈 수 있을까. 해리에게 있어 유일한 삶의 이유인 인물을 죽인 범인이라면 분명히 해리에게 원한이 있을텐데 그는 과연 누구인가. 이대로 설마 해리가 죽으면서 시리즈가 끝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 등 의문과 휘몰아치는 감정 등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칼]에서는 예전 해리와 인연을 맺었던 카야 솔네스가 등장해 라켈의 죽음을 함께 수사한다. 그녀가 해리의 곁을 떠나 보냈던 다른 누군가와의 시간들. 그리고 카야와 라켈과 인연을 맺은 또 다른 남자. 진범을 두고 잠시 우왕좌왕하기는 했으나, 이어지는 내용들로 미루어볼 때 이번 범인은 맞출 줄 알았다. 거의 정확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밝혀진 범인의 정체는 벌어진 입을 다물어지지 못하게 했다. 너의 절망과 고뇌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꼭 그렇게까지 해야했니??!! 정신을 차리고보니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해리와는 별개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소재는 '성폭행'이다. 피해자 뿐만 아니라 그 가족까지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는 범죄. 이 모든 것은 꿈이라며 잠에서 깨지 않은 상태로 사건을 수사하는 해리의 모습과, 지독한 일을 겪은 후 남은 인생을 보내야 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겹쳐지는 듯 하다. 해리가 물리적인 '칼'로 소중한 이를 잃었다면, 그녀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칼'로 수백, 수천번 베이고 있다. 이건 꿈이야, 나에게 일어난 일이 현실일 리가 없어. 결국 잠에서 깬 누군가는 죽음을 선택하고야 마는 것이다.

 

<해리 홀레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깊은 서사에 있다. 해리 홀레라는 한 개인이 지닌 깊은 어둠의 구멍. 그 스스로도 그 구멍을 두려워하지만 이내 돌아와 '기꺼이' 발을 딛고 만다. 그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구멍에 빠지지 않고서는 생을 이어나갈 수 없는 사람. 살인이 그의 뒤를 좇는 것처럼 죽음은 항상 그의 뒤에 서 있다. 현실에 이런 인물이 존재한다면 나는 분명 눈길조차 주지 않으리라. 그럼에도 그를 향한 마음을 접지 못하는 이유는, 글쎄, 무엇 때문일까. 처음에는 그가 지닌 어둠에 끌렸고, 시리즈 중반 정도부터는 그의 행복을 바라게 되었고, 이제는 그저 '해리 홀레'이기 때문에 읽는다.

 

요 네스뵈의 문장은 때로 시처럼, 때로는 노래처럼, 때로는 폭풍처럼 독자들의 마음을 할퀴며 깊은 생채기를 내고, 작품으로부터 헤어날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결국 이 시리즈는 결코 '스릴러'라는 장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고 할까. 음악과 술이 절실히 생각나는 이 밤, 씁쓸한 뒷맛을 음미하며, 나는 여전히 뒷 이야기를 목마르게 기다린다.

 

** 출판사 <비채>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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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 - 미사키 요스케의 귀환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6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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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카야마 시치리의 선물입니다' 라는 홍보문구를 보고 두근두근 설레며 읽어나간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일단 이 책을 읽기 전인 독자들에게 이 홍보문구를 전적으로 믿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개인적으로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 세계 중 가장 애정하는 캐릭터인 미사키 요스케는 물론, 과묵하고 우직한 열혈 와타세 경부와 그를 존경하고 떠받드는 고테가와 형사, 과거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속죄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신랄한 언변의 변호사 미코시바 레이지와  법의학 교실의 멤버들까지 그야말로 시치리 월드의 히어로가 총출동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은 그야말로 시치리 세계의 '어벤저스'라고나 할까. 오호라, 그래서 제목에 '합창'이 들어간 것인가!

 

마약 투여 상태에서 유치원에 침입하여 교사 두 명과 다섯 살 아이들을 살해한 센가이 후히토. 그의 담당 검사가 된 아모는 범행 당시 심신상실 상태를 주장하려는 센가이의 살의를 증명하기 위해 의지를 다진다. 하지만 피의자 센가이를 소환하여 조사하던 도중 갑자기 졸음이 오는 것을 느끼고 쓰러진 아모. 정신을 차리고보니 센가이는 총상을 입어 사망한 뒤다. 범행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드러나며 아모는 범인으로 몰리고, 꼼짝없이 재판을 받아 실형을 살아야 하는 상황. 그 앞에 구세주처럼 나타난 사람은, 옛 친구 미사키 요스케다.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사키 요스케가 아모의 변호를 의뢰한 인물은 당연히 미코시바 레이지. 사건의 개요를 들려주는 사람은 와타세 경부, 센가이의 부검을 맡은 이는 괴짜 법의학자로 알려진 미쓰자키다!

 

익숙한 인물들이 속속 등장할수록 반가운 탄성이 터져나온다. 하지만 아무리 주요 캐릭터들이 총출동했다고 해도 이 작품의 주인공은 미사키 요스케. 그의 주인공으로서의 권리를 제한하지 않는 선에서 각 캐릭터들은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미코시바 레이지가 아모 검사의 변호를 맡게 된 이후로 '어라? 이러다가는 이건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가 아니라 <미코시바 레이지 시리즈> 로 가겠는데??!!' 라고 생각한 찰나, 역시 독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작가님은 그에 걸맞는 맛있는 밥상을 차려주셨다. 사건 뒤에 숨겨진 진상, 숨겨져 있던 사연에는 마음이 아팠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쏘아진 분노의 화살은 결국 자신마저 상처입히게 마련이다. 

 

여느 때의 <미사키 요스케> 가 등장하는 작품들과는 달리 작품 대부분을 음악이 채우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변함없는 미사키 요스케의 매력은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이야기였다. 여기에 애정하는 캐릭터들의 대거 출동에는, 감사합니다-하며 넙죽 엎드리고 싶었을 정도. 작가가 선사하는 작품들을 대부분 즐겨 읽는 편이지만, 역시 나는 와타세 경부, 미코시바 레이지, 미쓰자키가 등장하는 이야기에 굉장한 매력을 느낀다. 

 

이 한 권의 책을 정말 순식간에 읽어내려갔다. 진심으로 너무 아쉽다. 2022년에는 한 달에 한 권씩 작품을 써내겠다고 공표했으니 또 한 달이 지나면 시치리 월드를 다시 맛볼 수 있으려나. 


** <블루홀식스> 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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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8
이디스 워튼 지음, 손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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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 이디스 워턴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미적미적 읽게 된 이유는, '삼각관계'라는 설정 때문이었습니다. 사랑과 연애에 있어서 삼각관계란, 얼마나 긴장감 뿜뿜하는 것인가요. 과연 이 경쟁(?)에서 승자는 누가 될 지, 어떤 과정으로 그 혹은 그녀의 사랑을 쟁취하게 될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죠. 하지만 모든 일에는 도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삼각관계라도 저는 불륜, 바람 이런 건 참 싫어해요. 개인적으로 그런 경험을 해본 바, 당하는 사람은 말 그대로 딛고 서 있는 땅이 흔들리고 눈앞이 캄캄해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게 되거든요. 

 

작품 초반부터 등장하는 엘런의 등장이, 그래서 저는 매우 불안했습니다. 뉴런드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메이가 있었지만, 어쩐지 강하게 엘런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한 뉴런드의 심리가 의심스러웠어요. 혹시 그런 경험 없을까요? 관심 가지면 안돼, 좋아하면 안돼!-라고 생각할 수록 자꾸만 더 눈이 가고 마음이 향하는 상대를 만난 경험이요. 저는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은 없지만 이런저런 소설과 드라마를 애정하는 덕분에 이런 심리를 알 것도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겉으로는 메이를 아끼고 소중히 생각하는 것 같지만 눈길은 엘런에게 향한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부터, 뉴런드는 저에게 '몹쓸놈'이 되었습니다. 

 

작품은 뉴런드의 시각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메이와 엘런의 정확한 마음을 알기란 어려웠습니다. 과연 엘런은 어땠을까요? 원하지 않는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돌아온 뉴욕에서 만난 어린 시절 친구. 자꾸 마음이 가지만 그 남자는 자신의 사촌과 약혼한 상태. 남자는 모든 것을 버리고 함께 떠나자고 하지만 엘런의 입장에서 그게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엄청나게 고민하고 번민했겠죠. 그렇다면 메이는요? 여자의 직감이 얼마나 예리하고 정확한지는 들어보셨겠죠. 뉴런드는 메이가 자신의 감정을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결국 그도 깨닫습니다. 사교계가 전부 메이의 눈으로 자신과 엘런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엘런과 메이의 고통에 비하면 뉴런드의 고뇌는 별 거 아니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같이 도망을 간다고 해도 추문의 화살이 향하는 것은 결국 여성. 그리고 메이 또한 오래오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을 것이 틀림없죠. 두 여성이 자신으로 인해 얼마나 괴로워할지는 마치 안중에도 없는 듯한 뉴런드의 태도와 시각. 저에게 그는 마치 철이 덜 든 어린아이같은 느낌이었어요.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감정, 근시안적인 대처, 모두 실망스러웠습니다. 

 

솔직히 엘런이 등장했을 때부터 저에게 엘런은 눈엣가시같은 존재였어요. 그야 당연히 가만히 있는 뉴런드와 메이의 사이를 흔들어놓는 악녀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작품을 완독하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녀야말로 뉴런드와 메이 사이에서 가장 상처받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연민이 들었습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상처받은 마음을 끌어안고 평생을 살아야했던 사람이 엘런이었어요. 그런 점에서 메이에게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미스터리급 반전이라고 할까요. 

 

작품의 제목인 [순수의 시대] 가 의미하는 바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뉴런드가 젊고 순수했기 때문에 사랑을 위해 엘런과의 도피를 계획했던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순수라기 보다 '치기'라는 단어가 더 어울려요. 저는 오히려 제목 자체가 뉴런드의 감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비판하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인간이길 바라면서 결국 다를 바 없었던 뉴런드. 그토록 타인과의 차별성을 외쳤던 이유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자신 또한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여성이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시대와 그 시대만큼 경직된 시선과 꾸며낸 미소, 교양의 탈을 쓰고 타인의 언행을 주시했던 사교계의 분위기는 물론, 절제된 문장과 인간의 내면에 대해 깊은 탐구를 보여준 [순수의 시대]. 뉴런드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술술 읽기는 힘들었지만 작가 이디스 워턴을 향한 애정으로 극복했습니다. 퓰리처상을 수상했다고 들은 작품인만큼 그 동안 한 번은 읽어야지 했는데, 소중한 지인으로부터 선물받아 소원 성취하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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