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의 시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8
이디스 워튼 지음, 손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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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 이디스 워턴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미적미적 읽게 된 이유는, '삼각관계'라는 설정 때문이었습니다. 사랑과 연애에 있어서 삼각관계란, 얼마나 긴장감 뿜뿜하는 것인가요. 과연 이 경쟁(?)에서 승자는 누가 될 지, 어떤 과정으로 그 혹은 그녀의 사랑을 쟁취하게 될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죠. 하지만 모든 일에는 도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삼각관계라도 저는 불륜, 바람 이런 건 참 싫어해요. 개인적으로 그런 경험을 해본 바, 당하는 사람은 말 그대로 딛고 서 있는 땅이 흔들리고 눈앞이 캄캄해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게 되거든요. 

 

작품 초반부터 등장하는 엘런의 등장이, 그래서 저는 매우 불안했습니다. 뉴런드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메이가 있었지만, 어쩐지 강하게 엘런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한 뉴런드의 심리가 의심스러웠어요. 혹시 그런 경험 없을까요? 관심 가지면 안돼, 좋아하면 안돼!-라고 생각할 수록 자꾸만 더 눈이 가고 마음이 향하는 상대를 만난 경험이요. 저는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은 없지만 이런저런 소설과 드라마를 애정하는 덕분에 이런 심리를 알 것도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겉으로는 메이를 아끼고 소중히 생각하는 것 같지만 눈길은 엘런에게 향한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부터, 뉴런드는 저에게 '몹쓸놈'이 되었습니다. 

 

작품은 뉴런드의 시각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메이와 엘런의 정확한 마음을 알기란 어려웠습니다. 과연 엘런은 어땠을까요? 원하지 않는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돌아온 뉴욕에서 만난 어린 시절 친구. 자꾸 마음이 가지만 그 남자는 자신의 사촌과 약혼한 상태. 남자는 모든 것을 버리고 함께 떠나자고 하지만 엘런의 입장에서 그게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엄청나게 고민하고 번민했겠죠. 그렇다면 메이는요? 여자의 직감이 얼마나 예리하고 정확한지는 들어보셨겠죠. 뉴런드는 메이가 자신의 감정을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결국 그도 깨닫습니다. 사교계가 전부 메이의 눈으로 자신과 엘런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엘런과 메이의 고통에 비하면 뉴런드의 고뇌는 별 거 아니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같이 도망을 간다고 해도 추문의 화살이 향하는 것은 결국 여성. 그리고 메이 또한 오래오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을 것이 틀림없죠. 두 여성이 자신으로 인해 얼마나 괴로워할지는 마치 안중에도 없는 듯한 뉴런드의 태도와 시각. 저에게 그는 마치 철이 덜 든 어린아이같은 느낌이었어요.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감정, 근시안적인 대처, 모두 실망스러웠습니다. 

 

솔직히 엘런이 등장했을 때부터 저에게 엘런은 눈엣가시같은 존재였어요. 그야 당연히 가만히 있는 뉴런드와 메이의 사이를 흔들어놓는 악녀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작품을 완독하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녀야말로 뉴런드와 메이 사이에서 가장 상처받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연민이 들었습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상처받은 마음을 끌어안고 평생을 살아야했던 사람이 엘런이었어요. 그런 점에서 메이에게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미스터리급 반전이라고 할까요. 

 

작품의 제목인 [순수의 시대] 가 의미하는 바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뉴런드가 젊고 순수했기 때문에 사랑을 위해 엘런과의 도피를 계획했던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순수라기 보다 '치기'라는 단어가 더 어울려요. 저는 오히려 제목 자체가 뉴런드의 감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비판하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인간이길 바라면서 결국 다를 바 없었던 뉴런드. 그토록 타인과의 차별성을 외쳤던 이유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자신 또한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여성이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시대와 그 시대만큼 경직된 시선과 꾸며낸 미소, 교양의 탈을 쓰고 타인의 언행을 주시했던 사교계의 분위기는 물론, 절제된 문장과 인간의 내면에 대해 깊은 탐구를 보여준 [순수의 시대]. 뉴런드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술술 읽기는 힘들었지만 작가 이디스 워턴을 향한 애정으로 극복했습니다. 퓰리처상을 수상했다고 들은 작품인만큼 그 동안 한 번은 읽어야지 했는데, 소중한 지인으로부터 선물받아 소원 성취하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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