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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밀려오는 안타까움과 분함에 한동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폭행과 살인이라는 더러운 범죄와, 살해당한 딸의 복수를 위해 피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의 마음이 뒤엉킨 실타래처럼 혼재되어 속이 메스꺼워졌다.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는 데 있어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법이겠지만 지금은 그 법과 사법체계라는 것이 장애물처럼만 느껴진다. 정의라는 이름 아래 공명정대하게 휘둘러져야 할 그 칼날이 과연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정의의 칼날이라는 것을 한치의 의심없이 순순하게 받아들이는 일이 가능할 것인가.
나가미네는 딸을 잃었다. 아내를 잃고 홀로 애지중지하며 키워온 소중한 보물같은 딸을. 어쩌면 그 딸이 사고나 병으로 죽었다면 한동안 무척 슬프고 괴로웠겠지만, 나가미네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딸과 아내의 모습을 추억하며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딸은 순조로운 죽음을 맞이할 수 없었고, 그들 가족의 행복은 깨어졌으며, 나가미네는 복수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쓰야와 가이지라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자신의 딸을 유린하는 장면을 그의 두눈으로 보았다. 보물같은 딸이 멍한 표정으로 하나의 고깃덩어리 취급을 받는 그 장면을. 아무도 침범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딸과의 행복한 순간을 추억하고 억울한 딸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가 하지 못하는 일을 직접 하기 위해 나가미네는 범죄자들에 대한 처단을 결심했다.
누가 나가미네에게 '당신이 지금 하려는 일은 옳지 않소'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기 전의 나였다면, 어쩌면 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다른 누구보다 심취해있던 나였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상황에서도 개인적인 복수는 옳지 않다고. 그러니 법이라는 정의 앞에 세워서 공정한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 사람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우리가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그러나 그것은 직접 일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의 단순한 인사치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내 가족이, 내 친구가, 내 연인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나는, 우리는 그저 가만히 두 손 놓고 '법대로 하시오'라고 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 범죄자들이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무거운 형벌을 받지 않고 금방 석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말이다.
이 작품에서 갈등이 증폭되는 요소가 여기에 있다. 범죄자들이 성인이 아니라는 것,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소년법이 적용되어 가중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 한 개인이 피해를 입어도 그 피해를 사회와 법이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라는 이름으로 완전한 보상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수많은 소녀를 폭행하고 촬영하여 개인의 인권을 침해해도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아쓰야와 가이지는 경찰에 붙잡혀도 길어야 3년 정도 감옥에 있었을 뿐이었다. 나가미네는 이를 용납할 수 없었고, '갱생'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아쓰야와 가이지에 의해 농락당한 다른 소녀가 자살을 했다는 것을 그들이 알았어도 반성하는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현실에서도 이와 같은 사건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동급생을 술을 먹여 강간하고, 학교폭력으로 친구를 숨지게 했어도 미성년자인 피의자들은 한동안의 사회봉사 명령을 받거나, 소년원에서 짧게 생활하다 나올 뿐 그들이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고 새사람이 되었다고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소년법은 피해자를 위한 것도, 범죄방지를 위한 것도 아니다. 청소년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그것에는 피해자와 그 가족의 슬픔과 분노는 반영되지 않고, 현실을 무시한 이상적인 도덕만이 존재한다(p88)
개인적인 복수는 당연히 지양되어야 함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마음 속은 나가미네를 응원하게 된다. 이런 모습은 책을 읽는 독자들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인 경찰들에게서도 보여진다. 피해자의 아버지가 피의자로 변해버린 상황 속에서 경찰들 또한 혼란스러워한다. 법과 정의가 하려는 일이, 자신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의문을 품는다. 경찰들마저 딜레마에 빠져버린 법제도가 과연 올바른 것인가. 현시점에서는 우리 중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작가는 자기 나름대로 하나의 의견을 내놓는다. " 전 이 사건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나가미네씨가 직접 경찰서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적어도 사람들은 한 번 더 따님의 비극을 떠올리겠지요. 그것만이 아니에요. 당신은 법정에 서서 소년법을 포함해 세상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관해서도 의문을 제기할 수 있어요. 당당하게 자수한 당신의 말이라면 세상 사람들도 귀를 기울일 거에요"
(p484)
청소년 범죄가 늘어가는 요즘, 우리의 법체계에도 변화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법은 사람의 상처를 외면해도 되는가'라는 말이 나와서는안 될 것이다. 경찰서에서 피의자보다 피해자가 더 머리 수그리고 부끄러워하는 사회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상처입은 피해자의 권리는 제대로 지켜지고,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죄를 저지른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히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나는 또한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우리 모두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그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책 한권을 읽고 나서 이렇게 혼란스러웠던 적이 언제였던가 싶다. 책 표지가 나가미네의 눈물과 분노를 그리는 것만 같아 마음이 스산하다. 사실 히가시노 게이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작가, 다시 보인다. 이런 소재가 단순히 하나의 소설로 그칠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발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딘가에서 상처입고 누구에게도 말못할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있을 그 누군가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