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질문상자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이레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어려서부터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 중 하나는 '돼지는 어째서 돼지인가'였다. 돼지는 어째서 돼지로 불리게 되었고, 책상은 어째서 책상으로 이름붙여졌으며 하늘은 왜 하늘로 명명되는지, 이상하게도 나는 그것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지만 어렸을 때 가끔 어른들이나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오히려 그런 것이 왜 궁금한지 되물음을 받았던 것 같다. 글쎄...나는 왜 그것이 궁금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답이 확실하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을 꼭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어린이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그냥 넘길 수가 없었나보다. '무엇이든'대답해주겠다니, 어쩌면 내가 궁금해했던 것을 똑같이 궁금해한 누군가가 여기에 질문해서 그 답이 실려있을지도 모른다는 호기심과 조바심이 생겼다. 아쉽게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나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 모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도 궁금해한다는 것을 알고 조금 기뻤다. 

다니카와 슌타로는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유명한 시인이다. 많은 사람들의 질문과 그의 대답을 묶은 이 책은 마치 한 편의 수채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귀여운 그림과 조금은 엉뚱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답변에 마치 나는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를 듣는 꼬마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의 답변에 지지 않게 질문 내용도 무척 다채롭다. '미래에는 무엇을 타게 될까요'라는 현실적인 질문부터, '남편의 빚지는 버릇을 고치고 싶어요'같은 생활이 묻어나는 질문에, '왜 목욕을 해야 하나요'라는 엉뚱한 질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만큼 그 질문도 가지각색이었다. 

내가 마음에 든 것은 다니카와 슌타로의 대답 방식이다. 질문자들은 어린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연령대가 다양한데, 어떤 질문도 소홀히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어린이라면 어린이에 알맞게, 성인이라면 성인에 알맞은 눈높이로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답변을 제공한다. 문득 진정한 상담자는 이런 사람이 아닐까 싶다.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뢰한 사람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상담가의 신념과 생각을 의뢰자에게 강요하지 않는 점일 것이다. 다니카와 슌타로는 자신의 생각을 조근조근 말하고는 있지만, 절대 강요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말하는대로 무엇이든 다 이루어질 것만 같은 포근한 기분에 휩싸이게 한다. 

책을 넘기는 내내 갑자기 목욕이 하고 싶어졌다. 느긋한 몸과 마음으로 다정하게 그려진 그림들과 대답을 음미하고 싶어졌다. 목욕하면서 읽고 싶어지는 책이라니, 태어나서 처음이다. 앞으로 우울한 일이 있을 때나 마음이 진정되지 않을 때 이 책을 펼치면 금방 킥킥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본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받고, 애니메이션의 노래까지 작사할 정도의 굉장한 실력을 갖춘 이 사람의 매력을 나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의 질문상자는 인터넷에서 계속되고 있다니, 접속해서 오늘 나도 꼭 하나 질문해야겠다. 이봐요, 다니카와씨~돼지는 왜 돼지고, 책상은 왜 책상이고, 하늘은 왜 하늘로 이름붙여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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