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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을 만드는 여인들
카트린느 벨르 지음, 허지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초콜릿 향기를 풍기는 표지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초콜릿 향기가 나는 책이라는 말은 아니다;;) 원시시대의 비너스를 연상하게 하는 초콜릿빛 피부의 두 여인이 장식한 표지는 어쩐지 보기만 해도 자꾸 초콜릿을 생각나게 했다. 공부할 때는 원기회복제가 되어주었고, 홀로 외국에 나가 생활할 때는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향수병전용 약이었고, 심지어 시험 보러 들어갔을 때는 기억력을 좋게 해주었던 친구가 바로 이 초콜릿이었다. 우울하거나 마음이 진정되지 않을 때 입에 쏙 들어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초콜릿. 초콜릿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나에게 이 책은 운명이지 싶다!
표지의 초콜릿빛 피부를 하고 있는 두 여인은 안느와 자스민이다. 이 두 분의 여성. 신앞에 영원한 사랑과 복종을 맹세한 (혹은 맹세하려 하는) 성스럽고도 성스러운 수녀님인데, 지금 한창 모험 중이다.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생 줄리앙 수녀원은 과거 엄청난 영광을 누린 풍요로운 곳이었지만 언젠가부터 형편이 기울기 시작했다. 수녀원을 살리기 위해서는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수녀원의 사업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바로 초콜릿을 만드는 일. 다행히 수녀원의 초콜릿이 '황금 카카오 상'을 수상하여 앞으로의 미래가 밝아졌지만, 초콜릿을 만들 카카오가 부족하다. 그래서 이 두 명의 수녀님들이 전설의 수녀 마리아 막달레나 드 킵다 수녀의 고향 콜롬비아로 질 좋은 카카오를 찾으러 떠난 것이다.
하지만 이 두 분 수녀님들의 모험은 그리 순탄하지 않다. 그녀들의 카카오를 빼앗기 위해 나쁜 악당 제레미가 시시각각 그녀들의 숨통을 죄어오기 때문이다. 카카오와 관계없는 먼 아마존으로 보내버리는가 하면, 노수녀를 공격해 초콜릿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기를 쓴다. 제레미 때문만이 아니라 상황은 수녀님들께 좋지 않다. 자신들을 안내해 줄 사람은 이미 죽어 관 속에 들어가 있었고, 발음 하나 잘못해서 마약상으로 오인받아 총살당할 위기에도 처하며, 무례한 남자들을 만나 혼비백산 줄행랑을 치기에 급급하고, 그 와중에 가슴을 뒤흔드는 남자들도 만나 짧은 시간 안에 온갖 모진 풍파를 다 겪게 된다.
그러나 가장 큰 장애물은 그들 두 사람. 안느에게는 자스민이, 자스민에게는 안느가 가장 힘겨운 상대였다. 깐깐하고 고집스러운 안느는 밝고 해맑은 자스민을 질투하고, 자신이 선배 수녀라 하여 사사건건 가르치려 든다. 자스민에게 그런 안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상대하기 버거운 노처녀 수녀일 뿐이다. 그러나 여행을 통해 두 사람은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는 시간을 갖는다. 자스민이 어째서 수녀가 되려고 결심했는지, 어린 시절 가진 추억은 무엇인지 서로 나누면서, 깐깐하고 새침데기 같았던 안느는 어느새 정열적이고 자유로운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자스민 또한 안느와의 다툼에서 그녀를 용서하고 이해하게 되면서 따스한 감정을 품게 된다. 세상과 단절된 수녀원 생활에서 접할 수 없었던 다양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자신의 신념이 옳은 것인지 끊임없이 의심하면서도 어느덧 그녀들의 마음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드는 것이다.
계속 이어지는 사건들과 마지막에 제레미가 응징당하는 장면은 약간 식상한 면도 없지 않았지만, 초콜릿 재료를 얻기 위해 두 수녀님들이 모험을 떠난다는 설정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좌충우돌 유쾌한 그녀들의 여행 속에는 악당은 응징당하고, 자신을 위해 각자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는 모습이 초콜릿 향기와 함께 잘 그려져 있다. 아름다운 성가도 귓가에 맴돌고 개성 넘치는 수녀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읽었더니 마음이 무척 즐거웠다. 아~책장을 덮고 나니 초콜릿 향기가 더 진해지는 것 같다. 이 달콤한 냄새는 따뜻한 사람의 냄새겠지. 초콜릿을 먹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