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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 라이프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황사가 우중충한 날씨를 연출했던 어제와 달리,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기는 하지만 일요일인 오늘 날씨는 햇빛도 적당하고 산뜻하다. 겨울의 긴꼬리가 어서 감춰지기를 바라며 봄의 따스함과 포근함이 유독 기다려지는 요즘, 요시다 슈이치의 [파크 라이프]가 일주일 간 내 마음을 차지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들여 읽을 정도로 그렇게 두꺼운 책도 아니고, 문장 하나하나를 분석하며 읽을 정도로 심오한 책도 아니지만 이렇게 시간이 걸리고 만 것은 요즘 나의 생활 때문이었다. 매일 10시 퇴근이라는 혹독한(?) 3월, 짬짬이 책을 펼치고 읽기에는 내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탓이다. 또 요시다 슈이치의 글을 급하게 읽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맛있는 음식을 아껴먹는 것처럼 그의 글이 전달해주는 여운을 나의 세포 하나하나로 느껴보고 싶었다.
요시다 슈이치는 내게 리뷰를 남기기 어려운 작가 중 하나다.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모두 글로 표현해낼 수 없다는 한계를, 그가 느끼게 해준다. 몸 안에서만 뱅뱅 돌며 메아리치는 언어들을 밖으로 끄집어내 표현하기에는 나의 정서가 그의 글들에 '지나치게' 공감해버리기 때문이다. 비판은 물론 무엇에 어떻게 공감하는 지 상세하게 표현해내는 일조차 무척 버겁게 다가온다. 그저 느낄 뿐, 그저 감정에 동조해 책을 읽는 내내, 아니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후에도 한참동안 온전한 현실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할까. 마음 속 한 켠에 날카로운 칼이 내려치는 듯한 알싸함도, 그의 글로 인해 야기된 감정이라면 설레임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모자를 쓰고 담배를 태우는 모습에 새삼 감탄하게 되는 그의 사진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사실 전체적인 줄거리를 놓고 보자면 그리 대단 할 것 없는 사람들의 일상이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나 알게 된 한 여성과의 대화, 그녀와 공원에서 나누는 일상의 여유, 별거 중인 선배의 집에서 머무는 주인공의 모습, 이게 끝인가 싶을 정도로 애매하게 다가오는 결말. 혹여 이런 단조로운 묘사가 책의 인상에 악영향을 끼칠까 걱정스럽다. 하지만 요시다 슈이치의 글에 매료된 사람이라면 그의 책은 전체적인 내용이 아니라 장면 하나하나에 매력이 숨어 있음을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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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예를 들어 내가 이 벤치에서 뉴욕의 스타벅스 매장이나 이미 여러 해 전에 히카루에게 키스한 차 안의 광경을 떠올리고 있을 때, 내가 무엇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일까. 눈앞에 있는 연못이나 석탑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일까. 이렇게 멍한 상태에서 문득 제정신을 차릴 때, 이따금 전율과도 같은 느낌이 온 몸을 훑고 지나간다. -p 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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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세계가 우리 안에는 분명 존재하고 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 친구, 연인이라도 자신이 아니라면 존재할 수 없는 혼자만의 세계가. 때문에 우리의 감정과 생각이 그토록 엇갈리고 대립되면서 결국에는 이해받을 수 없는 고독감에 빠져들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같이 있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같이 있고 싶기 때문에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 다닌다'고 말하는 선배의 남편의 대사가 유독 쓸쓸하게 들려오는 것은 그런 엇갈림과 고독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파크 라이프>가 인간관계의 고독과 엇갈림을 조금 가볍게 그려냈다면 같이 실려있는 작품 <플라워스>는 무게감이 남다르다. 조금 더 어둡고 유쾌하지 못하고 아주 쓸쓸하며 짙은 허무함마저 느껴진다.
요시다 슈이치의 책을 읽고 나면 쉬지 않고 일본드라마를 보고 싶어지거나, 지금이라도 일본으로 불쑥 떠나고 싶어지는 감정이 치솟는다. 섬세한 정서로 독자의 마음 속에 파문을 일으키는 작가. 달리기도 해도 되고 산책을 해도 된다는 이 화창한 일요일에, 나는 갑자기 밀려드는 공허함에, 조금 울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