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밀애 - 파국의 사랑
김은희 지음, 류훈.권진연 각본.각색 / 피카디리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영화로 만들어진 책을 읽는다는 건, 일종의 모험이다. 영화도 좋고 소설도 좋을 수 있지만, 영화는 좋았지만 소설은 별로거나, 소설은 좋았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나는 좀 욕심이 많은 편이라 확실하게 보장된 경우가 아니라면 영화와 소설, 양쪽을 모두 접하지 않는다. 그 어느 쪽에라도 실망하게 된다면 작품에 대한 나의 감동이 빛을 잃을 것만 같아서.
[비밀애]는 유지태와 윤진서가 주연인, 영화 <비밀애>의 원작이다. 어디가 어떻게 좋은 건지도 모르게, 그저 유지태라는 배우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나는 여자 주인공이 누구인가와는 상관없이, 그저 '유지태'라는 배우가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영화에 큰 기대를 걸었었다. 아마도, 언제적 영화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동감>에서 맛보았던 그런 감성을, 똑같은 배우가 등장하는 다른 영화에서 맛보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큰 키와 목소리, 약간 독특함이 느껴지는 성격도 마음에 든다. (무슨 인터뷰에선가는 그가 자신을 자폐성향이 있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는데, 그런 정확하지 않은 정보에도 그만 인정해버리고 마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나) 어쨌든 바람은 살랑살랑 불기 시작하고 (오늘은 찬바람이었지만) 꽃도 조금씩 피어나는 이 봄에, 평소라면 유치하게 느껴질 운명같은 사랑 이야기를 읽어보고 싶었었다.
이 책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우선. 한 여자가 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혼수상태에 있는 남편을 둔 여자. 주위에서 남편의 불운은 모두 자신 때문이라는 험한 소리를 들으며 하루라도 빨리 남편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안타까운 여자다. 그런 그녀 앞에 남편과 꼭 닮은 그의 쌍둥이 동생이 나타난다. 힘든 간병의 시간동안 그 어디서도 마음을 위로받지 못한 여자는, 남편의 모습을 한 그를 통해 힘든 시간들을 보상받고 싶어졌다. 자각하지 못한 사이 열려버린 마음. 지치고, 허망하고, 외롭고, 쓸쓸한 여자를 위로해주고 싶었던 한 남자는 여자와 형만이 알 수 있는 추억을 이야기하며 여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여자가 사랑한 것은 남편이었을까, 다른 남자였을까.
이 이야기를 영화로 먼저 만났다면 어땠을까 싶다. 여자와 한 남자가 교환하는 눈빛들, 시선들, 동작들을 통해 대사로는 다 전달하지 못할 감정들이 책보다는 조금 더 절실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책을 통해서는 여자와 쌍둥이 동생의 연정이 그리 대단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내가 여자의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확실하게는 말할 수 없겠지만, 지켜왔던 힘든 시간들이 바래지 않게 조금만 더 여자가 기다렸다면 어떠했을까. 남편과 닮기는 했지만 그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한 사람으로 뚫려버린 구멍을 다른 사람을 통해 메꾸려고 하는 일이 얼마나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 지 여자가 미리 알았다면, 그녀는 똑같은 선택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때문에 마지막에 그녀가 떠안게 될 삶은 오롯이 그녀의 몫이다.
책 자체는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더욱더 배우 유지태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어떤 감정을 담아 인물을 표현했을 지, 거짓말을 해서라도, 형을 배신해서라도 가슴에 여자를 품고 싶은 감정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나타냈을 지 궁금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가슴을 울릴만한, 영상보다 더한 감동을 주는 글을 쓰는 작가를 만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