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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의 지붕
마보드 세라지 지음, 민승남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1974년 겨울 테헤란의 루즈베 정신병원에서 '나'는 깨어난다. 여기가 어디인지, 자신이 정확히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여기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무언가가, 일어났었다. 순간적으로 격해지는 감정, 휘몰아치는 격정의 소용돌이 안에서 '나'는 어떤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다시 깊은 잠 속으로 무력하게 떨어질 뿐이다. '나'의 이름은 파샤. 소중한 우정을 간직한 친구 아메드가 있고, 누구보다 사랑하는 여인 자리와 미래를 꿈꿨다. 그리고 존경하고 경외할 수 밖에 없었으나 자신이 죽음으로 밀어넣었다는 죄책감으로 시달리게 한 한 남자, 그는 자리의 약혼자이자 '나'의 친구였던 닥터다.
이란은 내게 생소하고도 생소한 나라인데 주인공 파샤가 숨쉬고 있던 1973년의 이란은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위험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저항조직을 말살하기 위해 정부는 비밀경찰 사바크를 이용해 반정부활동을 무력으로 탄압했다.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 죄목을 알려주지도 않고 끌고 가서 고문하고 사형시켜버리는 위험한 시대 속에서도 파샤는 우정과 사랑으로 충만한 생활을 보내고 있다. 그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는 것은 오직 사랑해서는 안 될 닥터의 여자 자리를 마음 속에 두고 있다는 것 뿐. 소중한 친구 아메드와 그의 연인 파히메의 도움으로 자리와 넷이서 즐거운 여름을 보냈지만 반정부활동을 하던 닥터의 죽음으로 그들의 관계는 산산조각 나고 만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사랑과 우정. 어둠의 시대 속에서도 소년은 성장한다.
작품은 1973년과 1974년의 모습이 교차되면서 진행된다. 73년에 벌어진 어떤 일로 인해 74년 현재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파샤의 모습은, 독자로 하여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가 긴장감을 갖게 한다. 어두운 시대인만큼 소중한 것을 다 잃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뒤로 한 채 작가는 다시금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닥터의 죽음과 그 후 자리가 벌인 사건으로 인해 긴장된 분위기를 이어가기는 하지만 작품 자체는 잔잔한 편이다. 차근차근 계단 하나씩을 밟아 올라가는 느낌이라고 할까. 어두운 시대를 배경으로 힘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가족간의 사랑과 친구들 간의 우정, 변하지 않는 사랑을 이야기하는 따뜻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