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사라지다 모중석 스릴러 클럽 13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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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할런 코벤의 작품은 [결백] 이후 두 번째 입니다만, 이 아찌 재미있는 분이십니다. 대화가 많아 듬성듬성 비는 곳이 많다고 해도 500페이지가 넘는 책인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읽고 있으면 과연 글 쓰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죠. 탄탄한 스토리와 빈틈없는 구성력, 그리고 스릴러 소설에서 빠질 수 없는 반전까지. 그 모든 것을 생각하려면 얼마나 많은 머리카락이 빠질런지요. 과연! 혹시나 해서 책날개를 펼쳐보니 이 분, 머리카락이 없습니닷! 스스로 미신 건지, 아니면 타고난 대머리이신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제 생각에는 글을 쓰다 머리가 다 빠져버려서 '에라, 모르겠다. 그냥 밀어버리자' 결심한 확률이 더 높을 것 같습니다. 흠. 재미있는 소설을 쓰려면 역시 머리카락이 빠질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거였군요. 호홋. 

이야기는 슬프게도 주인공 윌의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12년 전 윌의 형 켄은 이웃이었던 줄리 밀러를 죽이고 도주한 혐의로 지금까지 FBI의 수배를 받고 있었는데요, 가족들은 현장에서 켄의 피가 발견되었다는 것을 이유로 켄도 죽음을 맞았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죽기 직전 윌의 어머니가 '네 형은 살아있다! '라는 결정적인 한 마디를 남깁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머니의 유품에서 형의 사진을 발견한 윌. 그런 그의 곁에는 그의 아픈 첫사랑을 극복하게 해 준 사랑스런 여인 실러가 있습니다. 하지만 영원히 당신을 사랑하겠다는 쪽지 한 장만 남긴 채 갑자기 행방을 감춘 실러. 대체 자신의 주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윌은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고자 단서를 좇아 사건 속으로 뛰어듭니다. 

[결백] 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할런 코벤 아찌는 사건을 해결하는 데 필요없는 군더더기를 쓰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어떤 책들은 한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해서 '이제 그만 설명해도 된단 말야!'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게 만들기도 하거든요. 물론 그런 부분이 나오면 간단히 뛰어넘어버리지만 대체 왜 앞에서 쓴 말을 또 쓰는 걸까 궁금한 적이 많았답니다. 게다가 한 장면 한 장면이 끝날 때마다 툭툭 던지는 단서들이 희열을 느끼게 해준달까요. 맨 마지막 부분에서만 반전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 윌이 단서를 하나씩 발견할 때마다 수없이 뒷통수치기를 해주십니다. 그래서 '이런 걸까, 저런 걸까' 하며 요런저런 상상을 하게 만들죠. 상상한 것 중 하나가 맞으면 또 즐겁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결말이라면 그것은 또 그것대로 즐겁지 아니하겠습니까. 

요렇게 재미있는 책이었건만, 뭔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군데군데 보이는 알쏭달쏭 번역 때문이려나요.


 

윌, 뭘 어쩌려는 거지?

칼리를 찾아야지.

그런 다음엔? 네가 그 애를 맡아 기르게?

모르겠어.

그걸 블록으로 쓰려는 거지?

너도 마찬가지잖아.                                                          p249


어떤 분이 저 '블록으로 쓰려는 거지'에 대한 뜻을 저에게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아무리 몇 번을 읽어도 저 말이 대체 무엇을 뜻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오! 제가 영어가 부족한 탓인가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 책은 한글판인데요! 저는 재미에 푹 빠져서 즐겁게 독서하는 데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 나오면 김이 팍 샙니다. 이 문장에 얽매여서 다음 문장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게 되는 거죠. 

저는 표지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표지가 무엇을 나타내고 싶어하는 지 알 수 없었는데 내용을 다 이해하고 나니 조금 이해가 됩니다. 제가 이해한 게 맞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어쨌든 [결백] 에 이어 두 번째로 집어든 이 책마저 만족스러우니 앞으로 출간될 그의 작품들이 더 기대되네요. 홍보문구를 잘 믿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 경우에는 책 뒷편에 쓰인 많은 홍보문구를 그대로 믿으셔도 좋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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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링 짐 매드 픽션 클럽
크리스티안 뫼르크 지음, 유향란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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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을 파멸로 몰아가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을 가리켜 팜므파탈이라고 하죠. 반대로 저항할 수 없는 매력으로 여성을 유혹해 파멸시키는 남자를 옴므파탈이라고 합니다. 제가 이 옴므파탈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약 2년 전. 처음 아이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기소개를 위한 종이를 나누어주었더니 한 남학생이 '나는 옴므파탈이다!!' 라고 적었더라구요.  나를 파멸시킨다는 것을 알면서도, 분명히 그 끝이 좋지 못할 거라는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그 매력에 이끌려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남자. 과연 존재할까요? 어쩌면 요즘 자주 들리는 '나쁜 남자'라는 존재가 이 옴므파탈을 목표로 급성장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전 여전히 나쁜 남자보다는 착한 남자가 좋던데 말이죠. 

-달링짐-이라. 언뜻 듣기에는 무척 달콤한 제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이야기인 것 같다는 느낌이 팍팍! 오지 않으세요? 네, 맞아요. 이 작품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사랑으로 인해 행복하고 달콤해지는 사람들이 아니라, 한 남자의 악마같은 매력에 빠져 결국은 불행해진 세 자매와 그녀들의 이모가 주인공이죠. 더블린에서 그녀들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이 매혹적이지만 어두운 사랑의 과거가 펼쳐집니다. 

우체국에서 일하지만 만화가가 되고 싶어하는 니알에게 배달된 하나의 소포. 보낸 사람은 분명히 얼마 전 시체로 발견된 피해 여성 피오나 월시입니다.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올 것을 알면서 남기게 된 그녀들의 사연. 그녀는 이 모든 일이 '짐'이라는 한 남자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노트에 고백합니다. 그 노트를 계기로 그녀들의 흔적을 추적하는 니알. 그는 과연 어떤 결말을 보게 될까요. 

이 책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우리가 책을 통해 알게 되는 전체 이야기와 니알이 피오나와 그녀의 동생 로이진이 남긴 노트를 통해 알게 되는 그녀들의 이야기, 그리고 '달링짐'이 여성들을 유혹하기 위해 술집에서 펼쳐놓는 파괴본능을 지닌 한 왕자의 이야기가요. 이야기 속의 이야기, 또 이야기 속의 이야기.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모두 별 개의 이야기가 아니라 종국에는 하나로 합쳐져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집약됩니다.  아일랜드의 조용한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이야기들은 아일랜드의 신화와 현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오싹하면서도 매력적인 '옴므파탈'이라는 존재에 대해 들여다보게 해주죠. 

하지만 과연 사랑으로 인해 자신의 혈육들과 이런 잔인한 전쟁을 벌이는 일이 가능할까요? 사랑을 잃은 후 생기없이 지내던 모이라 이모가 짐을 만난 후 아름답게 꽃피어가는 모습,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힘일텐데요. 그 짐과 자신의 세 조카가 비밀스러운 사건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급기야 세 조카들을 감금하고 고문하기에 이릅니다. 짐이 대체 무엇이길래, 짐이라는 남자가 그녀, 모이라에게 대체 무엇을 주었길래 모이라는 그럴 수 있었을까요. 전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집착이라고 생각해요. 그것도 아니면 역시. 짐이 가진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던 것이겠죠. 

이 작품은 미국에서 출간된 크리스티안 뫼르크의 첫 번째 소설이라고 합니다. 2009년에는 <워싱턴 포스트지>가 선정한 '올해의 소설'로 선정되었으며, <북리스트>와 <퍼블리셔스 위클리> 등 수많은 언론과 작가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 책 [달링짐]을 읽고 나니 과연 그럴만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작품을 아우르는 압도적인 무언가가 있거든요. 다만, 독자의 성별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는 느낌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 '달링짐'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 계기는 '이야기'였습니다. 그가 내보이는 환상의 세계, 끝을 알고 싶다는 욕망. 그것이 짐이 가진 또 다른 매력과 합쳐져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죠. 앞에서 나쁜 남자보다는 착한 남자가 좋다고 했지만, 이야기를 특히 좋아하는 저로서는, 만약 어떤 남자가 나타나 매혹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어떻게 될 지 장담할 수 없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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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천무후
쑤퉁 지음, 김재영 옮김 / 비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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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천무후. 중국에서 여성으로서 유일하게 황제가 되었던 인물. 당 고종의 황후였지만 국호를 '주'로 바꾸고 15년 동안 중국을 다스렸다고 한다. 당의 건국 공신인 무사확의 딸로 태어나 당 태종의 후궁으로 궁에 들어갔고 '무미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태종이 죽은 뒤 다른 여인들과 출가하였으나 고종의 후궁으로 입궐하기에 이른다. 고종과의 사이에 4남 2녀를 두었던 그녀는 고종이 죽은 뒤 자신의 아들을을 황제의 자리에 올리지만, 결국 그녀 스스로 황제가 되어 중국을 다스렸다. 

예전에 다른 작가가 쓴 같은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몽환적이고 신화적인 분위기를 풍겼던 그 책에 비해 쑤퉁의 [측천무후]는 문체가 담백하다. 번역을 그리 한 것인지 작가 본래의 문체가 원래 그런 것인지 알 길은 없으나,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이같은 담백함이 좋다. 그 어떤 편견과 평가 없이 인물에 대한 판단을 독자에게 맡기는 듯한 담담함이랄까. 그동안 많은 작가가 여성이었으나 군주로 군림한 이들에 대해 쓸 때 흔히 드러내는 감상적인 분위기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그리려 한 의도가 어쩐지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쑤퉁의 이 책은 역사소설인 이상 어느 정도의 한계는 있겠지만, 주인공인 측천무후에 대한 연민의 느낌없이 객관적으로 측천무후의 생애와 그 주변인물들의 삶을 보여주려 한 흔적이 엿보인다. 

인상적인 것은 그녀의 아들인 이홍과 이현, 이단의 시점에서 측천무후와 일련의 사건을 묘사하는 장면들이다. 황제의 후계이면서도 강하고 잔인한 어머니로 인해 편치 않은 삶을 살았던 그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측천무후의 아들이라는 점 때문에 그녀의 존재를 더욱 확고한 것으로 만든다. 정적이었던 왕황후와 소숙비를 제거하기 위해 자신의 딸마저 희생양으로 삼고 자신의 아들을 독살했다는 소문에 시달렸을 그녀.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측천무후 또한 권력을 가까이 한 자라면 피하기 힘든 운명의 희생자가 아니었을까.

나는 본래 권력에 관심도 없을 뿐더러 그러한 삶을 결코 부러워한 적이 없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까지 '권력의 허망함'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누군가를 음해하고 자식들과도 평범한 애정을 나눌 수 없으며 쓸쓸하게 홀로 늙어 죽음을 맞는 삶이란 내가 꿈꾸는 것과 거리가 멀다. 혹자는 권력의 맛을 한 번 보면 이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궁 안에서 보내는 어두운 삶보다 평범한 백성들의 삶이 더 나은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국호를 '주'로 바꾸고 15년이나 나라를 다스렸건만 결국 그녀의 죽음을 지킨 이가 누구였던가를 생각해본다면 누구도 세상에서 제일 가는 것이 권력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사소설을 읽고나면 꼭 진실이 알고 싶어 견딜 수 없어진다. 측천무후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 때문에 중국을 손 안에 넣고 싶어했을까. 우리는 다만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조금은 잔혹하고 강인하게 묘사된 그녀를 보고 있으니 앞서 언급한 책 속에 등장한 감성적이고 몽환적인 그녀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측천무후를 통해 본 쑤퉁은 문체와 분위기 면에 있어서 괜찮은 작가인 듯 하다. 그의 문체가 담담하고 고요하게 느껴지는 것이 정말 그의 문체인지, 아니면 번역 때문인 건지 다른 작품을 통해 알아봐야겠다. 어쨌든 그와의 첫만남은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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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홍
노자와 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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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추억으로 기억되어야 할 수학여행이었다. 선생님 눈을 피해 친구들과 손전등으로 얼굴을 비추고 무서운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 아키바 가나코. 한밤에 들려온 소식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것은,이제 그녀가 세상에 혼자 남았다는 사실이었다. 가나코의 아버지에게 원한을 가진 쓰즈키 노리오가 집에 침입해 가나코의 아버지, 엄마, 두 남동생을 잔인하게 살해한 것이다. 그 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갖게 된 가나코는 수학여행지에서 죽은 가족들의 모습을 만나기 위해 이동한 '네 시간'을 때때로 현실처럼 겪게 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었지만 자신이 죽은 가족들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도 되는 건지 죄책감을 안고 있던 그녀는, 어느 날 범인 쓰즈키 노리오에게 자신과 같은 나이의 딸, 쓰즈키 미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체를 숨기고 쓰즈키 미호에게 접근하는 가나코. 

일본의 유명한 극작가이자 소설가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드라마 <연애시대>로 유명한 노자와 히사시의 이 작품은, 가해자의 딸과 피해자의 딸이라는 다소 독특하면서도 잔혹한 설정 속에서 시작된다. 이야기는 초반 범인 쓰즈키 노리오의 상신서를 통해 그가 아키바 일가에 품게 된 원한과 살인을 하게 된 계기 등을 보여주는데, 이 시점부터 독자들의 판단력을 시험한다. 과연 진정으로 나쁜 사람은 누구였을까, 생명을 앗아간 것은 나쁘지만 쓰즈키 노리오만 악인이었을까. 그런 어지러운 상황에 마침표를 찍어주는 것이 목숨을 잃은 어린 두 동생과 홀로 살아남은 가나코의 존재다. 아무리 원한이 깊어도 아무 죄 없는 어린 아이들의 생명을 빼앗고, 주인공 가나코가 온 가족을 잃고 혼자 남게 만든 점등을 강조하며 어떤 이유에서든 살인은 정당하지 못하다는 점을 우선 깨닫게 한다. 

이 책의 띠지에는 전반부의 참극묘사가 250점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압도적이라는 문구가 씌어 있는데, 나는 전반부의 참극묘사보다도 사건을 듣게 된 어린 가나코의 심적 상태와 원수의 딸인 미호에게 접근하는 그녀의 심리를 서술하는 쪽에 후한 점수를 주겠다. (어째서 잔인한 참극묘사에 그리 높은 점수를 주겠다고 했는지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자신이 겪어온 고통의 세월을 범인의 딸인 미호는 어떤 마음으로 지내왔을 지 궁금해하고, 범인이면서도 여전히 아키바 일가를 미워하는 범인과 그의 딸을 저주하며 깊은 어둠으로 끌어내리고 말겠다는 가나코의 마음이 아프도록 생생하게 전해져 온다. 미워하고 증오하면서도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어하는 가나코는 결국 그들의 악연을 끊어내는 데 성공할 수 있을 지, 그 과정을 긴장감 가득하게 팽팽하게 그려냈다. 

이 작품은 미스터리 소설이기도 하지만 결국 가나코와 미호가 과거의 어둠으로부터 벗어나려 애쓰는 모습을 그린, 조금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뻔히 그려질 수도 있는 용서와 화해를 그리지 않는다. 서로에게 원망을 토해내고 사죄를 하는 식상한 장면도 없다. 그저 그녀들 각자의 고통의 세월을 그리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할 뿐이다. 미궁 속을 헤매는 듯한 몇 문장들로 인해 번역이 다소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분위기와 내면 묘사가 괜찮은 작품이다.


 

 있지 미호, 우리 가족은 어느 날 갑자기,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어. 내가 달려갔을 때에는 모두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지.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 가족들의 심장이 뛰어주길 바랐어. 나도 모두의 가슴에 귀를 대고, 아직 살아 있는 동안 물어보고 싶었으니까. 나, 이제부터 살아가도 되냐고. 모두의 심장은 이제 곧 멎어버릴텐데, 난 앞으로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돼. 살아남아서 미안해. 난 모두의 용서를 바랐어.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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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보는 그림 명화 백과 한 권으로 보는 그림 백과
정상영 지음, 이병용 그림, 류재만 감수 / 진선아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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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저는 꽤 많은 미술서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유럽 미술의 거장들]이라는 책이었어요. 저의 짧은 소견 탓인지는 몰라도 미술서적의 설명이야 다 거기서 거기인 듯 하고, 두께가 두껍다고 해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았죠. 하지만 [유럽 미술의 거장들] 이라는 책은 다른 점은 다 차치하고라도 그림이 정말 큽니다! 거의 모든 지면을 그림이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요. 어차피 작정하고 외우지 않는 이상, 작가와 그림의 제목을 외우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법. 마음으로 깊이 그림을 느끼고자 하는 분들께는 이 책을 추천합니다. 

왜 [한 권으로 보는 그림 명화 백과]의 리뷰를 쓰면서 다른 책을 추천하냐고요? 그러게요. 왜 그럴까요? 하지만 이왕 한 번 추천한 글, 지우지는 않으렵니다. [유럽 미술의 거장들]이 조금 전문서 같다는 느낌이라면, [한 권으로 보는 그림 명화 백과]는 딱,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생이 보면 좋을 것 같은 책입니다. 저처럼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봐도 전혀 유치하다고는 느껴지지 않지만 그림을 설명하는 어투나 사이사이 삽입된 귀여운 그림들 덕분에 분위기가 한층 부드럽거든요. 그림을 보는 것도 조기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름다움과 예술을 느끼는 마음이야말로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데 큰 몫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책은 '그림 조기교육'에 어울리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이들에게 그리 큰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요. 그리 두껍지도 않거든요. 

무엇보다 마음에 든 것은 부록으로 같이 온 <명화 감상 노트>입니다. 여기에는 본 책에 실린 그림들 중 몇 점이 또 따로 실려 있어요. 그 선정 기준은 잘 모르겠지만 책을 보면서 술렁술렁 넘겼던 그림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볼 수 있다는 점이 저는 참 좋더군요. 제 경우에만 국한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솔직히 여러 권의 그림 서적을 감상했더라도, 결국에는 제가 좋아하는 그림만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에 지나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이 <명화 감상 노트>를 보면 '아! 이 그림은 누구의 뭐다!'라고 맞추면서 얻게 되는 즐거움이 쏠쏠해요. 뭐, 누구에게 굳이 자랑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일이든 '자기 만족'이라는 것은 필요하지 않겠어요? 또 맨 뒤에는 미술관을 관람한 후 관람록을 쓸 수 있도록 양식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이런 경험을 몇 차례 겪다보면 자연스레 아이에게도 그림을 보는 눈과 예술을 소중히 하는 풍요로운 마음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제가 왜 앞에서 [유럽 미술의 거장들] 을 소개했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조금 전문적인 지식, 어려운 내용이라도 상관없지만 조금 크게 그림을 감상하고 싶으신 분들은 이 책을 보시면 됩니다. 하지만 '나는 어려운 내용은 아직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림 보는 것은 좋아한다, 그리고 내 아이와 함께 그림을 보고 싶다' 하시는 분들은 [한 권으로 보는 그림 명화 백과]를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모호한 생각이 대뜸 [유럽 미술의 거장들] 을 추천하는 글을 남겨버리게 되었군요. 

이번 책에서 저는 또 하나의 수확을 얻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 싼마오라는 사람이 있는데요, 그 사람의 작품 [사하라 이야기] 의 표지를 장식한 그림이 바로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 여인>이라는 것을 알았답니다. 이 책에서 그 그림을 발견하고 무척 반가웠어요! 그리고 며칠 전 읽은 일본소설 [파인 데이즈] 에 등장한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도 자세히 보게 되었으니 이번 책에서는 요렇게 만족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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