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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천무후
쑤퉁 지음, 김재영 옮김 / 비채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측천무후. 중국에서 여성으로서 유일하게 황제가 되었던 인물. 당 고종의 황후였지만 국호를 '주'로 바꾸고 15년 동안 중국을 다스렸다고 한다. 당의 건국 공신인 무사확의 딸로 태어나 당 태종의 후궁으로 궁에 들어갔고 '무미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태종이 죽은 뒤 다른 여인들과 출가하였으나 고종의 후궁으로 입궐하기에 이른다. 고종과의 사이에 4남 2녀를 두었던 그녀는 고종이 죽은 뒤 자신의 아들을을 황제의 자리에 올리지만, 결국 그녀 스스로 황제가 되어 중국을 다스렸다.
예전에 다른 작가가 쓴 같은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몽환적이고 신화적인 분위기를 풍겼던 그 책에 비해 쑤퉁의 [측천무후]는 문체가 담백하다. 번역을 그리 한 것인지 작가 본래의 문체가 원래 그런 것인지 알 길은 없으나,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이같은 담백함이 좋다. 그 어떤 편견과 평가 없이 인물에 대한 판단을 독자에게 맡기는 듯한 담담함이랄까. 그동안 많은 작가가 여성이었으나 군주로 군림한 이들에 대해 쓸 때 흔히 드러내는 감상적인 분위기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그리려 한 의도가 어쩐지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쑤퉁의 이 책은 역사소설인 이상 어느 정도의 한계는 있겠지만, 주인공인 측천무후에 대한 연민의 느낌없이 객관적으로 측천무후의 생애와 그 주변인물들의 삶을 보여주려 한 흔적이 엿보인다.
인상적인 것은 그녀의 아들인 이홍과 이현, 이단의 시점에서 측천무후와 일련의 사건을 묘사하는 장면들이다. 황제의 후계이면서도 강하고 잔인한 어머니로 인해 편치 않은 삶을 살았던 그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측천무후의 아들이라는 점 때문에 그녀의 존재를 더욱 확고한 것으로 만든다. 정적이었던 왕황후와 소숙비를 제거하기 위해 자신의 딸마저 희생양으로 삼고 자신의 아들을 독살했다는 소문에 시달렸을 그녀.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측천무후 또한 권력을 가까이 한 자라면 피하기 힘든 운명의 희생자가 아니었을까.
나는 본래 권력에 관심도 없을 뿐더러 그러한 삶을 결코 부러워한 적이 없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까지 '권력의 허망함'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누군가를 음해하고 자식들과도 평범한 애정을 나눌 수 없으며 쓸쓸하게 홀로 늙어 죽음을 맞는 삶이란 내가 꿈꾸는 것과 거리가 멀다. 혹자는 권력의 맛을 한 번 보면 이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궁 안에서 보내는 어두운 삶보다 평범한 백성들의 삶이 더 나은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국호를 '주'로 바꾸고 15년이나 나라를 다스렸건만 결국 그녀의 죽음을 지킨 이가 누구였던가를 생각해본다면 누구도 세상에서 제일 가는 것이 권력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사소설을 읽고나면 꼭 진실이 알고 싶어 견딜 수 없어진다. 측천무후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 때문에 중국을 손 안에 넣고 싶어했을까. 우리는 다만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조금은 잔혹하고 강인하게 묘사된 그녀를 보고 있으니 앞서 언급한 책 속에 등장한 감성적이고 몽환적인 그녀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측천무후를 통해 본 쑤퉁은 문체와 분위기 면에 있어서 괜찮은 작가인 듯 하다. 그의 문체가 담담하고 고요하게 느껴지는 것이 정말 그의 문체인지, 아니면 번역 때문인 건지 다른 작품을 통해 알아봐야겠다. 어쨌든 그와의 첫만남은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