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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 - 오래된 책마을, 동화마을, 서점, 도서관을 찾아서
백창화.김병록 지음 / 이야기나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어느 범주에 넣어야할까-를 쪼큼 고민한 끝에 '인문'으로 선택했습니다. 유럽 4개국-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보긴 했으니 여행서인 것 같기도 하고 저자들이 여행의 목적으로 선택한 것은 '도서관'과 '서점'이었기에 단순히 그것에 대한 에세이인 듯 싶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쾌락을 위해 유럽으로 떠나 탱자탱자 즐기다 온 것이 아니니 여행서는 아니고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길을 떠났으니 단순 에세이도 아닌 것 같거든요. 여행서+에세이+도서관과 서점에 대한 생각들을 한 데 모아놓고, 장차 우리나라의 도서관과 서점이 갖춰야 할 태도와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제시하고 있으니 그냥 제 마음대로 '인문'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이 분들, 제가 가장 꿈꾸고 원하는 삶-책과 함께 하면서 무언가를 이룩해가는-을 살아가시는 듯 해요. 여성잡지와 출판사에서 글 쓰고 책 만드는 일을 해온 아내와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미디어교육과 방송 문화 일을 해오던 남편이, 아이를 낳고 키우며 마음 속에 생긴 아쉬움을 해소하기 위해 2002년 '숲속작은도서관'이라는 작은 마을 도서관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길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테지만 자신의 생각을 지지해줄 수 있는 다른 누군가 (심지어 그 사람이 배우자!) 와 함께 지금까지 굳건히 걸어왔다는 것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현재는 충북 괴산에서 도서관 마을을 꿈꾸며 시골 마을 도서관 만들기에 몰두하고 있는 이들 부부의, [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 입니다.
1부에서는 도서관을, 2부에서는 서점을, 3부에서는 동화마을을, 4부에서는 책으로 되살아난 농촌마을공동체인 유럽의 책마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시간이나 나라 순서가 아니라 주제에 맞추어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가 번갈아가며 등장하기 때문에 다소 중첩되는 부분도 있고 각 나라들의 소소한 풍경들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할만 한 도서관과 서점 풍경이 가슴을 설레게 해요. 사실 여행자들의 주머니는 가볍고 호기심은 왕성하기 마련. 이번 책처럼 간접적으로나마 만족도가 높은 책은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3부의 동화마을과 4부의 유럽의 책마을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였고 또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나도 그런 책마을 속에서 살아보고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책 읽기를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책 모으는 것에도 중독되어 있는 저인지라 도서관과 서점 풍경을 담은 1부와 2부에 빠져들었습니다. 수도원 도서관 입구에 적혀있다는 '영혼을 치유하는 요양소'라는 말에 심하게 공감하면서요.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한 움베르토 에코가 싫어하는 도서관/ 좋아하는 도서관 구분도 재미었고, 오랜 역사를 지닌 수도원 도서관의 풍취에는 녹아들었고, 프랑스의 미테랑 전 대통령의 책에 대한 열정과 도서관 건립에는 감동했으며, 공공도서관의 나라인 영국에도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게다가 유럽의 골목골목마다 숨어있는 헌책방들과 서점들이 지닌 무구한 역사들을 접하니 저도 당장 짐을 싸서 그저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로 날아가고 싶습니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적혀 있어요. 저자가 '문화 예술의 나라' 러시아에 대한 특집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러시아 사람들은 푸시킨을 가장 좋아한다고 합니다. 러시아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푸시킨을 읽으며 거리에서 만난 초등학생들에게 푸시킨의 시를 알고 있느냐 했더니 너나 할 것 없이 푸시킨의 시를 암송하는 모습이 비춰졌답니다. 순간 울컥. 우리에게는 저런 '아름다운' 교육이 있는가? 책 읽는 전통과 책 읽는 교육이 살아있는가를 고민하고 그 그리움을 느껴보고 싶었다며 여행의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광범위하게 보급되면서 요즘들어 책 읽는 풍경이 사라졌다고 느낀 것은 비단 저 혼자 뿐인 걸까요? 그래도 예전에는 지하철을 타면 몇몇 분들은 책을 읽고 있었는데 요즘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 바쁜 듯 했어요. 호기심 많고 새로운 것 좋아하는 아이들이야 말할 것도 없겠죠. 스마트폰의 보급과 기술의 발달은, 분명 우리에게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 줄 겁니다.
하지만 뭔가, 내면을 채워줄 수 있는 것, 생각하고 판단하고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주는 것에 책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들도 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을 돌며 소중한 자료를 모으고 동화마을과 책마을을 돌아보는 거겠죠. 디지털 시대지만 '아날로그'를 잃어서는 안 되는 부분도 확실히 있어야 하니까요. 수도원도서관이 '영혼을 치유하는 요양소'라는 문구를 도서관 입구에 적어놓은 의미,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여전히 도서관과 서점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들을 깊이 생각하고 되새겨볼 시간입니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들은 우리를 과거로 인도한다. 그것은 꼭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 때문은 아니다. 그 책을 읽었을 때 우리가 어디에 있었고 우리는 누구였는가를 둘러싼 기억들 때문이다. 책 한 권을 기억한다는 것은 곧 그 책을 읽은 어린아이를 기억하는 것이다.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