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작은 새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고정아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얼마 전에 읽은 [초록눈 프리키는 알고 있다]에 비해 그리 읽기 쉬운 작품은 아닙니다. 이 작품에 비하면 [초록눈 프리키...]는 팔랑팔랑 책장도 아주 잘 넘어가고, 무엇보다 아동문학선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주인공 프랭키의 성장의 곡선도 뚜렷했거든요. 두 작품 모두 '가족'을 소재로 하지만 [초록눈 프리키...]가 아이들을 위한 성장소설이라면, [천국의 작은 새]는 잔혹한 운명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등장인물들의 어두운 세계를 냉철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도 빠져나올 수 없는 운명의 굴레. 그래서였을까요. 꽤 많은 분량이기는 하지만 생각처럼 진도가 휙휙 나가는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황량한 내면과 상처받은 영혼들의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에 답답증도 생겼습니다.

 

주인공 크리스타와 애런의 인연의 시작은, 얄궂게도 애런의 어머니 조이의 죽음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조이를 죽인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크리스타의 아버지인 에디. 그리고 애런은 비참한 모습으로 생을 마감한 어머니의 시신을 처음으로 발견합니다. 노래를 사랑한 밝고 사랑스러운 여자 조이와 그런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에디이지만, 에디의 가족에 대한 (특히 크리스타에 대한) 사랑도 엄청난 것이라 그는 혐의를 부인하며 괴로워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며 안타까운 죽음을 맞습니다. 여기에서 이야기는 크게 두 줄기로 갈라집니다. 크리스타와 애런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 그리고 조이를 죽인 범인은 과연 누구인지에 대해 관심의 초점이 모아지죠.

 

처음부터 끝까지 밝은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작품입니다. 좋아하게 된 남자의 어머니를 자신의 아버지가 살해했다는 운명 속에 놓여있는 크리스타니까요. 하지만 크리스타가 정말로 애런을 사랑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남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상대의 정체를 모르고 사랑에 빠졌다가 내막이 밝혀진 후 괴로워하는 인물이 아니라, 사건이 벌어지고 난 다음 '의식적으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역할이기 때문이에요. 아버지의 살인 혐의와 그로 인한 죽음, 훌륭한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했던 한 사람이 다른 가족에게 해를 입히고 그 가족을 해체시켰다는 죄책감에서 비롯된 보상심리는 아니었을까요. 그 지점에서 크리스타는 자신들의 가족 또한 커다란 상처를 받고 해체되었다는 사실에는 비중있게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 에디가 사랑한 자식, 크리스타 딜로서 나름의 방법으로 사과하고 싶다는 감정으로 가득했기 때문이죠. 크리스타는 처음부터 거의 마지막까지 온전한 '크리스타'가 아니라 '에디 딜의 자식'으로서 존재하는 나약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생애 처음으로 '크리스타'로서 살아가기를 꿈꾸게 됩니다. 많은 세월이 흐르고 재회한 크리스타와 애런은 조이 살인사건의 진범을 알아낸 후 처음으로 자신들의 욕망에 몸을 맡깁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 크리스타와 애런의 운명에 마음 아파하며 내심 이 두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저의 생각과 같이 크리스타 생각에도 그들의 운명이 그리 밝아보이지만은 않았던 듯 합니다. 그들의 어린 시절이 점철되어 있고 이미 자신에게는 허물처럼 느껴지는 스파타를 정신없이 떠나는 크리스타의 모습은, [초록눈 프리키...]에서 프랭키가 아버지의 죄를 고백하던 모습과 오버랩됩니다. 뭔가 한꺼풀 벗어던지고 이제서야 '크리스타'로서, 밝은 미래를 꿈꾸며 자신의 운명을 바꿔보려는 의지가 엿보였다고 할까요.

 

긴 분량에 걸맞게 사건의 묘사와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 또한 세세하고 적나라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장황한 설명들이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앞에서 한 이야기 또 하고, 그 앞에서 한 상황설명 또 한다는 느낌에 몇 차례나 책장을 건너뛰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재미와 상상력만을 자극하는 소설이 아니라, 철학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는 듯한 이미지는마음에 듭니다. 노벨문학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조이스 할머니라는데 (작가 사진 쫌 무서워요;;), 삼 세번이라고, 한 편쯤은 더 읽어봐야 진가를 알 수 있을 듯. (그런데 지금까지 출간된 작품들은 어쩐지 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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