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변해야 아이도 변한다
김경집.이시형.이유남 지음 / 꿈결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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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흔한 부모교육 내용이 실려있으려니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 안 읽었으면 어쩔 뻔 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요즘 시대에 맞는 내용이 재미있고 알차게 실려 있었어요. 서울특별시 교육청 주최로 열린 엄마 인문학 특강 내용인데 만약 다시 이런 특강이 있다면 직접 가서 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이렇게 많이 고민하고 예전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공부해야 하는 줄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아이는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해주기만 하면 다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튼튼하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첫째 아이의 태명은 튼튼이, 한 번의 유산 후 얻은 둘째 아이의 태명은 튼튼하게 잘 붙어있으라는 뜻으로 튼풀이라고 지었는데요, 이런 저도 튼튼이가 세 살이 되면서부터 학습과 공부에 귀가 열리더라고요. 분명 튼튼하고 행복하게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는데 말이에요.

아무래도 학교에 있다보니 그 동안 봐왔던 아이들의 모습을 저희 아이들에게 투영해서 볼 때가 가끔 있습니다. 밝고 행복한 아이들도 있지만, 무기력하고 침울하고 우울한 아이들도 많았죠. 우리 아이들에게 바라는 모습은 무엇일까, 어떤 표정으로 살길 바랄까 생각해보면 답은 딱 나와있는데 제가 어떻게 뭘 해줘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분명 공부만을 강요하는 엄마는 되고 싶지 않은데 그렇다고 공부를 완전히 배제해서는 우리나라에서 살아가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벌써부터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공부 말고 뭔가 중요한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알려주고 싶었지만 그게 무엇인지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는데 딱 이 책이 제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세 분의 강연자들은 전부 '아이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해요. 김경집님은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아이가 공부하는 방법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금 존재하는 직업 중 수십 만개는 10년 후에는 사라지게 될 것이고 새로운 직업이 나타나게 되기 때문이에요. 질문하는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렇기 때문에 독서는 또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설명하는데요, 그 중 욕을 들으면 왜 불쾌한지, 아이들은 왜 욕을 하는지, 왜 욕설이 문제인지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해주셔서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아이들의 언어 사춘기 때 부모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예도 들어주셔서 앞으로 기억해두었다가 꼭 실천해야겠다 마음먹었어요.

이시형님은 '부모의 자기감정 조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실 요즘 제가 고민되는 부분이기도 해요. 둘째를 낳은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기에는 부끄러울 정도로 첫째에게 감정조절을 잘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거든요.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늘고, 조금만 실수해도 아이를 다그치는 제 모습이 괴물처럼 느껴질 때도 있는데 이런 저의 모습을 아이가 보고 그대로 따라할까봐 겁이 났습니다. 저의 감정조절에 대한 반성은 물론, 아이를 내버려두어야 할 때와 그렇지 않아야 할 때, 아이가 성장할 때 엄마가 해주어야 하는 것, 그리고 어릴 적 운동이 평생 건강과 두뇌 발달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주의 깊게 읽었어요.

이유남님의 강연 내용이 제일 마음에 와 닿았는데요, 아무래도 같은 엄마이고 또 교사이기 때문일까요. 이유남님의 아이들은 어디 내놓아도 남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모범생이었는데 어느 날 두 명 모두 학교를 그만두고 방안에 틀어박혀 게임에 빠져 살아갑니다. 엄마는 속이 터지죠. 아무리 혼을 내고 하소연을 해도 소용없던 어느 날, 아들로부터 우리가 이렇게 된 건 모두 엄마 아빠 때문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어요. 항상 공부만을 강요하고 칭찬과 지지보다는 꾸중과 경멸의 말만 들어온 아이들이, 결국 참다참다 반란을 일으킨 겁니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해요.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너희를 위해 안 해준 게 뭐가 있냐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딸이 자해소동을 벌이고 난 뒤에는 방문을 열어준 것, 밥을 먹어준 것 등의 사소한 일들에 감사하게 되었고 자신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모질고 독한 엄마였는지 반성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물이 [엄마 반성문]이라는 책으로 나왔다고 하니 이 책도 꼭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이 '얼른, 빨리' 라는 말이었다는데, 으아, 저 요즘 튼튼이에게 -얼른 먹어, 빨리 일어나, 얼른 좀 해- 라는 말을 하는 빈도가 늘지 않았나 반성해봅니다.

책 제목으로 짐작하셨듯이 이 책은 아이를 어떻게 하면 똑똑하고 훌륭하게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 아닙니다.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부모가 변해야 아이도 변할 수 있다는, 부모와 아이의 관계변화,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지지에 관한 내용이에요. 살아서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오는 사랑하는 아이들이잖아요. 그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겠습니다. 아이들의 말에 귀기울여주고,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겠죠.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꼭 추천해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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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듣던 밤 - 너의 이야기에 기대어 잠들다
허윤희 지음 / 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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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를 들으며 하얗게 밤을 지새우던 때가 있었다. 입시준비를 하던 그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책을 읽거나 문제를 풀었고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때는 말할 것도 없이, 그리고 라식수술을 해서 눈도 제대로 못뜨고 누워있을 때도 라디오를 곁에 두었다. 외출했다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은 라디오를 켜는 일. 낮에 듣는 방송은 낮의 묘미가, 밤에 듣는 방송은 밤의 묘미가 있었다. 그 중에서 애정하는 주파수는 CBS. 천주교이기는 하지만 종교적인 이유로 고정해놓은 것은 아니고, 그저 흘러나오는 음악들이 내 취향과 맞았을 뿐이다. 아침에는 팝송, 오전에는 클래식과 영화음악, 정오에는 가요, 오후에는 다시 팝음악과 조금 오래된 노래들, 저녁에는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음악. 그리고 하루의 끝에 허윤희님의 <꿈과 음악사이에>가 있다.

<꿈과 음악사이에>를 듣게 된 것은 고3 담임을 하면서부터였다. 아침 7시 반 출근, 야자감독까지 마치고 다시 학교를 나서는 시간은 밤 10시. 시동을 걸고 라디오를 틀면 꿈결처럼 허윤희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도로 위를 달리는 차 안에서의 달콤하고 차분한 목소리는 피곤을 씻어주었고, 어느 때는 어서 빨리 내려 샤워하고 잠자리에 들어야함에도 사연을 듣느라, 음악을 듣느라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추억의 한조각을 차지하는 그녀의 라디오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돌보면서 몇 년간 듣지 못했다. 아이를 재우고 집을 정리하고 나면 어느 새 밤은 깊어있었고, 심신이 지쳐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다 조금 책을 읽다보면 시계는 금방 새벽을 향하는 날들. 깨닫지 못했는데 그리웠나보다. 그녀의 목소리가, 그녀가 전달해주는 이야기가, 그 라디오 방송이 주던 먹먹함과 설레임과 몽환이.

 

[우리가 함께 듣던 밤]은 하루의 끝에서 나를 위로해주던 허윤희님의 첫 에세이다. 차마 소개하지 못한 사연들, 그녀의 마음 속에만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이 글자의 힘을 빌려 마음 속을 파고든다. 노련한 기교보다는 투박함과 주저함이 느껴지는 글들을 보며 그녀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 육아와 고된 일상에 치여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 타인의 이야기가 이렇게 힘을 갖게 된 것은 오롯이 그녀의 덕이다.

그날의 나도, 지금의 나도

모두 나지만

어제의 내가 부끄러워 견딜 수 없는

오늘의 나는

어쩌면 전혀 다른 사람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P32

이 문구를 읽으며 과거의 나를 생각한다. 나라는 사람도 허점투성이면서, 나는 왜 그들에게 그렇게 냉정하고 모질게 굴었을까. 절대 두 번째 기회를 주지 않고 칼처럼 잘라내버린 인연들이, 이제와서야 아프게 마음을 때리는 이유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조금은 쉽게 생각했던 내가 받는 벌은 아닌지, 요즘에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상처주고 아프게 했던 사람들에게 직접 미안하다는 말을 건넬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꼭 그래보고 싶다.

소설이 잘 써지지 않을 때면

난로 앞에 앉아 작은 오렌지 껍질을 짜서

불꽃 위에 끼얹고는

파란 불이 소리 내며 타는 것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렇게 중얼거린다.

"걱정할 것 없다 지금까지 써왔다. 지금도 쓸 수 있다.

계속 문장 하나만 쓰는 것이다. "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문장이 나와서

그때부터는 계속 쓸 수 있게 된다.

 

P80. 어니스트 허밍웨이

언제나 '노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 대문장가의 일화. 생애에 걸쳐 그것을 증명해보인 어니스트 허밍웨이. 그저 첫발을 뗄 뿐. 끝이 보이지 않는 육아의 터널 속에서 매일매일 생각하는 것은 '오늘 하루만 잘 지내보자'. 수많은 오늘이 보여 아름다운 날들이 될 거라는 믿음을, 유명작가의 글로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내가 해온 일들이 틀리지 않았어, 나의 믿음들이 보답받았다는 기쁨.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인정도 때로는 위안이 된다.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다시 밤에 라디오를 틀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배경삼아 책을 읽는 시간이 그동안의 노고를 보상받는 것 같아 행복했다. 잊고 있던 기억들, 잃어버린 줄 알았던 감성들이 다시 되살아나는 기분. 앞으로도 정신없는 날들은 반복되고 힘에 겨운 시간들은 계속되겠지만, 나를 나로 있게 해주는 것들을 잊지 말아야겠다 다짐해본다. 하루의 끝에 라디오가 있다는 기대, 그녀의 목소리로 다시 시작될 밤의 시간들에 마음이 설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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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으로 읽는 세계사 - 세계사에서 포착한 물건들의 파란만장한 연대기 테마로 읽는 역사 1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박현아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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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곳곳에서 사용되는 물건의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뜻밖의 장소에 도착하는 경우가 있다’. 이 문구 그대로 저를 가장 놀라게 한 물건은 바로 바지와 벨트입니다. 이 바지와 벨트의 기원이 유목민의 일상생활에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저는 [물건으로 읽는 세계사] 책을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유목민의 생활에서 말은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습니다. 넓은 지역을 이동하기 위한 수단이자 정신적으로도 제일 의지가 되는 파트너였다고 해요. 이 말과 친해지기 위해, 즉 기마를 위해 적합한 옷이 바로 바지였던 겁니다.

 

[물건으로 읽는 세계사] 속에는 수많은 일상 물건들이 등장합니다. 사회 윤곽을 형성한 큰 강 유역에서 만들어진 물건, 유목민의 진격과 동서 문명의 대교류가 일어났던 대초원을 배경으로 한 물건, 신대륙의 개발과 자본주의 경제의 융성을 나타내는 대양의 물건, 산업도시의 상징들, 글로벌 세계를 만들어낸 물건들. 역사를 바꾸고 인간의 생활을 변화시킨 물건들은 의외로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이에요. 수로와 제방, 달력, 문자, 도장, 동전, 도로와 비단 등은 도시가 형성될 때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토마토나 설탕, 바지와 벨트, 백화점 등에도 역사가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큰 수확이었다고 할까요. 유럽인은 토마토를 음식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랫동안 감상용으로 즐겼으며 영국에서는 정력제, 최음 식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로빈슨 크루소와 설탕의 관계, 그 안에 노예라는 개념이 숨겨져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책의 분량도 그리 길지 않고 하나의 물건들에 얽힌 역사들도 어렵지 않고 길지 않게 서술되어 있어 이해하기 편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니 주위 물건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네요. 이 물건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저 물건에는 무슨 사연이 있는 건지 궁금해졌어요. 역사라고 하면 시대, 사건 등 조금 어려운 이미지를 갖기 쉬운데 일상 속 역사 이야기를 듣고나니 한층 더 역사에 가까워진 느낌이 듭니다. 이렇게 쉽고 재미있는 역사도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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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나다
모리 에토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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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를 만난 지도 어언 10년. 그 후로 두 번째로 접하는 모리 에토의 작품집입니다. 여섯 편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만남과 헤어짐의 순간을 그리고 있는데요, 삶의 굽이굽이에서의 만남과 헤어짐은 물론 여러 생을 반복하며 만나는 윤회의 인연까지 섬세하게 표현해냅니다. 단순하게 스쳐지나갈 수도 있는,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그런 만남. 그런 만남들이 주는 감동과 무상함들이 마음을 일렁이게 하며 툭, 가슴을 치고 지나갑니다.

나리키요 씨와의 만남, 헤어짐, 다시 만남, 또 헤어짐. 그 일련의 과정을 대충 더듬으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같은 사람을 몇 번이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만날 때마다 낯선 얼굴을 보이면서 사람은 입체적이 된다.

p39

신뢰관계를 쌓았던 편집자와 작가가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났을 때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내비치는 인연을 표현한 <다시, 만나다>에서는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는, 어쩌면 원래 내면에 간직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모습에 대해 ‘낯선 얼굴들이 형성하는 입체감’이라는 표현으로 신선한 시각을 제공합니다. 현실에서라면 ‘저 사람 뭐지? 왜 저렇게 변했을까?’라며 적대시할 수도 있는 인간관계에 조금 다른 의견을 제시하며 묘한 깨달음을 전달해요. 그리고 그런 시각에서 비롯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 관계에 날카롭고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순수한 마음을 갖게 해준다고 할까요.

<순무와 샐러리와 다시마 샐러드>는 전체 작품들 중에서도 제일 독특하다고 생각되는 이야기였어요. 순무 대신 무가 들어있는 샐러드를 산 것에 분개(?)하여 담당자에게 순무가 아니라 무인 것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주인공 기요미. 그런 그녀를 담당자는 귀찮은 고객으로 치부하여 매우 무성의하게 응대하죠. 거기에 더욱 오기가 생겨 어떻게든 순무가 들어간 샐러드를 먹게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나라면 저렇게 요구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귀찮아 그냥 대충 먹고 말았을텐데 기요미는 왜 저렇게 집착하는 것인가, 궁금해지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녀가 살고 있는 세상은, 총기 발사 사건이 만연한 공포와 두려움의 시대.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지켜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순무가 순무인 것이, 그렇게 중요했던 거예요.

이렇게 앞날을 알 수 없는 세상이기에 더욱이 순무는 순무여야 하고 무는 무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p77

필요할 때마다 나타났던 마마의 존재를 위안삼아 살아낼 수 있었던 사람들의 만남을 그린 <마마>, 초등학교 때 있었던 부끄러웠던 추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랜만에 동창회에 참석한 고토의 마음을 묘사한 <매듭>, 여러 번의 생을 반복하며 만나는 인연의 신비함을 그린 <꼬리등>, 사고의 순간 나타난 아내의 모습을 통해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 남성의 이야기인 <파란 하늘>까지 저는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모두 좋았습니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숨을 잠시 멈출 정도로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어떤 이야기에서는 ‘아아, 그렇구나’ 수긍하기도 하면서 완전히 작품에 빠져들어 있었어요. 모리 에토는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작가였지,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은 만남의 폭이 크게 줄어 타인과의 접촉은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지만, 언젠가 만나게 될, 그리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하니 마음이 벅차오른다고 할까요. 모리 에토가 전해 준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이야기가 한층 포근한 겨울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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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모두 잘 자라고 뽀뽀해 토이북 보물창고 9
앤 휫퍼드 폴 지음, 데이비드 워커 그림, 마술연필 옮김 / 보물창고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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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아기였을 때는 책이 세상 제일 즐거운 놀이감인 줄 알았던 첫째 곰돌군은, 지금은 자동차와 비행기, 헬리콥터, 기차에 빠져 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손을 씻고 바로 자동차로 직행, 몸이 조금 노곤해지기 전까지 거실에서 부엌까지 자동차들과 활보하죠. 그러다 좀 놀았다 싶으면 책을 한 권, 두 권 꺼내 쌓아보기도 하고 던져보기도 하고, 펼쳐서 그림을 골똘히 쳐다보기도 합니다. 제가 저녁 준비를 부지런히 해 놓은 날에는 옆에 앉아 같이 책을 읽기도 해요. 집중해서 책을 읽는 시간은 저녁을 먹고 목욕을 한 후 잠자리에 들어서입니다. 거실에 있는 책들은 주로 어린이집 하원 후나 휴일에 읽고, 잠들기 전에는 안방에 있는 책들을 같이 읽습니다. 안방에 있는 책들은 때가 되었다 싶으면 거실에 있는 책들과 바꿔서 꽂아놓고 있고요.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 것 같기는 하지만 꾸준한 독서습관을 갖게 하려면 어떻게 해줘야 할지 늘 고민이랍니다.

 

[모두모두 잘 자라고 뽀뽀해]는 잠들기 전 읽기 아주 좋은 책이에요. 한 아이가 엄마에게 동물들도 우리처럼 밤마다 잘 자~!”라고 뽀뽀해요?’ 라고 물으며 시작하는 이 책에는 여러 종류의 엄마동물과 아기동물들이 뽀뽀하는 내용이 실려 있어요. 처음 등장하는 엄마 나무늘보와 아기 나무늘보는 해 질 무렵이면 나무에 매달려 뽀뽀하기 시작합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요. 이 나무늘보들은 엄마 공작새와 아기 공작새, 엄마 비단뱀과 아기 비단뱀, 아기 바다코끼리랑 아빠 바다코끼리, 엄마 코끼리와 아기 코끼리 등이 뽀뽀하고 사랑을 나누는 동안에도 뽀뽀를 이어갑니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뽀뽀하는 동물들을 따라 저와 곰돌군도 뽀뽀했어요. 책 속 동물들을 따라하다 보면 10번은 넘게 뽀뽀를 할 수 있답니다. 저희는 주로 누워서 책을 읽는데 이 책 읽으면서 뽀뽀도 하고 간지럼도 피우고하면서 자긴 전에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손에 딱 들어오는 사이즈에 아주 귀엽고 부드러운 색감이 제 마음에 쏙 드는 책입니다. 곰돌군보다 제가 더 좋아해서 낮이고 밤이고 자꾸 펼쳐보게 되네요. 뽀뽀하면서 아기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최고의 책인 것 같아요. <보물창고> 출판사에서 출간된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시리즈도 닳도록 읽었는데, 이 시리즈와 함께 오래도록 포근한 잠자리를 준비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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