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다
모리 에토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를 만난 지도 어언 10년. 그 후로 두 번째로 접하는 모리 에토의 작품집입니다. 여섯 편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만남과 헤어짐의 순간을 그리고 있는데요, 삶의 굽이굽이에서의 만남과 헤어짐은 물론 여러 생을 반복하며 만나는 윤회의 인연까지 섬세하게 표현해냅니다. 단순하게 스쳐지나갈 수도 있는,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그런 만남. 그런 만남들이 주는 감동과 무상함들이 마음을 일렁이게 하며 툭, 가슴을 치고 지나갑니다.

나리키요 씨와의 만남, 헤어짐, 다시 만남, 또 헤어짐. 그 일련의 과정을 대충 더듬으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같은 사람을 몇 번이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만날 때마다 낯선 얼굴을 보이면서 사람은 입체적이 된다.

p39

신뢰관계를 쌓았던 편집자와 작가가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났을 때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내비치는 인연을 표현한 <다시, 만나다>에서는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는, 어쩌면 원래 내면에 간직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모습에 대해 ‘낯선 얼굴들이 형성하는 입체감’이라는 표현으로 신선한 시각을 제공합니다. 현실에서라면 ‘저 사람 뭐지? 왜 저렇게 변했을까?’라며 적대시할 수도 있는 인간관계에 조금 다른 의견을 제시하며 묘한 깨달음을 전달해요. 그리고 그런 시각에서 비롯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 관계에 날카롭고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순수한 마음을 갖게 해준다고 할까요.

<순무와 샐러리와 다시마 샐러드>는 전체 작품들 중에서도 제일 독특하다고 생각되는 이야기였어요. 순무 대신 무가 들어있는 샐러드를 산 것에 분개(?)하여 담당자에게 순무가 아니라 무인 것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주인공 기요미. 그런 그녀를 담당자는 귀찮은 고객으로 치부하여 매우 무성의하게 응대하죠. 거기에 더욱 오기가 생겨 어떻게든 순무가 들어간 샐러드를 먹게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나라면 저렇게 요구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귀찮아 그냥 대충 먹고 말았을텐데 기요미는 왜 저렇게 집착하는 것인가, 궁금해지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녀가 살고 있는 세상은, 총기 발사 사건이 만연한 공포와 두려움의 시대.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지켜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순무가 순무인 것이, 그렇게 중요했던 거예요.

이렇게 앞날을 알 수 없는 세상이기에 더욱이 순무는 순무여야 하고 무는 무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p77

필요할 때마다 나타났던 마마의 존재를 위안삼아 살아낼 수 있었던 사람들의 만남을 그린 <마마>, 초등학교 때 있었던 부끄러웠던 추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랜만에 동창회에 참석한 고토의 마음을 묘사한 <매듭>, 여러 번의 생을 반복하며 만나는 인연의 신비함을 그린 <꼬리등>, 사고의 순간 나타난 아내의 모습을 통해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 남성의 이야기인 <파란 하늘>까지 저는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모두 좋았습니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숨을 잠시 멈출 정도로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어떤 이야기에서는 ‘아아, 그렇구나’ 수긍하기도 하면서 완전히 작품에 빠져들어 있었어요. 모리 에토는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작가였지,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은 만남의 폭이 크게 줄어 타인과의 접촉은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지만, 언젠가 만나게 될, 그리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하니 마음이 벅차오른다고 할까요. 모리 에토가 전해 준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이야기가 한층 포근한 겨울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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