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린느 메디치의 딸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박미경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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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프랑스의 앙리 2세의 딸이자 샤를르 9세의 누이인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와 나바르 공화국의 왕인 앙리 드 나바르의 결혼으로 시작됩니다. 가톨릭과 신교도의 결합이자 프랑스 왕가와 부르봉 왕가의 결합을 상징하는 이 결혼은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죠. 결혼식이 있고 난 후 국왕 샤를르는 왕후인 카트린느의 계략에 의해 신교도 학살을 명령하고, 그들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수많은 신교도들이 목숨을 잃습니다.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한 나바르 왕. 그의 왕비인 마르그리트는 나바르왕이 살해당할 경우 자신 또한 왕권을 잃고 권력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릴 것을 우려하고, 앙리를 사랑하지는 않더라도 그가 죽을 경우 단순한 미망인의 삶을 살게 될 것을 걱정하며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립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음모와 계략, 사랑과 배신의 대 서사시.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는 카트린느 메디치의 딸이기도 하고, 애칭은 ‘마르고’, 우리가 영화 <여왕 마고>로 알고 있는 바로 그 여성입니다. [삼총사]와 [몽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유명한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마고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여인이 아니라 상황을 바라보는 눈이 날카롭고, 임기응변과 사람을 부리는 데 능수능란한 여성으로 그려져 있어요. 일견 순수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위해서라면 한 사람의 사랑조차 인생에서 부수적인 것으로 여기는, 가차없는(?) 여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녀가 어디 어머니인 카트린느 메디치에 비하겠습니까. 그녀의 모후인 카트린느 메디치는 뼛속까지 정치인, 필요에 따라서는 사람을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무서운 여인입니다. 작품 배경 속 프랑스는 카트린느 메이치의 손 안에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왕조가 바뀐다는 징조에 극심한 불안함을 느끼고 어떻게든 나바르왕을 죽이려하는 계략을 짜내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백설공주 속 마녀왕비와 흡사합니다.

 

카트린느 메디치와 나바르왕, 마고 이외에도 그녀를 사랑하는 라 몰 백작, 그의 친우가 되기로 맹세한 코코나, 주술사이자 약제사인 르네, 나바르왕의 정부인 샤를로트 등의 등장과 활약은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며 궁정암투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문체가 조금 투박하기는 해도 읽다보면 자꾸 빨려들어가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읽다가 결국 마지막 장에 이르고야 말았습니다. 나바르왕과 마고왕비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흥미진진한 궁정암투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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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용기가 필요할 때 읽어야 할 빨간 머리 앤 내 삶에 힘이 되는 Practical Classics 1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깨깨 그림, 이길태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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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근깨 빼빼마른 빨간 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저절로 노래를 흥얼거리게 만드는 빨간 머리 앤. 단순한 느낌일 수도 있지만, 요즘 '빨간 머리 앤' 열풍이 다시 불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출판사에서 [빨간 머리 앤] 책이 출간되고 있어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어요. [작은 아씨들], [키다리 아저씨]와 더불어 [빨간 머리 앤]은 출간되는 족족 사들이는(?) 저지만, 요즘 같아서는 엄격한(?) 검열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왜 이렇게 우리는 앤에 열광하는 걸까요. 곰곰 생각해보니, 앤이 가진 긍정의 에너지 때문 아닐까 싶은데요, 고아이지만 밝게 살아왔고, 소박한 것을 사랑하고, 작은 즐거움도 놓치지 않는 앤의 모습을 보면 절로 미소가 피어오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여겨집니다. 게다가 길버트와의 은근한 로맨스까지!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요소가 참 많잖아요!

내용은 안 읽어본 사람들 빼고 모르는 분들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요 책, 받아들고보니 원래 앤이 이렇게 두꺼웠나 싶을 정도로 묵직합니다. 그래서 저는 내용을 다 알고 있음에도 다시 정독했어요. 다시 읽어도 참 재미있는 앤의 이야기지만 이 책이 특별한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앤이 단발로 변신!했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 책에는 빨간 머리 앤 뿐만 아니라 북극곰 꼬미도 등장해요. 꼬미는 거대한 빙하가 녹아내리며 만들어진 빙하 조각 위에서 잠이 들었는데요, 이 빙하 조각이 해류에 떠밀려 흘러가다가 캐나다의 어느 섬에 도착합니다. 섬의 이름은 프린스에드워드. 바다 위를 표류하다가 섬에 다다른 꼬미는 100여 년 만에 환생한 단발의 빨간 머리 앤을 만나요! 둘은 앤과 다이애나가 그랬던 것처럼 둘도 없는 친구가 되죠. 이 둘의 이야기, 책 속의 앤과 현대의 앤이 느끼는 고민에 대해 함께 생각하면서 꼬미는 앤에게 의미있는 말들을 들려줍니다. 총 20가지의 메시지가 함께 실려 있어요.

깨깨님의 그림으로 다시 태어난 단발의 빨간 머리 앤도 참 귀엽습니다. 이렇게 보니 책 속 100년 전 앤이 하던 고민과 지금 우리가 하는 고민이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때문일까요. 우리가 앤을 계속 찾는 이유. 같은 고민을 하는 앤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앞을 향해 달려나가는지 보면서 우리도 용기를 얻고 해답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긍정 마인드도 중요하지만 좌절에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앤의 도전 정신 또한 우리가 닮고 싶은 모습 중 하나일 겁니다. 고전 속 앤과 현대의 앤, 그리고 북극곰 꼬미가 들려주는 말에 한 번 귀기울여보세요. 어느 새 고민이 스르르, 사라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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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를 위한 7가지 성공 씨앗 - 남자아이 편
나카노 히데미 지음, 이지현 옮김 / 창심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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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 요즘 저희집 첫째 곰돌군에게 일춘기가 찾아왔습니다. 하지마! 싫어! 안해!-라는 말은 물론이고, 오늘밤은 심지어 아빠를 물기까지 하더군요. 눈꼬리는 위로 촥 올라가 있고요. 자기가 잘못해놓고 혼나면 세상세상, 그렇게 서럽게 울 수가 없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웩웩 하면서 울어요. 이게 다 무슨 일이죠! 어떻게든 대화로 풀어보려고 하지만 네 살짜리와 명확한 대화가 될 리가 없고, 아이는 아이대로 저희는 저희대로 당혹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문득 반항하는 첫째 곰돌군의 눈을 보고 있자니, 저 아이에게 정말 사춘기가 와서 제대로 반항을 하면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까 생각해봤어요. 아들이라 엄마인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더 늘어날텐데 그 때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옵니다. 하지만! 가만히 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엄청난 성공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아이> 편으로 콕 집어 나온 책을 보니 정말 궁금했습니다.

앞으로의 시대에 남자아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소중히 여기고,

타인의 마음과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애정을 겸비해야 한다.

또한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실패하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강인함도 필요하다.

인생에서 진정한 성공을 거머쥐는 남성으로 키우려면

실로 다양한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남자아이의 성공론입니다. 읽다보니 슈퍼맨을 만들어줘야 하는 건가 싶었어요. 하지만 조금 과도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모두 필요한 자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소중히 여기고, 타인을 위하는 배려심과, 도전 정신, 좌절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정신력, 경제력 등 부모라면 아들에게 누구나 바랄만한 사항이겠죠. 뭔가 -나는 욕심이 없어, 그저 건강하게 잘 크기만 하면 돼-라고 막연히 생각해왔던 저의 속마음을 홱 뒤집어 보이며 코웃음을 치는 것 같은 대목이었습니다. 정말 그게 아들에게 바라는 전부냐고. 그래서 솔직해져 보겠습니다. 탐납니다. 저런 아들. 명예와 부를 중심으로 한 삶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내면이 훌륭하게 커주길 바라요. 저자는 이런 저의 속마음을 꿰뚫어보듯 아이에게 심어줘야 할 성공씨앗 7가지를 제시합니다.

저자는 특히 잠재의식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양치를 강요받는 기분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양치하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하는 것. 명령이나 지시처럼 느끼는 대신 무심코 그 말을 순순히 받아들여 행동하게 만드는 '슬며시 던지는 메시지', 암시야말로 잠재의식을 자극해 우리의 사고와 감정, 행동패턴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입니다. 부모의 말, 부모의 행동이나 태도, 부모의 삶의 방식을 암시의 형태로 전달하면 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해요. 그래서 저자가 제시하는 성공씨앗의 앞부분에는 모두 '남자아이의 잠재의식에 슬며시~' 라는 문구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그 씨앗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씨앗, 학력 증진의 씨앗, 사람을 잘 사귀는 씨앗, 사랑받는 남자가 되는 씨앗, 쉽게 포기하지 않는 강인함의 씨앗, 자기 관리의 씨앗, 돈을 잘 버는 씨앗입니다.

인상적인 것은 성공씨앗을 위한 지침 뿐만 아니라 절대로 심어서는 안되는 '실패의 씨앗'들의 예시까지 제시되어 있다는 점이에요. 성공씨앗 부분을 읽으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볼 수 있다면, 실패씨앗을 통해서는 그 동안의 저의 행동을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가슴 뜨끔한 부분이 많더라고요. 학력 증진 씨앗 부분에서는 매우 노골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자격증'을 목표로 삼도록 할 것을 적극 추천한다고 되어 있는 것도 독특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자는 어차피 공부를 많이 시킬 것이라면 평생 먹고살 수 있는 자격증을 따게 해서 가능하면 일의 보람도 느끼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직업을 갖게 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 자신과 맞는 부분을 선택하면 되겠지만,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있음에도 여전히 학력위주인 우리 사회에서 한 번쯤 생각할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에?'로 시작하는 질문이 아이의 잠재의식을 자극할 수 있다고 하면서 각 챕터의 마지막에는 그 항목과 어울리는 질문이 들어 있어요. 아이와 한 번쯤 대화를 나눠보면 어떨까 싶은 질문들이었습니다.

부모 노릇 하기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나날입니다.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는 기본적인 생활습관은 물론, 아이의 내면의 모습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아이의 인생을 성공과 실패로 양분해서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이왕이면 훌륭한 남자로 성장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훌륭한 남자,에 대한 기준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아이와의 끊임없는 대화로 만들어나갈 생각이에요.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이 일춘기를 무사히 통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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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맨션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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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로 양식을 주업으로 하던 어촌은, 한 기업이 지자체와 협력을 맺어 오피스 빌딩과 공장 건물이 올라가자,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젊은 사람들이 이사를 오기 시작했다. 기업은 IT와 생명공학 분야에 사업을 확장했고, 빠르게 성과를 냈으며, 도시는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기업의 성장이 지역의 발전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던 탓에 지자체는 파산을 신청했고, 도시는 기업에 팔려 이상한 도시국가가 탄생했다. ‘타운’이라 불렸다. 타운에는 주민권을 가진 L과 주민 자격은 갖추지 못했으나 범죄 이력이 없고 간단한 심사를 통과하면 받을 수 있는 L2가 있다. L도 L2도 아닌, 마땅한 이름이 없는 이들, ‘사하맨션’에 사는 사람들 뿐 아니라 ‘사하’라 불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 ‘사하’라 불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도경이 차 안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의식을 찾은 그와는 달리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수. 도경은 수의 시신을 뒤로 하고 정신없이 내달린다. 보도블럭에 긁힌 오른쪽 무릎에서 선홍색 핏방울이 떨어져 내릴 때 도경은 수를 생각한다. 할 것도 없고 사람도 없었던, 그래서 그들이 자주 찾아갔던 공원. 그 곳에 도경은 수를 버려두고 도망쳤다. 동반자살을 꿈꾸었던 사람들이었던가. 그도 아니면 살인 사건인가. 단순한 개인의 일이라 여기며 읽어 내려가는 눈에 도경이 몸담았던, 수가 들어왔던 세상이 열렸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부유하며 질 높은 삶을 영위하는 타운 사람들과는 달리 추방, 낙오, 소외된 자들이 숨어 사는 낡은 맨션, 사하. 누군가에게는 비참한 생의 종착지였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허락된 마지막 공동체이기도 한 곳. 그 맨션에 진경과 사라, 수와 도경, 꽃님이 할머니와 우미, 우연, 관리인 영감이 살고 있다. 누군가는 30년 전에 아이를 낳고 목숨을 잃었고, 어떤 이는 사하맨션에 찾아와 보금자리를 얻었다. 타운의 주민들은 업신여기고 추방하길 바라는 그 장소에서 사하맨션 사람들은 희망을 생각했고, 먹고 마시고 즐기며 하루하루를 만들어나갔다.

 

사하맨션에 사는 사람들은 감히 저항하지 못한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것이 순리였으므로. 하지만 자신들의 공동체가, 항상 함께 했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고 소중한 것을 빼앗길 위기가 닥치자 마침내 일어선다. 당신들은 틀렸다고. 사람들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조남주 작가가 [82년생 김지영]으로 인해 페미니즘에 불을 붙였고, 그 다음 작품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은 당연한 일이며, 때문에 분연히 일어난 한 인물이 여성이라는 것, 대목마다 큰 역할을 해내는 것이 여성이라는 점에 의미부여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그 인물이 여성인가 남성인가, 어른인가 아이인가를 따지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의 연대, 배려, 사랑 같은 끈끈한 것이니까.

 

작품 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사하는 실제로 우리 삶 곳곳에 살아있다. 소외와 그로 인해 발생되는 폭력, 원통함과 차별. 작가는 이제 그 모든 것에서 눈 돌려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원래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함께 살아가길 꿈꾸어야 한다고. [사하맨션]은 비참함 속에서 길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어서 눈을 뜨라고 재촉하는 목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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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다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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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든 동물이든 괜찮으니까

다시 태어나도 엄마의 딸이었으면 좋겠어.

 

무엇이든 좋으니 다시 태어나도 엄마의 딸이기를 바란다는 딸 다나카 하나미. 그 엄마가 굉장히 부자이고 딸 하나를 살뜰히 보살피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도 딸로 태어나고 싶은 거냐고 묻는다면, 하나는 망설일 것이다. 하나의 엄마는 가족도 남편도 없이 공사장에서 험한 일을 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먹을 것에 탐욕스러울 정도로 집착하며, 그들의 형편은 매일 반값 세일하는 음식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일 정도로 풍족하지 못하니까. 하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마리에와 미키의 부모가 거리에서 그들과 마주친다면 억지 웃음을 지으며 황급히 자리를 피할지도 모른다. 시치고산을 위해 신사를 찾은 마리에 가족이 은행을 줍기 위해 그 곳을 찾은 하나와 엄마를 발견한 표정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림처럼 떠올랐다. 그럼에도 하나는 이런 엄마의 딸로 다시 태어나기를 소망한다. 엄마야말로 자신의 가장 큰 행복, 하나를 열심히 살게 하는 단 하나의 이유이니까.

가난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헌신과 희생, 배려로 서로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모녀의 이야기를 그린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2003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문학상의 상금을 모아 좋아하는 잡지를 사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스즈키 루리카 작가의 나이는 고작 열네 살이었다. 초등학교 4,5,6학년에 걸쳐 일본 대표 출판사 쇼가쿠칸에서 주최하는 '12세 문학상' 대상을 3년 연속 수상한 실력파다. 반나절 만에 쓴 열한 장의 자필 원고에서 시작된 소설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은 그녀의 첫 소설집이며 출간 직후 10만 부 이상 판매되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사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는 한 '소녀'의 단순한 자서전식 글인 줄 알았고, 단순한 감성팔이가 아닐까 색안경을 끼고 보며 그녀를 작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인 하나의 시선에서 바라본 현실은 생생했지만 차갑지만은 않았고, 어린 나이임에도 포기해야 할 것은 많았지만 그로 인해 좌절하지 않는 씩씩한 소녀의 모습이 희망차게 그려져 있다.

초등학교 6학년 소녀가 궁금해할만 일들, 이를테면 자신의 아빠는 누구인지, 자신의 존재가 엄마의 재혼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들이 아이의 시선이지만 차분하게 깊이있게 다가온다. 여자라면 당연히 마다할 힘든 막노동을 하고, 값싼 음식을 발견한 것에 최고로 기뻐하며, 심지어는 길에 떨어진 음식도 주워먹는 엄마. 존경하거나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길에서 오랜 시간 버텨낸 노숙자라고 대답하는 엄마.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이들의 이름과 나이를 수첩에 적어놓고 남몰래 공양하는 엄마. 일가친척 하나없이, 남편도 없이 딸 하나를 키우는 엄마. 그럼에도 큰 소리로 웃고 맛있게 밥을 먹고 누구보다 자신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강인한 엄마를 하나는 사랑한다. 그런 하나의 마음이 이 책 전체에 담겨 있어 가슴아픈 느낌보다는 따스한 기분이 전해져왔다.

가난하다고 전부 불행한 것인가. 아니, 불행해야만 하는 것인가. 작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듯 하다. 하나보다 부유하고 아빠도 있는 친구 마리에와 미키는 중학교 입시를 위해 초등학교 마지막 방학을 모두 바쳤다. 어린 나이임에도 감당해야 하는 시험이라는 긴장감과 부모의 기대에 아이들은 벌써부터 중압감을 토로한다. 동급생들의 오해때문에 변태로 낙인찍힌 신야는 엄마의 과도한 교육열로 그녀의 손에 의해 진학할 학교가 정해졌다. 형과 누나가 우수했기 때문에 더 도드라질 수 밖에 없는 신야의 부족함. 엄마는 신야의 '존재'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직 신야가 어떤 중학교에 입학하는 지에 몰두한 나머지 원하는 학교에 떨어지자 온갖 악담을 퍼붓는다. 게다가 눈 앞에서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속내를 털어놓고, 그 소리를 신야가 듣기까지 한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부모 앞에서 아이가 느끼는 절망감과 슬픔이 해일처럼 밀려와 글자를 읽는 나의 마음까지 잠식해왔다.

그에 반해 우리 하나. 해맑다. 세상 물정에 밝은 엄마와 집주인 아줌마 덕분인지 세상을 살아가기에 부족함 없는 상식도 갖추었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 또한 일품이다. 절망감에 빠져 허우적대는 신야를 집으로 초대해 엄마와 함께 그를 위로하고, 잊지 못할 추억까지 선물한다. 비록 아빠는 없지만 하나는 엄마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 존재만으로도 하나는 엄마에게 기쁨이었다. 하나 없는 재혼은 엄마는 상상할 수 없다. 어디선가 한 쪽 부모가 없다면, 다른 한 쪽 부모가 사랑을 듬뿍 주면 된다고, 그러면 아이의 마음에 결핍은 생기지 않는다고,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의 마음에 결핍이 생기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비록 소설이지만 하나와 엄마가 그 사실을 증명해주었다.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가 베풀 줄도 안다는 말을 하나를 보며 실감했다.

슬플 때는 배가 고프면 더 슬퍼져. 괴로워지지.

그럴 때는 밥을 먹어.

혹시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슬픈 일이 생기면

일단 밥을 먹으렴.

한 끼를 먹었으면 그 한 끼만큼 살아.

또 배가 고파지면 또 한 끼를 먹고

그 한 끼만큼 사는 거야.

그렇게 어떻게든 견디면서 삶을 이어가는 거야.

열네 살 나이에 쓴 작품이라기에는 세상을 훤히 꿰뚫어보는 느낌이다. 슬플 때 배가 고프면 더 슬퍼지니 밥을 먹으라니. 사실 이 말은 작가의 할아버지가 그녀에게 들려준 말이라고 한다. '희망이 느껴지는 소설이 되면 좋겠다'는 그녀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있는 문구라고 할까. 이 문장을 읽는 동안 가슴이 내내 먹먹했다. 쓴 사람의 나이 따위는 상관없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찬사에 나도 동감한다. 재미와 감동을 함께 전달하는 유쾌하고 따스한 작품. 이 모녀의 뒷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질 정도로 심취해서 읽었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무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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