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하지 않는 남자 사랑에 빠진 여자
로지 월쉬 지음, 박산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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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만난 에디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느낀 사라. 멋진 일주일을 보내고 각자의 일정에 따라 잠시 이별하지만 다시 만날 것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혀 연락이 되지 않는 에디. 전화에도 SNS에도 응답하지 않고 마치 연기처럼 증발해버렸다. 사라의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사이 친구 조와 토미는 그저 한순간의 유희였을 뿐, 에디가 사라를 진지한 인연으로 생각한 것 같지 않다며 그냥 잊으라 조언한다. 하지만 사라 뿐만 아니라 에디와 스페인에 가기로 한 알란도, 마틴이라는 사람도 에디의 근황이 궁금하다고 SNS에 글을 남겼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상한 전화와 문자들. 에디에게서 멀리 떨어지라는 경고에 사라는 이 만남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지만 여전히 이 남자의 존재가 궁금하다!

달콤한 사랑의 밀어들도 에디가 연락하지 않으면서 아무 소용 없게 되었다. 그가 한 말들, 그가 한 행동들을 곱씹어보며 대체 무엇이 잘못된 건지 계속 따져보는 사라다. 그녀의 행동은 사랑에 빠진 여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행동들이다. 내가 여자기 때문에 남자도 그런 것인지 잘 모르니 '여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행동'이라는 단서를 달아둔 것일 뿐, 남자들도 사랑에 빠지면 사라처럼 행동할 수 있다. 전화를 기다리고, 연락이 되지 않는 상대를 답답해하고, 나에게 질릴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메시지를 보내고. 어쩌겠는가. 나는 이미 그에게 빠져버린 것을. 파탄난 결혼 생활 속에서 한 줄기 빛과도 같은 에디를 만나버린 것을. 혹시 내가 결혼했었던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이 원인인가, 아니면 나의 비밀을 에디가 알아버린 것일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연락하지 않은 그가 정말 이상하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니겠지. 불안과 두려움 속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라에게 마침내 에디가 찾아온다. 그들의 오랜 인연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로맨스 스릴러-라는 홍보문구에 에디가 말도 못할 짓을 저지른 범죄자라도 될 줄 알았다. 사실은 그가 킬러이며 우연히 사라를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중이라 연락을 못한 것이라고. 혹은 에디가 연쇄살인마로 사라는 그의 정체를 모르고 사랑하게 된 가련한 여인이거나. 하지만 밝혀진 진실은 더 뼈아픈 것이었다. 사라가 아끼고 지켜주고 싶어했던 동생 한나와 관련된 그들의 인연. 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했던 행동이 커다란 비극을 낳아 그 일과 연관된 누구의 삶도 온전치 못하게 했다. 게다가 과거의 행동이 이번에는 에디와 사랑의 행보에 커다란 족쇄를 채운다. 그 족쇄를 부수고 그들은 과연 함께할 수 있게 될까.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게 될까.

사랑과 용서에 관한, 기적같은 구원에 대한 이야기다. 도저히 있을 수 없을 것이라 여겼던 미래가 또 다른 한 생명으로 밝게 빛난다.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한 순간의 쾌락에 열중하고 상대를 차버리는 남자와 그런 남자에게 끈질기게 매달리는 여자를 그리는 상투적인 내용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그런데 만약 제목이 뒤바뀌었다면 어떤 느낌이 날까. 전화하지 않는 여자, 사랑에 빠진 남자였다면. 문득 이런 제목으로 후속작이 나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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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온 - 잔혹범죄 수사관 도도 히나코
나이토 료 지음, 현정수 옮김 / 에이치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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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가 두려울 정도로 잔혹하고 엽기적인 범죄의 묘사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대학원에 진학해 기숙사비를 아끼기 위해 값싼 방을 구하던 한 청년. 지은 지 35년 정도 되었지만 거실에 작은 방과 부엌이 딸린 집세 3만 엔의 싼 방을 구경하러 간 부동산업자와 청년의 눈 앞에 나타난 것은 잔인하게 살해된 한 소녀의 시신이었다. 설령 그것이 어떤 숭고한 목적을 위해 신이 허락한 행위였다고 해도 자신만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한 청년의 입에서 무시무시한 비명이 쏟아져나온 후 5년. 도도 히나코는 하치오지 니시 경찰서의 형사 조직범죄 대책과에서 사건파일을 뒤적이면서 수사 개요나 피해자의 상황을 머릿속에 입력시키고 있다. 그녀는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형사가 되기를 희망하는데, 그런 그녀를 응원하는 것은 친구 히토미와 돌아가신 어머니가 주신 고향의 고춧가루.

 

아직 풋내기에 불과한 도도는 간씨와 함께 어떤 사건 현장으로 향한다. 피해자는 택배기사였던 미야하라 아키오. 스토커, 강제외설 혐의 등으로 세 번 검거된 전과가 있고 2010년 8월 하치오지 니시 인터체인지 아래에서 발견된 여고생 교살 시체의 용의자였다. 발견된 미야하라의 시신은 처참했는데 그 모습은 도도의 기억 속에서 2010년 교살된 여고생의 사건파일과 비슷하다는 기록을 불러왔다. 발견된 그의 휴대폰 동영상에는 그가 살해당할 당시의 정황이 찍혀 있었는데 마치 누군가로부터 위협을 당하는 모습과는 달리 미야하라 외의 다른 인물을 찍혀 있지 않은 상태. 의문만 더해지는 가운데 연이어 벌어지는 사건들의 피해자들은 과거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 똑같은 방법으로 살해당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복수인가, 죄책감으로 인한 자해인가. 이론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수사가 난항을 거듭하는 가운데 만난 심료내과의 나카지마 다모쓰. 정도 많고 눈물도 많은 그와의 만남으로 마음 한켠에 따스한 온기를 간직하게 된 도도의 앞에 예상치 못한 시련이 다가오면서 그녀는 한 가지 예상으로 머리가 번뜩인다.

 

으아. 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나지만 정말 오랜만에 읽기 힘든 작품을 만났다. 잔혹 엽기 범죄 사건. 시신의 모습과 사건 정황을 이리도 노골적이고 적나라하게 묘사하다니, 가능하면 건너뛰고 싶을 정도로 처참하다. 처참한 정도가 아니라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것인가, 나를 둘러싼 세상 전체를 의심하게 될 정도로 잔혹한 소설. 무서움과 두려움을 넘어 이건 밤잠을 설칠 정도에 이 정도면 급기야 몸까지 아파온다. 그 잔인함이 나카야마 시치리의 충격적인 작품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시리즈>에 비견된다고 하면 짐작이 될까. 그 시리즈를 읽고 처음에는 내 다시는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을 읽지 않으리라 결심했을 정도였는데 인간의 악의와 섬뜩함의 강도는 [온]이 더 강한 것 같다. 아무렇지 않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을 몇 번이나 머릿속에서 재생하는 범죄자의 극악무도함. 피해자의 애원과 망가져가는 모습에서만 느낄 수 있는 쾌락. 어째서 인간은 이리도 잔인할 수 있는 것인가, 씁쓸한 맛에 입술이 바싹 말라온다.

 

단순한 엽기 범죄 잔혹 소설이 아니라 작품 안에서는 제법 심오한 논리가 펼쳐진다. 살인하는 유전자가 정말 있을 수 있는 것인지, 뇌의 어느 한 부위에 스위치가 켜지면 인간이 살인범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이 이어지는데 이 부분을 무시할 수 없어 꽤 찬찬히 시간을 들여 읽었다. 적당한 분량인데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읽는 시간이 걸렸던 것은 이 부분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인데, 여전히 나는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사실 쾌락을 위해 동족을 죽이는 것은 인간 뿐으로, 사람을 죽이는 상황에서 이미 범인은 미쳐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그 와중에 '형광등 베이비'였던 오토모 쇼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었다. 만약 그가 자신을 사랑해주는 부모를 만났더라면, 그가 제대로 된 돌봄을 받았더라도 범죄를 저질렀을까. 하지만 누구나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떠올리면 역시 범죄는 범죄일 뿐 그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다는 생각이다.

 

잔혹한 사건들 가운데 도도 히나코의 풋내기 경찰만이 보여줄 수 있는 순수함과 감동적인 감정이입 모습은 청량감을 전달한다. 엄청난 일을 겪으면서 그 일을 발판으로 더 단단해지는 도도의 모습은 앞으로 그녀가 보여줄 활약이 더 커질 것임을 암시한다. 2014년에는 동명의 드라마가 제작되기도 하는 등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품. 아무래도 제목이 의미하듯 시리즈에서 잔혹 범죄에 대한 묘사가 멈출 것 같지은 않지만, 그래도 도도 히나코가 활약하는 모습은 계속 지켜보고 싶다. 쉬엄쉬엄 읽기는 했으나 책장을 펼치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어내려갈 수밖에 없었던 소설. 잔혹한 사건들 가운데서도 청량감을 잃지 않도록 '가라! 히나코!'라는 응원을 나 또한 그녀에게 보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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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베의 태양
돌로레스 레돈도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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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여진 이야기가 주는 즐거움]

한창 작품을 집필 중인 마누엘. 그런 그의 집 문을 누군가가 다급하게 두드린다. 무시하려고 생각했던 문 두드림은 시간이 갈수록 집요해지고, 결국 문을 연 그의 앞에 과르디아 시빌(스페인의 국가 헌병대로 군 조직이면서 평시에는 각 지역의 치안을 담당한다) 대원 두 명이 서 있다. 마누엘에 전해진 배우자 알바로의 사고소식. 어젯밤에 통화까지 마친 사랑하는 그의 죽음을 바로 믿을 수는 없다. 게다가 출장으로 바르셀로나에 가 있어야 하는 알바로가 어째서 루고 주에 있는 몬포르테에서 사고를 당했단 말인가. 알바로의 비서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그의 거짓말. 심지어 그의 시신을 확인하러 간 마누엘에게, 수년간 가족과 인연을 끊고 살고 있었다 생각한 알바로가 사실은 그의 아버지의 작위를 이어받아 후작으로서 가문의 책임을 다하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전해진다. 혼란스러운 마누엘에게 알바로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라 살인인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은퇴한 경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간할 수 없는 가운데 사랑하는 이의 숨겨져 있던 이야기가 드러난다.

진정한 벽돌책이라 불릴만한 두께. 옮긴이의 말까지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자랑한다. 마치 누군가의 비밀을 엿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창문과 그 안의 인물, 덩굴로 표현된 표지는 이 책을 펼치는 순간 심상치 않은 세계로 우리를 인도할 것임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과연 이 책을 끝까지 소화할 수 있을 것인가-애초의 우려와는 달리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쓱쓱 넘어가는 속도가 놀랍다. 사랑하는 배우자의 죽음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인데, 믿고 의지하던 그가 사실은 자신에게 거짓을 말하고 있었다는 데 더 놀란 마누엘의 비통한 심경이 초반부터 몰입감있게 전해진다. 동성애자로서 사회 중심부에서 인정받기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마누엘, 과르디아 시빌에서 전역하며 공적 영역에서 물러난 데다 가족들과 단절된 삶을 살아오는 노게이라, 힘있는 사람들보다 약자들을 위해 활동하는 루카스 신부. 이 세 사람이 알바로의 죽음에 의문을 느끼며 그의 가문에서 일어난 의심스러운 다른 사건들에도 파고드는데, 그 모습은 마치 그 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계급의 인물들이 이제야 드디어 힘을 발휘해 기득권에게 대항하는 양상을 띤다. 추리소설임에도 숨가쁜 추적과 스릴을 선사하기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거대한 인생의 한 면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더 강하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리고 있고 그 기법에 충실하지만 이 작품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크고 강하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쫓아가는 과정 속에서 잘 쓰여진 이야기가 주는 감동의 물결에 몸과 마음이 휩쓸리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돌로레스 레돈도라는 이름은 이번에 처음 접하지만 사실 그녀는 스페인에서는 꽤 이름있는 작가에 속한다. 이 [테베의 태양]은 <진정한 문학 스릴러의 여왕>이라는 찬사와 함께 2016 스페인 최대문학상 플라네타, 2018 이탈리아 문학상 프레미오 반카렐라를 안겨주었다고 한다. 어째서 이 두께여야 하는가, 어째서 주인공이 동성애자였는가, 읽다보면 의문이 가시는 작품. 그녀의 <바스탄 3부작>도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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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아기씨 보랏빛소 그림동화 9
박세연 지음, 이헌익 사진 / 보랏빛소어린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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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만난 그림책은 조금 독특합니다.

백희나 작가님 그림책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요,

작가님이 취미로 만들던 도자기로 그림책을 펴냈다고 합니다.

작가님이 만든 도자기들을 포토그래퍼인 이헌익님이 따뜻한 시선으로 프레임 속에 담아낸 책이에요.

따뜻한 봄날, 꽃대만 남은 엄마 민들레 머리 위에 아기 홀씨들이 내려앉아 있습니다.

이제 저마다의 길을 떠나야 할 시간이에요. 슬프지만 희망 찬 작별의 시간.

홀씨들은 엄마와 형제들과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길을 떠납니다.

다른 형제들이 모두 떠나고 엄마의 머리 위에는 작은 날개를 단 아기씨 하나만 남았네요.

날개가 작아서 잘 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아기씨에게

엄마는 작으면 가벼워서 더 잘 날 수 있다며 용기를 줍니다.

엄마의 용기와 조언으로 힘차게 날아오른 아기씨.

엄마에게 작별인사를 하는데요,

으헉. 저 이 장면에서 괜히 눈물이 나면서 울컥했어요.

아이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엄마와 그런 엄마를 바라보며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아기씨라니.

그만 눈물이 줄줄.

아기씨가 싹을 틔우는 여정은 험난하기만 해요.

거미줄에 걸려서 거미가 풀어주기도 하고.

누런 황소의 털이 보드랍고 포근해 보여 황소의 머리 위에 안착하기도 하죠.

다행히 황소가 해님이 바라보는 따뜻한 곳을 찾아보라는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햇빛이 내리쬐는 양철지붕을 발견하고 내려앉았지만

한낮의 양철지붕은 넘나 뜨거운 것!

옆에 앉아있던 참새가 뿌리를 내릴만한 흙을 찾아보라고 알려줍니다.

그런데 그 사이 비가 내기 시작하고

흠뻑 젖은 아기씨의 날개는 너무 무거워져서 하늘을 날 수 없게 되었죠.

양철 지붕에 고인 빗물을 타고 지붕 밑으로 흘러내려간 아기씨.

 

골목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우는 아기씨의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저희집 둘째 곰돌군이 우는 얼굴과 비슷해 보여 살풋 웃음이 나기도 했네요.

그 때 지렁이가 나타나

민들레는 어떤 꽃보다도 강하기 때문에 아주 적은 흙만 있어도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알려줘요.

딱딱한 돌바닥 사이로 빗물을 받아 촉촉해진 흙을 발견한 아기씨.

있는 힘을 다해 뿌리를 내립니다.

 

그리고 며칠 뒤.

긴 잠에서 깨어난 아기씨는 머리위로 자라오른 새싹을 발견해요.

이제 아기씨도 금방 멋진 황금 왕관을 얹은 민들레 꽃이 될 겁니다.

 

도자기로 구성된 그림책은 처음이었지만 그림책 전체에서 풍겨지는 따스함과 포근함에 줄곧 미소가 지어졌어요.

용기있게 길을 떠나는 아기씨와

그 아기씨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마다 곤경에서 구해주는 수많은 생물들.

 

어찌보면 우리 삶도 이렇게 수많은 타인의 도움으로 엮여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자기 그림이라고 해서 딱딱할 것이라 생가하신 분들도 계실텐데요, 노노!

저 표정을 보세요. 흐흣.

생동감 느껴지는 정겨운 얼굴 표정 아닌가요.

 

요즘 그림책 홀릭인 저에게는

가슴 따뜻한 감동과 울컥함을 선사한 멋진 그림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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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살짝 비켜 가겠습니다 - 세상의 기대를 가볍게 무시하고 나만의 속도로 걷기
아타소 지음, 김진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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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와 함께 잘 읽지 않는 장르가 바로 에세이다. 정말 좋은 여행에세이는 제외하고. 예전에는 에세이도 많이 읽었지만 요즘의 에세이란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징징거림, 혹은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대는 일명 감성폭발 글의 총집합이라고 할까. 에세이 작가들에게 조금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휴대폰을 잠깐만 사용해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글들을 굳이 내 돈 주고 사읽고 싶지는 않다. 아이돌의 스토리없는 노래처럼, 그런 글들은 그저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그러니 당연히 이 [저는 살짝 비켜 가겠습니다] 에 대한 첫인상도 그리 좋지 않을 수밖에. 게다가 부제가 '세상의 기대를 가볍게 무시하고 나만의 속도로 걷기'라니, 자신은 남과 다른 독특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잘난 척하는 글이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겨우 193페이지 정도인 이 책을 읽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어려운 내용도 아니고 다른 에세이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을 뿐인데 문장 하나하나를 대충대충 읽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징징거림이 아니라 솔직하게 자신의 상처를 내보인다. 감성적인 글을 따라하지 않고 담백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자신이 누구보다 부족한 사람임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 위에 단단한 자신을 만들어내기 위해 분투하는 작가의 마음고생이 고스란히 오픈되어 있어 그 점이 이상하게 나의 마음을 끌었다.

 

작가는 처음부터 자신이 못난이임을 강조한다. 못생기고 형편없는 외모는 오랫동안 자신의 콤플렉스였으며, 그 저변에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상처가 있음을 고백한다. 자신의 얼굴을 싫어하고 이렇게 못생긴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저주하고 무엇보다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삶을 탓했다. 그리고 생각한다. 말이 지닌 엄청나고 거대한 힘을. 하나의 단어가 그렇게 오랜시간 자신을 옭아매고 힘들게 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자신의 상처를 바탕으로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을 통해 자신을 구원하고 '못난이'라는 속박으로 힘들어하고 있을 또 다른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에 모여진 글들. 그럼에도 싸구려 감성을 내보이지 않고 담백하게 자신의 경험을 기술한다. 이 에세이가 내 마음에 든 가장 큰 이유다.

 

못난이라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분투부터 사회에서 말하는 여자다움이란 무엇인지, 자신이 생각하는 여자다움은 무엇인지, 나라는 인간은 대체 어떤 사람인지, 자립의 조건과 타인을 받아들이는 자세, 사랑은 무엇인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알맞은 거리,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문장 하나하나에 녹아들어있다. 나보다도 훨씬 젊은데도 삶을 대하는 자세,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무척 진지했다. 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작가가 이 한 문장 한 문장을 어떤 마음으로 써내려갔고 얼마만큼의 무게가 담겨있는지 말이다. 분명 그 마음과 시간들이 전해져 나 또한 이 책을 읽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을 것이다.

 

글을 쓰면서 자신을 위로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을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 10년 동안의 꾸준한 글쓰기가 빛을 발해 드디어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그녀의 꾸준함과 용기, 수줍음과 담백함에 응원을 보낸다. 그러고보니 나도 리뷰를 쓴 지 10년이 넘었는데 그 동안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앞으로의 10년은 무엇을 위한 독서와 무엇을 위한 글쓰기여야 할 지 생각해보게 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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