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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살짝 비켜 가겠습니다 - 세상의 기대를 가볍게 무시하고 나만의 속도로 걷기
아타소 지음, 김진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8월
평점 :
자기계발서와 함께 잘 읽지 않는 장르가 바로 에세이다. 정말 좋은 여행에세이는 제외하고. 예전에는 에세이도 많이 읽었지만 요즘의
에세이란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징징거림, 혹은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대는 일명 감성폭발 글의 총집합이라고 할까. 에세이 작가들에게 조금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휴대폰을 잠깐만 사용해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글들을 굳이 내 돈 주고 사읽고 싶지는 않다. 아이돌의
스토리없는 노래처럼, 그런 글들은 그저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그러니 당연히 이 [저는 살짝 비켜 가겠습니다] 에 대한 첫인상도 그리 좋지 않을
수밖에. 게다가 부제가 '세상의 기대를 가볍게 무시하고 나만의 속도로 걷기'라니, 자신은 남과 다른 독특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잘난
척하는 글이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겨우 193페이지 정도인 이 책을 읽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어려운 내용도 아니고 다른 에세이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을 뿐인데 문장 하나하나를 대충대충 읽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징징거림이 아니라 솔직하게 자신의 상처를 내보인다.
감성적인 글을 따라하지 않고 담백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자신이 누구보다 부족한 사람임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 위에 단단한 자신을
만들어내기 위해 분투하는 작가의 마음고생이 고스란히 오픈되어 있어 그 점이 이상하게 나의 마음을 끌었다.
작가는 처음부터 자신이 못난이임을 강조한다. 못생기고 형편없는 외모는 오랫동안 자신의 콤플렉스였으며, 그 저변에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상처가 있음을 고백한다. 자신의 얼굴을 싫어하고 이렇게 못생긴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저주하고 무엇보다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삶을 탓했다. 그리고 생각한다. 말이 지닌 엄청나고 거대한 힘을. 하나의 단어가 그렇게 오랜시간 자신을 옭아매고 힘들게 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자신의 상처를 바탕으로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을 통해 자신을 구원하고 '못난이'라는 속박으로 힘들어하고 있을 또 다른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에 모여진 글들. 그럼에도 싸구려 감성을 내보이지 않고 담백하게 자신의 경험을 기술한다. 이 에세이가 내 마음에 든 가장 큰 이유다.
못난이라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분투부터 사회에서 말하는 여자다움이란 무엇인지, 자신이 생각하는 여자다움은 무엇인지, 나라는
인간은 대체 어떤 사람인지, 자립의 조건과 타인을 받아들이는 자세, 사랑은 무엇인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알맞은 거리,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문장 하나하나에 녹아들어있다. 나보다도 훨씬 젊은데도 삶을 대하는 자세,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무척 진지했다. 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작가가 이 한 문장 한 문장을 어떤 마음으로 써내려갔고 얼마만큼의 무게가 담겨있는지
말이다. 분명 그 마음과 시간들이 전해져 나 또한 이 책을 읽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을 것이다.
글을 쓰면서 자신을 위로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을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 10년 동안의 꾸준한 글쓰기가 빛을 발해
드디어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그녀의 꾸준함과 용기, 수줍음과 담백함에 응원을 보낸다. 그러고보니 나도 리뷰를 쓴 지 10년이 넘었는데 그
동안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앞으로의 10년은 무엇을 위한 독서와 무엇을 위한 글쓰기여야 할 지 생각해보게 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