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그의 사적인 미술산책에, 동행]

미술은 단순히 흥분을, 삶의 전율을 포착해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미술은 가끔 더 큰 기능을 한다. 미술은 바로 그 전율이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미술을 즐기며 사는 삶. 그런 시간을 동경해왔고, 그런 시간들 속에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요즘이다. 근래 들어 특히.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클래식과 명화는 내 삶 속에서 빠질 수 없는 것들이 되었다. 그렇다고 어떤 음악을 듣든 제목을 떠올리거나 그림을 보자마자 화가와 작품명을 바로 알아차리는 것은 아니지만 마주하고 있는 순간만큼은 행복하다. 체계적으로 정리를 해봐야겠다고 마음도 먹었지만 이 게으름뱅이에게는 쉽지 않은 일. 그저 애정하는 몇 작품 간신히 기억하며 살아가는데, 술술 읽히지는 않지만 어디에서도 만나볼 수 없었던 이 미술 에세이를 독파하고나서는 나만의 미술산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 줄리언 반스가 자신만의 미술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을 접해온 자신의 삶을 되짚어보며 미술이란 무엇인가 나름대로 정의를 내린 그는,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에 관한 글을 시작으로 다양한 작품에 대해 견해를 풀어놓는다. 으헉. 그래도 나름 까막눈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소개된 화가들과 작품들을 들여다보니 여전히 나의 지식은 매우 얕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역시 깊고 풍부한 미술의 세계. 그 세계 속을 줄리언 반스의 글과 함께 허우적대고 있자니 얼마나 깊게, 오랜 시간을 들여야 자신만의, 자신을 위한 그림을 보는 눈을 갖게 될 것인지 궁금하기조차 하다. 그가 제리코의 작품에 대해 처음 쓴 것은 1989년. 더 할 말이 없다.

 

독자들에게 친절한 책은 아니다. 글자들이 매우 성의있게 빽빽하고 여타의 그림 에세이들처럼 명화 자료가 풍부하지도 않다. 서술하는 방식 또한 의식의 흐름을 따른 듯 소설의 형식을 빌리기도 하고 평범한 에세이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는데, 마치 따라올테면 따라와봐! 같은 느낌이랄까. 읽을 때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은 명확하다. 그리고 줄리언 반스만의 미술 세계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어디서도 쉽게 해볼 수 없는 경험. 소설에 다양한 에세이에 이번에는 미술까지. 이 남자가 쓰지 못하는 분야가 과연 있을까. 그의 세계에 이미 심취한 독자라면, 이 책도 충분히 매력적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로미키친의 한끼밥상
서세연 지음 / 경향BP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천성적으로 게으른 편이다. 절대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다. 결혼하기 전 휴일에는 아침에 잠에서 깼어도 이불을 둘러쓰고 한참동안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며 한가로이 침대와 한몸이 되는 것을 즐겼고, 그저 해야하는 일만 어떻게든 해내며 살아왔다. 결혼한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어리고, 정리하고 치워도 다시 어질러지는 건 마찬가지. 그래, 그렇다면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대충 치우며 살자-생각했다. 그래서 청소도 대충대충, 내 눈에만 만족스러우면 오케이. 빨래는 열심히 한다. 곰돌이 아빠와 곰돌이들이 입고 나갈 옷이 없으면 안되니까. 문제는 요리인데, 요리가, 요리는. 참 어려운 문제다, 나에게는. 요리하는 걸 싫어하지는 않는데 지금의 내 상태에서는 온전히 집중해서 요리할 수가 없다. 둘째 곰돌이는 업어야 하고, 첫째 곰돌이는 놀아달라 다리를 부여잡고 늘어지는 상황에서 요리는, 나는 못하겠는데, 이건 핑계가 될 수도 있는 건가. 그런 것인가.

 

그래도 어쨌든 먹고 살아야 하니 시간나는대로 레시피를 들여다본다. 친정과 시댁에서 반찬을 많이 공수해오기는 하지만, 같은 메뉴가 몇 번 돌면 질리기도 하고, 뭘 사먹어도 한계가 있어서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보고는 싶은데, 또 하나의 문제는 내가 그다지 먹고 싶은 게 없다는 것이다. 두 녀석들 뒤 살피다보면 그냥 이 아이들이 먹다 남긴 것으로 끼니를 때울 때가 많은데 오늘 저녁도 마찬가지였다. 간은 심심하게, 매운 양념은 가급적 자제. 아이들 식사 챙기는 것으로도 시간이 부족한데 어떻게 내가 먹을 음식을 따로 차리겠나 말이다! 그나마 곰돌이 아빠가 다이어트에 들어가서 집에서 식사를 안 하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그래서! 이 책이 궁금했던 것이다! '간단하면서, 맛있고, 영양도 갖춘 다이어트 식단'. 지금 우리 가족에게 꼭 필요한 레시피들.

 

그동안 많은 레시피북들을 봐왔지만 보는 순간 '정갈하다'는 단어가 떠오른 책은 처음이었다. 사진을 잘 찍었나, 설명이 단순한가, 왜 때문이죠. 아이들이 아직은 먹기 어려운 요리도 보이지만 <닭가슴살함박스테이크+버섯미소장국+두부브로콜리무침> 요런 건 괜찮다 싶다. 대부분의 요리에 들어가는 양념도 간장, 소금, 맛술, 설탕 요 정도로 매운 양념이 들어가는 메뉴는 그렇게 많지 않아 고르기가 쉽다. 다이어트에 맵고 짠 것은 최악. 양념의 양이나 가짓수가 일단 마음에 든다. 집에서 삼치구이를 자주 해먹는데 여기에 대파된장소스와 오징어콩나물국, 미나리겉절이가 들어간 식단도 있어 한 번 도전해봐야겠다. 이상하다. 책을 한 장씩 넘겨보는데 이상하게 자꾸 봄이 생각난다. 봄을 위한 메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메뉴가 다 그런 것은 아닌데도.

 

게으르고,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유가 부족한 요즘의 나에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 조리법은 버겁기만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조리법도 간단하고 들어가는 양념도 많지 않아 딱 우리 가족을 위한 식단이랄까. 약간의 부지런을 떨어봐야지. 그래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니. 그런데. 뭔가 이 식단에 어울리는 그릇을 구매해야하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기병 - 인생은 내 맘대로 안 됐지만 투병은 내 맘대로
윤지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날 동네병원에서 위암 진단을 받았다. 유명한 병원 세 군데를 돌고난 후 많은 사람들이 추천한 한 병원에서 시티 검사를 했고, 위암 3기 정도 된다는 진단 후 수술 날짜를 잡았다. 개복 후 들은 진단명은 위암 4기. 말기였다. 위암 4기 환자의 1년 생존율은 7%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항암 치료를 받다 악화되거나 수술을 해도 재발, 전이로 고생하다 사망한다고 한다. 봄 햇살을 연상시키는 똥꼬발랄한 표지 속에 이런 내용이 숨어 있었을 줄이야. 나는 그저 한바탕 눈물 흘리며 웃을 수 있는 그런 에세이나 만화인 줄 알았다. 사기병-이라는 제목에서도 '사기? 사람 속이는 그 사기?'를 먼저 떠올렸기에 페이지를 펼친 순간부터 강타한 충격에 잠시 얼어붙고 만다.

 

그녀의 투병기를 읽어내려가면서 눈물 흘리지 않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병으로 소중한 사람을 먼저 보낸 사람, 현재 투병하고 있는 사람은 물론 건강한 사람도 이 책의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면 차오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나에게 이 책이 남일 같지 않게 여겨진 것은, 그녀의 일상이, 그녀의 나이가 나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나와 불과 한 두 살 차이인 그녀는 위암 진단을 받을 당시 두 돌 아기의 엄마이자 한 남편의 아내, 사랑하는 부모님의 딸이었다. 그림책에 그림을 그리고, 무민 캐릭터와 SF 영화를 좋아하고, 친구들과 책 이야기를 즐겨 하며, 아이를 재우고 웹툰을 보며 피로를 풀면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여자 사람. 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킨 후 집안일을 하고, 그림을 그리다가 아이를 하원시켜 저녁을 준비하는, 나와 비슷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녀. 그런 그녀에게 불쑥 닥친 위암 진단 소식이 무겁게 나를 짓눌렀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사기병]에는 작가가 위암 진단을 받은 후의 모든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태어나 처음 겪는 고통스러운 수술의 통증과 죽지 못해 살아야하는 심정으로 겪어야 했던 항암과정. 발병하고 난 후 친정과 시댁 부모님들의 도움에 관한,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반지와 무뚝뚝하지만 묵묵하게 이 길을 함께 걷고 있는 남편에 관한 이야기들. 항암과정이 얼마나 길고 힘겨운지 토로하면서도 바람 한 줄기, 따스한 햇빛, 잠시라도 즐길 수 있는 산책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쏟아낸다. 아프고 난 뒤 자신이 보내던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모든 일이 죽고 사는 일이 아닌데 뭐 그리 심각하냐며 자신이 얼마나 너그러워졌는지에 관한 담담한 일화들. 수술 후 먹는 것 하나도 조심해야했던 그 시간들을 들여다보며 따스한 커피 한 잔, 맛있는 음식에 대해서도 감사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역시나 나는, 아들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에서는 여지없이 통곡을 하고 말았다. 어쩌면 아들의 미래에 내가 없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미안함이, 두 곰돌군을 키우는 나에게는 정말 내 일처럼 가슴 속을 파고들어 아프게 찔러댔다.

힘든 투병 과정 속에서도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은 윤지회 작가님. 그림을 그리면서 비로소 자신을 찾은 것 같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기에, 더 작가님의 등을 토닥토닥 해주고 싶어졌다. 더불어 그녀를 마주하니 내가 요즘 불평불만하는 일상이, 이렇게 허투루 보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시간임을 눈이 번쩍 뜨이도록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같이 투병하는 사람들에게는 물론,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안타까움과 내일의 희망을 알려주는 작은 거인. 그 작은 거인의 암이 다시 재발했다. 올해 9월 난소로 전이된 암세포. SNS를 찾아가보니 이미 수술을 마치고 항암의 과정에 있는 것 같다. 부디 그녀가 힘을 내어주기를.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응원하고 있음을 알아주기를. 가족, 특히 소중하고 소중한 아들 반지와의 미래를 포기하지 말아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작가님, 힘내시라는 말밖에 못해서 미안해요. 그래도 힘내세요! 꼭 건강해져서 몇 년 후에는 완치됐다는 피드를 보고 싶어요. 반지 옆에 있어주세요. 제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세 시대가 온다 - 실리콘밸리의 사상 초유 인체 혁명 프로젝트
토마스 슐츠 지음, 강영옥 옮김 / 리더스북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이 생각하는 '장수'란 몇 세까지를 말하는 것일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대는 100세 정도였다. 그 100세도 건강하게 살 수 없다면 평균수명인 7,80세까지만 살아도 많이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그려봤었다. 그런데 100세도 아니고, 150세도 아닌, 200세라니.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수치다. 도대체 인간이 그 나이까지 생존할 수 있다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지금의 나로서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몇 십년 전만 해도 마트에서 물을 사먹게 될 줄도, 걸어다니면서 메시지를 보내거나 언제 어디서든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소통하게 될 줄도, 사람들은 몰랐었다. 과학기술의 눈부신 혁명. 그 진보가 이제는 수명연장에 손을 뻗어 건강하게 200세까지의 삶을 지원하게 된다는 것. 어쩌면 일부 사람들에게는 그리 놀랍지도 않은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200세 시대가 온다]의 토마스 슐츠는 실리콘밸리의 비밀 연구소들을 찾아 의학 연구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취재했다. 불치병이 정복되고 맞춤 아기가 가능해지는 시대, 장기를 교환하면서 인간이 200세까지 살게 되면 세상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병과 노화의 개념은 어떻게 변화할 것이며 그런 시대에서 의료와 보건 시스템의 역할은 어디까지 확장되고 구분될 것인지, 그런 신기술을 맛볼 수 있는 계층은 한정적일텐데 그런 세상에서 법과 윤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혁명이라고 부르기에도 부족한 그 거대한 변화 앞에서 인간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총체적 보고서라고 할까.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취재하고 인터뷰한 내용이 실려 있어 그 현실성은 피부에 와 닿을 정도다.

 

의학 혁명의 최전선에 서 있는 것은 실리콘밸리다. 기존의 의학기술과 병합된 IT 기술. 병원에서 인간 의사가 아닌, AI 의사를 마주할 날이 머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의 평균수명을 연장시키고 개인 스케줄을 관리해서 건강을 체크할 수 있게 하는 시대. 과연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이런 시대를 맞이하게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시대가 과연 좋기만 할 것인지 가슴 한 쪽에서 피어오르는 걱정과 두려움도 배제할 수 없다. 평소 이런 종류의 책을 잘 읽지 않아 쉽게 읽히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모르는 한쪽 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마주하게 된 기분. 그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금방이라도 밀려올 것 같아 숨이 차기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수 1 - 전쟁의 서막
김진명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00만 수나라 대군을 고구려 군사들이 물리친 이야기, 살수대첩. 역사책에서도 살수대첩과 을지문덕이라는 단 몇 줄에 불과한 지식으로만 접했던 그 위대한 전투가 작가에 의해 생생하게 눈 앞에 나타났다. 우리의 역사를 마치 자기네 것인양 편집하기 위해 아주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도, 중국도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는 역사왜곡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대비하고 있을까. 더 많이 알고 더 많은 논리적 근거를 댈 수 있는 것.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잘못된 사실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 전문적인 역사적 지식을 공부하는 것이 가장 최고의 방법이겠지만, 이렇게 역사를 토대로 집필된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 한 켠에 살아있는 불씨를 활활 타오르게 하는 것도 묘수가 아닐까.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늘 헷갈리게 하는 작가의 을지문덕과 살수대첩에 관한 장대한 서사가 개정판으로 다시 찾아왔다.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감히 엄두도 못낼 생각과 배포로 수나라의 전략을 꿰뚫어보고 오랜 시간 전쟁을 준비해 온 을지문덕 장군. 그는 이 작품 안에서 기인으로 그려져 있다. 칼이나 창을 들고 전장을 누비는 전투의 신이 아니라 저 앞까지 멀리 내다보며 상대의 마음을 쥐락펴락하고 모든 상황을 가늠하는 인물. 마치 태산과도 같은 무게감으로 행동거지 하나, 말 하나 모두 허투루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의 반대편에 서 있는 인물은 수나라 양광. 지략과 무예를 갖췄지만 아버지와 형제들로부터는 그 능력을 시샘당하고, 사랑하는 여인마저 권력에 의해 잃고 만다. 흡사 미치광이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의 내면 역시 보통 사람은 짐작할 수 없는 분노와 울분, 절망으로 얼룩져 있다. 그런 두 사람의 대결. 두 나라의 전투.

수나라가 고구려를 그토록 견제하고 미워한 이유에 대해 작가는 천하가 인정하는 사서오경 중 하나인 <시경>을 언급한다. 서주에서부터 춘추시대까지의 시들을 모은 것으로 공자도 가장 중요한 고전으로 꼽았고 틈날 때마다 <시경>을 가르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시경>에는 '한혁편'이 등장하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한후'라는 인물은 조선의 지도자로 단군이라고도 일컬어진다. 한후라는 인물이 서주 왕실을 방문했을 때 환대했다는 내용과 서주가 조선이 추와 맥 지방을 다스리도록 허용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데, 이는 곧 추와 맥 지역이 서주와 조선의 국경이라는 이야기로 추와 맥 지역은 당시 중원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고구려의 모태인 조선이 이미 중원과 대등한 위치에 있었다는 이야기.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그<시경>을 직접 접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잘 알 수 없지만, 작가는 여러 사료를 검토하며 작품을 집필했다고 한다. 중원을 통일한 양견이 단 하나 손에 쥘 수 없었던 나라, 고구려. 그 고구려의 역사가 바로 우리의 역사다.

작품은 살수대첩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 마침내 시작된 전투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대격돌을 위해 을지문덕 장군이 쌓아왔던 준비들, 전투에 임하는 개개인의 사정, 실감나는 전투 이야기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가독성을 높인다. [살수]를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는 우리 국민이 있을까. 한참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나다가 요즘은 살짝 수그러들어 '유니클로' 매장을 찾는 사람들이 또 늘어난다는데, 과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이 나라를 지켜왔는지 다시 한 번 새겨볼 일이다. '동방 군자국 후예'로서 부디 우리 스스로에게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기를. [살수]를 통해 자긍심과 긍지에 불을 지펴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