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을 듣고 미술을 즐기며 사는 삶. 그런 시간을 동경해왔고, 그런 시간들 속에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요즘이다. 근래
들어 특히.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클래식과 명화는 내 삶 속에서 빠질 수 없는 것들이 되었다. 그렇다고 어떤 음악을 듣든 제목을 떠올리거나
그림을 보자마자 화가와 작품명을 바로 알아차리는 것은 아니지만 마주하고 있는 순간만큼은 행복하다. 체계적으로 정리를 해봐야겠다고 마음도 먹었지만
이 게으름뱅이에게는 쉽지 않은 일. 그저 애정하는 몇 작품 간신히 기억하며 살아가는데, 술술 읽히지는 않지만 어디에서도 만나볼 수 없었던 이
미술 에세이를 독파하고나서는 나만의 미술산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 줄리언 반스가 자신만의 미술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을 접해온
자신의 삶을 되짚어보며 미술이란 무엇인가 나름대로 정의를 내린 그는,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에 관한 글을 시작으로 다양한
작품에 대해 견해를 풀어놓는다. 으헉. 그래도 나름 까막눈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소개된 화가들과 작품들을 들여다보니 여전히 나의 지식은
매우 얕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역시 깊고 풍부한 미술의 세계. 그 세계 속을 줄리언 반스의 글과 함께 허우적대고 있자니 얼마나 깊게,
오랜 시간을 들여야 자신만의, 자신을 위한 그림을 보는 눈을 갖게 될 것인지 궁금하기조차 하다. 그가 제리코의 작품에 대해 처음 쓴 것은
1989년. 더 할 말이 없다.
독자들에게 친절한 책은 아니다. 글자들이 매우 성의있게 빽빽하고 여타의 그림 에세이들처럼 명화 자료가 풍부하지도 않다. 서술하는
방식 또한 의식의 흐름을 따른 듯 소설의 형식을 빌리기도 하고 평범한 에세이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는데, 마치 따라올테면 따라와봐! 같은
느낌이랄까. 읽을 때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은 명확하다. 그리고 줄리언 반스만의 미술 세계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어디서도 쉽게 해볼 수
없는 경험. 소설에 다양한 에세이에 이번에는 미술까지. 이 남자가 쓰지 못하는 분야가 과연 있을까. 그의 세계에 이미 심취한 독자라면, 이 책도
충분히 매력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