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아이
신카이 마코토 지음, 민경욱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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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여름, 호다카는 도쿄로 향한다. 자신이 사는 섬과 부모님, 학교에 답답함을 느끼고 평소 동경하고 있던 도쿄에 드디어 도착. 여정은 험난했다. 애초에 자신이 준비한 생활비로는 변변한 먹을 것과 잠자리를 마련할 수 없었고,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아르바이트도 미성년에 학생증조차 소지하고 있지 않아 퇴짜맞기 일쑤였다. 결국 섬에서 도쿄로 오는 페리에서 위기에 빠진 자신을 구해준 스가라는 남자에게 연락하고 호다카는 그의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도시전설같은 기사를 작성하는 보조 일을 맡게 된다. 그렇게 알게 된 '맑음소녀'의 존재. 아무리 비가 와도 그녀가 기도하면 잠시 뿐이지만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괴담이라 여겼지만 호다카는 우연한 계기로 그녀, 히나와 마주한다. 그리고 전에 없이 폭우가 계속되는 도쿄. 히나가 간직한 무녀로서의 슬픈 운명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두 사람은 그 운명을 뛰어넘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초속 5센티미터], [너의 이름은] 등의 서정적인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신카이 마코토 작품의 신작 [날씨의 아이]의 원작 소설이다. 이미 애니메이션은 상영되고 있는 상태. 도시전설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맑음 소녀'의 존재를 전면에 내세워 그녀가 기도하면 잠시나마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는 설정이 주축을 이룬다. 다만 '맑음 소녀'에게는 슬픈 운명이 있는데 그것은 자칫 스포가 될 수도 있으니 책을 통해 확인하시기를. 하늘은 바다보다 훨씬 깊은 미지의 세계이고 몇 킬로미터나 되는 크기의 구름은 호수와 같은 양의 물을 품고 있어서 그 안에는 무수한 미생물도 살고 햇살과 물과 유기물도 풍부하며 어떤 방해도 받지 않는 광대한 공간이 있다는 상상. 하늘에 인간이 아직 모르는 생태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설정은 허황되면서도 어쩐지 그럴 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갖게 한다. 어쩌면 그것도 감독이자 작가인 신카이 마코토의 능력 아닐까.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감독은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를 통해 판타지의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이것대로 나쁘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초반에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에서 보여준 서정성이나 아련함 같은 감정들이 풍부하게 전달되는 작품들에 더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아직 [날씨의 아이] 애니메이션을 보지는 않았지만 여기에서 들리는 빗소리는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에서 들리는 빗소리와는 분명 다를 것이다. 그 빗소리에서는 비마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과연 [날씨의 아이]에서는 어떨지. 감독의 취향이라면 또 몰라도 판타지같은 극적인 장치가 없어도 당신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충분히 좋았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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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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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 이래 최악의 가뭄이 덮쳤던 그 해. 떠나는 사람들 무리에서 빠져나와 마을에 남기로 결정한 셴 할아버지와 태양 빛에 눈이 멀어버린 개 장님이. 마지막 남은 옥수수를 지키기 위한 이들의 노력이 무색할만큼 하늘은 한 방울의 비도 내려주지 않는다. 늙은 몸이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기에 걸어잠긴 남의 집 걸쇠를 따고 들어가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기도 하고, 말라가는 우물에 이불을 넣어 그 수분을 흡수해보려고도 하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없다. 땅에 묻힌 옥수수 몇 개, 떨어진 옥수수 몇 낱알을 얻기 위해 쥐와 사투를 벌여야 하고, 먹을 것이 완전히 떨어졌을 때는 쥐를 잡아 가죽을 벗겨 삶아 먹기도 했다. 이 땅에 먹을 것이라고는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지, 지축을 흔들며 이동하는 쥐의 무리는 검은 파도같기도 하다. 우연히 찾아낸 샘물가에서 맞닥뜨린 늑대 무리마저 생존을 향한 셴 할아버지의 굳은 의지를 막아내지는 못했다. 과연 셴 할아버지와 장님이는 마지막 남은 옥수수를 지킬 수 있을까.

가뭄과 태양, 옥수수와 한 노인, 그리고 개 한마리와 쥐, 늑대무리만을 등장시켰음에도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그림같은 작품을 만났다. 작가는 옌렌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로 이미 우리나라에 작품이 소개된 바 있는 그는, 제1,2회 루쉰문학상과 2014년 프란츠카프카 문학상, 홍루몽상 최고상을 비롯해 20여 개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오랫동안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다. 현재는 중국 평단의 지지와 대중의 호응을 동시에 얻으며 당대 최고의 소설가로 평가되고 있는 작가. 그 옌렌커가 직접 고른 중단편 모음집이 바로 [연월일]이다. 이 작품집에서는 앞서 소개한 <연월일>과 <골수>, <천궁도>와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의 총 네 편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데, 한 작품 한 작품에 모두 박수를 보내고 싶을만큼 완벽한 소설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뭄을 이겨내기 위한 한 노인과 개의 모습은 일견 다큐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일말의 자비도 없는 뙤약볕 아래에서 어떻게든 옥수수를 지켜내기 위해 온갖 수단을 강구하는 노인과 자신을 거둬준 노인의 곁을 한 시도 떠나지 않는 장님이. 거대한 쥐의 무리 이동을 묘사한 부분도 장엄하게 다가오지만 아홉마리의 늑대 무리와 셴 할아버지의 대치 장면은 실로 압권이라 할만큼 인상깊다. 누구도 물러설 수 없는 목숨을 건 응시, 한 걸음만으로도 무너질 수 있는 그들 사이에 놓여진 긴장감이 어마어마하다. 나조차 숨을 못 쉴 지경이었다. 게다가 자신과 장님이의 목숨을 놓고 던진 동전에 관한 이야기는 이야기의 끝을 장식하기에 완벽할 정도로 감동깊다.

동전은 오래됐는지 초록색 녹이 잔뜩 슬어 있었다.

초록색 녹을 문질더 닦아내자 동전의 한 면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반대 면에도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마을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양쪽 다 글자가 새겨져 있는 동전을 본 적이 없었다.

p153

생명 옆에 항상 따라다니는 죽음을 느낄 수 있는 옌렌커의 작품답게 <골수>, <천궁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에서도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바러우산맥이 바라다보이는 허난성 충현의 험준한 농토를 배경으로 농민들의 삶과 죽음, 그들이 절대로 떠날 수 없는 땅과 노동, 생존과 욕망 등에 대해 노래한다. 투박하다는 느낌이 드는 문장이지만 대신 서사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면서 굵은 선을 자랑한다. 그렇다고 간단하고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다. 묵직한 주제를 이야기하면서도 장면들의 묘사는 마치 한 편의 영화나 그림처럼 아름답고 처연하다.

스릴러나 미스터리 외에 가슴을 울리는 중국문학은 처음이었다. 과연 노벨문학상 후보로 몇 번이나 거론될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들. 가혹한 현실에서 인간성을 되찾으려는 몸부림을 섬세한 필치와 회화적인 시어로 묘사하는 데 탁월하다는 평가는 받는 그의 실력은, 이 작품집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휴머니즘과 가슴 먹먹한 감동을 부디 느껴보시기를. 나는 어서 옌렌커의 다른 작품이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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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밤 되세요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1
노정 지음, 드로잉메리 그림 / 폴앤니나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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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무너지고 있는 드림초콜릿호텔. 말 그대로 무너지고 있다. 소설의 시작은 주차장 위에 있던 물탱크가 땅에 떨어지면서 시작된다. 다행히 주차되어 있던 아우디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다. 그 와중에 902호 외국인으로부터 프런트에 걸려온 전화. 영문과를 졸업한 덕분에 수시로 외국인 통역을 맡고 있던 나주임은 오늘도 이 전화로 호출당한다. 그런데 이걸 어째. 그 외국인은 러시아어를 쓴다. 괜히 잠을 깬 나주임. 그녀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쇠락하고 있지만 어떻게든 운영되고 있는 이 호텔의 캐셔다. 돈받고 키만 내주면 되는 일-이 아닌 것도 해야 하는 캐셔.

정신병원에서 만난 박사장과의 인연으로 나주임, 나명은 드림초콜릿호텔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녀의 눈에만 보이는 리재. 그의 사망으로 일주일동안 잠 한숨 잘 수 없었던 그녀는 수면제와 편두통약을 쓸어먹은 후에야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그저 잠을 자고 싶었을 뿐인데 자살기도를 했다 생각한 동지들에게, 그녀는 스스로 정신병원을 알아봐달라 부탁했다. 캐셔로 일하면서 그나마 자신을 달래가는 중이긴 한데, 이 캐셔 일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층마다, 객실마다 테마가 다른 객실 현황 체크해야지, 침대 유형도 외워야지, 요일마다 다른방값과 입퇴실 시각, 마일리지 적립 기준과 쿠폰이나 상품권 적용 방침도 알아두어야 한다! 우와, 호텔에서 하는 일, 특히 프런트에서 캐셔가 하는 일이 이렇게 많은 줄 상상도 못했다. 그저 인터넷으로 예약 현황 체크하고 나와 있는 사항 알려주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게다가 닫혀도 닫히지 않는 문에, 손님에게 마스터키까지 내주어야 하는 상황에, 데이트 폭력이 발생한 상황에서 프로처럼 대처도 해야 하고, 언젠가 룸에서 자살한 시체를 마주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껴안고 일해야 한다. 불륜에 성매매까지 호텔에서 볼 수 있는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줄줄이 펼쳐진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 사랑과 허무가 함께 묵는 곳. 그 안에서 리재의 죽음으로 망가진 가슴을 부여잡고 간신히 삶을 이어가던 나주임이 서서히 부활한다. 후임을 걱정하며 배라묵을 팥빙수 기계를 훔쳐나올 수 있을만큼!

호텔에 묵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에피소드 형식으로 묶여 있을 줄 알았는데, 물론 그런 이야기도 등장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나주임이다. 그녀가 바라보는 호텔, 그녀가 바라보는 호텔 사람들, 그녀의 과거, 그녀의 현재, 그녀가 걸어가야 하는 미래. 낯선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에서 마침내 편해질 수 있었다는 그녀의 고백이 가슴 시리게 다가오는 것은 나주임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세계의 민낯을 볼 수 있는 곳에서 비로소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발견하고 당당하게 호텔을 나서는 그녀의 모습이 멋지다. 잔잔한 이야기와 함께 아기자기하고 예쁜 일러스트를 함께 만날 수 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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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썰록
김성희 외 지음 / 시공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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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전을 좀비와 어떻게 접목시켰을지 넘나 궁금합니다! 요런 비트는 책 참 좋아해요 ^^ 다른 작가님들 글도 궁금하지만 요즘 특히 관심갖게 된 전건우 작가니 이야기 읽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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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잔혹한 어머니의 날 1~2 - 전2권 타우누스 시리즈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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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몰스하인의 오래된 저택에서 발견된, 팔순이 넘어 개 한 마리와 함께 살아가던 테오 라이펜라트의 시신. 그의 사인이 사고사인지 범죄인지 밝히려는 와중 집 뒤편 견사에서 발견된 것은 사람의 뼈였다. 수사 결과 더 많은 희생자의 뼈가 노인의 저택에서 발견되는데 그들 모두 여성이고 어머니의 날 전후에 실종된 것으로 밝혀진다. 처음에는 이미 사망한 테오 라이펜라트를 범인으로 판단하지만, 계속해서 밝혀지는 다른 여러 사건들로 미루어 짐작할 때 이미 노쇠한 그가 홀로 범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피아와 보덴스타인은 범인이 여전히 다음 희생자를 노리고 있을 것으로 보고 어머니의 날이 머지 않았음에 초조해진다. 과연 다음 희생자는 누구일까. 범인은 왜 그녀들을 납치하고 살해하는 것일까.

 

한편 피오나 피셔는 어머니를 병으로 잃은 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어째서 아버지는 자신을 보러오지 않았을까. 그는 어떤 사람일까. 가득한 궁금증을 안고 마침내 아버지를 만나지만, 그는 자신은 동성애자임을, 심지어 피오나가 그들의 친딸이 아님을 알려준다. 큰 충격을 받았지만 이내 친어머니에 대한 단서를 손에 쥔 피오나는 스위스를 떠나 프랑크프루트로 향한다. 정황상 그녀의 친어머니는 피오나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 상태. 대체 자신의 어머니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피오나는 한 번이라도 친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싶다.

 

명실상부한 독일 미스터리의 여왕이자 나를 독일 스릴러 세계로 입문하게 해 준 넬레 노이하우스가 돌아왔다! 이번 작품은 특히 재미있었고 가독력이 높았다. 피오나의 이야기가 사건과 어떻게 맞물려 돌아갈지 궁금했고, 분명 용의자가 좁혀져 있는데 누가 범인일지 아리송해서 더 감질맛이 났다. 범인이 받은 상처가 이해가 되면서도 그래도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모두 그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점만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

 

이번 작품을 통해 피아와 보덴슈타인 반장의 매력은 한층 빛을 발한다. 두 사람 중 피아가 좀 더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고 보덴슈타인 반장은 약간 점잔을 빼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백작가문이기 때문인가! 피아가 앞서서 수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으니 책을 통해 꼭 확인하시기를. 사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을 읽고난 후 그녀의 작품을 몇 편 더 접했지만 어쩐지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소장중이었던 몇 권을 처분했는데, [잔혹한 어머니의 날]을 읽은 지금 과거의 내 행동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다. 다시 배고픈 하이에나처럼 중고서점을 들락날락하거나, 그도 아니면 한 권씩이라도 새책을 모아야 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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