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순정 - 그 시절 내 세계를 가득 채운 순정만화
이영희 지음 / 놀(다산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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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지 않는 어느 순간부터 내 손에는 만화책이 들려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역시 만화책을 좋아했던 고모와 삼촌의 영향. 나와 열 일곱, 열 한살 차이가 나는 고모와 삼촌은 소설과 만화책 모두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던지라, 어릴 때 할머니댁에 가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때가 되면 격주로 발행되는 만화잡지를 사서 함께 보고, 좋아하는 만화책 단행본을 구매했다는 연락을 받으면 어김없이 주말에 달려가 같이 읽었다. 덕분에 나도 결혼 전까지 꽤 많은 양의 단행본을 구입해 책장 한쪽을 차지했었는데 신혼집에 그 많은 만화책을 가지고 들어가기도 어쩐지 민망하여 나눔하거나 버리거나 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어떻게 해서든지 사수했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가슴을 치고도 남을만큼 통탄스러울 일이다. 지금은 절판되어 구할 수도 없는 내 보석들.

 

[안녕, 나의 순정]을 읽다보니 떠나보낸 내 보석들 생각에 더 가슴이 쓰려온다. 그 때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만화들에 관한 글을 읽으니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에 마음 한 구석이 울렁거렸다. 그래도 한 작가당 대표작이라 할만한 작품들은 남겨놓거나 결혼 후 다시 구매했는데, 황미나 작가님의 [레드문], 강경옥 작가님의 [별빛속에], 김혜린 작가님의 [불의 검], 박희정 작가님의 [호텔 아프리카]가 바로 그 보석들이다. 새드엔딩인 작품들은 잘 구입하지 않지만 황미나 작가님이나 강경옥 작가님의 작품들은 뭐 명작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명작인지라 이것은 대대손손 가보로 물려줄 예정. 저자가 소개한 책목록을 보다가 마음이 급해져 인터넷 서점을 급히 검색했지만 신일숙 작가님의 [아르미안의 네딸들]을 비롯, 이미 많은 작품들을 손에 넣기가 힘들어졌다. 품절되기 전에 강경옥 작가님의 [노말시티]부터 얼른 질러놓아야겠다!

 

혹자는 만화책을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런 것을 읽어서 뭐에 쓰냐고. 우리 친정아버님이 그러하시다. 많은 장점을 가지고 계시나 나의 만화책 덕질은 끝내 인정하지 못하셨던 분. 그래도 사랑하는 딸래미, 어디로 엇나가지 않게 스트레스 풀 구멍 만들어주시느라 차마 만화책을 버리지는 못하셨던 분. 하지만 나는 만화책을 통해 인생을 배웠고, 사랑을 배웠다. 사람이 해서는 안 될 짓과 어떤 순간에도 지켜야만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만화책을 통해 독서량이 늘었고, 만화책을 기반으로 다양한 책읽기 과정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다. 읽는다는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페이지 하나만 넘기면 신기한 세상이 나를 맞아줄 수 있다는 것을 만화책으로 배웠다. 나에게 만화책은 예술이었고, 신앙의 대상이었고, 교과서이자 안내서, 힘들 때 나를 토닥여준 안식처였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니 만화책을 가득 쌓아놓고 뒹굴거리며 다시 한 번 그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싶다. 부디 이 책을 통해 작가님들의 절판된 많은 작품들이 다시 한 번 세상빛을 볼 수 있게 되기를. 이런 말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아이들은 모르는 순정과 그 무언가가 예전 우리에게는 있었다-는 기분이 든다. 그 때가 아니면 정말 누구도 알지 못할, 추억. 이 봄이 가기 전 내 책장을 약간이나마 채우고 있는 만화책들을 한 번 쓰담쓰담 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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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을 권리 - 이유 없이 상처받지 않는 삶
일레인 N. 아론 지음, 고빛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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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마주하면 조금 당황스럽다. 정서적으로 조금 드라이한 면이 있어서일 수도 있고, 딱히 내가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어서인 듯도 한데, 기본적으로 '싫음 말고, 아님 말고'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일까. 나도 물론 우울감이나 불안감을 느낀다. 그러나. 겸손하기는 할지언정(그렇다고 내가 막 엄청 겸손하다는 것은 아니고) 나 자신을 '별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무기라면 무기일까나. 이 책의 작가는 심리학계 최초로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HSP, Highly Sensitive Person)’이라는 주제를 제기하고 연구해 센세이션을 일으킨 일레인 아론.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인 그가 이번에는 30년간 수많은 내담자와의 상담을 통해 우울, 질투, 열등감, 수치심 등의 감정 속에 공통적으로 작용하는 심리 프레임을 포착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 ‘너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 ‘넌 뭘 해도 안 될 거야’라고 속삭이는 존재, 즉 스스로를 가치 없다고 여기는 ‘못난 나(Undervalued Self)’라는 심리 기제이다.

 

일레인 아론은 이 책에서 심리학, 정신분석학, 뇌과학에 이르는 다양한 접근을 통해 무의식 속에 묻어둔 상처를 마주하고, 스스로에게 가혹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를 발견하도록 돕는다. 또한 끝없는 비교와 자기 비난에서 벗어나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실질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자기 존중에서 시작하는 진정한 자립과 이를 바탕으로 관계의 회복을 도와주어, 우리로 하여금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을 시작하게 하는 책이다.

 

<나는 나에게 좋은 사람일까?>, <진짜 내 모습을 가리는 여섯 가지 방해물>, <내 안의 울고 있는 나를 만나다>, <늘 상처받는 사람을 위한 관계 스위치>, <숨어 있는 나와 친해지기>, <사랑받을 권리를 되찾다>, <관계에 서툰 사람들을 위한 조언>, <오랫동안 사랑을 주고받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저자는 타인과 비교해 자신의 순위를 매기는 '순위 매기기'와 애정, 관심, 사랑을 표현함으로써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고자 하는 '관계 맺기'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관계 맺기'와 '순위 매기기'는 '사랑과 권력'이라는 말로도 대신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순위 매기기가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고 다만 모든 사회 생활을 '순위 매기기'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자괴감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관계 맺기와 순위 매기기는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고, 최선의 결과를 얻고 싶다면 양쪽의 가능성을 모두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데, 음 조금 어려운 이야기. 자가 체크 질문이 실려 있으니 한 번 시험해보는 것도 좋겠다.

 

다른 챕터들의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관계에 서툰 사람들을 위한 조언>과 <오랫동안 사랑을 주고받는 사람들>은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한다. 실패해도 내 탓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관계의 시작만큼 그 관계를 지속시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이렇게 보니 어쩌면 나에게 사랑을 주어야 하는 존재는 타인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진심으로 타인을 사랑할 수도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만약 사랑할 수 있다고 해도 과연 올바른 방법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인지 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단순히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애정과 관계와 자존감에 대한 심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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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의 보물 고대 그리스 - 전 세계의 박물관 소장품에서 선정한 유물로 읽는 문명 이야기 손바닥 박물관 2
데이비드 마이클 스미스 지음, 김지선 옮김 / 성안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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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7월, 남자 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한 무리가 아테나 여신을 모신 파르테논 신전의 남쪽 부분으로부터 부조 메토프(도리아 양식에서 트리글리프 두 개 사이의 벽면)를 떼어내기 시작했다. 이 메토프는 신화에 나오는 인간인 라피테스족과 수인인 켄타우로스족 사이의 전쟁을 묘사한 도리아식 프리즈의 일부였는데, 남자 여섯 명과 그리스인 보조들을 사용해 이 일을 맡긴 사람은 토머스 부르스라는 인물이었다. 1804년 1월 경에는 아테나 파르테논 신전과 아테나 니케 신전, 에레크 테이온 신전, 그 성지로 들어가는 기념비적 관문인 플로필라이아의 부분들이 제거되어 반출되었는데, 이는 현대 유럽 문화유산에서 가장 감정을 자극하며 정치적으로도 뜨거운 쟁점이었다고 여겨진다.

 

고대 그리스와 역사, 그리고 그 문화유산은 이보다 훨씬 전, 2000년 전부터 학자들과 공동품 수집가들에게 큰 관심대상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그리스의 '과거'는 때로는 숭배되거나 때로는 매도당하면서 거의 항구적 재창조와 변용의 상태로 존재해왔다고 한다. 이 책은 전 세계 박물관에 소장된, 선사시대 가장 초기에서 헬레니즘 기 말까지의 총 200점에 이르는 유물들을 소개한다. 연표에 따라 <구석기 시대의 여명에서 초기 청동기 말까지>, <예게해의 중기와 후기 청동기>, <궁전기 후 청동기 및 초기 철기 시대>, <고졸기와 고전기>, <헬레니즘기> 의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그 안에서는 사회와 가정, 예술과 개인적 꾸밈, 정치학과 교전, 장례식과 의례라는 별도의 주제가 펼쳐진다. 여기에 그리스 세계에서 지난 20만 년에 걸쳐 흥하고 쇠했던 다양한 문화들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해주는, 아주 매력적인 책이다.

 

1960년 9월 북부 그리스의 페트랄로나 동굴에서 발견된, 15만 년 전에서 35만 년 전 사이에 사망한 하이델베르크인 성인 남성으로 추정된 두개골의 사진을 시작으로 그리스의 이야기 문이 열린다. 양면 손도끼와 그릇, 도끼날, 짐승 모양 보석함 등의 다양한 물건들과 이야기,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섬세해지고 구체적인 모습을 띠는 유물들이 등장하여 그리스의 역사와 문화를 선보인다. 유물들의 특징과 여기에 얽힌 이야기, 시대변화와 그 구조 등 여러 각도에서 진행되는 설명들을 들을 수 있다.

 

그리스에 대해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나 여행지로서의 이야기만 들어왔지, 이렇게 자세히 그리스 자체의 유물을 다루는 책을 읽어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책의 뒷 날개를 보니 시리즈로 기획된 것 같은데 그 중 [고대 이집트] 책이 흥미롭게 보여 구매예정! 책 한 권으로 박물관을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들어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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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남긴 증오
앤지 토머스 지음, 공민희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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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소녀 스타의 가족은, 총과 마약이 낯설지 않은 동네인 소위 우범지대에 산다. 아이들이 다른 삶을 살길 원하는 부모님은 스타와 그녀의 오빠, 남동생을 백인들이 다니는 학교로 진학시키고, 스타는 집 근처의 자신과 학교에서의 자신을 분리시켜 낮에는 부유한 친구들이 다니는 학교의 모범생으로, 밤에는 그녀가 살고 있는 가난한 동네의 주민으로 두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어느 날 파티에 참가했다가 어린시절 친구 칼릴과 함께 차를 타고 가던 도중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그가 사망한다. 반항도 무장도 하지 않은 그들에게 그저 흑인이라는 이유로 총격을 행한 경찰. 친구의 억울한 죽음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수사는 점차 가해자인 경찰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고, 스타는 목격자로서 대중 앞에 나설 것인지, 이대로 침묵할 것인지 갈등하게 된다. 두껍고 냉철한 공권력에 맞서 과연 온 세상에 진실을 전달할 수 있을까. 소중한 가족과의 일상을 지키는 일과 진실을 말하는 용기 사이에서 스타는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인가.

전부 다 제대로 해도 가끔 상황이 안 좋은 경우가 있죠. 그렇다고 해서 제대로 하고 있는 걸 멈추면 안 돼요.

p159

[당신이 남긴 증오]라는 이 책의 제목은 인종차별을 노래한 힙합 씬의 전설 투팍의 말에서 따왔다. 원서 제목인 ‘The Hate U Give’의 머리글자를 따면 ‘THUG’인데, 투팍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아 내몰린 사람들을 가리켜 ‘THUG LIFE(폭력배의 삶)’이라고 칭했다. 불법적인 일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흑인, 소수집단, 가난한 사람들 등의 하층민의 삶을 가리킨 것이며, 사회적 편견과 증오가 그들을 폭력배 같은 삶으로 이끈다는 의미다. 스타는 이 주제에 대해 아버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이 가야 하는 길, 갈 수밖에 없는 길에 대해 생각한다. 가만히 있지 말고 행동해야 한다고 조언을 해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스타의 아버지. 그녀로 인해 위협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칼릴의 죽음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스타의 등을 두드려준다. 그녀의 아버지는 다소 과격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고 공동체의 삶을 생각하는 인물. 그리고 엄마는 소신있고 강한 여인으로 우범지대에 사는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사랑을 바탕으로 헌신한다. 그런 그들의 밑에서 자란 스타였으니 왜곡된 뉴스 앞에서 눈 돌리는 일은 힘들지 않았을까.

 

책에서는 스타의 친구 헤일리를 통해 인종차별적인 발언과 행동이 얼마나 소소하게, 얼마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보여준다. 중국인 친구 마야에게는 추수감사절에 고양이를 먹었냐는 발언을 서슴치 않고, 스타의 정체성을 부정하며 칼릴은 마약상이었으니 죽을 수밖에 없는 팔자라는 막말을 퍼붓기도 한다. 하지만 설사 칼릴이 마약상이라고 해도 부당하게 목숨을 빼앗긴 일에 변명이 될 수 있을까. 칼릴과 스타는 경찰에게 그 어떤 위협적인 행동도 하지 않았다. 과속하지 않았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찰은 그들을 붙잡았고, 욕설을 했다고 매도했으며, 칼릴이 들고 있던 머리빗을 권총이라 오인해 그를 '살해'했음에도 자신의 행동이 정당했음을 호소한다. 이런 일들은 책 안에서만 벌어지고 있지 않다. 헤일리같은 사람은 현실에도 버젓이 존재하고, 심지어 무장하지 않았음에도 경찰에게 살해당하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았다. 그들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진실.

 

소설은 독자가 원하는 결말을 보여주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만약 그런 결말이었다면, 소설임에도 너무나 소설스러워서 더 현실성을 잃었을지도. 오히려 그런 결말이었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해서 싸워나가야 하는 의지를 다지게 하는 작품이랄까. 앤지 토머스 역시 마약 판매와 총기 사건을 보면서 자랐고, 오스카 그랜트의 억울한 죽음 이후 이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오스카는 2009년 1월 1일 22세의 흑인 청년으로 경찰에게 과잉진압을 당하다 총을 맞고 사망했다.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격노하며 미국 전역에 시위로까지 번졌다. 특히 비무장상태로 어떤 위협도 가하지 않았음에도, 시민을 보호해야 할 공권력이 오히려 가해자로 돌변한 이 사건은 수많은 시민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고 청소년들의 인권 의식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받는다.

 

한 소녀가 세상에게 던지는 물음과 행동. 절대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고 침묵하지도 않을 것이라 약속하며 결의를 다지는 스타의 모습을 통해 어느 쪽이 옳은 방향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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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프렌즈, 그건 사랑한단 뜻이야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흔글·조성용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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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기를]

아마도 카카오프렌즈 시리즈의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라이언, 어피치, 튜브, 무지, 네오, 프로도. 각각 등장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내던 그들이 이제는 하나로 뭉쳐 안녕을 고하기 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들이 담겨 있다. 사실 이런 에세이 종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잘 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카카오프렌즈 시리즈는 귀여워서 자꾸 찾아보게 된다. 마음을 울리는 글귀들을 발견할 때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캐릭터들의 가장 큰 매력은 그런 '귀여움'이 아닐까.

나이를 먹을수록 말 한마디도 허투루 내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농담이라고 생각해 건넨 한 마디에 타인을 상처입힐 때도 있고 내가 상처입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농담임을 내세우며 은근슬쩍 아픈 마음을 건드리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도 조금쯤은 갖게 되었다고 할까. 시간이 흐를수록 더 어려워지는 인간관계. 하지만 원래 그랬어야 하는 게 아닐까. 말은 내 입에서 나가는 순간부터 내 것이 아니게 되므로.

못된 버릇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언젠가부터 상처받은 마음을 숨긴 채 상처를 준 사람을 아예 차단하게 되어버렸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리라 그렇게 결심했다. 그 때는 나중에도 후회하지 않을 결정이라 되뇌었었는데,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내 상처받은 마음을 솔직하게 내보였다면 그 사람과 지금까지 계속 인연을 맺고 있었을까. 어쩌면 나는 말해봤자 소용없을 거라는 생각에 제풀에 먼저 관계를 포기한 게 아니었을까. 이제와서 다시 생각한들 무엇하리. 지금 함께 하는 사람들, 앞으로 함께 하게 될 사람들에 대해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요고요고, 내가 옆지기와 다툰 뒤면 항상 하는 말이라 특히 공감된다! 옆지기와 다툰 뒤에는 내 나름대로 생각도 좀 하고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해서 한동안 그에게 부탁했었다. 나를 그냥 내버려둬달라고. 결혼 초기에는 그래도 옆구리를 쿡쿡 찌르던 옆지기는 이제는 그런 내 말에 너무나 충실하게 따라서 정말 나를 내버려두는데, 그것이 또 그렇게 섭섭한 거다! 그래서 아무리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도 나를 너무 내버려두는 거 아니냐 했더니, 자기도 옆구리 쿡쿡 찌르는 거 한 두 번이지, 어차피 받아주지도 않지 않냐며 오히려 나를 공격! 음. 그 말도 맞긴 하지. 그래도 그럴 때 옆구리를 좀 찔러주면 화가 풀리는 속도가 좀 빨라지는데, 저 문구처럼 모르는 척 다가와주시기를.

이것이 내가 새벽 독서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아이들을 재우고 다시 일어날 때는 너무 힘들기도 하지만, 그대로 다시 아침을 맞기에는 나에게 활력이 될 무언가가 부족한 느낌.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다보면 내게 쌓여있던 독소같은 것들이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날 행복하게 만드는, 아주 오래된 습관. 조금 고단해도 오늘은 무슨 책을 읽을까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난다.

 

얼마 되지 않는 페이지를 조금은 천천히 넘겨본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짧고 그냥 넘겨버릴 수 있는 문구일 수도 있지만, 읽는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느냐에 따라 강렬한 이미지를 남길 수 있는 책. 아직은 조금 서늘함은 머금은 공기, 나의 소중한 새벽시간을 카카오프렌즈 친구들과 보낼 수 있어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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