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남긴 증오
앤지 토머스 지음, 공민희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흑인 소녀 스타의 가족은, 총과 마약이 낯설지 않은 동네인 소위 우범지대에 산다. 아이들이 다른 삶을 살길 원하는 부모님은 스타와 그녀의 오빠, 남동생을 백인들이 다니는 학교로 진학시키고, 스타는 집 근처의 자신과 학교에서의 자신을 분리시켜 낮에는 부유한 친구들이 다니는 학교의 모범생으로, 밤에는 그녀가 살고 있는 가난한 동네의 주민으로 두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어느 날 파티에 참가했다가 어린시절 친구 칼릴과 함께 차를 타고 가던 도중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그가 사망한다. 반항도 무장도 하지 않은 그들에게 그저 흑인이라는 이유로 총격을 행한 경찰. 친구의 억울한 죽음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수사는 점차 가해자인 경찰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고, 스타는 목격자로서 대중 앞에 나설 것인지, 이대로 침묵할 것인지 갈등하게 된다. 두껍고 냉철한 공권력에 맞서 과연 온 세상에 진실을 전달할 수 있을까. 소중한 가족과의 일상을 지키는 일과 진실을 말하는 용기 사이에서 스타는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인가.

전부 다 제대로 해도 가끔 상황이 안 좋은 경우가 있죠. 그렇다고 해서 제대로 하고 있는 걸 멈추면 안 돼요.

p159

[당신이 남긴 증오]라는 이 책의 제목은 인종차별을 노래한 힙합 씬의 전설 투팍의 말에서 따왔다. 원서 제목인 ‘The Hate U Give’의 머리글자를 따면 ‘THUG’인데, 투팍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아 내몰린 사람들을 가리켜 ‘THUG LIFE(폭력배의 삶)’이라고 칭했다. 불법적인 일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흑인, 소수집단, 가난한 사람들 등의 하층민의 삶을 가리킨 것이며, 사회적 편견과 증오가 그들을 폭력배 같은 삶으로 이끈다는 의미다. 스타는 이 주제에 대해 아버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이 가야 하는 길, 갈 수밖에 없는 길에 대해 생각한다. 가만히 있지 말고 행동해야 한다고 조언을 해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스타의 아버지. 그녀로 인해 위협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칼릴의 죽음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스타의 등을 두드려준다. 그녀의 아버지는 다소 과격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고 공동체의 삶을 생각하는 인물. 그리고 엄마는 소신있고 강한 여인으로 우범지대에 사는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사랑을 바탕으로 헌신한다. 그런 그들의 밑에서 자란 스타였으니 왜곡된 뉴스 앞에서 눈 돌리는 일은 힘들지 않았을까.

 

책에서는 스타의 친구 헤일리를 통해 인종차별적인 발언과 행동이 얼마나 소소하게, 얼마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보여준다. 중국인 친구 마야에게는 추수감사절에 고양이를 먹었냐는 발언을 서슴치 않고, 스타의 정체성을 부정하며 칼릴은 마약상이었으니 죽을 수밖에 없는 팔자라는 막말을 퍼붓기도 한다. 하지만 설사 칼릴이 마약상이라고 해도 부당하게 목숨을 빼앗긴 일에 변명이 될 수 있을까. 칼릴과 스타는 경찰에게 그 어떤 위협적인 행동도 하지 않았다. 과속하지 않았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찰은 그들을 붙잡았고, 욕설을 했다고 매도했으며, 칼릴이 들고 있던 머리빗을 권총이라 오인해 그를 '살해'했음에도 자신의 행동이 정당했음을 호소한다. 이런 일들은 책 안에서만 벌어지고 있지 않다. 헤일리같은 사람은 현실에도 버젓이 존재하고, 심지어 무장하지 않았음에도 경찰에게 살해당하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았다. 그들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진실.

 

소설은 독자가 원하는 결말을 보여주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만약 그런 결말이었다면, 소설임에도 너무나 소설스러워서 더 현실성을 잃었을지도. 오히려 그런 결말이었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해서 싸워나가야 하는 의지를 다지게 하는 작품이랄까. 앤지 토머스 역시 마약 판매와 총기 사건을 보면서 자랐고, 오스카 그랜트의 억울한 죽음 이후 이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오스카는 2009년 1월 1일 22세의 흑인 청년으로 경찰에게 과잉진압을 당하다 총을 맞고 사망했다.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격노하며 미국 전역에 시위로까지 번졌다. 특히 비무장상태로 어떤 위협도 가하지 않았음에도, 시민을 보호해야 할 공권력이 오히려 가해자로 돌변한 이 사건은 수많은 시민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고 청소년들의 인권 의식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받는다.

 

한 소녀가 세상에게 던지는 물음과 행동. 절대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고 침묵하지도 않을 것이라 약속하며 결의를 다지는 스타의 모습을 통해 어느 쪽이 옳은 방향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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