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없는 나는?
기욤 뮈소 지음, 허지은 옮김 / 밝은세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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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기욤 뮈소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 [당신 없는 나는?] . 생생한 장면 구성과 스피디한 전개로 독자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그의 작품은, 이 책에서도 영화 같은 장면들이 연출되며 매력이 빛을 발한다. 늘 스릴러와 로맨스를 결합시켜 진부한 듯 하면서도 묘하게 끌리는 작품들을 선보여온 기욤 뮈소. [당신 없는 나는?] 에서도 가브리엘과 마르탱의 사랑, 가브리엘의 아버지이자 미술품 절도범인 아키볼드의 사연, 그가 자신의 아내이고 가브리엘의 어머니인 발랑틴에게 일평생 바쳐온 사랑 이야기가 애틋하고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버클리대학생 가브리엘과 소르본법대를 졸업하고 미국 사회의 안팎을 두루 경험하고자 샌프란시스코를 두 달 간의 일정으로 방문한 프랑스 청년 마르탱. 두 사람은 카페테리아에서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났다. 계획된 일정이 모두 끝나고 프랑스로 돌아가야 하는 마르탱은 가브리엘에게 사랑을 담은 편지를 전달하고, 편지를 통해 자신의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의 고통까지 꿰뚫어보는 마르탱에게 애정을 느낀 가브리엘은 떠나려는 그를 막아서며 잠시만 출발을 미뤄줄 것을 부탁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를 아낌없이 사랑하는 두 사람. 프랑스로 돌아간 마르탱은 가브리엘을 잊지 못해 괴로워하고 결국 자신의 전재산이나 마찬가지인 경비를 들여 비행기표를 구입, 가브리엘에게 뉴욕에서 만나자는 편지를 보낸다. 지정된 장소에서 하염없이 가브리엘을 기다리는 마르탱. 그러나 그녀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13년이 흘러 경찰이 된 마르탱은 OCBC(프랑스 문화재 밀거래 단속국)에서 일하게 되고, 그는 희대의 절도범 아키볼드를 잡기 위해 잠복 중이다. 지난 3년간 쫓은 아키볼드. 그는 항상 화가의 생일과 동일한 날짜에 작가들의 작품을 훔쳐왔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을 훔쳐 달아나는 아키볼트를 미행하던 마르탱은, 이번에야말로 그를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아키볼트가 준비한 덫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그를 쫓아 다시 샌프란시스코를 찾은 마르탱. 가브리엘과 재회하고 또 다시 운명같은 사랑을 나누지만, 그들의 앞길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다. 아키볼드 역시 가브리엘을 만나기 위한 준비를 끝마쳤다.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고작 3개월. 모든 진실을 알게 된 가브리엘은 과연 마르탱과 아키볼드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사랑하는 두 사람을 다시 찾게 되었다고 기뻐한 것도 잠시, 선택의 기로에 선 가브리엘의 고뇌가 깊어진다.

 

가브리엘은 왜 13년 전 마르탱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일까. 그녀를 그토록 고통스럽게 하는 과거는 무엇인가. 무엇이 마르탱을 고독에 몸부림치게 만들었는가. 아키볼트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이런 저런 수수께끼가 밝혀져가는 가운데, 이번 작품에서도 판타지같은 설정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절대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하는 기적, 누구나 한 번쯤 원하게 되는 그런 일이 결말을 장식해 또 한 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했다. 자신이든 타인이든 결국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사랑. 작가는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중간중간 웃음 터지는 번역이 등장해 즐거웠다. 예를 들면 ''사랑해'의 답을 3주씩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p25)', '바로 여기서 네 엄마와 나는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었다. 아마도 네 엄마가 널 잉태한 장소가 여기이지 싶다-너무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p259)' 같은 문장들이 왜 그렇게 재미있던지. 조금 시대착오적인 발언도 눈에 띈다. '자네는 여자가 '싫다'고 표현할 때에는 좋지만 두렵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 이해 못하지(p313)'를 읽으면서는 아주 그냥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저씨!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런 발언을! 여자의 싫다는 말은 정말 '싫다'일 수도 있다고요! 단정짓지 말라고요! 이 작품이 프랑스에서 발표된 게 2009년인데 그 때는 프랑스에도 이런 인식이 퍼져 있었던 걸까.

 

반가운 인물도 눈에 보인다. 시리즈 도서로 처음 읽은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의 엘리엇 쿠퍼. 이 양반은 다른 작품에서도 나왔던 것 같은데, 여기저기서 많이 활약하신다. 그리고 마르탱의 성은 보몽인데 [구해줘]에 등장한 여주인공 줄리에트의 성도 '보몽'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잠시 생각했지만, 작품 속 설명에 의하면 마르탱에게는 형제남매가 없는 것으로 보여 패스.

 

이런 저런 사항을 따지며 나름 꼼꼼하게 읽다보니 더 재미나게 읽은 것 같다. 항상 비슷한 내용인 것 같으면서도 매번 재미있게 읽는 기욤 뮈소의 작품들. 이 작가도 마성의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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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 7년간 100여 명의 치매 환자를 떠나보내며 생의 끝에서 배운 것들
고재욱 지음, 박정은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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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에 걸린 가족을 돌보는 것도 무척 힘든 일일텐데, 여기 몸과 정신이 온전치 않은 어르신들을 정성을 다해 돌보는 사람이 있다. 생의 끝에 선 치매 환자들을 돌보며 인생에 대해 묻고 답하는 이야기. 이제 우리 부모님 세대도 점점 건강을 걱정해야 하는 시기, 이 와중에 뭔가 깜빡깜빡하는 모습을 보이시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하다. 설마, 아니겠지, 그래도 검사를 받아보tl라고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되는 때가 온 것이다. 가족이 치매에 걸리면 어떻게 돌보아야 하나, 요양원으로 모셔야 하나, 요양원 비용은 얼마나 되나.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과 함께 가족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부모님의 모습. 자식들 뿐만 아니라 어르신들 또한 점차 변화하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시간 속에서 묵묵히 그 뒤를 맡아주는 요양보호사 분들이 계신다.

 

 

저자는 7년간 100여 명의 치매 환자를 떠나보내며 자신이 깨달은 것들에 대해 담담히 기술한다. 용변을 보면 손을 들어달라고 요청한 할아버지께서, 유독 바쁜 어느 날 여러 번 손을 드는 모습을 외면했더니 그 후로 다시는 손을 올리지 않으셨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부터, 밥 대신 새우깡만 그렇게 찾아 드시는 할머니, 남편을 일찍 저 세상으로 보내고 홀로 아이들을 키워냈지만 이제는 자주 찾아오지 않는 그들을 그리워하는 어르신들, 막내에게 새 옷 한 번 사주지 못한 미안함에 매일밤 유품이라며 보따리 안에 사탕 하나, 자신 옷 몇 벌을 싸놓는 할머니, 어려울 적 막내를 등에 업고 감자밭에서 일하다가 농약이 묻은 씨감자를 언제 집어먹었는지 먹어버리고 소리 없이 죽어버린 아이를 그리워하는 분, 한국 전쟁을, 일제강점시기를, 오늘보다 아주 먼 옛날의 기억이 더 선명해져 가는 분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인생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동안 혹사당해온 몸과 머리가 이제는 쉬고 싶다고 외치는 것일까. 왜 인간은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일까. 이런 우리들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요양원에도 일상이 있다. 바깥세상과 다르지 않다. 조금 느리고 조금 단순할 뿐이다. 거창한 희망과 열정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이든, 자세히 보아야만 보일 정도로 작은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든, 결국 모두 오늘을 살아간다. 건강하면 건강한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같은 하루를 살아간다. 이곳에서 지내다 보면 알게 된다. 지나버린 어제나 아직 오지 않은 내일보다 오늘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오늘이라는 희망은 모든 이에게 가장 공평하게 주어지는 희망이라는 것을.

p54

저자는 그 분들의 이야기를 단순히 연민만 담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치매라는 말 대신 '인지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우리나라 치매 환자들이 요양원에 들어오면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는 달리, 일본의 요양원은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데 그 목표를 두고 있다. 한국의 치매관련 예산은 OECD 국가 중 최하, 가정에서 보살필 수 없어 요양원에 보호를 위탁한 노인 십수 명을 요양보호사 한 명이 보살펴야 하는 열악한 환경, 치매환자들을 격리하기에 바쁜 현실. 2008년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되었지만 정부는 준비가 덜 된 이 제도를 민간에 넘겨버렸고 그 결과 일정 시설 조건만 갖추고 설치 신고를 하면 누구나 요양원을 개설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복지를 위한 시설이 단순히 이윤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인식의 개선, 양심의 부활이 기반이 되어 이제는 우리의 고령화 사회를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삽화들이 함께 실려 있지만 그래서 더욱 가슴 한 쪽이 먹먹해온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결국 한 번은 겪게 되는 죽음. 그 죽음에 이르는 길이 부디 고통스럽지 않기를 누구나 바라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새삼 깨닫게 되는 한 가지는, 어제보다 오늘을 더 행복하게, 내일 일을 걱정하기보다 오늘에 더 충실하게 살아야겠다는 점이다.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아낌없이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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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 결정적 리더십의 교과서, 책 읽어드립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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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 시즌이 끝났지만 방송에서 소개된 도서들의 인기는 사그라들지 않는 추세다. 나 또한 띠지에 이 홍보문구가 붙어있는 책이라면 평소 잘 읽지 않는 분야여도 한 번 더 눈길이 가곤 하는데, 이번에 고른 책은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옴마. 아마도 방송이 아니었다면 절대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읽기 전까지도 '내가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를 무척 고민했던 책이다. 왜냐! 나는 군주가 아니니까! 나는 신하가 될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읽다보니 왜 이 책이 방송에 소개되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군주나 신하 등의 단어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군주론]은 일종의 처세술에 관련된 책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자 탁월한 정치이론가로 알려져 있다. 몰락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일곱 살 때부터 라틴어를 공부했고, 피렌체 대학에서는 인문학에 심취해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요직에 앉게 된다. 1492년 피렌체가 위대한 로렌초의 사망으로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공화국 외교관으로서 강대국을 오가며 '강한 군대, 강한 군주'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우여곡절 끝에 이 [군주론]을 지어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바친다. 총 26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1장 국가의 종류 및 그 획득 방법들>을 시작으로, 군주 국가의 종류와 군대의 종류와 용병, 용병과 원군, 혼성군, 국민군의 비교 내용, 군사에 관한 군주의 의무, 군주가 칭송받거나 비난받는 원인들, 군주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들이 실려 있다.

 

책은 결코 두껍지 않으나 익숙한 내용들이 아니라 그런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처음 몇 페이지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역시 늘 그렇듯 머리를 살짝 쥐어뜯었으나, 요상하게도 읽다보니 점점 빨려들어간다. [군주론]을 짓기 전에 고생을 좀 해서인지 단호하게 느껴지는 어조와 내용들이 흥미진진하다.

군주는 자기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악도 행할 줄 알아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선을 취하기도 하고 버리기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에게서 후하다는 명성을 얻기 위해 결국 탐욕스러워져 남들의 미움을 사느니, 차라리 불명예스럽기는 하겠지만 인색하다는 비난을 듣는 편이 현명합니다.

 

인간은 자기가 두려워하는 자보다 사랑하는 자를 해치는 데 덜 주저합니다. 애정은 의리의 사슬에 매여 있는 것인데 인간의 본성은 악하므로 경우에 따라서 언제든지 이를 끊어버립니다. 반대로 두려움은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형벌이라는 공포에 의하여 지탱되므로 효과적입니다.

 

인간이란 아버지의 죽음은 곧 잊어버리지만 빼앗긴 재물에 대해서는 좀처럼 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문장들을 읽다보면 마키아벨리는 인간을 좀처럼 믿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성선설보다는 성악설을 지지하며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아버지의 죽음은 곧 잊어버리지만 빼앗긴 재물은 좀처럼 잊지 못한다니, 뜨악하면서도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르겠다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군주의 자리가 결코 쉽지 않음을, 그 간의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올만한 문장들이라고 할까.

 

군주와 신하, 백성의 관계를 떠나 현실에서도 응용이 가능한 처세술이라 느껴지는 것은, 그 자리에 자신과 타인이라는 단어를 대입해보면 알 수 있다. 인간의 본성과 삶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력을 발휘해 써내려간 군주론. 격변의 시대에 자신이 생각한 바를 글로 써 남긴 그의 각오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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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기억 1~2 - 전2권 (특별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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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부터 읽어온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들. 호불호를 떠나 새 작품이 출간되었다고 하면 일단 읽는다. 매번 다른 주제를 다루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그의 작품이 '인간의 기원'이 아닐까 생각해왔는데, 이번에는 심지어 최초의 인류, 이런 개념도 아닌 '전생'의 삶에 대해 다룬다. 그것도 몇 번이 아닌 무려 111번의 삶. 지금 생의 그 앞도 알지 못하는데 여러 번의 삶과 최초의 자신에 대해 알게 된다면, 그것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그들이 모두 '나'라는 자각이 있을까. 그들의 삶과 현재 내 삶에 과연 연결고리가 존재하는가.

 

고등학교 역사교사인 르네는 같은 학교 동료인 엘로디와 <최면과 잊힌 기억들>이라는 공연을 보러 갔다가, 최면사인 오팔에 의해 전생을 경험한다. 자신에게 보인 수많은 문들은 모두 111개. 고로 이번 생은 112번째라는 깨달음과 함께 111번의 문을 연 르네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프랑스 군인 이폴리트 펠리시에의 생을 직접 겪게 된다. 전투 도중 자신이 적군을 어떻게 죽이고 어떤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지를 모두 생생하게 경험한 르네. 혼란에 빠진 그는 정신없이 공연장에서 뛰쳐나오고, 마침 거리의 노숙자와 시비가 붙어 의도치 않게 그를 살해, 강에 유기한다. 이폴리트로서의 기억이 자신에게 내재된 폭력성을 일깨운 것이라 생각한 그는 다시 한 번 오팔을 만나 여러 삶을 경험하면서 그 기억들이 거짓이 아님을, 모든 생은 그 전 생의 바람이 내포된 삶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학생들은 지금까지 믿어온 것이 전부가, 진실이 아님을 이야기하는 르네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결국 그는 직장을 그만둔 채 자신의 최초의 삶, 아틀라스인인 게브를 대홍수에서 구하고, 그가 존재했다는 실제적인 증거를 얻기 위해 이집트로 떠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들은 무엇이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의심하게 만드는데 그것이 매력이면서도 조금 혼란스럽기도 하다. 신화나 전설로 여겨지는 아틀란티스 대륙, 그 곳에 살았던 80만명의, 지금의 인류보다 10배는 크고 10배는 오래 살았던 사람들, 성경에서 보았던 대홍수와 노아가 만들었던 방주를 게브가 만드는 장면, 살아남은 아틀란티스 사람들이 이집트에 도착해 신으로 추앙받는 내용들은 사실인가 허구인가 갈팡질팡하기도.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의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으니 어쩌면 작가의 상상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도 해본다.

 

음. 그런데, 작가의 작품들이 초기작에 비해 그리 엄청 재미있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왜일까. 111개의 전생이라는 소재는 독특하지만 굳이 두 권으로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속도감도 떨어지고, 중간 부분은 약간 지루하기도 했고. 그런데 또 마지막 장면을 보면 우리 삶의 신비함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뭔가 가슴이 먹먹하기도 한, 복잡한 기분이다. 하나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작가의 신작이 출간되면 또 읽을 것이라는 것. 마성의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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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관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김희균 옮김 / 검은숲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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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엘러리 퀸 콜렉션의 네 번째 책은 [그리스 관 미스터리] . 앞서 읽은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에서 '지금까지 읽은 엘러리 퀸의 작품들 중(그래봐야 세 권이지만) 가장 머리가 빙빙 돌고 범인의 가닥이 잘 잡히지 않았던 이야기였다. 어떤 비밀이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을 등장인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듯한 기분이랄까' 라고 기록했었다. 그런데 이 부분을 급! 수정해야 할 것 같다. [그리스 관 미스터리] 는 지금까지 읽은 네 권 가운데 가장 복잡하고, 몇 번이나 머리카락을 쥐어뜯게 만들고, 눈을 핑핑 돌게 만든 사건이었다. 작품의 주인공인 엘러리마저 단 한 번에 추리에 성공하지 못하고, 난항을 겪었던 사건!

 

저명한 미술품 거래상이자 감정가이며 수집가, 칼키스 갤러리의 설립자이며 뉴욕의 오래된 칼키스 가문 마지막 후계자인 게오르그 칼키스가 토요일 오전 자택 서재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워낙에 유명한 인사였기에 미심쩍은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사인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기에 장례식은 예정대로 거행된다. 그런데 그의 금고에 들어있어야 할 새로 쓰인 유언장이 사라지고, 엘러리는 유언장은 칼키스의 관 안에 있을 것이라며 무덤을 발굴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그의 말에 따라 다시 파헤쳐진 관. 그런데 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던 유언장은 온데간데 없이, 한 구의 시신이 칼키스의 시신 위에 엎어진 채 발견된다. 시신의 정체는 미술품 도난범인 앨버트 그림쇼. 익명의 쪽지에 의해 앨버트 그림쇼와 칼키스 갤러리의 지배인이자 칼키스의 매부인 길버트 슬론이 형제관계인 것으로 밝혀지며, 길버트 슬론의 혐의가 짙어지는 듯 하지만, 그 역시 시체로 발견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한 번의 실수로 체면을 구긴 엘러리는 입을 꾹 다문 채, 사건을 예의주시하고, 굽이진 길을 돌아 마침내 그의 실력이 빛을 발한다!

 

추리소설을 읽을 때는 늘 작가에게 뒤통수를 맞을 각오를 하고 책을 읽는 편이지만, [그리스 관 미스터리]를 읽으면서는 처음부터 범인을 맞추겠다는 의지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렸다. 비루한 머리로 사건의 전개를 따라가는 데만도 헉헉댔는데, 여기에는 엘러리가 범인을 위해 놓은 덫도 한몫 했다고 할까. 처음에는 A가 범인이라고 해놓고, A가 범인이 아니란다. 범인은 B였는데, 우와, 늘 그랬던 것처럼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인물이 범인! 그런데 이 범인이 무척 똘똘한 편이고 엘러리를 한 번 골탕먹였기 때문에 엘러리 또한 그를 가지고 놀아봤다고 진술하는데, 단순한 나로서는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할 사건 처리였다. 그저 나는 이 사람이 범인인가, 저 사람이 수상한데! 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을 뿐. 한편으로는 범인에게 아주 약간, 아주 쬐끔 안됐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함정을 파놓으면 누가 나타나서 그거 아니라 하고, 또 뭔가를 조작해놓으면 또 누가 나타나 그거 아니라고 진술하니 진땀이 나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다 끝났다!라고 생각했을 때 따란, 나타난 엘러리라니. 엘러리가 정말 밉기도 했을 것이나 결말은 결국 인과응보라고 할까.

 

권수가 더해갈수록 사건의 난이도도 올라가는 느낌이다. [로마 모자 미스터리]를 읽었을 때도 범인은 전혀 유추하지 못했지만, [그리스 관 미스터리]에 비하면 로마 모자는 뭐, 그냥 모자 쓰는 기분. 게다가 이번 편은 '차례'에서도 깜짝 놀라고 말았는데, 각 챕터의 영어 제목의 앞글자를 죽 연결하면 'THE GREEK COFFIN MYSTERY BY ELLERY QUEEN' 이 완성되는 것이다! 우와! 소리가 절로, 여러 번 나온 이번 작품. 머리가 다소 복잡하기는 했지만 엘러리의 추리와 논리 그물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고난 기분이다.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땅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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