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미 에비
J .P. 포마레 지음, 이순미 옮김 / 서울문화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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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은 소녀 에비. 분명 무언가 끔찍한 짓을 저지른 것만은 분명한데 그 일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오직 자신의 진짜 이름인 케이트만 기억할 뿐. 그런 에비의 곁을 지키는 짐은 일단 그녀의 삼촌이라 소개되어 있지만, 삼촌이라 하기에는 어딘가 수상쩍다. 자신과 동행하지 않고서는 외출도 하지 못하게 하고, 정체불명의 약을 먹이며, 인터넷을 통제하고, 이제는 그녀의 방에 CCTV마저 설치한다. '그들'에게 발각되어서는 안된다며, 주위를 살피는 짐. 대체 케이트는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인가.

 

이전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에서 케이트는 어린 시절 엄마를 잃고 럭비 스타였던 아빠와 둘이 생활하던 소녀였다. 같이 수영을 다니던 톰과 사랑에 빠져 친구인 윌로우마저 멀리하던 케이트. 톰이 찍는 카메라 렌즈 안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유를 느끼지만 시간이 흐르고 톰의 질투가 심해지면서 점점 그에게서 마음이 떠난다. 무언가 잘못되어간다는 것은 알았지만 금지된 사랑에 발을 들이고 만 케이트는 톰에게 이별을 말하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아가고, 그의 노트북에서 톰과 자신의 섹스 동영상, 은밀한 부위가 찍힌 사진 등을 발견, 경악한다.

 

기억을 잃은 소녀와 그녀를 감금한 남자. 이런 구도라면 분명히 이 남자는 나쁜 사람이다. 케이트의 기억을 조작하고, 그녀가 저지르지 않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위장하려는 남자. 혹시라도 진실이 밝혀질까 두려워 그녀를 납치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수상쩍은 주위 사람. 케이트에게 친절을 베푸는 이웃마저 짐에게 회유당한 듯 하다. 이 불안하고 두려운 상황 속에서 케이트는 결국 탈출을 감행하지만 무엇도 수월하지 않고, 마침내 진실이 드러난다.

 

반전이라고 하는 결말이 밝혀지기 전까지 자아내는 긴장감은 작가의 첫 장편 데뷔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반전이 반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고 할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문장도 있었고, 톰이 벌인 일을 알고나자 마지막을 예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엄청 열심히 고지를 향해 달려갔는데 너무 쉽게 맥이 빠져버린 듯한 느낌. 결말만 조금 단단했다면 더 멋진 작품이 될 수 있었을텐데 약간 아쉽지만, 데뷔작인만큼 다음 작품을 기대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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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말하지 않으면 늦어버린다 - 죽음을 앞둔 28인의 마지막 편지
이청 지음, 이재희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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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대학에서 심리학 석사 과정을 밟으며 인간은 언제 참회하고 싶어 할까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던 저자. 그는 임종 유언을 수집하기로 결정하고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유언을 모집하기 위해 <뉴욕타임스> 지면에 조그마한 광고를 낸다. 죽기 전에 하고 싶었던 말이 있는데 할 수 없었다면 자신에게 맡겨달라던 광고를 본 사람들은 그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편지를 보낸 사람 중에는 대학교수, 택시 운전사, 대기업 총수, 에이즈 환자, 가정 주부, 심지어 맨해튼에 오랫동안 은둔한 할리우드 배우까지 있었다. 이 책은 그런 그들이 저자에게 보낸 유언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말이었기 때문일까. 나에게는 한통 한통의 편지가 한 편의 시처럼, 한 편의 소설처럼, 뛰어난 문학작품으로 다가왔다.

 

수많은 편지들 중에서 유독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연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부모님의 뜻대로만 살았던 피아니스트>의 유언이었다. 폐암 말기로 죽음을 앞둔 그녀는 대만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흠뻑 빠져 산 실력 있는 피아니스트였다. 다섯 살 때 대만 전국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을 한 이후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쓴 그녀를 위해 그녀의 부모는 프랑스로 이민을 결심했고, 갖은 고생 끝에 그녀를 키워냈다. 그런 그녀가 프랑스에서 만난 리옹이라는 남자. 그들은 서로를 깊이 사랑했고 결혼을 약속하지만 피아니스트의 부모님의 반대로 결국 헤어지고 만다. 프랑스를 떠나 대만에서 강의도 하고 개인 레슨을 하며 생활하던 그녀는, 부모님의 강요로 원치 않은 결혼을 하고, 그 결혼은 물론 실패로 끝난다. 이혼 후 캘리포니아에서 새 삶을 시작한 그녀. 하지만 또 한 번 부모님의 뜻에 따라 재혼을 결심하고, 그 결혼조차 남편의 바람으로 끝을 맺는다. 그 동안의 세월동안 그녀의 생일이면 한 번도 잊지 않고 장미를 배달해주었던 리옹. 죽음을 목전에 둔 그녀는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설령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해도 리옹과 함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부모님께 효도하려고 한 일이 결국에는 더욱 그 분들을 괴롭히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면서. 이 글을 읽으면서 절대 아이들의 삶을 내 삶과 혼동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결심했다. 선택도, 책임도 온전히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두자고.

 

에이즈에 걸린 동성애자의 편지도 있었다. 불화와 반목으로 얼룩진 부모님의 결혼생활을 지켜보면서 여성과의 관계에 불안함을 느낀 것이 성 소수자의 길을 걷게 된 원인 중 하나라고 밝힌 그는, 에이즈 말기로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편지로나마 알 수 있었다. 마치 한 편의 시처럼 다가온 그의 유언.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유언을 보관해 줄 저자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성 소수자는 괴물이 아니에요. 우리의 성적 취향은 단지 관계의 일부분일 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누구보다 사랑을 갈망한다는 것이죠. 그것은 죄가 아니잖아요. 누구나 사랑을 원하는 것과 같은 거라고요.

마치 태양과 식물의 관계 같은 거예요. 태양이 만물을 비출 때 식물을 구분하던가요? 절대로 그렇지 않거든요. 인간의 편견은 서로 다른 꼬리표를 만들어 놓고 스스로를 갈라놔요. 인간은 꼬리표가 필요 없어요. 사랑과 관용은 꼬리표라는 의미를 알지 못하거든요. 태양이 작은 풀과 장미를 영원히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예요.

p131

편지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고백한 이들은 대부분 담담했다. 곧 세상을 떠날 그들에게 남은 것은 원망과 증오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감사,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자신이 저질렀던 일에 대한 회개 같은 것이었다. 여기에 적힌 글들을 읽으니 과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충만한 삶인지 생각하게 된다. 순간의 이익에 눈 멀지 않고,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할 것. 더 늦기 전에 가슴 속에 간직한 그 말을 꼭 건넬 것. 그 어떤 명사의 강연보다 감동있고 울림 깊은, 명언이 넘쳐흐르는 인상깊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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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살인법
저우둥 지음, 이연희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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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회파 미스터리에 찬호께이의 강력추천이라니 너무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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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 (양장)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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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나'의 직업은 계산사. 단순히 숫자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수치를 우뇌에 입력해서 전혀 다른 기호로 전환한 다음 좌뇌로 옮기고, 좌뇌로 옮긴 것을 처음 숫자와 전혀 다른 숫자로 꺼내서, 그걸 용지에 타이핑'하는 브레인 워시와 '세계의 끝'이라는 드라마를 불러내면 의식이 카오스로 침잠해 그 안에서 수치를 셔플하는 셔플링이라는 것을 하는 사람이다. 처음 등장부터 이 인물의 머리 쓰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 자신에게 일을 의뢰한 과학자를 만나러 가는 길, 양손을 좌우 주머니에 집어넣어 오른손으로는 100엔짜리와 500엔짜리 동전의 금액을 계산하고, 동시에 왼손으로는 50엔과 10엔짜리 동전의 금액을 계산하는 그를 묘사하는 문장을 읽고있자니 머리가 멍해졌다. 인간으로서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나는 한 손은 도형을 그리고 한 손은 위아래를 휘젓는 동작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데! 그렇게 능력이 뛰어난 인물이니 그가 속한 조직을 통하지 않고 의뢰가 들어온 것이겠지-라고 납득하려는데, 이 과학자가 하는 일도 신기하지 그지 없다. 두개골에 숨겨진 신호를 듣는 연구를 진행하는 그의 설명에 따르면 뼈에서 기억을 수집할 수도, 주변의 소리를 뽑아내거나 심는 일도 할 수 가능하단다.

 

과학자의 연구실에서 브레인 워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 곧이어 과학자로부터 일각수의 두개골이 선물로 도착한다. 같이 동봉된 스테인리스 부젓가락으로 이마 부분을 가볍게 두드려보니 들려오는 '구웅'하는 소리. 그런 그의 집에 침입자가 들어온다. 한 명은 꼬마, 한 명은 덩치. 너무나 자연스럽게 문을 부수고 들어와 자신들은 '나'가 속한 조직이나, 계산사들과 대립하는 기호사가 속한 '공장'과는 다른 단체의 일원으로 ''나'는 모르는 무언가를 자신들은 알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나'의 집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조직'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방편으로 배까지 찔린 '나'의 앞에 과학자의 오동통한 손녀가 찾아와 당장 할아버지를 구하러 가야 한다고 재촉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계가 끝날 것이라면서. 앞뒤 상황 자세히 모르겠고, 영문도 알 수 없지만 과학자를 구하지 않으면 곤욕을 치르는 것은 자신이 될 것 같은 예감에 결국 그녀의 뒤를 따라 일을 의뢰받았던 연구실로 향한다.

 

한편 <세계의 끝>의 '나'는 어째서 이 세계로 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벽으로 둘러싸인 마을로 들어오기 전 자신의 그림자와는 이별해야했고, 이제 그는 눈에 '꿈 읽기'의 표식을 새기고 도서관에 보관된 일각수의 두개골을 통해 오래된 꿈을 읽으며 지낸다. 일각수들은 낮에는 높고 굳건한 벽에 있는 문을 통해 마을로 들어오고, 밤이 되면 다시 그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 잠을 잔다. '나'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마음이 없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아직 마음을 가지고 있는 '나'는 그림자가 죽으면 역시 마음이 없는 상태로 바뀌어버리는 것인가. 그 어느 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도서관 사서 여자에게서 아련한 그리움만을 느끼는 '나'의 생활은,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나'와는 달리 고요하고 무겁다.

 

1권을 다 읽었는데도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다른 두 가지 스토리를 병행해 번갈아 써 나간다. 그리고 두 이야기가 마지막에 합체된다-그런 의도였는데 그 두 이야기가 어떻게 합체되는지는 써나가면서도 알 수 없었다'고 하니, 읽는 독자인 내가 내용파악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 아닌가 싶기도. 2권까지 읽다보면 두 이야기가 절묘하게 하나가 되는 지점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 막연히는 생각하고 있지만 조금 답답하기는 하다.

 

이 와중에 섹스와 그 외 성적인 이야기는 왜 그리 자주 나오는 것인가. 내가 볼 때는 전혀 그런 이야기가 나올 상황이 아닌데도 아-주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과학자를 만나러 그의 연구실로 향할 때, 길을 안내하는 과학자의 손녀-분홍 슈트를 입고 오동통한-를 바라보면서도 살찐 여자와의 잠자리를 생각한다거나, 일각수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도서관 사서에게 부탁한 책을 그녀가 직접 가지고 나타났는데 갑자기 침대로 향한다거나 하는 다소 어이없는 상황들이 등장한다고 할까.

 

그런데 문제는. 이 소설의 방향이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자꾸 등장하는 성적인 이야기가 그리 달갑지는 않으면서도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것. 그러니 계속 읽어나갔을테지만 이것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가 가진 힘인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도서관 사서와 <세계의 끝>의 도서관 사서는 연관이 있는 것인가, 양쪽 세계의 '나'는 윤회인가 그렇지 않으면 한쪽이 다른 한쪽의 꿈같은 존재인가, 혹시 <세계의 끝>의 '나'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나'의 무의식인 걸까. 그리고 일각수가 이야기하는 꿈은 과연 무엇인지 너무너무 궁금하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나'가 그야말로 하드보일드한 상황 속에서도 덤덤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거대한 태풍 앞에서도 심드렁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는 한편, <세계의 끝>에서의 '나'는 조용하고 침묵이 덮인 마을에서 홀로 흔들리는 태도를 보이는 대비도 뭔가 의미있는 것처럼 다가온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대학 다닐 때 하도 분석하면서 읽어서인지 그동안 에세이에 집중하고 소설은 등한시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역시 재미있다. 2권에서 드러날 비밀을 기대하며,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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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비웃는 숙녀 비웃는 숙녀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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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아버지의 죽음, 은행원이었던 동창의 죽음, 사촌 일가의 죽음, 실직한 가장의 죽음 등을 뒤에서 조종하며 생각지도 못한 반전을 선사했던 [비웃는 숙녀]의 가모우 미치루가 다시 돌아왔다! 학교 폭력과 친족 성폭행, 사치와 횡령, 존속살해, 보험금 살해 등 단어만으로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자극적인 소재로 진행되는 '이야미스'. <비웃는 숙녀> 시리즈는 인간의 어두운 심리를 주요 소재로 삼는 일본 추리소설 장르 중 하나인 이 이야미스 세계 속에서 나카야마 시치리가 창조한 '가모우 미치루'라는 여성이 종횡무진 활약(?)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시치리 월드 중 하필 제일 처음 만난 작품이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였는데, 이 작품을 읽고 내 다시는 이 작가 책을 읽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정도로 무척 역겹고 잔인한 이미지가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비웃는 숙녀>는 그 작품보다 수위가 조금 낮기는 하지만, 인간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어두운 욕망과 그 욕망을 간파해내 상대를 파탄으로 몰고 간다는 설정 자체가 피부에 벌레가 달라붙는 것 같은 감각으로 나를 괴롭혔다.

 

[다시 비웃는 숙녀]에서는 전편에서 새로운 신분으로 태어난 가모우 미치루가, 3년 후 노노미야 쿄코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타나 국회의원인 야나이 고이치로를 과녁 삼아 화살을 쏘는 이야기를 다룬다. 국회의원 자금단체인 비영리법인의 사무국장, 신자를 모아 재산을 노리는 종교 법인의 부관장, 야나이를 후원하는 모임의 후원회장, 그리고 그의 충실한 비서까지 노노미야 쿄코의 거미줄에 걸려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타인의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빼앗아가면서도 시종일관 담담한 느낌으로 등장했던 미치루인데, 대체 무슨 원한이 있기에 야나이를 상대로 이런 계략을 꾸미는 것인가. 여기에 야나이에게 원한을 가지고 미치루와 함께 움직이는 남자와 미치루에게 충성을 바치는 여자까지 등장, 이들이 이제는 그들만의 왕국을 건설하는구나 하는 찰나에 또다시 일어나는 반전!

 

가모우 미치루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녀가 히어로인 줄 알았다. 친부에게 학대를 당한 상처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세상의 악을 처단하는 멋진 영웅. 이 될 거라 기대했는데, 내 기준에 그녀는 악녀다. 자신의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고 다른 사람이 상대를 끌어내리거나 죽이는 것을 보며 순수하게 기뻐한다. 그 욕망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고, 그 욕망에 몸을 맡긴 채 파괴할 대상을 발견하면 희열을 느낀다. 타고난 명석함과 교활함, 감정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 무쇠로 만들어진 심장. 미치루의 존재와 그녀가 벌이고 있는 일을 알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경찰들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낄 정도다.

 

'이야미스' 장르는 그 동안 의식적으로 피해왔는데,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이라 너무 궁금해 그만 읽고 말았다. 뒷맛이 매우 안좋다. 누구에게도 이렇게 타인의 삶을 조종하고 파괴할 권리는 존재하지 않을텐데, 이 이야기를 읽고 미치루를 경외하거나 따라하고 싶어할 사람들이 생길까봐 걱정스러울 정도. 과연 이 악녀가 꼬리를 잡히는 일이 일어나기는 할까. 그런 날이 과연 오려나. 드물게도 주인공이 응징을 당하게 되기를 기대하게 되는 작품이다. 역자의 말에 의하면 시치리 월드의 한 명과 맞붙게 된다는데 그 인물이 누구일지 무척 기대된다. 혹시..미코시바 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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