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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비웃는 숙녀 ㅣ 비웃는 숙녀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7월
평점 :

친아버지의 죽음, 은행원이었던 동창의 죽음, 사촌 일가의 죽음, 실직한 가장의 죽음 등을 뒤에서 조종하며 생각지도 못한 반전을 선사했던 [비웃는 숙녀]의 가모우 미치루가 다시 돌아왔다! 학교 폭력과 친족 성폭행, 사치와 횡령, 존속살해, 보험금 살해 등 단어만으로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자극적인 소재로 진행되는 '이야미스'. <비웃는 숙녀> 시리즈는 인간의 어두운 심리를 주요 소재로 삼는 일본 추리소설 장르 중 하나인 이 이야미스 세계 속에서 나카야마 시치리가 창조한 '가모우 미치루'라는 여성이 종횡무진 활약(?)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시치리 월드 중 하필 제일 처음 만난 작품이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였는데, 이 작품을 읽고 내 다시는 이 작가 책을 읽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정도로 무척 역겹고 잔인한 이미지가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비웃는 숙녀>는 그 작품보다 수위가 조금 낮기는 하지만, 인간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어두운 욕망과 그 욕망을 간파해내 상대를 파탄으로 몰고 간다는 설정 자체가 피부에 벌레가 달라붙는 것 같은 감각으로 나를 괴롭혔다.
[다시 비웃는 숙녀]에서는 전편에서 새로운 신분으로 태어난 가모우 미치루가, 3년 후 노노미야 쿄코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타나 국회의원인 야나이 고이치로를 과녁 삼아 화살을 쏘는 이야기를 다룬다. 국회의원 자금단체인 비영리법인의 사무국장, 신자를 모아 재산을 노리는 종교 법인의 부관장, 야나이를 후원하는 모임의 후원회장, 그리고 그의 충실한 비서까지 노노미야 쿄코의 거미줄에 걸려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타인의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빼앗아가면서도 시종일관 담담한 느낌으로 등장했던 미치루인데, 대체 무슨 원한이 있기에 야나이를 상대로 이런 계략을 꾸미는 것인가. 여기에 야나이에게 원한을 가지고 미치루와 함께 움직이는 남자와 미치루에게 충성을 바치는 여자까지 등장, 이들이 이제는 그들만의 왕국을 건설하는구나 하는 찰나에 또다시 일어나는 반전!
가모우 미치루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녀가 히어로인 줄 알았다. 친부에게 학대를 당한 상처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세상의 악을 처단하는 멋진 영웅. 이 될 거라 기대했는데, 내 기준에 그녀는 악녀다. 자신의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고 다른 사람이 상대를 끌어내리거나 죽이는 것을 보며 순수하게 기뻐한다. 그 욕망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고, 그 욕망에 몸을 맡긴 채 파괴할 대상을 발견하면 희열을 느낀다. 타고난 명석함과 교활함, 감정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 무쇠로 만들어진 심장. 미치루의 존재와 그녀가 벌이고 있는 일을 알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경찰들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낄 정도다.
'이야미스' 장르는 그 동안 의식적으로 피해왔는데,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이라 너무 궁금해 그만 읽고 말았다. 뒷맛이 매우 안좋다. 누구에게도 이렇게 타인의 삶을 조종하고 파괴할 권리는 존재하지 않을텐데, 이 이야기를 읽고 미치루를 경외하거나 따라하고 싶어할 사람들이 생길까봐 걱정스러울 정도. 과연 이 악녀가 꼬리를 잡히는 일이 일어나기는 할까. 그런 날이 과연 오려나. 드물게도 주인공이 응징을 당하게 되기를 기대하게 되는 작품이다. 역자의 말에 의하면 시치리 월드의 한 명과 맞붙게 된다는데 그 인물이 누구일지 무척 기대된다. 혹시..미코시바 레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