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카디프, 바이 더 시 - 조이스 캐럴 오츠의 4가지 고딕 서스펜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5월
평점 :

[오츠 여사가 안내하는 탈출과 복수의 가족 잔혹극]
책을 읽다보면 종종 두통이 엄습해올 때가 있습니다. 혹시 저같은 독자 분들이 또 계실지 모르겠는데, 주로 읽기 불편한 상황이 등장한다든지, 꿈속까지 쫓아올 것 같은 공포스러운 장면이나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을 읽을 때 겪는 증상이에요. 그런 작품을 쓴 작가의 책에는 또다시 손을 대기가 무척 어려워지죠. 저에게는 '조이스 캐롤 오츠'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읽고 나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두통에 시달리면서도 오츠 여사의 글은 또 읽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고, 오츠 여사 작품의 매력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단계지만 [카디프, 바이 더 시]는 '여성'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확실히 인상적인 작품들이 실려 있습니다.
표제작 <카디프, 바이 더 시>는 어린 시절 입양된 클레어가 갑자기 친할머니의 유산을 상속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잊고 살았다고 여겼던 자신의 출생. 인생에서 한쪽으로 미뤄두었던 출생과 입양에 대한 궁금증이 막힌 댐이 무너지듯 흘러넘치고, 결국 클레어는 자신의 '진짜' 고향으로 향해요. 그 곳에서 맞닥뜨린 이모할머니들과 작은 아버지 제러드, 그리고 가족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클레어를 현실과 환상의 경계 어디쯤으로 이끌어가고 영원히 탈출할 수 없는 미로에 갇힌 듯한 인상을 남기며 마무리됩니다.
[카디프, 바이 더 시]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인물들이에요. 입양되기는 했지만 양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잘 성장해왔고 미술을 전공해 연구 중인 클레어는 물론, 집 안팎에서 성적으로 희롱당하며 자신과 같은 처지라고 느껴지는 길고양이에게 집착하는 <먀오 다오>의 미아, 이기적이고 차가운 강사 사이먼과의 원하지 않은 관계로 임신한 채 그 사실을 밝히지도 못하고 자신과 이성적인 관계를 원하는 노교수 사이에서 흔들리는 <환영처럼 : 1972>의 앨리스, 전처가 아이를 살해하고 자살한 남자와 결혼했지만 전처의 심리를 이해하게 되어버린 <살아남은 아이>의 엘리자베스까지 모두 자신 이외의 환경 때문에 상처받고 흔들리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내면의 상처와 불안으로 인해 자신의 삶에조차 통제력을 잃은 여성들. 그녀들에게 종교는 자신들을 구해줄 수 있는 무엇도 아니며 오히려 비난받아 마땅한 것으로 등장합니다. 앨리스에게 폭력을 가한 사이먼이 '예수님, 성모님, 요셉님!'이라고 외치는 장면에서는 조소가 새어나와요. 클레어가 자신의 부모와 형제들을 살해했다고 믿는 제러드 또한 신부가 되려고 준비했다가 실패한 인물로, 어쩌면 오츠 여사는 인간의 삶에서 종교의 힘을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종교란 무의미한 것으로 등장합니다.
연약하고, 남성들의 물리적인 힘과 통제, 개개인의 트라우마로 상처받은 그녀들이지만 그럼에도 저항을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 매력이라면 매력이랄까요. 의붓딸인 미아 앞에서 성기를 드러낸 양아버지에게 커다랗게 코웃음을 치며 비웃는 미아나, 임신한 상태로 아이의 아버지에게 '나는 당신이 필요없다'고 말하는 앨리스를 보면 그래도 여성들이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결연히 이어나가려고 하는 의지가 보임과 동시에, 어째서 여성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살아나가기 위해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가, 하는 슬픔 같은 것도 느껴져요.
에드거 앨런 포의 여성형이라는 평가를 받는 오츠가 보여준 4가지 가족 잔혹극은, 어쩌면 허구가 아니라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알고 있으나 구태여 서술하지 않는 것들을, 오츠 여사이기에 종이에 옮겨 적을 수 있었던 거죠. 때로는 스릴러인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환상특급을 보는 것 같기도 한 그야말로 '광기'라는 단어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네 편의 이야기. 오츠식 고딕 서스펜스 세계로 초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