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걷는 여자들 - 도시에서 거닐고 전복하고 창조한 여성 예술가들을 만나다
로런 엘킨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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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영은님의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를 무척 인상깊게 읽었다. 이상하게도, 어느 시대고 쉽지 않은 여성이라는 존재의 치열한 삶. 그들의 굴곡진 생애와 그 생애 속에서 이루어낸 값진 열매들. 하지만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남는다. 그 이후 책에 등장한 여성들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몇몇 작품은 찾아 읽기도 했다. 그리고 만나게 된 [도시를 걷는 여자들]. 도시에서 거닐고 전복하고 창조한 여성 예술가들. 조르주 상드, 버지니아 울프, 진 리스, 소피 칼, 아녜스 바르다가 이 책에서 살아 숨쉰다.

 

걷는 행위는 오랜 세월 예찬되어왔지만 공공장소를 걷는 일은 성차별과 관련되어 있기도 했다. 여성이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고는 길을 자유롭게 다닐 수 없었던 시대, ‘거리의 여자(성매매 여성)’라는 낙인이 찍히던 시대는 그리 먼 과거가 아니며 지금도 거리를 걷는 여성들은 밤길의 잠재적인 성폭력의 위협에 시달리고, 대상화하는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 걷기의 역사와 의미를 총망라한 책 [걷기의 인문학]에서 리베카 솔닛도 이와 같은 지적을 했다.

 

[도시를 걷는 여자들] 에서 로런 엘킨은 여성이 도시에서 걸을 때 만나는 위험과 매혹을 탐구한다. 이 책의 원제는 ‘플라뇌즈(flaneuse)’로 보들레르로 대표되는 근대의 도시 보행자, 천천히 걸으며 도시를 관찰하는 산보자를 뜻하는 말인 ‘플라뇌르(flaneur)’라는 남성형 명사를 여성형으로 바꾼 단어다. 엘킨은 전 세계의 대도시를 두 발로 걸으면서 자신보다 앞서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베네치아를 무대로 활동했던 여성 예술가들을 만난다. 조르주 상드, 버지니아 울프, 진 리스, 소피 칼, 아녜스 바르다 등의 삶과 작품을 통해 그들이 걸어온 길과 저자의 삶 또한 살짝 엿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읽어내려가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왜 이리 문장이 턱턱 걸리는지,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를 읽을 때와는 영 다른 느낌이었는데 어째서인지는 콕 집어 말하기 어렵다. 오랫동안 끌어안고 끙끙 거린 책이었는데 나중에 한 번 더 마음을 가다듬고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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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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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자를 자처하며 동남아시아나 오세아니아의 소수민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사회나 가족 구조를 관찰해왔던 스즈키 조. 그에게는 또 다른 얼굴이 있었는데 조강지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사창가에서 곤란한 처지의 여자를 사서 취직 비자를 내어주고 일본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의 사망 후 발표된 기사에 따르면 조가 숨겨두었던 여자는 스무 명이 넘었다고 하니, 이 남자의 변태성에 입이 떡 벌어질 지경. 오마타 우시오는 그런 스즈키 조와 그가 말레이시아에서 데려온 매춘부의 둘째 아이였다. 세 명째의 아이를 사산한 어머니는 우시오가 초등학교 소풍에 나선 날 아침 수면제를 과다복용하고 사망, 형은 그의 중학교 수학여행날 밤에 교통사고로 사망. 비극적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는 그의 인생에 한가닥 희망의 빛이 비춰진 것은, 스무 살 무렵이었다.일용직 일로 입에 풀칠하며 지내는 우시오에게 조의 변호사가 그의 죽음과 함께 우시오에게도 상속권이 있다고 알리면서 받게 된 조의 유품들. 곰팡내 나는 자료들 속에서 미발표된 소설의 원고를 발견한 우시오는, 그것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면서 일약 인기 추리소설 작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소설이라고는 써본 적 없는 우시오에게 접근한 미모의 여대생 하루카. 생각이라고는 없는 것처럼 보이는 우시오는 자신에게 접근한 하루카와 호텔로 향하고, 관계 후 잠깐의 실랑이 끝에 하루카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 그런데 이 하루카의 모습이 어쩐지 이상하다. 목에 엄청난 상처를 입었음에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피가 아닌 노란 고름같은 액체가 튀어나오는 기이한 모습에 기겁한 우시오는 급히 자리를 피한다. 얼마 후 접한 하루카의 사망소식.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아마키 아야메라는 작가로부터 초대장을 받고 사나다 섬으로 향하고 있다. 초대에 응한 사람은 우시오를 포함해 모두 다섯 명. 모두 추리소설 작가인 그들을 맞이한 것은 거대한 식탁에 놓여진 진흙 인형 다섯 개 뿐이었다. 마침내 사건의 막이 오른다!

 

                                            

                         

 

***여기서부터는 스포??!!

 

읽는 동안 내내 '와, 이 소설 뭐지?'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어쩐지 등장인물들이 차례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예감은 적중! 심지어 우시오가 먼저 죽음을 맞는 상황이 벌어져 '아, 우시오가 진정한 주인공이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하고 다음 페이지를 펼친 순간, 갑자기 그가 되살아난다! '뭐지? 그럼 죽은 게 아니었던 건가?'라고 다시 생각한 순간, 아니다, 그는 죽었는데 다시 되살아났다는 설정. 좀비도 아니고 이런 일이 실제로 가능한지 놀라고 있는데 죽었다가 되살아난 것은 우시오 뿐만이 아니었다. 사나다 섬에 초대받은 모두가 다른 방법으로 살해당한 후 다시 살아나 자신들을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그 동기가 무엇인지 밝혀낸다는 것이 진짜 설정이었던 것이다. 하나같이 기괴한 모습으로 돌아다니면서 진범에 대해 토론하고, 그 트릭에 대해 논하는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자니 이것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작품 속으로는 확실히 빨려들어갔다. 상상을 초월하는 전개와 등장인물들이 펼치는 추리대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어째서 제목이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인지, 표지 그림 속 여자의 입가에서부터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 피가 아닌 다른 무엇처럼 보이는지 그 정체를 알게 된다. 작가의 능력에는 깜짝 놀랐지만 장면 하나하나를 상상하면, 음, 마치 온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시리즈>로 알게 된 출판사, 내친구의서재. 이 출판사라면 무조건!하고 구매하는 브랜드가 있는데 아무래도 '내친구의서재'도 그 목록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일단 다음 작품이 다시 또 살인곰! 지켜보겠습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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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 책 읽어드립니다, 김구 선생의 독립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 지음 / 스타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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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의 일생과 생각을 통해 우리 나라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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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피스트
헬레네 플루드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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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피스트(심리치료사]로 일하는 사라. 어느 날 새벽 남편 시구르가 친구들과의 만남을 위해 집을 나섰는데 그가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히 그는 사라가 내담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그녀의 휴대폰에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이미 친구들과 만난 것처럼 이야기하고, 어떤 한 친구의 모습을 묘사까지 하는 내용의 메시지. 세세한 부분까지 잘 기억하는 사라는, 건축가로 일하는 시구르의 도면통이 한때 벽에 걸려 있지 않다가 돌연 모습을 드러낸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집안 곳곳에서 느껴지는 침입자의 기운. 경찰은 그녀의 행동을 망상증 정도로 치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지만, 집에 은밀히 설치된 감시카메라에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찍혀 있다!

 

'기억은 변한다.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다' 라는 문장에서부터 이 작품에 대한 혼란이 시작된다. 정말 사라가 기억하는 것처럼 시구르는 새벽에 집을 나섰는가. 사라만 들었던 시구르의 음성 메시지-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시구르가 거짓말을 했다는 생각에 화가 나 충동적으로 삭제해버린 그 음성 메시지는 실제로 존재했나, 사라가 떠올린 그 기억에 혼란이나 착오는 없는 것인가.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범인은 시구르다!'라고 생각했다. 경찰과 사라가 모두 시구르라고 생각한 시체는 그와 외모가 닮은 것일 뿐 진짜 시구르는 아니고, 시구르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거나 금전적인 이유로 자신은 죽은 척, 결국에는 사라를 해치려고 하는 음모구나-라고 나름의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헹, 코웃음까지 치면서. 그런데 오, 의외의 반전! 훨씬 더 깊은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던 그 반전을 알고나니 수수께끼가 풀려 속이 시원하다기보다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슬픔을 느껴진다.

 

작품은 사라와 시구르의 과거의 행적이 드문드문 삽입되면서 진행되는데 읽는 동안에는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던 그 부분이 이야기의 마지막에 다가갈수록 애달프게 다가왔다. 시구르가 어떤 사람이었든, 무슨 일을 했든, 그들은 부부였고 서로를 사랑했다. 시구르가 살아있었다면 그들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사라가 '헤이, 러브'라 속삭이는 그의 음성을 다시는 듣지 못하게 되었다고 자각하는 순간의 아픔은, 마치 내 것처럼 느껴졌다. 소중한 누군가를 위해 어디까지, 무슨 짓까지 할 수 있는가. 나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스릴러인만큼 길고 자세하게 리뷰를 쓸 수 없는 점이 아쉽다.

 

요즘은 액션과 스릴이 넘치는 스릴러보다 요렇게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놨다 하는 심리스릴러가 대세인 듯 한데, 이 작품 역시 그 분위기를 흠뻑 즐기며 읽어내려갔다. 북유럽 스릴러 특유의 서늘한 맛이 좋았던 작품.

 

아니, 그런데 왜! 유부남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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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죽였다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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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을 연구하는 간바야시 다카히로와 시인인 그의 여동생 간바야시 미와코에게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어릴 때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 각각 다른 친척에게 맡겨진 뒤 다시 만나 같이 살게 된 것이 불과 5년. 너무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기 때문일까.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을 허락하지만 그 앞길이 순탄하지 않을 것임은 불보듯 뻔한 일. 그런 관계를 벗어나기 위해서였는지 미와코는 인기 작가인 호다카 마코토와 연인 사이가 되어 이제 그와의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호다카의 매니저인 스루가 나오유키와 미와코의 담당편집자이자 신랑 신부를 이어 준 유키자사 가오리, 간바야시 다카히로와 미와코, 호다카가 그의 자택에 모여 대화를 나누던 중, 정원에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를 보고 흠칫 놀라는 호다카와 스루가. 그녀는 호다카가 언젠가 자신과 결혼해 줄 것이라 믿고 품었던 아이마저 낙태한 옛 연인 나미오카 준코였다. 스루가가 호다카를 만나야겠다는 그녀를 설득해 간신히 돌려보내고 일행은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한다.

 

식사 도중 준코로부터 전화를 받은 스루가는 불안한 예감에 휩싸이고 호다카의 정원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준코를 발견한다. 호다카와 함께 준코의 시신을 그녀의 맨션으로 옮기고, 남몰래 그녀를 향한 사랑과 호다카에 대한 미움으로 눈물을 흘리는 스루가. 그들을 미행한 유키자사 가오리가 그 모습을 훔쳐보다 스루가에게 발각된다. 한편 간바야시 다카히로는 미와코와 함께 묵게 된 호텔 룸에서 정체불명의 협박범으로부터 한 통의 메시지를 받는다. 마침내 밝아온 결혼식 당일. 힘차게 행진해야 하는 신랑 호다카가 독이 든 캡슐을 먹고 사망하고 이에 용의자로 몰린 간바야시 다카히로와 유키자사 가오리, 스루가 나오유키. 다시 가가 교이치로의 활약이 시작된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 시리즈>의 다섯 번째 도서인 [내가 그를 죽였다]. 천하의 바람둥이에 인정머리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데다, 곧 결혼하게 될 미와코마저 사업적으로 이용할 생각에 골몰해 있던 호다카지만, 그렇다고 그의 목숨을 앗아갈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생각한다. 가가 형사가 수사를 진행해나가는 원동력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아무리 파렴치한 사람이더라도, 아무리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더라도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서는 안된다는 철칙.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원칙도 소중한 사람이 연관되어버리면 아무 소용 없는 것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간바야시 다카히로에게는 미와코가, 스루가 나오유키에게는 나미오카 준코가 그런 존재였다. 유키자사 가오리의 경우에는, 그 소중한 대상이 '자아'였던 듯.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처럼 이 작품도 범인을 특정지어주지 않는다. 사건에서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이 호다카가 먹은 독이 든 캡슐인데, 이 캡슐의 행방을 놓고 역시나 골치 아픈 추리가 계속된다. 이 캡슐을 누가 가지고 있었는지, 누구에게 호다카를 독살할 기회가 있었는지. 열린 결말, 범인을 알려주지 않는 추리소설 정말 싫어하지만, 그래도 이번 작품은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에 비해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했다-라고는 해도 역시 혼자의 힘으로 추리하는 건 실패.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나서야 그제야 납득했다. 아아, 하고.

 

세 사람의 시선으로 서술되는 추리소설. 비록 이번 편에서 가가의 출현이 다소 적었던 데다, 나의 범인 색출은 또 실패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늘 재미있다. 어딘가 유치하고 말이 되지 않는 듯 하면서도 끌려들어가는 이 매력. 역시 추리소설의 제왕다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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