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완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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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고나가와 시티가든 '스완'에서 무차별 총격전이 벌어진다. '이 나라의 체제와 치안에 파문을 일으키고 싶었다'는 오타케 야스카즈와 '어느 날 문득 사는 게 재미없어졌고, 행복해 보이는 타인을 견딜 수 없었다'는 니와 유즈키. 그들은 21명의 사망자와 17명의 부상자를 남기고 사건 직후 자살했다. 니와의 마지막 순간, 3층 스카이라운지에서 그와 함께 있었던 가타오카 이즈미. 그는 이즈미를 앞세워 다음 총구를 겨눌 사람을 지정하게 했다. 자신의 시선이 어느 쪽으로 향하는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목숨이 위협받았던 시간. 소녀는 '생존자'가 되었지만 이후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켰다는 '죄'로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된다.

 

 

사건 발생 후 6개월. 학교는 물론 그토록 좋아하던 발레교실도 나가지 못하는 이즈미가 정신과 의원을 나와 향한 곳은 영업을 하지 않는 어느 중식당. 이 곳에서 그녀는 변호사 도쿠시타 소헤이의 중개로 '스완'의 생존자들을 만난다. 다소 경박해 보이는 하타노(가명)와 백발의 노인인 호사카 노부쓰구, 가정주부로 보이는 이쿠타(가명), 여전히 가시지 않는 두려움 때문인지 움츠러든 것처럼 보이는 도산(가명). 이 모임의 목적은 요시무라 기쿠노라는 여성의 사인에 대해 의문점을 느낀 그녀의 아들이 범행 당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사건 당일 3층 스카이라운지를 찾았던 요시무라 기쿠노는 일요일마다 특별한 점심을 보내기 위해 스완을 방문하곤 했다. 그런데 그녀의 시신이 발견된 곳은 스카이라운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 3층에 있었어야 할 그녀가 어째서 그 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는가, 범인들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한 범행 가능성을 염두에 둔 그녀의 아들이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그리하여 한 곳에 모인, 이즈미를 포함한 다섯 명의 생존자들의 이야기가 조금씩 펼쳐진다.

그때 네가 죽게 내버려 둔 남자아이의 이름이 후타미 유키오다.

p213

사건은 종료되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이즈미를 향했다. 그들의 범행당시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했던 경비센터에 대한 비난이 사그라들자, 다음 희대자로 그녀를 지목한 것이다. 이즈미와 함께 살아남은 고즈에, 그녀가 주간지에 이즈미만 다치지 않고 살아남은 경위를 주간지에 폭로했다. 고즈에는 그 날, 이즈미를 스완으로 불러냈다. 항상 사람들의 중심에 서 있던 고즈에의 자존심을 이즈미가 건드렸고, 그 후 이즈미는 집단 괴롭힘의 대상이 되어왔다. 같은 발레교실에 다녔던 두 사람. <백조의 호수>의 흑조 오딜을 연기할 날을 꿈꿨던 이즈미와 그런 그녀에게 자극받은 고즈에. 세상은 이즈미에게 '오데트인지 오딜인지' 물었다. '비극의 히로인'인지, '악의 화신'인지를 물었다. 고즈에가 폭로한 기사에 침묵하는 이즈미를, 세상은 악으로 단정했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도덕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은 미스터리 작품[ 도덕의 시간]으로 2015년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오승호(고 가쓰히로)의 [스완]. 이번 작품에서는 끔찍한 참극이 벌어졌던 '스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특히 범인의 마지막을 함께 했던 이즈미를 중심으로 생존자들의 고뇌와 그 날의 진실에 대해 그린다. 살아남은 것이 죄가 되는 현실, '범인들이 나빴다'로 정리되지 않는 결론.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이즈미를 비난하고 추궁했다. 어떻게 너는 살아남았지?-라고. 심지어 이즈미가 병원 옥상에서 춤추는 영상이 인터넷에 퍼졌을 때의 악의는 상상을 뛰어넘었다.

이다음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정말 상상할 수 있을까요? 살아남은 이후의 심정은?

p330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상처를 입었고, 누군가는 상처입은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썼다. 만약 그랬더라면, 혹은 그러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의 희생을 막을 수 있었을까. 다른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 (p409). 인물들의 진술과 괴로워하는 모습, 머리를 빙글빙글 어지럽게 만드는 생각들에 깊고 어두운 호수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쯤 등장한 진실. 턱, 숨이 막혀온다. '고작 그런 일'을 누가 '악'이라 단정 지을 수 있을까.

 

고즈에는 이즈미를 '가장 멋진 오데트'라 칭했다. 머리속을 맴도는 이 문구의 의미를 한참동안 파악하기 힘들었다. 고즈에의 약혼자이자 같은 학교 교사인 우시카와는 그것을 이즈미를 향한 비난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어쩌면 고즈에 자신을 향한 칼날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그 날, 스카이라운지에서 이즈미와 고즈에는 둘 다 '비극의 백조'도, '악의의 흑조'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이즈미는 진실을 감추고 백조인 오데트를 선택하며 비극의 주인공으로 남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고즈에를 향한 러브콜. 진부한 표현이지만, 이 무게감, 정말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작품이다.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고, 떠안고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말도 안 된다. 포기 따위 말도 안 된다. 고작 이 정도의 비극. 이런 저열한 이유로 춤추지 못하게 되는 건 전적으로 사양이다.

p511

때로 소설을 왜 읽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허구의 세계 아니냐고, 그런 이야기들을 읽어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한때는 이런 질문에 말문이 막혔지만,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 소설을 읽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고. 인간은 어쨌든 이기적이고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해 너무 쉽게 단정지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족한 마음을 이런 저런 소설이 보완해준다. 배워나가는 것이다. 그 상황에 결코 처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마음들을, 생각들을. 이런 대답을 떠올리게 해 준 작가 오승호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블루홀식스> 작품들을 대부분 재미있게 읽어왔지만, 나카야마 시치리와 더불어 이 '오승호'라는 작가를 알게 해 준 것에 감사를 전한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곧 만날 수 있게 되기를.

춤추자, 고즈에. 언젠가 함께 <백조의 호수>를.

p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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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 대 살인귀 스토리콜렉터 88
하야사카 야부사카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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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외딴섬의 아동보호시설 '착한 아이의 섬'에는 아바시리 히토리를 비롯해 서른 아홉 명의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폭풍이 닥친 어느 밤, 섬 밖으로 나간 어른들이 시설로 돌아오지 못하고 아이들만 남자, 아바시리는 아이들을 악의적으로 괴롭히던 고류지의 방으로 조용히 들어간다. 목적은 그를 살해하는 것. 여기에는 깊은 사연이 있었는데, '착한 아이의 섬'에 입소하고 육지의 중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까, 우연히 고류지 일당이 괴롭히는 '고미'를 발견하게 된다. 학교의 쓰레기를 뒤지고 다니는 일로 그들에게 비웃음과 모욕을 당하고 있었던 것. 처음에는 무심히 지나친 아바시리지만,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열쇠가 없어지고 그 열쇠를 고미가 찾아주면서 차츰 그녀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하지만 고류지 일당의 괴롭힘은 계속되고, 결국 고미는 자살을 기도한다. 그녀가 절벽에서 떨어진 후에야 고미의 본명이 사실은 '이츠미'였음을 깨달은 아바시리는 복수를 결심하고 오늘밤까지 이른 것이다.

 

하지만 몰래 숨어든 아바시리를 맞이한 것은 이미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한쪽 눈에는 금귤이 박힌 처참한 모습의 고류지였다. 도대체 누가 고류지를 죽인 것인가! 아바시리 외에 고류지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야 있었겠지만, 아바시리는 자신의 손으로 고류지를 해치지 못한 것에 분노를 느끼며 다음 타깃을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마침내 자신의 손으로 고류지 일당의 두 번째 목표물을 제거하지만, 아바시리는 계속해서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시신들과 마주친다. 그는 이제 무차별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귀에 대항하면서 남은 타깃을 살해해야 한다. 도대체 넌 누구야??!!

 

그동안 다양한 추미스를 읽어왔지만 제목부터 이리 적나라한 작품은 처음이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의 나이 한 번 보소! 주인공인 아바시리가 13세, 맨 처음 살해당한 고류지는 15세다. 연장자인 모가미조차도 17세이고 가장 나이어린 아이는 8세. 분명 이들 중 살인귀가 있을텐데 그렇다면 8세인 즈시 카즈시조차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에 처음부터 몸서리가 처졌다. 아무리 그래도 8세인 아이조차 살인용의자가 되어버리는 소설이라니, 이건 아니다!-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음머! 살인귀 X 의 비밀스럽고 비극적인 과거가 하나씩 둘씩 밝혀지면서 순식간에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사이비 영능력자였던 어머니를 실수로 살해한 후 악령에 시달리면서 하나 둘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하는 살인귀. 과연 이 살인귀는 누구인가, 마지막까지 침을 꼴깍꼴깍 삼키면서 결말로 내달렸다.

 

으악! 이런 반전이라니!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살인귀가 꼭 남자일리는 없다고, 여자일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었기 때문에 아바시리가 누군가와 대면했을 때 '훗!'하는 생각까지 했는데, 작가는 완전히 판을 뒤집어 엎어버렸다. 이런 결말이라면 누구도 짐작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결말을 읽고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었다. 여기에 이런 숨은 뜻이 있었을 줄이야. 영리한 작가다. 제50회 메피스토상을 수상했고, 같은 작품으로 2015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신인상을 거머쥐었다니, 일본에서 최고로 주목받는 젊은 작가로 꼽힐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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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집 밤의 집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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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읽는 이로 하여금 겸허하게 만드는 글들이 있다. -아직 나는 멀었구나. 내가 그 동안 읽어왔던 것은 어쩌면 종이쪼가리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글. 내가 이리도 이해력이 부족했던가, 머리를 감싸쥐고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읽어도 도저히 의미를 알아채기 힘든 글. 내게는 최근 읽은 피에레트 플뢰티오의 [여왕의 변신]과 바로 올가 토카르추크의 [낮의 집, 밤의 집]이 그러했다. 거대한 글줄기 앞에서 나의 몸과 마음이 한없이 쪼그라들게 만들었던 이 작품. 그런데 이상하게도 슬프거나 허무하거나 자책감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기뻤다. 이렇게 무언가를 찾아헤매며 읽어야 하는 글들이 있다는 것이.

 

올가 토카르추크의 글을 마음먹고 마주대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전에 도서관에서 다른 작품을 한 번 빌렸다가 기한이 다 되어버리는 바람에 반도 못 읽고 반납한 적이 있다. 어지간한 책 한 권은 두 세 시간이면 뚝딱하는 나지만, 토카르추크의 작품 앞에서는 어깨도 제대로 못펴고 무너졌다. 그래서 더욱 관심가지게 된 신간. 과거 폴란드와 독일, 구 체코슬로바키아의 일부였던 실롱크스에 있는 작은 도시 노바루다. 그 도시에 접해 있는 피에트노 마을로 이주한 나는 신비로운 인물 마르타를 만난다. 그녀를 비롯해 아무개씨와 마렉 마렉 등의 이야기를 듣고, 콧수염을 지닌 성녀 쿰메르니스의 전설과 그 성녀의 일대기를 기록한 수도사 파스칼리스 등의 이야기를 수집한다. 보통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서사가 아닌 여러 단편의 이야기들을 통해 비로소 그 의미가 드러나는 작품.

 

이야기 자체가 무척 몽환적이다. 도저히 현실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이야기들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 중심에는 '꿈'이 있다. 작품의 시작도 <꿈>이다. 움직이지 않는 꿈을 꾸는 나. 꿈속에서는 몸도 이름도 없는 순수한 시선인 나. 시간 속에서 시점을 바꿀 수 있는 꿈을 꾸는 나. 그리고 마렉 마렉의 시신을 발견한 후 그가 유령이 되어 나타나는 꿈을 꾸는 아무개씨, 꿈 속에서 사랑하게 된 남자를 현실에서 찾아 나서는 크리시아도 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인 '꿈'을 통해 작가는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우리는 각자 두 개의 집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시간과 공간 속에 위치한 실체가 있는 집이고, 다른 하나는 무한하고, 주소도 없고, 건축 설계도로 영원히 남을 기회도 사라진 집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두 곳에서 동시에 살고 있다.

책을 손에 든 날부터 많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글들을 읽어봤지만 토카르추크의 작품 속 메시지를 파악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심지어 '옮긴이의 말'을 읽었는데도 뭔가 잡힐 듯 말듯 하다.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나를 고민하게 만든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정서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정확히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또 그의 것과는 결이 다르다. 인간의 존재에 대해 끝없이 탐구해나가는 철학서 같은 작품. 안되겠다. 처음부터 다시 읽어봐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대로 토카르추크를 보내기에는 아쉽다.

 

** <민음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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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시네마 천국 - 유아동 자녀와 함께 볼 만한 좋은 영화 50편
김용익 지음 / 스타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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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영화보면서 교감할 수 있다니, 너무 멋질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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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
안토니오 G. 이투르베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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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잔혹하고 열악한 곳에서도 책을 향한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우슈비츠 31구역에 있던 작은 도서관 이야기다. 나치가 아우슈비츠에 가둔 수많은 희생자 중 하나인 열네 살 디타. 총알 하나가 사람 한 명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이곳에서 이 소녀는 알프레드 허쉬가 세운 학교의 사서 일을 맡고 있다. 하지만 역사상 모든 독재자며 폭군이 그러했듯 아우슈비츠에서도 책은 절대 허용하되지 않는 금지 품목. 책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만약 학교에 책이 있다는 것이 발각된다면 허쉬는 처벌을 받을 것이고, 학교는 폐쇄될 것이며, 그나마 아이들이 웃음꽃을 피우고 희망을 생각할 수 있었던 장소가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디타의 임무가 중요한 것이다. 한 번은 정말 위험했다. 차마 은신처에 책을 숨기기도 전에 그 악독한 맹겔레가 들이닥쳤다. 디타는 기지를 발휘해 책을 옷 안에 숨기는 데 성공하지만, 날카로운 맹겔레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위협. 경고. 과연 디타는 소중한 보물들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나치 독일이 디타의 앞길에 수많은 장애물을 세운다 할지라도 책 한 권만 펼치면 그것들을 다 뛰어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p116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은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던 실존 인물 디타 크라우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화 소설로, 대학살이 일어나는 현장에서 여덟 권의 책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놀라운 이야기다. 작가는 아우슈비츠 31구역에 작은 비밀 학교가 있었고, 거기 모여 너덜너덜해진 책 낱장을 모아 읽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처음에는 수필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끔찍한 시대를 건너오면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무언가를 간직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기에는 소설이 알맞다 생각했고, 기적처럼 디타 크라우스와 연결되어 작품을 완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집과 재산, 삶의 터전은 물론 언제 목숨을 잃을 지 모르는 공포의 장소에서 무엇이 사람들을 책에 매달리게 만들었을까. 그들을 꿈꾸게 만들고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책과 관련된 이 이야기를 읽다보면 뭉클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감정이 치밀어올라 목구멍이 콱 막히는 것 같다.

 

책을 지키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아버지를 병으로 잃었고, 맹겔레의 집요한 시선 밖으로 벗어나야 하는 매일의 시간이 두렵기만 하다. 이 작품은 디타의 사서 임무와 함께 여러 책을 소개하며 그녀를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책의 위대한 힘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 시간 속 아우슈비츠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상세히 기술한다. 끌려온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가스실로 들어가는지, 그 사후처리가 어떠했는지, 탈출을 시도하다 어떻게 죽음을 당하는지에 대한 묘사를 읽다보면 이런 곳에서 '아이들을 아이들로 남게 한' 책과 이야기의 힘을 절절히 느끼게 된다. 이 작은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는 알베르토 망겔의 [밤의 도서관]에도 등장한다. 비밀 학교에 5백여명의 아이들이 있었다는 것, '상담선생님'으로 불리는 수용자들도 여럿 있었다는 것, 책의 수는 8권 뿐이었지만 그 책을 숨기기 위해 아주 조심했다는 내용들. 내가 힘들 때 책에 매달렸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책이 구원이 되어주었다는 사실에 눈가가 시큰해진다.

헛된 건 아무것도 없어. 아이들이 웃던 모습 기억하니? 아이들이 '종다리'를 부를 때, 눈을 크게 뜨고 살아있는 책 이야기를 들을 때 기억나? 밥그릇에 비스킷 반쪽 넣어줬을 때 아이들이 기뻐서 팔짝팔짝 뛰던 거 기억나니? 흥분해서 연극을 준비하던 때는 또 어떻고. 아이들은 즐거웠단다, 에디타.

.......

어떤 삶이든, 삶은 모두 잠깐이야. 하지만 최소한 찰나라도 행복했다면 삶의 가치가 있었던 게 아닐까?

p352

인간의 삶은 계속되고, 디타는 어머니와 함께 베르겐벨젠 수용소로 이송되어 그 곳에서 해방을 맞았다. 이 수용소는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안네 프랑크가 숨을 거둔 곳으로 그녀에 대한 이야기도 짧게 기술되어 있다. 디타는 비밀 학교에서 교사를 맡았던 오타 켈러를 우연히 만나 그와 인연을 맺고 유대인 난민을 위한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가르쳤다. '군화로 목숨을 짓밟고자 하는 자들의 잔인함이 단 한 순간도 들어서지 못하도록 튼튼한 장벽을 쌓아올리며 타인에게 헌신한 모든 이에게 바치는 오마주'라는 작가의 말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감동적인 작품.

 

** 출판사 <북레시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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