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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
안토니오 G. 이투르베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20년 10월
평점 :
품절

가장 잔혹하고 열악한 곳에서도 책을 향한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우슈비츠 31구역에 있던 작은 도서관 이야기다. 나치가 아우슈비츠에 가둔 수많은 희생자 중 하나인 열네 살 디타. 총알 하나가 사람 한 명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이곳에서 이 소녀는 알프레드 허쉬가 세운 학교의 사서 일을 맡고 있다. 하지만 역사상 모든 독재자며 폭군이 그러했듯 아우슈비츠에서도 책은 절대 허용하되지 않는 금지 품목. 책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만약 학교에 책이 있다는 것이 발각된다면 허쉬는 처벌을 받을 것이고, 학교는 폐쇄될 것이며, 그나마 아이들이 웃음꽃을 피우고 희망을 생각할 수 있었던 장소가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디타의 임무가 중요한 것이다. 한 번은 정말 위험했다. 차마 은신처에 책을 숨기기도 전에 그 악독한 맹겔레가 들이닥쳤다. 디타는 기지를 발휘해 책을 옷 안에 숨기는 데 성공하지만, 날카로운 맹겔레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위협. 경고. 과연 디타는 소중한 보물들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나치 독일이 디타의 앞길에 수많은 장애물을 세운다 할지라도 책 한 권만 펼치면 그것들을 다 뛰어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은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던 실존 인물 디타 크라우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화 소설로, 대학살이 일어나는 현장에서 여덟 권의 책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놀라운 이야기다. 작가는 아우슈비츠 31구역에 작은 비밀 학교가 있었고, 거기 모여 너덜너덜해진 책 낱장을 모아 읽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처음에는 수필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끔찍한 시대를 건너오면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무언가를 간직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기에는 소설이 알맞다 생각했고, 기적처럼 디타 크라우스와 연결되어 작품을 완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집과 재산, 삶의 터전은 물론 언제 목숨을 잃을 지 모르는 공포의 장소에서 무엇이 사람들을 책에 매달리게 만들었을까. 그들을 꿈꾸게 만들고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책과 관련된 이 이야기를 읽다보면 뭉클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감정이 치밀어올라 목구멍이 콱 막히는 것 같다.
책을 지키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아버지를 병으로 잃었고, 맹겔레의 집요한 시선 밖으로 벗어나야 하는 매일의 시간이 두렵기만 하다. 이 작품은 디타의 사서 임무와 함께 여러 책을 소개하며 그녀를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책의 위대한 힘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 시간 속 아우슈비츠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상세히 기술한다. 끌려온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가스실로 들어가는지, 그 사후처리가 어떠했는지, 탈출을 시도하다 어떻게 죽음을 당하는지에 대한 묘사를 읽다보면 이런 곳에서 '아이들을 아이들로 남게 한' 책과 이야기의 힘을 절절히 느끼게 된다. 이 작은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는 알베르토 망겔의 [밤의 도서관]에도 등장한다. 비밀 학교에 5백여명의 아이들이 있었다는 것, '상담선생님'으로 불리는 수용자들도 여럿 있었다는 것, 책의 수는 8권 뿐이었지만 그 책을 숨기기 위해 아주 조심했다는 내용들. 내가 힘들 때 책에 매달렸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책이 구원이 되어주었다는 사실에 눈가가 시큰해진다.
헛된 건 아무것도 없어. 아이들이 웃던 모습 기억하니? 아이들이 '종다리'를 부를 때, 눈을 크게 뜨고 살아있는 책 이야기를 들을 때 기억나? 밥그릇에 비스킷 반쪽 넣어줬을 때 아이들이 기뻐서 팔짝팔짝 뛰던 거 기억나니? 흥분해서 연극을 준비하던 때는 또 어떻고. 아이들은 즐거웠단다, 에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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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이든, 삶은 모두 잠깐이야. 하지만 최소한 찰나라도 행복했다면 삶의 가치가 있었던 게 아닐까?
인간의 삶은 계속되고, 디타는 어머니와 함께 베르겐벨젠 수용소로 이송되어 그 곳에서 해방을 맞았다. 이 수용소는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안네 프랑크가 숨을 거둔 곳으로 그녀에 대한 이야기도 짧게 기술되어 있다. 디타는 비밀 학교에서 교사를 맡았던 오타 켈러를 우연히 만나 그와 인연을 맺고 유대인 난민을 위한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가르쳤다. '군화로 목숨을 짓밟고자 하는 자들의 잔인함이 단 한 순간도 들어서지 못하도록 튼튼한 장벽을 쌓아올리며 타인에게 헌신한 모든 이에게 바치는 오마주'라는 작가의 말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감동적인 작품.
** 출판사 <북레시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