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집 밤의 집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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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읽는 이로 하여금 겸허하게 만드는 글들이 있다. -아직 나는 멀었구나. 내가 그 동안 읽어왔던 것은 어쩌면 종이쪼가리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글. 내가 이리도 이해력이 부족했던가, 머리를 감싸쥐고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읽어도 도저히 의미를 알아채기 힘든 글. 내게는 최근 읽은 피에레트 플뢰티오의 [여왕의 변신]과 바로 올가 토카르추크의 [낮의 집, 밤의 집]이 그러했다. 거대한 글줄기 앞에서 나의 몸과 마음이 한없이 쪼그라들게 만들었던 이 작품. 그런데 이상하게도 슬프거나 허무하거나 자책감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기뻤다. 이렇게 무언가를 찾아헤매며 읽어야 하는 글들이 있다는 것이.

 

올가 토카르추크의 글을 마음먹고 마주대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전에 도서관에서 다른 작품을 한 번 빌렸다가 기한이 다 되어버리는 바람에 반도 못 읽고 반납한 적이 있다. 어지간한 책 한 권은 두 세 시간이면 뚝딱하는 나지만, 토카르추크의 작품 앞에서는 어깨도 제대로 못펴고 무너졌다. 그래서 더욱 관심가지게 된 신간. 과거 폴란드와 독일, 구 체코슬로바키아의 일부였던 실롱크스에 있는 작은 도시 노바루다. 그 도시에 접해 있는 피에트노 마을로 이주한 나는 신비로운 인물 마르타를 만난다. 그녀를 비롯해 아무개씨와 마렉 마렉 등의 이야기를 듣고, 콧수염을 지닌 성녀 쿰메르니스의 전설과 그 성녀의 일대기를 기록한 수도사 파스칼리스 등의 이야기를 수집한다. 보통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서사가 아닌 여러 단편의 이야기들을 통해 비로소 그 의미가 드러나는 작품.

 

이야기 자체가 무척 몽환적이다. 도저히 현실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이야기들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 중심에는 '꿈'이 있다. 작품의 시작도 <꿈>이다. 움직이지 않는 꿈을 꾸는 나. 꿈속에서는 몸도 이름도 없는 순수한 시선인 나. 시간 속에서 시점을 바꿀 수 있는 꿈을 꾸는 나. 그리고 마렉 마렉의 시신을 발견한 후 그가 유령이 되어 나타나는 꿈을 꾸는 아무개씨, 꿈 속에서 사랑하게 된 남자를 현실에서 찾아 나서는 크리시아도 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인 '꿈'을 통해 작가는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우리는 각자 두 개의 집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시간과 공간 속에 위치한 실체가 있는 집이고, 다른 하나는 무한하고, 주소도 없고, 건축 설계도로 영원히 남을 기회도 사라진 집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두 곳에서 동시에 살고 있다.

책을 손에 든 날부터 많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글들을 읽어봤지만 토카르추크의 작품 속 메시지를 파악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심지어 '옮긴이의 말'을 읽었는데도 뭔가 잡힐 듯 말듯 하다.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나를 고민하게 만든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정서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정확히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또 그의 것과는 결이 다르다. 인간의 존재에 대해 끝없이 탐구해나가는 철학서 같은 작품. 안되겠다. 처음부터 다시 읽어봐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대로 토카르추크를 보내기에는 아쉽다.

 

** <민음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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