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신의 아이 1~2 세트 - 전2권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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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Q161 이상의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 마치다 히로시. 열 여덟인 소년은 최근까지 호적이 없었다. 수많은 남자와 관계를 가져온 어머니가 덜컥 임신을 한 후 아이를 낳고 방치, 학교 등에 보내는 것도 돈이 많이 든다는 생각에 그를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채 내버려둔 것이다. 그에게 잠시나마 위안이 되어주었던 건 잠시 집을 빠져나왔을 때 어울린 오자와 미노루. 지식과 언어능력에 경도장애가 있어 말과 행동이 어눌하지만 자신이 만든 주먹밥을 마치다에게 건네며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얼마 후 마치다는 어머니와 살던 집을 뛰쳐나온 후 노숙자 생활을 하다 무로이를 만난다. 무로이는 마치다의 두뇌를 이용해 보이스피싱 사기를 진행하는 동시에 그를 신의 아이라 칭하며 일본의 불평등한 사회를 범죄로 바꿔보겠다는 비틀린 욕망을 가진 인물이다. 우연히 만난 미노루와 마치다는 조직에서 일하지만, 미노루가 장차 마치다에게 장해물이 될 것이라 여긴 무로이로 인해 마치다는 순식간에 살인자로 변해버린다.

꽃의 이름이나 새 등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알지 못하고, 책이나 미디어를 통한 지식 흡수로 어떻게든 생을 이어온 마치다. 그에게 인간이란 머리가 좋은가, 나쁜가의 두 부류일 뿐이다. 마치다는 범죄자로 낙인 찍혀 소년원에 들어가고, 그런 그를 불안하게 지켜보는 교도관 나이토 신이치.마치다를 향한 집착으로 그 마수를 소년원 안에까지 뻗치는 무로이로 인해 무리하게 감행한 탈주계획, 그 와중에 함께 도망친 이소가이는 사고를 당하고, 이 일을 계기로 마치다의 마음 속에 처음으로 삶에 대한 무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허몽], [악의], [천사의 나이프], [돌이킬 수 없는 약속]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야쿠마루 가쿠의 신작 [신의 아이]다. 호적 없이 살아온 한 소년이 인생의 굽이굽이를 지나 온전한 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휴먼 미스터리. 사실 이 작품은 미스터리 작품이라기보다는 주인공 마치다 히로시의 성장소설이라고 해도 어울릴만한 작품이다. 불우한 환경에 의해 마치 로봇처럼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을 거의 표현하지 못하고 사랑과 우정, 배려와 협력 등에 대해서도 비관적이던 마치다가 어떻게든 자신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며 함께 살아가길 원하는 주변인물들로 인해 점차 변화해가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천재적인 두뇌로 인간을 선별해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무로이의 비뚤어진 욕망으로 인해 마치다의 인생에 몇 차례 위기가 찾아오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었던 미노루와 소년원을 나와 신세를 지게 된 집의 가에데, 그리고 가에데의 엄마와 이후 만나게 된 친구들을 통해 차츰 인간적인 면모를 찾아가는 모습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당신 기준에서는 보잘것없는 작은 배에 불과하지.

부수려고 마음만 먹으면 쉽게 부술 수 있는.

하지만 당신이 부수면 다시 다음 배를 만들면 된다.

함께 어울려 주는 동료가 있는 인생에 완패란 없어.

2권 p484

타인의 관심을 귀찮아하고 누군가의 가르침이란 쓸 데 없는 것이며, 살아서 하는 모든 행위는 '놀이'에 불과하다고 여길만큼 염세적이었던 마치다가 무로이에게 건넨 이 말은, 그의 내면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누군가와 어울려 살아간다는 건 귀찮은 일이다. 타인의 마음을 살피고 챙겨주어야 할 때도 있고, 마음 다치지 않도록 내가 손해를 감수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귀찮을만한 일이 우리 인생에서 빠져나간다면, 삶이 얼마나 무료해질까. 대화하고, 함께 일하고, 함께 놀고, 같이 밥을 먹는 이 일련의 행위들이 우리를 온전한 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만들어준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문장이 존재하는 것 아닐까.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로만 알고 있던 야쿠마루 가쿠의 새로운 부분을 발견한 것 같아 반갑다. 소설 속 인물이지만 끝까지 마치다를 포기하지 않고 다독여준 나이토 교도관, 가에데, 그 외 많은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고 내버려둔 어머니 대신 그에게 인간의 감정과 교류라는 것을 가르쳐준 사람들. 마치다는 신의 아이 같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외롭고 힘든,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한 한 인간일 뿐이었다. 누군가 그런 상황일 때 우리도 손을 내밀 수 있길, 내가 그런 상황일 때 누군가 손을 내밀어주길, 사람이 부대껴 산다는 건 그런 것임을 일깨워 줄 시간들이 존재하길 바라본다. 진정한 신의 아이란 그런 우리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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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 매드 시리즈
클로이 에스포지토 지음, 공보경 옮김 / 북폴리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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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란성 쌍둥이인 엘리자베스와 앨리나는 외모만 같을 뿐 걸어온 인생도 현재의 삶도 180도 다르다. 멋지고 능력있는 남편에 귀여운 아이까지 있는 엘리자베스와는 달리, 인생에 아무 목적도 없이 술에 취해 그저 하루하루를 허비할 뿐인 앨비나. 어린 시절부터 엘리자베스의 그림자처럼 살아온 앨비나는 언니를 증오하고 미워하며 연락도 없이 지낸다. 어느 날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사는 이탈리아로 놀러오라며 항공권을 선물하고, 앨비나는 마침 직장에서도 해고된 터라 못이기는 척 초대에 응한다. 그녀가 마주한 것은 질투날 정도로 아름다운 저택과 섹시한 언니의 남편, 여전히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엘리자베스다. 그런 엘리자베스로부터 몇 시간만 자신인 척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앨비나. 처음에는 고민하지만 결국 엘리자베스인 척 연기하던 앨비나는 충격적인 사건과 마주하고, 언니의 남편 암브로조로부터 상상도 못했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세상에서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일 일란성 쌍둥이 자매가 사실은 서로를 달가워하지 않는 마음을 숨기고 조우했다. 한 사람은 본래의 목적을 숨기고, 한 사람은 순간의 변덕으로. 어쩌면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만남이 그들의 운명을 갈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두 사람은 위치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바뀌어버린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앨비나의 뒤틀린 성격은, 그런 사건을 기회로 여겨 단숨에 언니의 자리를 차지했다. 자연스럽게 따라온 부와 명예, 그리고 섹시한 남편. 두려움에 떨면서도 들키지 않을 거라 자신했지만 결국 정체가 발각되고, 앨비나는 엘리자베스와 암브로조가 어떤 일에 연루되어 있었는지 깨닫게 된다. 자신의 목숨이 위험했었다는 것도. 그리고 자신의 진정한 욕망에 각성한 앨비나. 이제 그녀는 피도 눈물도 없는 모습으로 돈과 욕망을 좇는 위험한 게임을 시작했다.

3부장 중 첫번째인 [매드]는 제목 그대로 앨비나의 미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원래 망가진 모습이기는 해도 피와 욕망에 젖어 살인까지 불사하는 모습에 저절로 혀가 내둘러졌다. 제목 그대로, '매드'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여인이라고 할까. 유감스럽게도 그녀에게 공감이 가지 않는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이런 캐릭터를 탄생시킨 것인지 지금 시점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아 답답하다. 게다가 전개와는 별개로 반복해서 그려지는 과도한 성관계 묘사에는 거부감이 일었다. 이런 장면들이 굳이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작품의 격을 떨어뜨린다는 인상을 받았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최근 북폴리오 출판사에서 출간된 스릴러 작품들을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실망이 컸던 것 같다. 작가가 이 시리즈를 어떻게 결말 지을지, 이 벌려놓은 판을 잘 정리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다음 편이 출간된다면 과연 찾아 읽을 지 미지수.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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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가 잠든 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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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와 기계를 신호로 연결해 인간의 생활을 혁신적으로 개선하려는 연구를 시행해온 하리마 테크. 이 회사의 대표인 하리마 가즈마사는 딸 미즈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아내 가오루코와 이혼하기로 결정했다. 가즈마사의 바람이 파탄의 원인인 그들은 이른바 쇼윈도 부부. 미즈호를 유명 사립 초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면접연습에 참여한 그들에게 딸아이가 수영장에서 물에 빠졌다는 연락이 온다. 의식을 잃고 뇌가 기능하지 않게 된 미즈호. 주치의 신도는 부부에게 뇌사 판정을 받고 장기기증을 할 의사가 있는지 묻고, 그들은 하룻밤 고민 끝에 미즈호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려는 순간, 부부는 미즈호의 손에서 움직임을 느끼고 결국 장기기증 의사를 철회, 어떤 방식으로든 미즈호를 되살리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우리 딸은, 살아있어요.

죽지 않았습니다.

2018년 제31회 동경 국제 영화제 특별초대작 <인어가 잠든 집>의 원작소설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 출간됐다. 뇌사한 것으로 보이는 딸 미즈호를 포기하지 못하고 끝까지 그녀를 지키려는 부모의 모습과, 한편으로는 간절하게 장기기증을 기다리는 다른 가정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 진실로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기준 등을 역설한다. 기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과는 달리 범죄도, 범인과 피해자도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지만 잠든 듯 누워있는 미즈호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긴장감을 부여했다. [미등록자] 에서처럼 과학분야와 관련된 지식을 바탕으로 현실성을 살린 BMI, 이른바 브레인 머신 인터페이스라는 소재를 이용해 실제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미즈호의 모습을 구현해내며 그것이 과연 가치가 있는 일인가 되묻게 만든다.

처음에는 미즈호가 장치 없이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던 가오루코는 점차 조금씩, 팔을 들어올릴 수 있게 된다면, 뭔가 반응을 보일 수 있게 된다면,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된다면이라는 욕망 속에 딸이 절대 죽지 않았다는 믿음을 굳건히 한다. 그저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미즈호를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그녀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같은 엄마로서 너무나 잘 이해가 되서 책을 읽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누워 있는 자식을 눈앞에 두고 언젠가는 깨어나리라는 믿음을 저버릴 부모가 얼마나 될까. 그것이 정상 범위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붙잡아두고 있는 것이 자기만족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을. 히가시노 게이고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다른 부모의 모습을 잠깐 비춰주며 장기기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 현실과는 동떨어진 법과 제도를 꼬집는다.

오해가 없었으면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저희는 누군가가 하루빨리 뇌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따위는

전혀 없습니다.

기증자가 나타난다는 건

어딘가에서 아이 하나가 죽었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슬퍼할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이식 수술은 '선의'라는 베풂을 받는 것이지

요구하거나 기대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뇌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간병을 계속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 아이 부모에게는 아이가 살아 있다고 여겨질 테니까요.

그 또한 소중한 생명 아니겠습니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따질 수 없다. 부모니까 자식을 붙잡아두고 싶은 것이고, 부모이기에 어딘가의 누군가가 나타나 장기기증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미스터리 작가임에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같은 작품에서 보여준 특유의 따뜻한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며 어느 쪽도 비판하지 않았다. 선택은 독자의 몫. 무엇이 인간의 삶과 생명을 결정지어주는지,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있는 소중한 이들을 위해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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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자살되세요, 해피 뉴 이어
소피 드 빌누아지 지음, 이원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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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여읜 마흔 다섯의 실비 샤베르. 어머니는 예전에 돌아가셔서 이제는 홀로 남게 된 그녀는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삶에 대해 무상함을 느낀다. 누군가의 아내도, 어머니도 아닌, 그저 누군가의 딸이었던 실비. 말총처럼 푸석푸석한 갈색 머리에 등은 구부정하고 가슴은 납작하다고 자신을 폄하하며 절대 남자의 마음에 들지 못할 거라는 비관에 빠진 나머지 자살을 계획한다. 두달 뒤, 그것도 누구나 기쁘고 즐거워하는 크리스마스에! 진짜 자신의 모습을 알기 위해 정신과 상담을 받기로 결정하고 의사 프랑크와 몇 번의 만남을 가지면서 평소 자신이 두려워하고 상상해보지 못한 일들에 도전해보기로 한다. 이를테면 브라질리언 왁싱을 받는다던가, 슈퍼에서 물건을 훔쳐본다든가. 그리고 처음 만난 남자와 잠자리를 가져본다든가.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해보면서도 삶에 대해 그 어떤 집착을 느껴보지 못했던 실비는, 우연히 노숙인 여성의 죽음을 지키게 되면서 자신의 고독에도 안녕을 고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외로움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 때가 있다. 세상에 나 혼자 존재하는 것 같고,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할 것만 같은 고독감. 그것은 설령 옆에 친구나 애인, 남편이나 아내가 있어도 그들이 해결해 줄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자신 뿐. 오로지 홀로 고군분투 한 끝에 간신히 그 외로움에서 헤어나와 다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시간이 지나면 또 고독에 빠져들기도 한다. 항상 즐거울 수만은 없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그런 과정 속에서 나를 나로 살아가게 하는 것, 그 어떤 경우에도 삶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존재들의 여부다. 실비는 아버지를 잃었고, 이제 고아가 되었고, 절친인 베로니크가 있지만 그녀는 남편과의 이혼으로 그녀만의 전투에 임하는 중이었다. 철저히 혼자. 그런 쓸쓸함 속에 자살을 생각하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두 달의 숙려기간을 준 것은 그만큼 살고 싶다는 마음의 반증 아니었을까.

 

브라질리언 왁싱을 받으면서 기절을 하고, 슈퍼에서 처음 물건을 훔치느라 긴장에 빠지는 실비의 모습이 다소 코믹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자신의 삶을 바꿔보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그녀는 분명 용감한 사람이다. 그 용기로 인해 실비는 멋진 외모도 얻었고, 새 옷도 얻었고, 마음맞는 남자친구도 생겼다. 밖으로 나간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특히 자신을 가둔 스스로의 마음 안에서 한 걸음 내딛는 것은 정말 어마무시 어렵다.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인생을 꿈꾼다면, 이 고독과 쓸쓸함과 외로움과 안녕하고 싶다면 탈출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죽는 것보다는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고, 슈퍼에서 소소하게나마 물건도 훔쳐보고, 평생 꿈도 꿔보지 못했던 원나잇 스탠드를 하는 게 그래도 쉬울 테니까. 그리고 주위에는 분명, 실비 곁에 로라가 있었듯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둘러싼 얼음을 깨고 햇빛과 비와 눈을 맞아보자. 비록 공기에 미세먼지는 가득 차 있을지라도.

 

고독은 크레바스 속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아.

도움이 필요하지만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하지만 너를 에워싼 얼음은

깨지기도 쉽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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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사탕 내리는 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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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매 사와코와 미카엘라.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생각하며 땅에 별사탕을 묻으면 일본 하늘에 별이 되어 나타날 거라 믿었던 그들은, 서로의 연인을 공유하기로 약속했다. 약속은 자매가 일본유학 중 만난 다쓰야를, 사와코가 공유하기를 거부하면서 깨지고 미카엘라는 누군가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아기를 임신한 채 아르헨티나로 떠난다. 다쓰야와 결혼해 일본에 정착한 사와코. 20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 사와코는 다쓰야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이혼서류만 남긴 채 연하의 연인 다부치와 아르헨티나로 향한다. 딸 아젤렌과 소소한 일상을 즐기며 살던 미카엘라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혼란에 빠지고, 다쓰야 역시 예상하지 못했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해 아르헨티나로 향한다. 이윽고 마주하게 된 네 사람. 과거는 현재에 되살아나고, 그들 중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관계가 이어지고 끊어진다.

 

몽환적인 표지에 달콤한 제목만 보고 아름다운 이야기일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내 취향은 아님에도, 뭐랄까, 역시 에쿠니 가오리군! 이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고 할까. 그 동안 읽어온 그녀의 작품 속 주인공들이 사랑을 대하는 태도-관계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쿨하다면 쿨한, 아내가 있음에도 수많은 여자친구가 있는 이해 못할 다쓰야같은-는 [별사탕 내리는 밤]에서도 보여지지만, 지금까지의 작품 속 인물들과는 달리 사와코의 내면은 좀 더 복잡해보인다. 동생과 남자를 공유하기로 한 사와코, 다쓰야와의 공유는 거부한 사와코, 그와 결혼해 일본에 정착했음에도 지금은 이별을 준비하는 사와코, 헤어지기로 마음 먹었고 더 이상 다쓰야를 사랑하지 않기로 결심한 사와코, 아르헨티나로 돌아갔지만 다쓰야를 생각하는 사와코, 그럼에도 다부치와 관계를 맺는 사와코라니. 도대체 이 여자의 마음은 무엇인가 궁금해졌다.

 

그게 말이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당신의 바람을 눈치챌 때마다

나는 미카엘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

이상하지?

하지만 진짜 그랬어.

그리고 있지,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내 자신을

더 이상 견뎌낼 수가 없었어.

 

아르헨티나에서 서로의 존재는 큰 위안이었을 것이다. 일본인이지만 일본이 아닌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그들에게 우정도, 사랑도 모두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을까. 찾아내고 싶었다. '나'를 제대로 봐주는 사람을. 호기심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확실히 인정하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그래서 자매는 약속했다. 남자를 공유해보기로. 유혹에 넘어오지 않는 남자라면, 그 사람은 진짜라고 생각했으니까. 사와코에게 다쓰야는 '진짜'라고 믿고 싶었던 남자다. 그래서 어쩌면 전우애마저 느꼈을 소중한 미카엘라에게 처음으로 공유를 거절했다. 동생의 마음을 알면서도. 하지만 다쓰야는 사와코가 생각했던 '진짜'가 아니었다. 그래서 다쓰야가 바람을 피울 때마다, 소중한 동생의 마음을 배신하면서까지 선택한 이 남자가 정말 가치가 있었던가 싶어 사와코는 미카엘라에게 미안함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진짜가 아니었는데, 미카엘라, 너와의 약속을 저버렸어. 그 과거로부터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진실이었는데.

 

솔직히 사와코의 마음이 어떤지 잘 모르겠다. 다부치를 정말 많이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고, 다부치 또한 사와코를 열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지 않은데, 이들의 관계는 담백함을 넘어 연인을 연기하는 배우들같다. 그런데 또 섹스도 하고 아기를 만들어볼까 싶은 마음도 들고 한 집에서 같이 생활한다. 잘 모르겠는 사람은 사와코 뿐만이 아니다. 다쓰야는 또 뭔가. 여전히 사와코를 사랑한다면서 여자친구들도 많고 바람도 피운다. 그러면서 그냥 미안하단다. 그 정도는 이해해줄 줄 알았단다. 사와코를 되찾을 자신이 있단다. 당신, 뭐라는 것이냐. 미카엘라도 모르겄다. 사와코를 걱정하면서도 한 때 마음에 품었던 다쓰야와의 만남에 마음이 설레인다. 유혹한다. 아니! 작품 안에서 '나'라는 화자로 등장하는 아젤렌은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엄마의 상사와 목하 불륜 중이다. 그로 인해 세상이 빛난단다. 생각이 있는 것이냐. 이 나이 많은 엄마 상사 파쿤도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 아젤렌을 사랑한단다. 그런데 가족도 중요해. 바뜨 아젤렌이 계속 함께 있어주면 좋겠대. 뭐야, 당신!

 

나의 정서와 상당히 거리감 있는 작품이었는데도 이상하게 사와코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와코, 당신의 선택은 다부치? 그 선택에 후회는 없을지, 아르헨티나의 그 거리에서 다시 별사탕을 묻어 일본의 밤하늘에 뜬 별을 다쓰야가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을지 궁금하다. 독자들에게 상당히 호불호가 나뉠 것 같은 작품인데, [냉정과 열정 사이]에 인상깊었던 나로서는 이런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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